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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그야말로
우문이군요,
오카모토씨,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마련이죠.
전
딸이 되살아나리란 걸 믿고 싶었기 때문에 믿었어요.
그뿐입니다.
그건
어떤 부모든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주로 인간심리의
어두운 면을 그려낸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 중 한사람인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을 방금
읽었습니다.
제가 이 작가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작 <난반사>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이를 불의에 가로수
사고로 잃은 부모가 그 책임을 주위에 물으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처사에 애통한 심정을 달랠 길 없는 개탄스러운 설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에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통곡>을 빼어들게
되었습니다.
“누쿠이 도쿠로하면
<통곡>이지”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네요.
줄거리는 연속적인
유아 유괴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시청의 수사1과장 사에키 경시의
지휘 아래 범인검거를 위한 필사적인 수사가 진행되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와
실마리는 잡히지 않은 채,
수사는 고착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과연 이면에 내재된 어둠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은
역자후기에도 나와 있듯이 80년대 일본 전역을
경악과 충격에 빠뜨린 미야자키 스토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 라는 역자의 추측이 있습니다.
여아 네 명을 살해한
엽기적인 수법으로 일본 최초로 프로파일링을 도입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사건이 이 소설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작가 본인만이 알 수 있겠죠.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앞서 읽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처럼 이 작품도 여아
살인사건이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데 이런 내용을 읽을 때마다 그 누군가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면서 그릇된 욕망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속절없는 희생을
당하고,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은 쉽사리 봉합되지 않는 상황을 접하면서 마음을 무겁게만 합니다.
언제쯤이면 우리
아이들이 티 없이 밝고 순수한 동심으로 세상 어떤 가해와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푸른 잔디밭을 뒹굴며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정말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 작품에서 또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신흥종교의 폐단입니다.
죽은 딸을 신흥종교의
흑마술로 되살려내려는 범인은 자신의 아이만 살릴 수만 있다면 다른 아이들은 제단의 희생물로 이용해도 상관없다는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미 비즈니스화한
종교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과 헛된 욕망을 부추겨 범인을 철저히 현혹시키고 수탈하게 되는데요.
범인에게는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 숭고한 목적에 기초한 행동이라며 절대 합리화하죠.
위선의 탈을 쓴
신흥종교가 새삼 섬뜩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번진 아집과 무지가 가져온 장벽은 독자들이 제 아무리 격렬한 분노를 퍼부어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인간관계가 덧없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반전은 ○○트릭이었군요.
생각지도 않았기에
내심 ‘헉’
했습니다.
비통한 절규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통곡한다는 책의 문구대로 걷잡을 수 없이 한 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군요.
그 와중에서 검거된
범인의 감정이 메마른 상태였다가 마지막에 표정이 살아나는 대목은 인간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마련이고 그것에만 반응을 보이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암튼 우리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결코 상처주고 피눈물
흘리게 하는 어리석은 짓은 금해야겠습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이 주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