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차일피일 미루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드뎌 시작하였다. 도서관에 가서 조회를 해보니 현재 출간된 시리즈 중 딱 한 권을 제외하고는 다 비치되어 있어서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도서관은 보유 장서 권수가 적어 의외로 미보유중인 유명 장르소설이 수두룩함에도 불구하고 혼다 테쓰야 책들만큼은 거의 다 있다하니 확실히 요 시리즈의 인기몰이가 대단한걸.

그리고 평소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 가지고 있던 느낌과 예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선 표지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란 것이다. 어두운 배경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붉은 색의 포인트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한참을 넋 놓고 볼 때도 많았으며, 분명 책꽂이에 나란히 진열할만한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히메카와 레이코 아마도 보이시하고 쿨한 성격이 아닐까, 굉장히 대범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휘어잡는 강인한 여장부일 것으로 추측했었다.

 

 

그런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 곧 서른을 코앞에 둔 수사110계 주임인 여형사이다. 열일곱 살에 한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는데 당시 피해자였던 레이코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던 여형사가 업무수행 중 순직한 일이 있었다. 솔직히 그 여형사의 일기는 너무 속 뻔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상투적이고 신파적이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었지만 법정 씬에서 모든 경찰관들이 레이코에게 일제히 경례를 하는 대목에선 알면서도 속아주는 심정, 평소 시기와 경쟁을 벌이다가도 동료를 위해서라면 대동단결하는 결속력과 무게감이 전하는 압도적인 파장 앞에서는 마치 현장을 목도한 것 같은 떨림이 있었다. 확실히 과거의 굴레를 극복해낸 레이코의 결단과 용기에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그녀가 미즈모토 공원 저수지 근처에서 파란 비닐에 싸인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된 현장을 찾는 순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계급사회의 묘미라며 경위라는 계급장에 우쭐하는 모습이다. 물론 경찰이라는 계급조직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한 계급장은 스스로도 대견하다 할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왜 경찰이 되었는지를 망각하지 않았나 싶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줄지 않는 악이라는 우물이지만 힘닿는데 까지 발로 뛰어가며 죽은 자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 결코 외면하지 않겠노라는 해리 보슈 경정이라는 계급에도 권력이라는 수직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미카미를 먼저 만나고 나니 레이코가 얼마나 세상을 자신의 편협된 관점과 가치관으로 재고 있는지, 얼마나 등 따시게 살아온 공주과인지(물론 특정한 기억을 지워버리진 않겠지만)가 노골적으로 다가와서 심히 비호감이다.

 

 

 

 

시리즈의 특성 상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친밀도 정도인데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일단 실패한 캐릭터이다. 오히려 다른 등장인물들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칸테쓰라고 불리는 카쓰마타 경위와 레이코의 부하 이오카 경장을 언급할 수 있는데 무례하고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며 수사과정에서 편법을 남발하는 어둠의 형사지만 사리사욕이 아닌 조직에 도움 되는 관점에서 독자노선을 걷는 카쓰마타의 행보가 거침없이 시원시원해서 오히려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지나치게 직감만을 추종하는 레이코의 수사 활동이 때때로 놓쳐버리는 기본적 실수에 통렬한 일침을 놓아서 속이 후련하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범인들의 역할분담에서 살인자와 시체수거 처리자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수거처리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의문부호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그 안일한 사고방식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는데 레이코는 비범한 수사능력이 있지만 허점도 많아 크나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불씨가 항상 상존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레이코는 그러한 지적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 없다. 아직 시기와 질투의 덩어리인 보통여자로서의 한계도 지니고 있어 많이 배우고 경험해서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카쓰마타의 표현대로 아직 레이코는 풋내기이다. 나는 그녀를 아직 인정하지 않으련다. 대신 이팅, 카쓰마타!!!

 

 

 

 

또 다른 주인공 이오카 경장. 레이코가 이름 부르는 걸 질색해도 능청스럽게 레이코 주임님예, 사랑합니더. 지 맘을 받아 주이소.라며 뻔뻔하게 들이대는 모습과 소심하게 쭈뼛거리는 키쿠타 경사와의 라이벌전은 읽을 때마다 이 시리즈에서 참기름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즐거움이 있다. 오사카 사투리로 설정된 그의 말투는 경상도 사람인 내가 봐도 한번씩 무슨 소리인지 해석불가한 면도 있어 서울이나 타지방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알아들을지 상상만 해도 우습고. 단순 코믹 캐릭터같이 보이지만 의외의 비범한 솜씨도 발휘하고 있어 그의 등장횟수가 좀 더 늘었으면 좋겠는데. 키쿠타레이코의 재미없는 관계는 단절됨과 동시에 이오카-레이코 러브라인이 적극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이오카는 같은 남자로서 상당한 매력이 있다.

 

 

 

캐릭터의 강점과는 별개로 유머와 잔혹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제목이 시사하는 의미는 두 가지 특성 모두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딸기 밤 딸기 기사로 해석하는 레이코의 엉뚱한 유머를 차지하고서라도 스트로베리 나이트가 상징하는 인간성의 상실과 야만의 극치, 저열한 호기심이 어우러진 끔찍함, 그리고 배후에 얽힌 반전도 산뜻해서 만족스럽다. 단지 살인마가 심경의 변화를 갑작스레 일으키는 대목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더라. 내가 놓친 단서가 있는지는 모르나 뜬금없는 설정이 위기를 개연성 없이 무마시키는 불친절이 좀 실망스럽더란 말이지. 그래도 첫 술에 완전 배부를 수 없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코의 각성만 있다면 별 반개는 언제라도 추가하는 덴 문제없으리라. 문제는 너야 레이코!!! 드라마나 영화 속 레이코 역할도 다케우치 유코 아니라 마츠시마 나나코 했더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나코가 지금보다 젊다는 가정하에. 이제 "소울 케이지"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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