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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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만년의 행복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줄을 선다고 누구나 건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다리면 언젠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줄을 제대로 섰어도 자기 몫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애당초 줄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본문 중에서 - 

 

미미 여사의 작품을 다시 만나기까지 거의 5년에 가까운 공백이 있었던 것 같다. 한참 이 계통의 소설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즈음 읽었던 <모방범>은 분명 분량으로도 대작이었고 압도적인 서사에 강하게 매료되어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후반부로 가면서 촘촘하던 밀도가 느슨해지면서 지루했달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기존에 깔아놓은 멍석이 실로 대단했기에 종합적인 총평에는 크게 감점요소가 되지는 않았다. 첫 만남은 그렇게 훌륭했는데 어쩐지 이후 그녀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기란 여의치 않았는데 계속된 독서 속에서 새로운 작가들로 인한 관심분산과 함께 그녀의 시대물에 대한 부정적인 거리감 같은 점도 분명 존재했다고도 생각된다. 타 작가들의 시대물에서 이미 혼쭐이 난 적이 있는지라 그녀의 시대물에도 같은 감정이 반영되었으니까. 뭔가 나랑 취향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화차>는 영화로서 무척 재밌게 보았었고 이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에 이어 “2013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차석이라는 위엄을 확인해 볼 차례가 돌아온 것인가. 

 

도쿄 조토 제3중학교.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에 한 아이가 등교하면서 일부러 뒷문 담을 넘는다. 수업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정문을 놔두고 월담을 시도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아이가 담을 넘어 착지한 곳에는 한 남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2학년 가시와기 다쿠야로 밝혀진다. 평소 등교를 거부하며 학교생활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았던 다쿠야의 죽음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자살로 결론짓지만 누군가로부터 다쿠야는 자살이 아니라 교내 불량학생들인 오이데 3인조에게 떠밀려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담긴 투서가 날아들면서 학교는 이내 악의적인 소문과 의혹으로 혼란에 빠지고 추가적인 희생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진실은? 죽은 아이가 알고 있었던 진상은 무엇이며 무엇이 올바른 양심일까? 

 

8500페이지에 달한다는 압도적인 분량에 처음부터 기가 눌린 탓인지 읽는 내내 속도감이라는 물리적 흐름에 저항하느라 부담이 많이 가는 독서였는데 이제 3분의 1일을 읽었으니 결승점까지 가는 과정에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더라는... 어찌 수년 만에 어렵사리 재회했음에도 이렇게도 돌파가 힘들까? <모방범>에 필적할만하다는 혹자들의 감상이 정당한지는 마지막에 도달해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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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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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불리고 있는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 한국문단 역사상 처음으로 귀고리를 하고 시상대에 올랐다는 도시적 남자 김영하에 대한 잔상은 몇 가지로 압축 정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소설제목으로, 다음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던 <위대한 개츠비>의 역자로, 마지막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발견하면서이다. 혹시 얼마 전에 종방되었던 TV드라마의 원작인 것일까? 아니었구나. 나만 그런 착각을 한 것은 아니었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미 많은 추측들이 후후... 하지만 의혹은 말끔히 걷히지 않았다. 제목을 김영하의 소설에서 따온 건 아닐까 하는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난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이 중요하니까. 사실 많은 분들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시고는 추천도 많이 하시고 이미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올라있는데 단순히 재미있다는 일반적인 느낌만이 다는 아닐 거라는 예상을 해보았다. 김영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평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단순하면서도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는 찬사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30년 동안 살인을 저지르다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가 70세 노인이 되어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점차 사라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이다. 그가 살해했던 숱한 희생자들 중에는 현재 같이 살고 있는 딸 은희의 친부모도 포함되어 있다. 단기 기억이나 최근 기억부터 없어지다가 과거의 먼 기억까지 지워지는 과정에 놓여있음에도 은희의 친부모를 살해했던 기억만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 생생하게 잊지 않고 있다. 차마 은희에게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고 자신이 데려다 키운 양부라고만 했다. 은희는 박주태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소개하고 그 자에게서 연쇄살인범의 기운을 감지한 김병수는 은희를 지키기 위해 박주태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여생의 마지막 목표로 설정하는데.... 

 

살인에 대한 모든 과정과 느낌들을 복기하기 위해 일지를 썼던 김병수에게 기록이란 과오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오답노트이면서도 희노애락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까운 기분의 표출이기도 하다. 시를 읽고 금강경 같은 것을 읽기 시작한 이유도 문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나 열정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작업을 온전한 감정을 담아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왜곡된 심상에서 비롯된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본문 중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양부를 봉양하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은희는 그런 환자에게도 감정은 남아있다는 말로 자신의 역할에 당위성내지 위안을 부여하고자 하지만 정작 김병수는 망각의 강을 건너며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는 중이다. 과거의 기억이든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억 모두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달려가고자 하는 결단력이지만 레일 끊긴 기차처럼 영원한 현재는 없다. 이미 김병수는 도시를 싫어했고 조용한 세상에서 세상에 뒤섞여 사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오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에서 실패해왔으니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만물을 파괴하는 행위에 어떠한 기쁨마저 느낀다. 연쇄살인마들이 느끼는 전형적인 쾌감이라는 흥분상태를 엿볼 수 있기에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주태가 은희를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딸을 보호하겠다는 김병수의 마음을 파악한 독자들은 촉수에 걸려 마비된 상태로 무섭도록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의심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결구도로 흘러가겠거니 했는데 아뿔사, 이 소설에 담긴 사전경고를 간파했어야 했다. '단숨에 읽힌다면 반드시 경계하라, 그랬다면 이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이라는 경고문은 반전에 도달해서야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김병수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정상이 아니라는 상태는 이미 인지하고 있는 정보이다. 만약 그가 정상인이었다면 결말의 반전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깜짝쇼에 불과했을 테니까 말이다. 오히려 비정상에 익숙해있을 때, 아니 방심하고 있을 때 정말 예상치 못한 결말을 떡 하니 내놓았다.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어찌 보면 슬프다고 해야 할 목매임에 숨이 막히기도 했다. 기억을 잃는다는 사실만 해도 이렇게도 안타까운데 실제보다 더한 고독이 있었다는 진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물론 허무한 결말로 치부하는 이도 있겠지만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작가의 의도대로 마치 영화 <파이트 클럽>의 결말처럼 거대한 세트가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섬뜩한 공포를 나는 받아들였다. 이것은 악몽이다. 현대소설이 구축할 수 있는 최상의 시스템에 나는 진정 완패했으니 김영하라는 이름 석자를 반드시 각인시키겠다. 알츠하이머 예방에는 독서가 최고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려 한다진심으로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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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해부
앤드루 테일러 지음, 김하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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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호기심 반 신중함 반을 요구한다. 잘만 하면 잿팟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익숙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신천지가 되기도 하는데 앤드루 테일러 <아메리칸 보이>로 명성을 익히 듣고는 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히스토리컬 픽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년 에드거 앨런 포의 영국 체험시절을 토대로 쓴 <아메리칸 보이>처럼 실존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의 수상경력 중에서 두가지의 대거상 수상 및 후보등극이었다. 대거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걸 알게되었는데 그 중에서 다이아몬드 대거상은 수상하고 히스토리컬 대거상은 후보로 올랐던 전력이 있었다. 장르소설을 접하다보면 보통 어디 주관 베스트셀러 선정 아니면 수상경력인데 정말 이 계열에도 많은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점은 책으로 고르는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되긴하지만 솔직히 그 상들의 권위나 정확한 선정기준, 주관단체는 잘 모르면서 그냥 수상결과로만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는 그냥 참고일 뿐, <유령의 해부>를 읽는 데 있어서 하나의 경이다.

 

 

<유령의 해부>는 1786년 영국 케임브리지 예루살렘 칼리지 배경으로 한다. 손에 열쇠를 쥔 한 여인이 얇은 가운에 망토만 걸친 채 비틀거리며 예루살렘 로에 이른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정원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여인. 여인은 예루살렘 칼리지에 들어가는데 성공했지만 연못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데 그녀의 유령을 본 사람이 있다. 로싱턴 주교의 미망인 앤 올더쇼의 아들인 프랭크 올더쇼였다. 그는 케임브리지 칼리지의 대학생으로 죽은 여인의 유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죽은 여인은 케임브리지 램본 하우스의 주인 필립 위치코트의 부인 실비아 위치코트였다.

 

정신이상자로 내몰린 아들의 실추된 명예회복을 위해 엄마는 손수 팔을 걷어불였다. 그 해결책은 존 홀즈워스라는 서적상을 고용하여 아들이 학업을 중단하게 된 상황이나 사정을 조사하고 아들이 보았다는 유령의 실체를 벗겨 정상으로 회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존 홀즈워스는 과거 아들이 물에서 익사하고 아내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유령이라는 심령현상에 심취하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불행한 과거가 있던 남자이다. 이후 그는 <유령의 해부>라는 책을 써서 유령이란 현상을 부인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나서 세간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다. 결과적으로 이슈가 된 그 책은 꽤 팔려나가면서 유명세를 얻었는데 자기가 설교한 것을 입증하고 실천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앤 부인의 고용제안에 숙고를 거듭하던 존 홀즈워스는 마침내 제안을 받아들인다. 경제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프랭크 올더쇼를 만나기 위해 예루갈렘 칼리지를 찾아간 그는 칼리지 인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정을 취재하면서 죽은 여인의 사인에 대한 의혹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유령이란 믿음도 어떻게 확인하게 될까?

 

 

유령이라는 존재는 연약한 마음이 빚어낸 허상에 불구하다지만 신앙은 이를 인정하고 과학은 논거를 부정한다. 역사는 과거가 되어도 아직도 논쟁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존 홀즈워스가 보았다는 아내의 유령은 내면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유령을 만났던 것일까? 책을 몇 번 읽어보아도 그 대목은 확연히 어느 쪽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그의 죄의식이 문제라면 죽음을 눈 앞에 둔 칼리지의 학장 카버리 박사의 부인 엘리너 카버리에게 품은 욕망은 도덕적 잣대로도 통제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원죄의식이 사악하고 사납게 요동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펠로우 임명권을 두고 신분의 수직상승을 위한 정치적 흑막과 성스러운 종교를 왜곡해서 음란마귀가 업고 벌이는 홀리 고스트 클럽의 추악한 의식 등은 대학이라는 신성불가침한 성역 이면에 숨어있는 위선과 죄악이라는 가면에 냉소를 날리고 있으며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추리적 접근은 풍자와 비판으로서 가능하다. 적대감은 도덕적 통찰로 극복하고 내면의 심리는 미신과 과학, 야만과 이성이 모호한 혼돈 속에서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면서 마지막 반전을 통해 나름의 정점에 도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와 픽션의 조화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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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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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칼손이 양로원 건물을 탈출할 때 심사숙고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설명은 곧 그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려준다. 백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장수만세로 퉁쳐 축하할 일인지 죽지못해 여태껏 살아왔다는 오욕의 세월이었는지 오로지 그의 1세기를 고스란히 따라 가 보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전개로 인해 알란 칼손이라는 괴짜노인의 황당무계한 모험담은 수시로 진실일까? 아니면 노망기에서 비롯된 횡설수설일까 의심의 눈초리는 번뜩였다. 원래 이런 사람의 태생은 평범하지 않은데 알란도 역시나 였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차 있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생뚱맞은 전쟁을 선포했다가 개죽음을 당했고 엄마 또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실 정도 였으니 두 분 다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다 돌아가신 듯 하다. 

 

 

이 같은 상황을 토대로 보자면 정상적인 가정환경도 아니었고 변변한 정규교육도 수료못했던 알란이었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면서 폭탄물 제조 및 관리에 관한 기술만큼은 남달랐고 그것은 그의 평생을 좌지우할 중대한 스킬이 된 셈이다. 그리고그는 우연과 행운을 번갈아 쥐며 세계 곳곳을 누비며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반드시 있었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연상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그림자는 그리 진하게 투영되진 않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했다고 단정짓기에 알란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적 인물들과 교감과 친분을 쌓으며 의도했던 그러지 않았던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역사의 한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결코 그 자리에서 병풍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그의 수명이 70세 정도였어도 이 기괴한 모험담에서 상당부분이 덜어내어 졌을 것이다. 유쾌하면서도 수시로 배꼽잡게 하지만 모든 여정들이 다 흥미진진 않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와의 만남, 마오쩌둥의 아내를 구한 일, 그리고 발리 이야기 등 몇 몇 일화등은 솔직히 많이 지루해서 세계사의 변혁에 끼친 영향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일화를 찾아 읽기 위해 재빠르게 훓고 페이지를 넘겨야 했을 정도였으니, 역시 재미있는 대목은 미국의 핵무기 제조에 관여한 일과 스탈린, 김일성 부자와의 만남이고 책이 선택한 세계사에서 대중적 관심을 끄는 지점에 관해서는 개인적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리라.

 

 

그렇다면 루즈벨트 미 대통령 시절 핵무기 제조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지극히 우연적 요인이 너무 남발되는 단점은 있지만 역 발상 차원에서 보면 그 점이 이 소설의 엉뚱한 매력이자 스타일임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독자가 될 수도, 우수수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포인트이다. 스탈린에게 거슬리는 콧수염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알란 칼손은 위기에 닥쳐서도 마냥 비관하지 않고 어떡해서든 낙관적인 자세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별종이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장수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숨은 하나지만 무모할 정도의 모험정신 때문에 평생을 한 곳에 제대로 정착 못하고 역마살이 끼어 떠돌아 다닐 팔자였다. 방랑하는 보헤미안의 집시처럼.

 

 

솔직히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읽은 대목은 사실상 한국전쟁 중 북한의 김일성과 그의 오른팔인 어린 김동무, 즉 김정일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인상적인 것은 어린 김동무의 성격 자체가 상당히 리얼리티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겠다며 주위를 의심하고 맘에 안들면 생떼를 부리는 것은 얼핏 귀엽(?)기도 했지만 장차 일국의 독재군주가 될 만한 자질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웃음 뒤에 인정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어린 김동무가 성인이 되어 정권을 잡았을 때 알란과 재회하는 시나리오였으면 얼마나 박장대소 했을까 말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 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방랑기에 대한 진지한 소감이자 양로원을 탈출하며 도주하는 길에 만난 여럿 사람들과 인생이라는 종착역으로 선택한 곳이 현실에서도 휴양자이기에 먼저의 바람은 과도한 요구였나 싶은 되새김도 있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을 고단하게 겪어왔으니 이제는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야만 한다. 그래서 알란, 아만다. 율리우스, 베니, 예쁜 언니, 예르딘, 소냐, 아론손까지 지상최고의 낙원에서 마침내 그들은 행복을 찾았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님 만수무강 하소서. 남들은 이미 관에 들어갔거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을 때 인생 제2막이 시작되려 하는구나. 나는 저 나이쯤이면(장수에 대한 헛된 욕심...)  멘붕없이 온전하게, 사람들 손가락질 받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려나. 아마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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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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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11월 9일 폴란드의 유태인 강제수용소. 나치 SS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 이 곳을 극비리에 방문했다가 자신을 겨냥해 저질러진 암살테러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희생없는 대가는 없다고 숙청과 피바람 부는 검거 바람은 자동연계. 그리고 배경은 현재로 넘어간다.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던 주식중개인 제레미 노바체크란 남자가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이유도 없이 집을 나간 뒤 엄마랑 단 둘이 살았고 그때의 증오로 이름을 코빈에서 엄마의 처녀적 성을 따라 코빈에서 노바체크로 바꾼 것. 떼돈을 벌었지만 음주운전으로 한 아이를 치어 죽인 후 죄책감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어느날 미 공군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 엄마 병문안을 갔다가 엄마에게서 받은 펜던트에서 나치 표식의 열쇠를 보고 경악한다.

 

 

그때부터 찌질했던 제레미의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회사대표인 버나드와 아버지는 CIA 요원이었다는 점, 자신과 엄마를 버렸다고 생각해왔던 아버지는 비밀임무를 수행 중이이서 부득이 가족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게되면서 혼란에 빠지는 제레미. 하지만 정체모를 암살자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마저 죽이려 하는 정체절명의 순간,이스라엘의 모사드 내의 메차드 키돈에서 일하는 에이탄 모르그란 남자가 나타나 암살자들을 처치하고 자신을 구해준다. 여기에다 버나드가 제레미의 신변보호를 위해 파견한 CIA 여요원 재키까지 합류하면서 세 명은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명명된 어떤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는 유태인 출신 빅터 블레이베르크 교수가 아리안의 우월성에 입각하여 인간을 초인으로 개조하고자 한 비밀 프로젝트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 프로젝트는 SS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 주도하에 인간을 생체실험도구로 삼아 실험을 계속했다. 그의 출신성분으로 따지자면 살아남기가 힘들었테지만 신분을 은연중에 숨긴 채 나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실험체 중 살아남은 최후의 성공작 302호가 탄생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며 경이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한 302호.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팩션스릴러 <블레이베르크 포로젝트>는 정말 오랜만에 읽은 프랑스 스릴러. 어려서부터 미국의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의 이력답게 전형적인 헐리웃 액션스릴러물이다. 심리 묘사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고 시로 프로젝트 3부작의 출발점으로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은 물론 경쟁국의 군사기밀을 빼돌리기 위한 물밑공작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실감나게 그려진다. 비단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선점의 우위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만큼 컨소시엄이라는 비밀조직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현상은 없을 것이다.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컨소시엄의 파멸을 꿈꾸었던 기인 302호는 인격과 존엄성을 무참히 파괴하고 인위조작해버린 특정집단의 야욕을 누구보다도 분쇄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분노는 인류의 존망에 위협을 가하는 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망령은 되살아나 선이 악의 유혹을 이겨내고 선한 자들을 수호해 줄거라는 믿음은 제레미 일행에게서 이 거대조직을 상대로 승산없어 보이는 무모한 투쟁을 이끌어내도록 한 원동력이 되는 진짜 이유이다. 그러하므로 컨소시엄의 음모는 나치의 극단적인 이론에 동조해 과학의 논리를 통해 인류를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니 이 어찌 비극적이며 오만의 극치가 아니랄 수 있을까?  

 

겁도 없이 지옥의 문을 열고 유전자 변이를 통한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극악무도한 만행을 그들은 거리낌없이 저지르려고 했다. 다만 계산에 포함시키지 못한 변수를 사전에 제거하지 못함으로서 결국은 우리가 익히 예상하고 있는 방식으로 일단 매듭짓는다. 하지만. 이제 빙산의 일각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본격적인 흥미진진함은 독자들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각오가 시작될 것이다. 기대치만 낮춘다면(특히 나치의 음모, 이런 걸 좋아한다면) 무난히 즐길작품이며 남녀주인공의 귀여운 로맨스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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