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소울 케이지>를 읽기 전 드라마 <딸기 밤>에 대한 일본시청자들의 반응을 잠시 검색해본다.

 

회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레이코를 성토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원작을 능가하는 드라마는 흔치않다고 보더라도 레이코에 대한 비공감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저격수로서 칸테쓰의 역할을 칭찬하는 댓글들이 많다는 것도 의미하는 바는 의견일치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점차 시리즈의 원작에 빠져드는 나!!! 

 

한 남자가 공사장 9층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뭔지 모를 이상한 심정이 가슴을 휘감아 도는 것 같다. 왜 뜬금없이 대화 도중 자살을 택한 걸까? 그 남자는무거운 굴레에 지쳐있던 것 같은데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어떤 의문과 회한을 남겨두며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강둑에 방치된 경승용차에서 남성의 절단된 왼쪽 손목이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증언과 지문 조사 결과 타카오카 켄이치라는 43세의 목수로 판명되는데 몸통의 행방은 알 길 없다. 당연히 죽었을 터. 그러나 레이코의 촉은 죽은 남자의 정체에 주목한다. 그리고 쿠사카 경위의 수사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여서 의혹으로 다가온다. 죽은 남자와 동거했던 청년, 그리고 같은 건설회사에서 동일한 형태로 추락사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청년과 그와 연인관계였다는 한 아가씨. 우연이 아닌 의도된, 조작된 배후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흑막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본 측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아픔도 있구나.   

 

그리고 전작에서 칸테쓰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이번에는 레이코의 숙적이라고 하는 쿠사카 경위가 중심이 된다. 레이코는 쿠사카가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를 연상시키는 외모라는 이유로, 직감을 중시하는 자신의 방식에 반해 지엽적인 사실을 배제 않고 일일이 포함시켜 철저한 수사를 추구하는 그의 방식에 분통을 터뜨린다. 유죄판결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면 그것은 나름의 수사방식일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기에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필요한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레이코쿠사카를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남자라는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이유는 부당하다고 본다. 조직사회는 상사든 동료든 부하든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믹스해먹는 배스킨 라빈스 아니다. 때론 반목하고 때론 손을 내밀고,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것이 조직일진대 칸테쓰 같은 괴팍한 구성원이라면 좀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쿠사카는 특별히 자신을 적대시하지도 않는데 먼저 적으로 단정지어버리는 레이코의 오만함은 이번에도 짜증을 수시로 돋운다. 그 점을 시청자들이 지적하고 있었다. 관용과 수용의 지혜를 가져라는.

 

 

그렇게 레이코 대한 계속적인 불만이 집중력을 흩뜨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밌고, 아니 전작에서 일취월장한 전개와 흥미, 감동이 담겨있다. 점차 발전해나갈 것 같다는 신뢰가 있어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사연이 기막히면서 무엇보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관통하는 물줄기는 부성(父性)”이라는 단어다.

 

아이의 볼은 참 부드럽습니다.

보들보들하고 은은하게 젖내가 납니다.

 나 같은 놈이 뺨을 대고 부비면 아플 겁니다.

더럽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 왜 우냐고 묻습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맙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다. 못난 아비라서.....”  (p.9)

  

단순히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말이 레이코의 아버지 이야기로 연결되고 범인의 정체와 트릭이 드러나는 순간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난다.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독백은 사건의 전말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래야만했던 안타까운 속사정을 자식 된 도리로 청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석연치 않은 사정이 있던 내겐 바늘이 구석구석 찌르고 들어오는 기분이라 정면으로 직시하기 힘들었다

 

핏줄이 이어져야만 부모자식 간은 아니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은 아니다(p.386)

  

제목 <소울 케이지(Soul Cage)>는 그런 의미에서 참 절묘하게 붙인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영국 뮤지션 스팅1991년 앨범의 제목에서 모티브로 삼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가설에 바탕을 두고 추론해본다면 소울(Soul)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로 해석이 가능할 듯싶다. 그렇다면 케이지(Cage)는 감옥이라는 뜻이 있으니까 합성어 소울 케이지(Soul Cage)”는 악의와 위협, 고난이라는 굴레에서 자식을 구원해 주고 싶은 절절한 부성을 의미하는 합성어로 보인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을 헤아리는 절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리라.

마음속의 증오 대신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을 키운 자의 감정을. 슬픔의 도가니 ㅠ.ㅠ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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