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자들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김성훈 옮김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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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로 2012 배리상을 수상하며 "요 네스뵈"와 함께 북유럽 추리/스릴러 소설의 절대강자로 부상한 “유시 아들레르 올센”의 미결 사건 전담 “특별수사반Q”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여성 정치인 "메레테 륑고르" 실종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칼 뫼르크" 경위는 3주간의 특별휴가를 마치고 복귀한다. 사람냄새 대신 형광등 때문에 두통이 밀려오는, 마치 포로수용소 같은 칙칙한 지하사무실은 그에게 여전히 불만의 대상이었고 책상 위에는 20년 전 여름 어느 휴양지 별장에서 오누이가 살해당한 사건파일이 떡 하니 놓여 있었다누가 올려다 놓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 사건은 이미 11년 전 범인이 자수해서 감방에 수감되어 종결된 건이라 지금에 와서 왜 이 파일을 자신에게 일부러 보라고 했는지 영문을 몰라 난감한 "칼 뫼르크" 경위. 이뿐만 아니라 복귀신고를 하러 3층에 올라갔더니 거기는 경찰개혁이 어쩌고저쩌고 난리 블루스에다 얼마 후 노르웨이 오슬로 경찰국에서특별수사반Q”를 시찰하러 방문한다고 한다.

 

또한 시리아(?) 출신으로 알려진 기존의 조수 "아사드" 외에 거침없는 입담과 반골기질에다 헤어, 패션까지 튀는 이상한 여비서 “로즈”까지 이 팀에 합류하면서 식구가 1명 더 늘게 되는데 그녀는 "칼"에게 새로운 두통거리가 된다. 어찌하면 이 여자를 잘라버릴까 궁리하다가도 그녀의 수완에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데 새로운 멤버의 가세는 시리즈에 상당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제대로 안착한다면 재미는 책임져 줄 캐릭터가 될 것 같다. 그리하여 "모나 입센"에 대한 "칼"의 음흉한 흑심과 3인방의 티격태격 엇박자 유머는 우리네 정서에도 입가에 미소를 자아낼 정도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시 사건파일로 복귀. 분명 범인의 자수로 종결된 사건의 이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는 듯 하다. 범인은 출소가 코앞이었고 종결된 사건을 지금에 와서야 다시 들춰내야할 뚜렷한 명분과 실마리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데,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상부에서는 수사중단을 지시한다. 권력의 입김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보인다. "칼"은 수사도중 폭력을 휘둘렀다는 누명에도 저항한다. 다행히도 익명의 제보자가 남긴 사건 파일을 꼼꼼히 살펴 본 칼은 사건이 단독이 아닌 다수가 벌인 일이라는 정황을 발견하고 재수사를 벌인다

 

그랬다. 범인은 패거리의 일원이었고, 나머지 패거리들은 교묘히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덴마크 최고의 사회지배층 계급에 올라있었다. 넘치는 부와 사회적 명성에 도취된 이들은 기숙학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해서 불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행과 숲에 풀어 놓은 동물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악행 및 살인을 계속해서 저질러 왔었다. 이른 바 묻지 마 범죄였다. 과거 한 패거리였으나 현재는 그들에게서 도피 중인 여인 “키미”가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희생자 한 명당 카드 한 장, 여섯 장의 트리비알 퍼슈트 카드.

 

패거리에 대한 절대복수의 칼날을 가는 “키”와 “키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패거리들, 그리고 점차 법 집행의 포위망을 좁혀오는 “”과 “아사드”가 한 자리에 모여드는 과정들은 심증과 증거, 비밀과 추적이라는 상황을 통해 절체절명의 긴박감이 잘 조율된다. 그런 솜씨를 “유시 아들레르 올센”은 영리하게 성공적으로 발휘했다. 여기에서 패거리들은 분노와 복수라는 초에서 심지역할을 굳이 자제할 필요가 없었다희생자들의 죽음은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이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힘과 무기력 사이의 공백에 어떤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의 역할. 단숨에 먹잇감을 절명시키는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고 그 경이로운 쾌감에 경도되는 사이코패스들이었던 것이다. "칼"과 "아사드"는 그런 악을 뒤쫓았기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단지 아쉽다면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와 악행을 대놓고 까발리다보니 미스터리는 자취를 감춘 것이 흠이라면 흠. 자! 이놈들이 어떻게 파멸당하는지 신나게 지켜보세요.

 

우연찮게도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와 <도살자들> 모두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불굴의 정신력으로 대항하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폭력, 저항, 여성이라는 세 가지 조합은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승부를 마지막까지 잘 이끌고 가면서 악의로부터의 구원을 폭발적으로 그려내었다. 덕분에 이야기라는 물줄기에 마음을 맡기면서 감탄했고 종착역에 도착해서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은 안도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생생한 현장묘사와 입체적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며 여지없이 빛을 발하는 심리전과 일촉즉발의 결말에 재미는 기본이다.

 

 

이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북유럽 추리/스릴러계의 진정한 대항마, 유시 시 아들레르 올센”의 필력을 계속 확인해야 할 차례가 조만간 도래할 것임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키미"가 정신병자처럼 혼자 중얼거렸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이보다 슬픈 사연은 없을 것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아사드"가 이라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와 "칼"에게 항상 데미지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그 사건은 언제 해결해서 친구의 한을 풀어줄 것인가,라는  두가지 의문이 남는다. 해답을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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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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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를 읽기 전 드라마 <딸기 밤>에 대한 일본시청자들의 반응을 잠시 검색해본다.

 

회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레이코를 성토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원작을 능가하는 드라마는 흔치않다고 보더라도 레이코에 대한 비공감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저격수로서 칸테쓰의 역할을 칭찬하는 댓글들이 많다는 것도 의미하는 바는 의견일치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점차 시리즈의 원작에 빠져드는 나!!! 

 

한 남자가 공사장 9층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뭔지 모를 이상한 심정이 가슴을 휘감아 도는 것 같다. 왜 뜬금없이 대화 도중 자살을 택한 걸까? 그 남자는무거운 굴레에 지쳐있던 것 같은데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어떤 의문과 회한을 남겨두며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강둑에 방치된 경승용차에서 남성의 절단된 왼쪽 손목이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증언과 지문 조사 결과 타카오카 켄이치라는 43세의 목수로 판명되는데 몸통의 행방은 알 길 없다. 당연히 죽었을 터. 그러나 레이코의 촉은 죽은 남자의 정체에 주목한다. 그리고 쿠사카 경위의 수사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여서 의혹으로 다가온다. 죽은 남자와 동거했던 청년, 그리고 같은 건설회사에서 동일한 형태로 추락사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청년과 그와 연인관계였다는 한 아가씨. 우연이 아닌 의도된, 조작된 배후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흑막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본 측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아픔도 있구나.   

 

그리고 전작에서 칸테쓰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이번에는 레이코의 숙적이라고 하는 쿠사카 경위가 중심이 된다. 레이코는 쿠사카가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를 연상시키는 외모라는 이유로, 직감을 중시하는 자신의 방식에 반해 지엽적인 사실을 배제 않고 일일이 포함시켜 철저한 수사를 추구하는 그의 방식에 분통을 터뜨린다. 유죄판결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면 그것은 나름의 수사방식일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기에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필요한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레이코쿠사카를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남자라는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이유는 부당하다고 본다. 조직사회는 상사든 동료든 부하든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믹스해먹는 배스킨 라빈스 아니다. 때론 반목하고 때론 손을 내밀고,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것이 조직일진대 칸테쓰 같은 괴팍한 구성원이라면 좀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쿠사카는 특별히 자신을 적대시하지도 않는데 먼저 적으로 단정지어버리는 레이코의 오만함은 이번에도 짜증을 수시로 돋운다. 그 점을 시청자들이 지적하고 있었다. 관용과 수용의 지혜를 가져라는.

 

 

그렇게 레이코 대한 계속적인 불만이 집중력을 흩뜨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밌고, 아니 전작에서 일취월장한 전개와 흥미, 감동이 담겨있다. 점차 발전해나갈 것 같다는 신뢰가 있어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사연이 기막히면서 무엇보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관통하는 물줄기는 부성(父性)”이라는 단어다.

 

아이의 볼은 참 부드럽습니다.

보들보들하고 은은하게 젖내가 납니다.

 나 같은 놈이 뺨을 대고 부비면 아플 겁니다.

더럽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 왜 우냐고 묻습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맙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다. 못난 아비라서.....”  (p.9)

  

단순히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말이 레이코의 아버지 이야기로 연결되고 범인의 정체와 트릭이 드러나는 순간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난다.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독백은 사건의 전말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래야만했던 안타까운 속사정을 자식 된 도리로 청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석연치 않은 사정이 있던 내겐 바늘이 구석구석 찌르고 들어오는 기분이라 정면으로 직시하기 힘들었다

 

핏줄이 이어져야만 부모자식 간은 아니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은 아니다(p.386)

  

제목 <소울 케이지(Soul Cage)>는 그런 의미에서 참 절묘하게 붙인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영국 뮤지션 스팅1991년 앨범의 제목에서 모티브로 삼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가설에 바탕을 두고 추론해본다면 소울(Soul)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로 해석이 가능할 듯싶다. 그렇다면 케이지(Cage)는 감옥이라는 뜻이 있으니까 합성어 소울 케이지(Soul Cage)”는 악의와 위협, 고난이라는 굴레에서 자식을 구원해 주고 싶은 절절한 부성을 의미하는 합성어로 보인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을 헤아리는 절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리라.

마음속의 증오 대신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을 키운 자의 감정을. 슬픔의 도가니 ㅠ.ㅠ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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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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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 신인상 수상작!!!

거미줄의 계략에 걸려든 한 남자, 한 여자.

 

군마 현 남부에 자리한 오우라집안에는 아들이 두 명 있다. 장남 소스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작은 디자인 사무소를 경영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집안의 미술품을 처분한 돈을 받아다 써야 할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긴자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여성 아카네이다. 그녀는 일하던 가게에서 야반도주하여 작은 스낵바를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공통점이라면 소비자금융에 빚을 지고 있었고 제때 상환하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연히 주식 사기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누군가 접근한다. 자신들에게 신용을 쌓은 후 돈을 투자하여 한 몫 잡으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두 사람은 시킨 대로 했지만 이것은 사기였다. 이제 더 큰 빚이 그들에게 남겨졌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두 사람에게 전직 은행원 시로카가 개입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은행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훔쳐내어 팔자는 것. 거액을 챙겨 각자 분배한 후 제 갈 길로 갈라지자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두 남녀는 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모두가 탐을 내는 명화 [가셰 박사의 초상]를 그린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생전에 빈곤과 혹평에 고뇌하다 절망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여관에서는 무려 600점의 그림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있었던 [가셰 박사의 초상]은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잦은 소유권 변경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술관 보관되다가 이후 나치 독일의 헤르만 괴링이 압수했으며 다시 외부로 유출해 팔았었다. 이후 수차례 그림이 돌고 돌면서 소유권 분쟁이 있었고 일본 경제가 버블이라는 호황기를 맞이하여 유럽의 명화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을 때 경매를 통해 일본으로 매입된다. 이 때 사들였던 미술품들은 예술적 가치로 인정되어 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회수했던 것이라 당연히 세상에 다시 빛을 보기 전까지는 창고에서 잠자게 된다. 여기에 예술에 관심 없는 졸부들의 허세를 충족시키거나 폭력조직의 자금줄 역할로 이용되면서 도난이 발생해도 소유자나 은행 측에서는 그 사실을 은폐해서 고객의 비밀유지와 과실이라는 민감한 사안의 노출을 꺼려하는 측면이 있어 그 점을 도둑단에서는 노렸던 것이다

 

훔쳐도 아무에게나 팔 수 없는 현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훔치고자 하는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함께 한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컨테이너에 들어가 일일이 뒤지다가는 경찰이 제 시간내에 출동하리란 것은 불을 보 듯 뻔한 일. 이제 고민을 접고 두 컨테이너를 훔치기로 하는데 시가 2,000억엔어치의 그림들을 한꺼번에 빼돌린다는 대담하고 무모한 시도는 시로타가 은행 내부사정을 사전에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된다. 각종 센서, 감지기, 감시카메라같은 각종 최첨단 장비를 단계적으로 돌파해야만 하는데 보안의 허점과 시간싸움을 이용한 역할 분담이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제목 미술 사기단 영화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이 연상되는가 하면 도둑단이란 소재에서 역시 영화 도둑들이 추가로 연상되기도 한다. 헐리웃 영화 같은 절도작전은 때론 완벽보다는 어이없을 정도의 정면 돌파가 시도되는데 리얼리티에서는 점수를 더 받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명화를 훔쳐내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채 거액을 나눠서 각자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스토리였으면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스릴러의 재미와는 차별화된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과 투자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투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탐욕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되는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림 속에는 언어라는 비문화적 필터를 거치지 않은, 시대의 어느 순간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는 시대를 남기는 일에 생명을 불태우기 때문에

 슬픈겁니다.” (p.327.)

 

고흐는 사후에 자신의 작품이 이토록 저급한 자본의 논리에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은 배고픔에 시달렸음에도 후세의 누군가는 시커먼 배 속을 채우는데 급급했을 거라 알았더라면 그 많은 명화들을 결코 세상에 내놓기보다 불사르고 봇을 꺾어버리는 결단을 내렸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감명마저 주지 못하고 사장되는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고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가셰 박사의 초상] 절도 대작전은 숭고하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배려도 있다. 작전에는 돈 말고도 악의에 대한 복수가 곁들여 있었는데 나중에 드러난 속사정에는 예술적 재능을 고취하기 위한 속 깊은 정이 들어있었고 궤도에서 이탈한 가련한 인생에 갱생의 기회를 부여한 프로젝트의 개념도 들어있어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훈훈할 수가 없다. 추악한 위선에는 통쾌한 메스를 들이댄 권선징악이라는 학습효과도 있고 예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어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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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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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차일피일 미루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드뎌 시작하였다. 도서관에 가서 조회를 해보니 현재 출간된 시리즈 중 딱 한 권을 제외하고는 다 비치되어 있어서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도서관은 보유 장서 권수가 적어 의외로 미보유중인 유명 장르소설이 수두룩함에도 불구하고 혼다 테쓰야 책들만큼은 거의 다 있다하니 확실히 요 시리즈의 인기몰이가 대단한걸.

그리고 평소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 가지고 있던 느낌과 예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선 표지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란 것이다. 어두운 배경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붉은 색의 포인트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한참을 넋 놓고 볼 때도 많았으며, 분명 책꽂이에 나란히 진열할만한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히메카와 레이코 아마도 보이시하고 쿨한 성격이 아닐까, 굉장히 대범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휘어잡는 강인한 여장부일 것으로 추측했었다.

 

 

그런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 곧 서른을 코앞에 둔 수사110계 주임인 여형사이다. 열일곱 살에 한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는데 당시 피해자였던 레이코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던 여형사가 업무수행 중 순직한 일이 있었다. 솔직히 그 여형사의 일기는 너무 속 뻔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상투적이고 신파적이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었지만 법정 씬에서 모든 경찰관들이 레이코에게 일제히 경례를 하는 대목에선 알면서도 속아주는 심정, 평소 시기와 경쟁을 벌이다가도 동료를 위해서라면 대동단결하는 결속력과 무게감이 전하는 압도적인 파장 앞에서는 마치 현장을 목도한 것 같은 떨림이 있었다. 확실히 과거의 굴레를 극복해낸 레이코의 결단과 용기에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그녀가 미즈모토 공원 저수지 근처에서 파란 비닐에 싸인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된 현장을 찾는 순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계급사회의 묘미라며 경위라는 계급장에 우쭐하는 모습이다. 물론 경찰이라는 계급조직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한 계급장은 스스로도 대견하다 할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왜 경찰이 되었는지를 망각하지 않았나 싶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줄지 않는 악이라는 우물이지만 힘닿는데 까지 발로 뛰어가며 죽은 자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 결코 외면하지 않겠노라는 해리 보슈 경정이라는 계급에도 권력이라는 수직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미카미를 먼저 만나고 나니 레이코가 얼마나 세상을 자신의 편협된 관점과 가치관으로 재고 있는지, 얼마나 등 따시게 살아온 공주과인지(물론 특정한 기억을 지워버리진 않겠지만)가 노골적으로 다가와서 심히 비호감이다.

 

 

 

 

시리즈의 특성 상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친밀도 정도인데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일단 실패한 캐릭터이다. 오히려 다른 등장인물들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칸테쓰라고 불리는 카쓰마타 경위와 레이코의 부하 이오카 경장을 언급할 수 있는데 무례하고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며 수사과정에서 편법을 남발하는 어둠의 형사지만 사리사욕이 아닌 조직에 도움 되는 관점에서 독자노선을 걷는 카쓰마타의 행보가 거침없이 시원시원해서 오히려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지나치게 직감만을 추종하는 레이코의 수사 활동이 때때로 놓쳐버리는 기본적 실수에 통렬한 일침을 놓아서 속이 후련하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범인들의 역할분담에서 살인자와 시체수거 처리자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수거처리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의문부호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그 안일한 사고방식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는데 레이코는 비범한 수사능력이 있지만 허점도 많아 크나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불씨가 항상 상존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레이코는 그러한 지적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 없다. 아직 시기와 질투의 덩어리인 보통여자로서의 한계도 지니고 있어 많이 배우고 경험해서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카쓰마타의 표현대로 아직 레이코는 풋내기이다. 나는 그녀를 아직 인정하지 않으련다. 대신 이팅, 카쓰마타!!!

 

 

 

 

또 다른 주인공 이오카 경장. 레이코가 이름 부르는 걸 질색해도 능청스럽게 레이코 주임님예, 사랑합니더. 지 맘을 받아 주이소.라며 뻔뻔하게 들이대는 모습과 소심하게 쭈뼛거리는 키쿠타 경사와의 라이벌전은 읽을 때마다 이 시리즈에서 참기름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즐거움이 있다. 오사카 사투리로 설정된 그의 말투는 경상도 사람인 내가 봐도 한번씩 무슨 소리인지 해석불가한 면도 있어 서울이나 타지방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알아들을지 상상만 해도 우습고. 단순 코믹 캐릭터같이 보이지만 의외의 비범한 솜씨도 발휘하고 있어 그의 등장횟수가 좀 더 늘었으면 좋겠는데. 키쿠타레이코의 재미없는 관계는 단절됨과 동시에 이오카-레이코 러브라인이 적극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이오카는 같은 남자로서 상당한 매력이 있다.

 

 

 

캐릭터의 강점과는 별개로 유머와 잔혹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제목이 시사하는 의미는 두 가지 특성 모두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딸기 밤 딸기 기사로 해석하는 레이코의 엉뚱한 유머를 차지하고서라도 스트로베리 나이트가 상징하는 인간성의 상실과 야만의 극치, 저열한 호기심이 어우러진 끔찍함, 그리고 배후에 얽힌 반전도 산뜻해서 만족스럽다. 단지 살인마가 심경의 변화를 갑작스레 일으키는 대목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더라. 내가 놓친 단서가 있는지는 모르나 뜬금없는 설정이 위기를 개연성 없이 무마시키는 불친절이 좀 실망스럽더란 말이지. 그래도 첫 술에 완전 배부를 수 없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코의 각성만 있다면 별 반개는 언제라도 추가하는 덴 문제없으리라. 문제는 너야 레이코!!! 드라마나 영화 속 레이코 역할도 다케우치 유코 아니라 마츠시마 나나코 했더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나코가 지금보다 젊다는 가정하에. 이제 "소울 케이지"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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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요시키 형사 시리즈 2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28일 오후, 형사 요시키는 전처 미치코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6년의 결혼생활, 그리고 헤어진 지 5년 만의 통화였다. 그녀는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말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어딘가 가냘프고 주저하는 것 같은 목소리의 여운에서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요시키미치코의 얼굴을 보기 위해 우에노역으로 가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미치코가 탔던 걸로 알려진 유즈루호 열차 침대칸에서 한 여성의 시체와 학을 본떠 만든 공예품이 발견되면서 요시키미치코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다 

 

돌이켜 볼 때 요시키의 마음은 항상 그녀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남들 앞에서는 조신하다가도 요시키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잘 웃으면서 명랑했던 그녀, 어리광도 피우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서 때론 어린 아이 같았던 미치코에게 항상 바쁜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따스한 말 한마디와 속 깊은 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뚝뚝하게 대했던 결혼생활이 떠 오를때면 스스로 자책해왔다. 그런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이어진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마음의 짐이었다. 그래서 이번 신정 연휴를 활용하기로 결심을 굳힌다. 그녀를 찾기로. 

 

그녀의 행방을 좇아 실마리를 찾으러 구시로로 향한 요시키는 그녀가 열차 살인사건만이 아니라 살았던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도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절대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이었다. 이에 자신 말고는 그녀를 위기에서 구할 사람이 없음을 자각하고 그녀에 대한 믿음만으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목숨 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시마다 소지 미스터리는 환상적이며 초현실적인 현상에 상식의 틀을 뛰어넘는 거대한 트릭이 가미되면서 사건의 진실에 감춰진 인간적인 사연들이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 개인사에 줄곧 주목해왔던 요시키 형사 본인의 개인사를 바탕에 두고 진행되는 이번 이야기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부부의 연이란 전생에서 어떠한 인연이 없으면 이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비록 불확실한 이유로 헤어지기는 했지만 처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 점차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는 원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치코와 살면서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요시키의 모습에서 같은 남자로서 이 만큼 공감과 이해가 형성되는 일도 흔치않다. 그는 인생의 반려자로서 미치코를 진심 아끼고 사랑하고 싶지만 맘 같이 표현하는 일에 서툰 남자이다. 결코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는 의지만큼은 어느 남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요시키미치코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목숨 건 사투 속에서 죽음과 맞서서 특유의 끈기로 약속한 시간에 사건을 해결해야한다는 압박과 제약을 끝내 돌파하는 과정들은 긴박감과 함께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구조 상 외부에서 몰래 출입하기 불가능한 건물 5층에서 살해된 두 여성에 대한 살인트릭은 이론상 가능하지만 실제 시도하기에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세밀한 방식이라 트릭을 위한 트릭이라고 평가절하 했다가 미스터리의 즐거움이란 과학이 아닌 발상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 있기에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면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처음부터 정해놓고 트릭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는 방식임을 감안하여 누가(who) (why) 대신 어떻게(how)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 괴담이 논리로 설명되는 순간, 그 기상천외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부부의 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될 것인가? 축복받으며 행복한 출발을 다짐했던 당시의 포부는 어느 순간 실종되고 인생극장처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까닭은 각자가 알겠지.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가면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다들 진심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현실에서 해답을 찾고자 요시키란 남자는 과거에 미처 되돌리지 못한 관계라는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그렇게 살얼음 위를 걸으며 진정 목숨을 걸었나보다. 한 여자에 눈이 먼 남자, 이런 걸 두고 꽃보다 남자라고 한다. 불꽃남자 요시키의 순정은 서로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성공했고 그래서 멋지고 여전히 감동적인 로맨스이다. 가을에 어울릴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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