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독수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6
윌리스 브림 지음, 유향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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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친구여,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이제 가게나."

"자네 역시, 나의 장군님.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적병의 무리가 깨져나갔고, 이어 우리 기병들은 어지러운 인파 속으로 파묻혀갔다. 반짝이던 투구가 하나씩하나씩 차례로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기병대의 깃발이 마치 날쌘 독수리가 하강하듯 갑자기 떨어져내렸다. 이어 반달 족이 해자를 넘어와 도끼로 방책을 부수기 시작했다. 파비아누스와 아퀼라가 내 좌우에 있었고, 아르토리우스와 스쿠딜리오는 조금 멀리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훌륭한 전우들과 함께 죽는다!"

- 책 속에서 -

 

 

가끔씩 가입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거의 일주일동안 책 한 장도 읽지 않았네요' 라는 자조섞인 회원들의 독백과 마주치게 됩니다. 바빠서 그렇다는 건 핑계구요, 확 끌리는 작품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독서의 슬럼프가 저승사자처럼 찾아온 것인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을 당분간 멀리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그리워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그럴 땐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셔야죠.

 

슬럼프에 빠진 독자들을 확실히 소생시키는 효과 죽이는 처방약이 바로 이 소설 <눈속의 독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친 듯이 읽는 사람을 훅 가게 만드는 이 소설의 매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팩션이지만 진실로 강직하면서도 결사적인 로마 20군단의 처절한 사투에서 눈물 나는 감동과 숙연함이 동시에 가슴을 파고들기 때문일 겁니다.

 

이 소설은 앞서 얘기했듯이 로마의 마지막 군단인 20군단을 이끄는 막시무스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바탕이 된 걸작소설입니다(주인공 이름이 같습니다). 시대배경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번영가도를 달리던 대 로마제국도 이제 국운이 기울고 쇠약해진 시기입니다.

 

그동안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숨죽이고 있던 이민족들이 하나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 게르만민족은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을 피해 로마의 속주인 라인 강 일대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옵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로마제국!!

 

로마를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구할 마지막 희망은 잉글랜드에서 귀환한 노장 막시무스 장군밖에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강직한 성품으로 어떠한 유혹과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한평생 로마제국의 장군으로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백전노장인 그에게도 이번 전투는 그야말로 절망적입니다, 로마정부는 도처에서 도발하는 이민족을 상대하느라 막시무스 장군에게 지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합니다. 내게 조금만 더 병력과 물자지원만 있다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텐데...

 

그런 그의 곁에는 오랜 친구인 퀸투스 기병대장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충성스러운 부하들 모두가 그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지요.

 

이제 남은 것은 전면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적들에 비해 병력수가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고 신의 가호를 빌어야할 처지, 신은 그를 도울 것인가!

 

고작 6천의 병력으로 모든 가족들을 총동원하여 밀려들어오는 이민족들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이지만 그 수가 끝이 없습니다, 죽여도 죽여도 또 밀려드는데다 그 와중에 일부 배신자까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구요.

 

결국 장군 휘하 군단의 병사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면서 불꽃같은 삶을 마감하지요...

 

마지막 100페이지 정도에 걸쳐 전개되는 로마20군단과 이민족의 전투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최고의 미학과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강줄기에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대양으로 흘러들어가면 스케일의 절정을 보여주는데요. 마치 전투현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생생함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떨려옵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이것은 삼총사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지만 이들만큼 절절히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결단코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의 위대한 리더쉽과 불굴의 정신력, 장군에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복종하는 로마 20군단의 병사들 모두가 미친 존재감과 함께 대단한 감동을 던져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지켜보노라면 삼국지 저리가라에다 조국을 최후까지 사수하려는 모습에선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빅 픽처>2011년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 대한 리뷰를 쓰는 지금 이 순간, 최고의 자리는 <눈속의 독수리>가 차지합니다.

 

살아서 책을 읽는다는 진정한 기쁨을 안겨 준 소설 <눈속의 독수리>, 이렇게 멋진 소설을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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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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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만일 당신이 계신다면 신이시여.

(저를) 계속 이 낙원에 머물게 하소서.

그럴 수 없다면 제 마음에 평안을.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제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이곳은 편안하다.

이곳은 무척......

 

어머니.

- 서두에서 -

 

일본의 엘러리 퀸!, 일본 신본격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 <달리의 고치>를 어제 밤 다 읽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은 위의 설명 외에 <쌍두의 악마>로 처음 전해들었었는데, 이번 소설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다른 고수분들에 비해 글 솜씨가 달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느꼈던 바를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나가야할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달리의 고치>가 최근작인줄 알았는데 데뷔작인 <46번째 밀실>에 이어 작가 아리스 시리즈의 두번 째 장편으로 93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초기작인셈이죠. 그래서 그럴까요? 제가 읽기 전에 예상한 바로는 좀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요, 히무라 교수와 아리스 콤비의 활약상은 익살스러운 만담때문인지 진도가 잘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적인 맛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유명한 쥬얼리 회사 사장인 도죠 슈이치가 자신의 별장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시체의 발견 장소는 특이하게도 살바도로 달리를 추종하는 슈이치 사장이 평소 애용하는 명상캡슐 안입니다. 더구나 살해된 슈이치 사장의 전매특허인 달리 식 콧수염마저 잘려버린 채 사라져버렸습니다.  

 

경찰 측에서는 유산 상속을 노린 형제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살인으로 처음에 의심했다가, 뒤이어 슈이치 사장의 비서인 사기오 유코 양을 두고 제3자와 사랑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수사방향을 좁혀들어갑니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주변 인물들이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오르게되죠.

 

이 소설에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살인사건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인물은 친구인 히무라 교수로군요. 둘의 관계는 셜록 홈즈와 왓슨을 연상시키는데요. 아리스는 친구 히무라의 추리에 의견을 제시하고 보조하는 역할인데, 과학적, 물리적 증거보다는 상식을 기초로 추론하는 히무라의 방식은 사고의 깊이를 잘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라는 반응을 보이는 상대에게 왜 그런지 차근차근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반응을 추가로 이끌어내니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단정을 파전 뒤집듯 보기좋게 반론을 제시하는 능력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다만 어느 부분에 이르면 논리의 설득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그냥 그러면 그런 줄 알아라는 식인 것도 같은데 왜 그런지 공감이 안되는 점도 분명히 있었고, 그런 점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링컨 라임이나 유가와 교수같은 철저한 물증주의 수사를 선호하는 저로서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 까닭일겁니다.

 

그런데 이 추리소설에서는 복선, 트릭, 반전같은 추리적 관점보다는 각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갈구하는 낙원을 상징하는 "고치"라는 단어에 더 흥미가 갑니다.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킨채, 특수한 액체 속에서 알몸으로 둥둥 떠 있는 상태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명상, 안식을 찾는 금속형 고치가 바로 명상캡슐이라고 불리는 기구입니다. 

 

타이머 작용에 의해 40분을 자도 8시간 숙면을 취한 듯 충분한 효과를 보이는 이 기구를 저도 장만하고 싶네요. 읽을 책은 많은데 바쁜 시간으로 계속 밀리고 있는 제게 이 캡슐이 있다면 40분 자고 책을 더 신나게 읽을텐데요. 그런 즐거운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고치" 를 찾아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고단한 심신을 어루만져주기를 염원하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그 점에 대해선 공감하게 됩니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게 아닐까라는 마음도요.

 

슈이치 시장의 "고치" 가  명상캡슐이라면 주인공 아리스의 "고치" 는 "소설"  이라는 허구의 세계입니다. 열일곱 고2 학생이었을 때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전해주었던 날, 여학생은 개의치 않고 세상이 시시하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하는 얄궂은 경험을 한 후, 충격속에 도피한 "고치" 가 "소설"  이랍니다.

 

마음 아프고 슬픈 사랑을 계기로 작가가 되었다는 아리스의 심경 고백을 읽으면서 좀전에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맘을 담은 러브레터를 보여주면서 내게 사전검열을 부탁했던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절절한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그 직원도 자신만의 "고치"  를 찾았으면 합니다.

 

연애소설로도 추리소설로도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달리의 고치>는 그래서 읽고나면 애처롭고 마음 쓸쓸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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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열쇠 대실 해밋 전집 4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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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요.... 열쇠가 유리였는데, 우리가 문을 열자마자 손에서 깨져 버렸어요. 자물쇠가 뻣뻣해서 강제로 돌려야 했거든요.

 

미국 탐정 소설의 아버지 대실 해밋의 소설 <유리열쇠>를 읽었습니다. 요즘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거장들의 역사를 가끔씩 되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대실 해밋이라는 작가 대신 레이먼드 챈들러, 엘러리 퀸 같은 작가들이 네임밸류면에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아직 작품들을 만나보진 못했죠. 틈틈이 챙겨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대실 해밋이라는 작가의 전집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후 아 유?

미국 탐정 소설의 아버지이자 하드보일드의 대표 작가로서 레이먼드 챈들러, 엘러리 퀸. 데니스 루헤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극찬의 대열에도 합류하고 있더군요.

 

! 도대체 이 작가를 설명해주는 이 화려한 이력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토록 유명한 작가를 왜 그동안 몰라뵈었을까요? 너무 현대작가들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서 고전에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줄거리는 이렇군요. 도시의 거물 폴 매드빅은 헨리 의원과의 연줄을 통해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원의 딸 재닛 헨리와 결혼하고자 하죠. 정략적인 의도도 물론 있었지만 원래 그녀에게 순수한 호감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폴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평소 형제지간처럼 지내며 폴을 따르던 탐정 네드 보몬트는 폴의 이 같은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충고하지만, 폴은 이미 내린 결정을 철회할 생각이 없나보네요.

 

그런데 재닛의 오빠인 헨리의 시체가 네드에 의해 배수로에서 발견됩니다.

 

평소 폴과 여동생과의 교체를 극렬하게 반대해온 테일러였기에. 폴은 살인을 사주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받습니다. 이에 네드가 수사에 나서지만 오히려 치도곤을 당하는 등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게 됩니다.

 

줄거리는 이쯤에 접고 해밋의 이력을 살펴보니 탐정으로 활동한 특별한 경력도 있으며, 그의 작품 중에는 <몰타의 매>도 있네요. 험프리 보가트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는데, 그제서야 샘 스페이드 탐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원작이 이 사람이었구나 라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말해 괜찮네요. 해리 보슈나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사실적이면서도 비정한 묘사가 특징인 하드보일드의 원형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등장인물들 모두 하나같이 감정을 조절 못하고 그대로 노출하는 등 기복이 심한데다 네드는 폴의 배경을 등에 업고 뒤에서 보좌할 정도로 막강한 인맥적 파워를 자랑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래도 무미건조한 묘사가 특징이라는 설명이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시체를 발견하는 과정을 밑밥 깔고 진행할 줄 알았더니 생략해버리고 바로 발견되는 전개에서 계단을 동시에 여러 개를 밟고 올라선 느낌이 듭니다. 좀 휑한 느낌이랄까요?

 

또한 수시로 네드의 조력자들이 두더지처럼 등장하는 것이 혼란스러우면서 교통정리가 안되니까 네드의 행보에 발맞추어 따라가기에 급급할 정도였습니다. 불친절한 설명과 과감한 생략이 하드보일드의 특징이라면 저는 좀 더 공부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해력이 딸렸는지 많이 갸우뚱하기도 했습니다.

 

좋았던 점은 가감 없는 폭력과 정치적 음모, 배신과 암투, 팜므파탈의 매력과 의도치 않은 역할 등 눈길을 끄는 요소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네드와 폴 사이의 작전이라고 해야 할지, 교감작용이라고 해야 할지 표현하기가 애매하지만 팽팽한 긴장감 속에 치열함도 엿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밝혀지는 추악한 진실은 권력 앞에서는 인간이 어디까지 비정해질 수 있는지 극단까지 밀어 불여 버렸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끝내 외면할 수가 없는 악으로 뒤덮힌 세상에 씁쓸함과 함께 작은 경종을 울립니다.

 

좀더 덧붙이자면 주인공 네드는 마초 기질이 다분한데 더불어 강력한 원 펀치만 보유했어도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 경지까지 이르진 못했음을 안타까이 생각하며, <붉은 수확>이나 <몰타의 매>가 궁금해지는 걸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말했다곤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깨어진 유리열쇠가 상징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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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네 고만물상 (보급판 문고본)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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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나카노네 만물상>은 나카노씨가 직접 운영하는 만물상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는 아가씨 히로미양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선 등장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해볼까요? 주인장인 나카노씨는 말을 꺼낼 때 무조건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습관이 있는데, 계속 듣다보면 뜬금없으면서도 묘한중독성이 있습니다. 히로미양보다 먼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한 청년 다케오군은 히로미양이 은근 흑심을 품고있는 호감형이구요,

 

인형전시회 관계로 간간히 가게에 얼굴을 비치는 마사요씨는 나카노씨의 친누나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히로미양은 귀엽고 발랄할 아가씨로 앞서 말했듯이 다케오군에게 치근덕대는 폼이 은근 미소짓게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잘되었으면 좋겠네요(그래, 히로미양 조금만 더 들이대라구^^)

 

이렇게 4인방을 중심으로 가게를 찾는 손님들 이야기라고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일본 소설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이 그려지기 때문에 장르소설에서 느끼게 되는 내밀한 감정이입은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나카노씨는 전혀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잡동사니들을 매입하러 상시 출장을 다닙니다. 원 소유자와 협상이 잘되어 매입한 물건들은 잠시 추억을 회상하러오신 어르신들의 투어코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죠. 이렇다보니 손님들도 뜸한게 수익은 어디서 나오는지, 히로미양과 다케오군의 월급은 어떻게 주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가게의 이웃이나 만물상에 물건을 팔거나 매입하러온 뜨내기 손님 같은 입장이 되어 가게를 둘러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죠. 그 만물상이란게 말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상품에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이제 과거의 흑백사진처럼 하루하루 추억으로 아련한 감상을 담게 마련입니다.

 

만물상 손님들중에는 그래도 젊은 사람들도 간혹 있고 손님들이 사고 파는 물건들에는 잊혀져가는 소중한 옛 가치들이 남아 있습니다. 손님들에게는 각가지 사연들이 있구요, 그 사연들을 풀어가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정을 설파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강추한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리진 못하겠지만, 한번 정도 일상의 브레이크타임이 필요하시다면 편하게 읽어도 좋을 듯한 소설입니다.

 

당장 찾아가고 싶다구요? 아직은 날씨가 쌀쌀합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되니까 꽃피는 봄이 오면 누룽지처럼 구수한 <나카노네 만물상>으로 놀러오세요!!

 

단, 가게가 쉬는 있으니 도서관에 영업하는지 확인하고 찾아오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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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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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우문이군요, 오카모토씨,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마련이죠. 전 딸이 되살아나리란 걸 믿고 싶었기 때문에 믿었어요. 그뿐입니다. 그건 어떤 부모든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주로 인간심리의 어두운 면을 그려낸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 중 한사람인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을 방금 읽었습니다. 제가 이 작가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작 <난반사>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이를 불의에 가로수 사고로 잃은 부모가 그 책임을 주위에 물으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처사에 애통한 심정을 달랠 길 없는 개탄스러운 설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에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통곡>을 빼어들게 되었습니다.

 

누쿠이 도쿠로하면 <통곡>이지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네요. 줄거리는 연속적인 유아 유괴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시청의 수사1과장 사에키 경시의 지휘 아래 범인검거를 위한 필사적인 수사가 진행되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와 실마리는 잡히지 않은 채, 수사는 고착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과연 이면에 내재된 어둠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은 역자후기에도 나와 있듯이 80년대 일본 전역을 경악과 충격에 빠뜨린 미야자키 스토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 라는 역자의 추측이 있습니다. 여아 네 명을 살해한 엽기적인 수법으로 일본 최초로 프로파일링을 도입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사건이 이 소설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작가 본인만이 알 수 있겠죠.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앞서 읽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처럼 이 작품도 여아 살인사건이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데 이런 내용을 읽을 때마다 그 누군가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면서 그릇된 욕망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속절없는 희생을 당하고,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은 쉽사리 봉합되지 않는 상황을 접하면서 마음을 무겁게만 합니다.

 

언제쯤이면 우리 아이들이 티 없이 밝고 순수한 동심으로 세상 어떤 가해와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푸른 잔디밭을 뒹굴며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정말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 작품에서 또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신흥종교의 폐단입니다. 죽은 딸을 신흥종교의 흑마술로 되살려내려는 범인은 자신의 아이만 살릴 수만 있다면 다른 아이들은 제단의 희생물로 이용해도 상관없다는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미 비즈니스화한 종교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과 헛된 욕망을 부추겨 범인을 철저히 현혹시키고 수탈하게 되는데요. 범인에게는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 숭고한 목적에 기초한 행동이라며 절대 합리화하죠. 위선의 탈을 쓴 신흥종교가 새삼 섬뜩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번진 아집과 무지가 가져온 장벽은 독자들이 제 아무리 격렬한 분노를 퍼부어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인간관계가 덧없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반전은 ○○트릭이었군요. 생각지도 않았기에 내심 했습니다. 비통한 절규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통곡한다는 책의 문구대로 걷잡을 수 없이 한 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군요.

 

그 와중에서 검거된 범인의 감정이 메마른 상태였다가 마지막에 표정이 살아나는 대목은 인간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마련이고 그것에만 반응을 보이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암튼 우리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결코 상처주고 피눈물 흘리게 하는 어리석은 짓은 금해야겠습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이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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