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제14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 신인상 수상작!!!

거미줄의 계략에 걸려든 한 남자, 한 여자.

 

군마 현 남부에 자리한 오우라집안에는 아들이 두 명 있다. 장남 소스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작은 디자인 사무소를 경영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집안의 미술품을 처분한 돈을 받아다 써야 할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긴자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여성 아카네이다. 그녀는 일하던 가게에서 야반도주하여 작은 스낵바를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공통점이라면 소비자금융에 빚을 지고 있었고 제때 상환하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연히 주식 사기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누군가 접근한다. 자신들에게 신용을 쌓은 후 돈을 투자하여 한 몫 잡으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두 사람은 시킨 대로 했지만 이것은 사기였다. 이제 더 큰 빚이 그들에게 남겨졌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두 사람에게 전직 은행원 시로카가 개입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은행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훔쳐내어 팔자는 것. 거액을 챙겨 각자 분배한 후 제 갈 길로 갈라지자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두 남녀는 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모두가 탐을 내는 명화 [가셰 박사의 초상]를 그린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생전에 빈곤과 혹평에 고뇌하다 절망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여관에서는 무려 600점의 그림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있었던 [가셰 박사의 초상]은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잦은 소유권 변경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술관 보관되다가 이후 나치 독일의 헤르만 괴링이 압수했으며 다시 외부로 유출해 팔았었다. 이후 수차례 그림이 돌고 돌면서 소유권 분쟁이 있었고 일본 경제가 버블이라는 호황기를 맞이하여 유럽의 명화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을 때 경매를 통해 일본으로 매입된다. 이 때 사들였던 미술품들은 예술적 가치로 인정되어 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회수했던 것이라 당연히 세상에 다시 빛을 보기 전까지는 창고에서 잠자게 된다. 여기에 예술에 관심 없는 졸부들의 허세를 충족시키거나 폭력조직의 자금줄 역할로 이용되면서 도난이 발생해도 소유자나 은행 측에서는 그 사실을 은폐해서 고객의 비밀유지와 과실이라는 민감한 사안의 노출을 꺼려하는 측면이 있어 그 점을 도둑단에서는 노렸던 것이다

 

훔쳐도 아무에게나 팔 수 없는 현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훔치고자 하는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함께 한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컨테이너에 들어가 일일이 뒤지다가는 경찰이 제 시간내에 출동하리란 것은 불을 보 듯 뻔한 일. 이제 고민을 접고 두 컨테이너를 훔치기로 하는데 시가 2,000억엔어치의 그림들을 한꺼번에 빼돌린다는 대담하고 무모한 시도는 시로타가 은행 내부사정을 사전에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된다. 각종 센서, 감지기, 감시카메라같은 각종 최첨단 장비를 단계적으로 돌파해야만 하는데 보안의 허점과 시간싸움을 이용한 역할 분담이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제목 미술 사기단 영화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이 연상되는가 하면 도둑단이란 소재에서 역시 영화 도둑들이 추가로 연상되기도 한다. 헐리웃 영화 같은 절도작전은 때론 완벽보다는 어이없을 정도의 정면 돌파가 시도되는데 리얼리티에서는 점수를 더 받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명화를 훔쳐내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채 거액을 나눠서 각자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스토리였으면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스릴러의 재미와는 차별화된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과 투자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투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탐욕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되는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림 속에는 언어라는 비문화적 필터를 거치지 않은, 시대의 어느 순간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는 시대를 남기는 일에 생명을 불태우기 때문에

 슬픈겁니다.” (p.327.)

 

고흐는 사후에 자신의 작품이 이토록 저급한 자본의 논리에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은 배고픔에 시달렸음에도 후세의 누군가는 시커먼 배 속을 채우는데 급급했을 거라 알았더라면 그 많은 명화들을 결코 세상에 내놓기보다 불사르고 봇을 꺾어버리는 결단을 내렸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감명마저 주지 못하고 사장되는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고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가셰 박사의 초상] 절도 대작전은 숭고하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배려도 있다. 작전에는 돈 말고도 악의에 대한 복수가 곁들여 있었는데 나중에 드러난 속사정에는 예술적 재능을 고취하기 위한 속 깊은 정이 들어있었고 궤도에서 이탈한 가련한 인생에 갱생의 기회를 부여한 프로젝트의 개념도 들어있어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훈훈할 수가 없다. 추악한 위선에는 통쾌한 메스를 들이댄 권선징악이라는 학습효과도 있고 예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어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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