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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ㅣ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신이시여, 만일 당신이 계신다면 신이시여.
(저를) 계속 이 낙원에 머물게 하소서.
그럴 수 없다면 제 마음에 평안을.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제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이곳은 편안하다.
이곳은 무척......
어머니.
- 서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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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엘러리 퀸!, 일본
신본격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 <달리의 고치>를 어제 밤 다
읽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은 위의 설명 외에 <쌍두의 악마>로 처음 전해들었었는데, 이번 소설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다른 고수분들에
비해 글 솜씨가 달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느꼈던 바를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나가야할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달리의
고치>가 최근작인줄 알았는데 데뷔작인
<46번째 밀실>에 이어 작가 아리스 시리즈의 두번 째 장편으로 93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초기작인셈이죠. 그래서
그럴까요? 제가 읽기 전에 예상한 바로는 좀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요, 히무라 교수와 아리스 콤비의 활약상은
익살스러운 만담때문인지 진도가 잘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적인 맛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유명한 쥬얼리 회사 사장인 도죠
슈이치가 자신의 별장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시체의 발견 장소는 특이하게도 살바도로 달리를 추종하는 슈이치
사장이
평소 애용하는 명상캡슐
안입니다. 더구나
살해된
슈이치 사장의 전매특허인 달리 식 콧수염마저 잘려버린 채 사라져버렸습니다.
경찰
측에서는 유산 상속을 노린 형제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살인으로 처음에 의심했다가, 뒤이어 슈이치 사장의 비서인 사기오 유코 양을 두고 제3자와 사랑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수사방향을 좁혀들어갑니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주변 인물들이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오르게되죠.
이 소설에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살인사건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인물은 친구인 히무라 교수로군요. 둘의 관계는 셜록 홈즈와
왓슨을 연상시키는데요. 아리스는 친구 히무라의 추리에 의견을
제시하고 보조하는 역할인데, 과학적, 물리적 증거보다는 상식을 기초로
추론하는 히무라의 방식은 사고의 깊이를 잘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라는
반응을 보이는 상대에게 왜 그런지 차근차근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반응을 추가로 이끌어내니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단정을
파전
뒤집듯 보기좋게 반론을 제시하는 능력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다만 어느 부분에
이르면
논리의 설득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그냥 그러면 그런 줄
알아라는 식인 것도 같은데 왜 그런지 공감이 안되는 점도 분명히 있었고, 그런 점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링컨 라임이나 유가와 교수같은 철저한 물증주의 수사를 선호하는 저로서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 까닭일겁니다.
그런데 이 추리소설에서는 복선,
트릭, 반전같은 추리적 관점보다는 각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갈구하는 낙원을 상징하는
"고치"라는 단어에 더 흥미가 갑니다.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킨채, 특수한 액체 속에서 알몸으로 둥둥 떠 있는 상태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명상, 안식을 찾는 금속형 고치가 바로 명상캡슐이라고 불리는 기구입니다.
타이머 작용에 의해 40분을
자도 8시간 숙면을 취한 듯 충분한 효과를 보이는 이 기구를 저도 장만하고 싶네요. 읽을 책은 많은데 바쁜 시간으로 계속 밀리고 있는 제게 이
캡슐이 있다면 40분 자고 책을 더 신나게 읽을텐데요. 그런 즐거운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고치" 를 찾아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고단한 심신을 어루만져주기를 염원하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그 점에 대해선 공감하게 됩니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게 아닐까라는
마음도요.
슈이치 시장의 "고치" 가
명상캡슐이라면 주인공 아리스의 "고치" 는 "소설" 이라는
허구의 세계입니다. 열일곱 고2 학생이었을 때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전해주었던 날, 여학생은 개의치 않고 세상이 시시하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하는 얄궂은 경험을 한 후, 충격속에 도피한 "고치" 가 "소설" 이랍니다.
마음 아프고 슬픈 사랑을 계기로
작가가 되었다는 아리스의 심경 고백을 읽으면서 좀전에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맘을 담은 러브레터를
보여주면서 내게 사전검열을 부탁했던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절절한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그 직원도 자신만의 "고치"
를
찾았으면 합니다.
연애소설로도 추리소설로도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달리의 고치>는 그래서 읽고나면 애처롭고 마음 쓸쓸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