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독수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6
윌리스 브림 지음, 유향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친애하는 친구여,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이제 가게나."

"자네 역시, 나의 장군님.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적병의 무리가 깨져나갔고, 이어 우리 기병들은 어지러운 인파 속으로 파묻혀갔다. 반짝이던 투구가 하나씩하나씩 차례로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기병대의 깃발이 마치 날쌘 독수리가 하강하듯 갑자기 떨어져내렸다. 이어 반달 족이 해자를 넘어와 도끼로 방책을 부수기 시작했다. 파비아누스와 아퀼라가 내 좌우에 있었고, 아르토리우스와 스쿠딜리오는 조금 멀리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훌륭한 전우들과 함께 죽는다!"

- 책 속에서 -

 

 

가끔씩 가입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거의 일주일동안 책 한 장도 읽지 않았네요' 라는 자조섞인 회원들의 독백과 마주치게 됩니다. 바빠서 그렇다는 건 핑계구요, 확 끌리는 작품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독서의 슬럼프가 저승사자처럼 찾아온 것인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을 당분간 멀리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그리워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그럴 땐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셔야죠.

 

슬럼프에 빠진 독자들을 확실히 소생시키는 효과 죽이는 처방약이 바로 이 소설 <눈속의 독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친 듯이 읽는 사람을 훅 가게 만드는 이 소설의 매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팩션이지만 진실로 강직하면서도 결사적인 로마 20군단의 처절한 사투에서 눈물 나는 감동과 숙연함이 동시에 가슴을 파고들기 때문일 겁니다.

 

이 소설은 앞서 얘기했듯이 로마의 마지막 군단인 20군단을 이끄는 막시무스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바탕이 된 걸작소설입니다(주인공 이름이 같습니다). 시대배경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번영가도를 달리던 대 로마제국도 이제 국운이 기울고 쇠약해진 시기입니다.

 

그동안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숨죽이고 있던 이민족들이 하나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 게르만민족은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을 피해 로마의 속주인 라인 강 일대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옵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로마제국!!

 

로마를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구할 마지막 희망은 잉글랜드에서 귀환한 노장 막시무스 장군밖에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강직한 성품으로 어떠한 유혹과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한평생 로마제국의 장군으로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백전노장인 그에게도 이번 전투는 그야말로 절망적입니다, 로마정부는 도처에서 도발하는 이민족을 상대하느라 막시무스 장군에게 지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합니다. 내게 조금만 더 병력과 물자지원만 있다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텐데...

 

그런 그의 곁에는 오랜 친구인 퀸투스 기병대장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충성스러운 부하들 모두가 그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지요.

 

이제 남은 것은 전면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적들에 비해 병력수가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고 신의 가호를 빌어야할 처지, 신은 그를 도울 것인가!

 

고작 6천의 병력으로 모든 가족들을 총동원하여 밀려들어오는 이민족들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이지만 그 수가 끝이 없습니다, 죽여도 죽여도 또 밀려드는데다 그 와중에 일부 배신자까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구요.

 

결국 장군 휘하 군단의 병사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면서 불꽃같은 삶을 마감하지요...

 

마지막 100페이지 정도에 걸쳐 전개되는 로마20군단과 이민족의 전투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최고의 미학과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강줄기에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대양으로 흘러들어가면 스케일의 절정을 보여주는데요. 마치 전투현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생생함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떨려옵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이것은 삼총사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지만 이들만큼 절절히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결단코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의 위대한 리더쉽과 불굴의 정신력, 장군에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복종하는 로마 20군단의 병사들 모두가 미친 존재감과 함께 대단한 감동을 던져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지켜보노라면 삼국지 저리가라에다 조국을 최후까지 사수하려는 모습에선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빅 픽처>2011년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 대한 리뷰를 쓰는 지금 이 순간, 최고의 자리는 <눈속의 독수리>가 차지합니다.

 

살아서 책을 읽는다는 진정한 기쁨을 안겨 준 소설 <눈속의 독수리>, 이렇게 멋진 소설을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