어느 물리학자의 비행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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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팩션계의 거봉 로버트 해리스의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은 금융경제와 IT산업과 스릴러가 크로스 오버하는 형식의 작품으로 스위스 제네바의 증권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쩐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알렉산더 호프만은 천재 물리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로, 스위스의 CERN(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에서 일했던 천재이다. 강입자 충돌기 분야에서 6년 있었고 인공 지능의 알고리듬을 연구하다 파트너 휴고 쿼리를 만난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호프만 투자 테크놀로지를 창립하여 헤지 펀드를 내놓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해지를 헤지로 잘못 표기한 것 아닐까 할 정도로 생소한 용어였다.

 

 

헤지 펀드는 주식시장에서 투자심리 위축을 미리 예상하여 주가가 하락할 때 매입하여 수익을 올리는 방식인 듯 한데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호프만 투자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사고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와 각종 변수들을 대입하여 컴퓨터의 알고리듬이 주가를 분류, 판단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시스템을 통해 투자자들을 불러 모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호프만은 자신이 주문한 적도 없는 찰스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란 고가의 고서가 자택으로 배달되어 온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 상태를 흑백사진 속에 묘사하여 동물적 반응을 그려낸 연구서였다. 특히 두려움이 극한에 이르면 어떠한 변화에 도달하게 되는지 관심을 둘 것을 암시하는 것 같은 메모의 삽입이 들어있어서 더욱 께름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 무슨 이유로 보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보안이 철저하다고 자부했던 그의 자택에 괴한이 침입하여 습격을 하고 사라지는 일까지 일어난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세계증권가의 주가 등하락을 실시간 체크하며 헤지펀드가 가져다줄 부의 창출에 혈안이 되어있는 호프만은 돈 앞에서 냉혈한이 되어버리는 남자였다. 수익에 좀 더 집중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도용한 누군가가 선물로 보낸 이유는 정신세계를 분열시켜 미치도록 만들고자 하는 음모가 아닐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요새는 뜸해 보이기는 한데 예전에 주식열풍이 불 때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아 주식에 몽땅 투자했다가 쪽박 찬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였다.

 

 

그 방면에 완전 무지했던 나는 주식은 마약과도 같다고 생각하였고 간혹 수익을 낸 사람들을 보며 군침 흘리며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한번 주식에 빠지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오로지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이 만사가 되어버린 폐인들의 대박 꿈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이 소설 속에서 돈이 돈을 낳는 황금알에 감히 눈길 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전인미답의 세상이다. 전 세계의 돈은 그렇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돈을 물어다주는 전설적인 창업자 호프만의 복음은 신도들에게 신화가 되어가려던 참인 것이다.

 

 

알고리듬에 바탕을 둔 특별한 투자펀드를 앞세워서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두려움에 빠지는 순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며 공황을 먹고 사는 알고리듬은 이익 창출 가능한 데이터로 수정한다는 그 이론과 논리 앞에 다수는 철저히 무력하다. 자본주의 시대는 철저히 돈이 매긴 가치에 지배당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배제한 디지털 머니가 변동성 수준이 위험한 수준에까지 폭주하는 후반부는 대공황을 불러 올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위협이었다. 이야기의 그 흐름을 쫓아가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이번에도 공부해가며 읽어야 할 스릴러임에는 틀림없다.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고는 하나 기초적인 지식이 없으면 계속 돌파해 나가는 데에 무리가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염려도 된다. 과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연출할 영화는 스릴러적 감성 외에 관객들을 어떻게 이론무장을 시킬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는 점에서. 덧붙여 이 소설의 한글제목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The Fear Index>가 어떻게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이 되었는지를... ! 그러고 보니 호프만이 원래 물리학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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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쓰카사키 시로 지음, 고재운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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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머릿속을 지배하는 불길한 느낌을 감지하고서도 도리야마 도시하루는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에 집에서 아내와 오붓한 저녁약속을 위해 돌아갈 때만 해도 애써 기분 탓이려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 나올 때 아는 척 하던 남자도 무시했다. 그런데 그가 집에 도착하니 기이한 그림이 펼쳐져 있다. 조명 나간 거실은 컴컴한데다 웬 촛불이 열일곱 개씩이나 세팅되어 있질 않나. 결정적으로 아내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뜨악하고 있을 때 걸려온 낯선 이의 전화는 멘붕에 빠진 도리야마의 귀를 의심케 하는 아내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니, 그럼 아내랑 판박이처럼 닮은 저 시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곧이어 두 남자가 형사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자신을 들쑤시다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도리야마는 좀 전까지 누워있던 아내의 시체가 깜쪽같이 사라진 것에 당황하여 도주하기 시작한다. 도주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방문객의 정체를 폭로하며 도주하라 부추긴 전화가 또 왔고 이에 주저함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만약 나라면 이 상황에 어찌 대처하였을까? 막막하였을 것 같다. 다급히 쫓기는 신세를 보호해줄 바람막이가 변변히 존재하기나 할까,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에서 천운처럼 도움을 주는 오쿠무라 지아키는 인생은 예측불가의 변수가 분명 있는 듯하다. 그녀의 정체가 궁금하고 낯선 이를 돕는 의도에 불순물이 섞여 있지는 않는지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의심했으니 설마가 사람 잡을 확률에 대비했던 것이다.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도리야마는 과거 자신의 인생이 조작되어 있다는 충격적 진실에 직면하는데 기억의 왜곡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전형적인 음모론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과정을 헛되게 무너뜨릴 반전이 있다면 얼마나 허무해질까? 반대로 밋밋하고 평범한, 불행한 삶을 살아온 나 자신이 누군가의 기억으로 세뇌당해 왕자가 거지된 것 같은 형국이었다면 이 또한 정체성에 대혼란을 느껴 바로 잡고자 하는 욕구로 발버둥 치며 보상받고자 했을 것 같다. 도리야마는 결국 이중생활은 한 셈인데 축적되어 있던 기억을 싹 밀어내고 다른 기억으로 장착되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론이 무척이나 신선하다.

 

 

 

몸은 하나, 인생은 리필. 그야말로 진시황이 그토록 염원하던 불로불사가 영험한 약초 같은 식이요법의 효능에 기대지 않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건 획기적이다.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것이지. 좋은 기억만 들고 이 몸에서 살다가 몸이 사멸하면 다른 몸으로 이사하면 되니까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는데 정말 나 자신부터 실현하고 싶은 꿈같은 과학이다. 윤리적 문제는 도외시하고 책 속의 미스터리와 문학적 완성도까지 제외하더라도 그 같은 기술에 입각한 상상만 내내 하는 동안 기분이 업 되는 착각 속에서 읽게 된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책이 주는 미묘한 기분은 생생하다. 상상력과 추리, SF가 절묘하게 융합하여 재밌는 스릴러로 탄생했으니 칭찬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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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크라이 카오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레너드 로젠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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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크라이 카오스>는 이론과 캐릭터로 양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 작품쯤 되겠다. 개인적으로 수학에 강한 알레르기가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랙탈 이론, 카오스 이론 등을 바탕으로 한 수학적 이론과 경제적 접근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앙리 푸앵카레를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의 증손자로 설정해 놓고 육체적인 강인함 못지않게 지적탐구를 강조하는 미스터리로 창조해냈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는 실제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수학과 수리물리학, 천체역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했던 인물로 특히 카오스 이론의 정립에 지대한 역할을 한 유명인사로 알려져 있다. 대신 이 작품의 주인공 푸앵카레는 할아버지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인터폴 형사로 30년을 누비고 다닌 노회한 베테랑이다. 성격이 진중하고 학구파 스타일인 그는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의와는 결코 타협을 보지 않는 억척 형사로 명성을 날렸는데 정년을 앞두고 가족과의 단란한 노후를 꿈꾸어 왔다. 다만 몰아내고 또 몰아내도 악의 본질적 뿌리를 도려내지 못함을 아쉬워 할 뿐이었다.

 

 

푸앵카레의 마지막 전리품이 될지도 모를 범죄자는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이슬람교 성인남자들과 소녀들을 대량 학살한 짓을 지시하고 동참한 죄목으로 인터폴의 국제 지명수배를 받아왔던 구, 유고 연방 출신의 스티포 바노비치였다. 장기간에 걸쳐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체포하여 법의 심판을 넘길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것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노비치는 자신을 구금한 푸앵카레에 앙심을 품고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살해 위협을 한다. 아니 실제로 안타까운 희생양이 발생한다. “바노비치의 청부살인 사주를 피해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테러로 보호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나 손녀딸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는 바노비치의 위협에도 법과 이성에 호소한 대응으로 안주했던 이 노 형사는 비로소 복수심에 살의를 품는다.

 

 

하지만 푸앵카레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WTO 각료 회의 보안 총괄을 담당하게 되었던 그가 현지에 도착하였을 때 폭발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폭발원인으로 로켓 추진에 주로 사용되는 원료인 과염소산 암모늄'으로 밝혀지고 이 폭발에 의해 호텔 꼭대기 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대형 참사였던 것이다. 다른 투숙객들은 무사했는데 폭발이 발생한 호텔방의 투숙객 "제임스 펜스터"라는 하버드대 교수이자 수학자만이 사망했다. 단 한사람만을 표적으로 노렸다는 심증이 굳어지는 가운데 희생자가 30세이고 WTO 회의에서 강연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수학자를 노린 암살이 발생한 동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갑론을박이 난무한다.

 

 

정치적 음모도, 애정문제도 아닌 불확실한 추측을 뒤로 한 채, 인터폴에 의해 수사를 맡게 된 "푸앵카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스터"가 연구했던 프랙털 이론을 근간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며 단서를 차근차근 수집하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는 수학문제나 마찬가지 형국이다.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는데 조교, 약혼자 같은 케이스는 기본이며 동료 수학자 등도 만나면서 진척 없는 진행상황에 힘들어 한다. 이와 동시에 "바노비치""푸앵카레"의 가족들을 노린 청부살인에 복수까지 해야만 하는 이 남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혼돈에 빠져 울 것 같은 최대난관에 빠진다.

 

 

중간 중간 프랙털 이론을 언급했는데 한 부분을 확대할 때 그 확대된 부분이 확대전의 성질이나 모양을 유지하는 그림이나 도형을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첨언하면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지점에서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규칙 하에서는 가지의 어느 부분을 선택해 확대해도 전체 나무 모양과 같은 모양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자기 유사성을 가지는 기하학 구조를 뜻하는 프랙털 이론은 현대 수학부분에서 중요하며, 이 이론은 수많은 다른 학문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는 아주 유용한 이론이라고 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이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사진들을 예시로 들며 비교하는 방식을 자주 쓰고 있다. “프랙털 이론에 대한 단면적인 이해가 물론 쉽지가 않거니와 수학자들이 숫자와 상징만으로 방정식을 만들어 인간행동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모형화 할 수 있다는 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개념들이 펜스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동기를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키포인트가 되리란 걸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관용을 모르는 아집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여 폭력을 선택하는 종교적 배격이 이제껏 관습화되었던 이슬람 원리주의를 뒤 집은 구도마저 상당한 오해를 무색하게 한다. 이것은 신종플루처럼 전염되는 병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수학은 서로 다른 것에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예술이라고 했던가? 일정한 패턴을 찾아 예측하는 것, 지식을 바라보는 순수한 사랑을 넘어서 재능은 경제적 탐욕을 충족시킬만한 방정식을 구현하였기에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목숨을 담보로 한 필사의 회피, 마침내 실체가 드러나며 반전으로 끝맺는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집대성을 통해 머리 쓰는 지적 미스터리, 이해하여 받아들일 것인가? 어렵다며 고갤 절레절레 저을 것인가? 순전히 독자의 개인적인 지적능력이 크게 좌우하게 될 것 같아서 상당히 격렬한 수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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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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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이다. 읽은 지는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야 감상을 남긴다는 건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대한 불만이 남았다는 반증이다. 서문을 여는 일기형식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동일한 패턴이다. 하지만 오마주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단순한 차용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제였나?

 

 

도쿄 시내에서 여섯 번에 걸쳐 일어난 연속살인사건. 첫 번째 희생자는 머리가 없고 차례대로 발견된 총 여섯 구의 시체들은 머리 외에 팔, 다리 등 각각의 신체 부위가 사라진 상태로 발견된다. 단서라고는 머리카락 말고는 없으니 범인은 처음부터 치밀하고 완벽한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범인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나 분노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신체의 특정부위를 잘라내 사라졌을 뿐이었으니 이래서야 과연 범인의 살인동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될 리가 없다.

 

 

이 때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구원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맡게 된 일원이 있었으니 바로 가부라기, 히메노, 마사키, 사와다로 구성된 수사팀이다. 사건을 전담하게 된 수사팀의 리더를 가부라기가 맡게 되는데 한 번도 남들을 통솔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 그가 팀의 리더가 되어 스스로 긴장을 많이 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팀원들의 팀웍은 생각보다 척척 잘 맞아 떨어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낸 이들은 결국 실마리를 찾아낸다. 의미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가부라기 형사에게 보낸 의문의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한다. 발신자는 데드맨이라고 했다. 이 제보가 결정적 단서가 되어 40년 전 재판 기록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분명 죽은 여섯 사람들은 관계적 측면에서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지만 누군가에 의해 한 맺힌 삶을 끝내야했던 원한을 산 접점이 발단이었음이 드러나는데 그 추리과정은 복잡한 룰이 아니라 가공된 사연이 만들어낸 프로세스의 답사이었을 뿐이다. 추측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대로 길을 따라가면 되니까 두뇌게임을 요할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일단 술래의 그림자가 발견되면 이제 게임은 그것으로 끝이다. 무의미한 복수다. 복수해야 할 대상자가 없으니 애꿎은 희생양을 사냥한다는 그 의중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죄 라고.

 

 

추리가 아닌 스릴러가 되는 후반부는 초반의 아조트 살인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쓰잘 데 없는 사기적 농간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지경이다. 기껏 기대와 호기심을 최대한 부풀려 놓았으면 오리지날의 트릭에 맞서진 못하더라도 적당히 라도 잔재주를 부려 최소한의 재미라도 충족시켰어야 했다. 단지 눈 가리고 아웅 이라니... 게다가 범인의 발악은 흡사 구로다케 요의 <그리고 숙청의 문을 열고>를 연상시키지나 않나, 도무지 창의성과 기지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실망의 연속일 뿐이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미하리라. 근래 보기 드문 속도감 있는 가독성이 일순 무색할 정도로 비참하고 남루하다.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하지 못한 작가적 역량의 한계는 왜 미스터리를 읽는가에 대한 성의 없는 얼버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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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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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

 

줄리언 웰즈의 죄는 네 번째로 만나게 된 토머스 H. 쿡의 작품이다. 첫 만남이었던 심문은 전형적인 미스터리물이었고, 현재의 그가 가진 정체성을 확인시켜준 달까, 각인되어 있는 쿡 스타일로 안내했던 것은 붉은 낙엽이었고 다시 채텀 스쿨 어페어로 정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점점 더 진화하는 것 같고,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쿡의 작품세계. “줄리언 웰즈의 죄는 이제껏 읽은 그의 작품 중 대중성 측면에서 가장 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단순히 그 점만으로 가치를 폄하할 수 없는 고유의 완성도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범죄보다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없다고 썼지만

의문이 풀리며 드러난 진실도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발견한 진실도 그랬다.“ (P.14)

 

 

줄리언 웰즈의 작가적 재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한창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50대에 돌연 호수 한가운데에서 팔목을 긋고 자살로 생을 고한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절친 필립은 줄리언의 책을 따라 과거로의 여정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하나 뿐인 진정한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필립은 황금 같은 청춘기와 작가라는 제2의 인생서막을 제대로 누리지도 않은 채 자살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헛된 기다림과 찰나의 고독을 감히 짐작조차 못했을 그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과거행적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줄리언이 죽음 직전 보고 있었던 남미 아르헨티나 지도로 시작하여 반인륜적 역사를 다룬 친구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의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불행한 실종사건에서 단서를 잡는다. 책의 헌정사는 이랬다.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밝힙니다.”라고. 그랬다. 아직 민주화의 봄이 도래하지 않았던 남미 대륙은 정국이 혼란했다.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소위 더러운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추악한 만행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더러운 전쟁(Guerra Sucia)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이 국가에 의한 테러, 조직적인 고문, 강제 실종, 정보 조작을 자행한 시기를 일컫는다. 학생·기자·페론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게릴라 및 동조자가 주 피해자이다. 1만명 정도의 몬토네로스와 인민혁명군의 게릴라가 실종됐고,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러운 전쟁은 콘도르 작전의 일부로 시작됐다. 이들 대부분은 억울하게 죄목을 뒤집어쓰고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러운 전쟁말기인 1980년대 당시 줄리언과 필립은 방관자적 위치에 서 있었다. 30년전 아르헨티나의 젊은 여성 마리솔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고 그것의 진실이 수면 위로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과거와 현재는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며, 기억의 모호함에 가려진 선악의 근간마저 뒤흔들게 된다. 위태롭게 흔들린 양심은 줄리언에게 죄를 물을 만큼 무겁게 짓눌러왔으니 감당하지 못한 그를 끝내 자살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이유를 속히 알아내고 싶지만 중반까지 는 그날의 기억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히 마리솔의 실종에 어떤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러운 전쟁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중 마리솔의 경우는 왜 그랬던가? 에 대한 해답은 후반부에 비로소 제시되기에 거기까지 도달하는 여정은 모호한 안개 정국이다. 그래서 후반부에서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려고 작정한 것 마냥 상세히 설명해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마저 든다.

 

 

아이들은 장남삼아 개구리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는 것. 젊은 용기를 의도하지 않는 결과로 호도한 대가는 컸었다. 설마 그러할까? 싶었는데 순진한 청춘은 이를 고이 곧대로 새겨듣고 실천한다. 세상을 너무나도 낭만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의 이면에는 부디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랐던 기성세대의 무기력한 심술이 있는 줄 몰랐던 무지가 2차 책임이었다. 사내아이들의 장난 같은 망토와 단검이론에 넘어가 어리석은 수렁에 깊이 빠져들어간 후였으니, 선의의 피해자는 반인륜적 역사에 희생당하고 만 것이었다.

 

 

관건은 적에게 던져줄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야 한다는 거지.

사투르누스에게 잡아먹힌 자식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잡아먹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다.“ 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그런 술책을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라고 부르지.“ (p.318)

 

 

차라리 이 책의 제목으로 그대로 썼어도 좋았을 이 말, ‘사투르누스의 기습’. 사투르누스는 그리스에서는 크로노스라고 일컫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으로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시간의 의미와 함께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는 인간성의 타락을 상징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다. 때론 사람들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약점이나 치부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다. 그 내면에는 죄의식도 함께 들어있어 꽁꽁 숨겨 왔던 그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빗장을 몰래 열고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산다.

 

 

믿음에 일순간에 배신당해 파멸당한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처럼 줄리언의 삶도 산산조각 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차 하는 순간, 송두리째 달라진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순간이 사투르누스의 기습이 된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이처럼 섬뜩하게 경고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서정적이며 시적인 문장과 잔인한 원죄 의식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서 완전한 이해까지는 못했어도 여타 작가들과 그 심오한 경지가 다르다는 건 인정하게 된다. 이번에도 감탄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같이 먹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짬짜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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