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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소녀의 순정을 돌려주세요!"
"뭐?
나한테 줬웠어?"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제목도
참 긴데다 무지 요상합니다.
무슨
내용일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힌 상태에서도 ‘비채’에서
발간된 일본 청춘소설이니까 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일단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까 제목이 말하는 건 추상적인 의미라기 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실제 캐릭터를 일목요연하게 압축 정리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여기서
소녀는 말이죠.
올해
스물다섯 먹은 “아야카”라는
아가씨예요. 낮에는
택배회사 콜센터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순정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콜센터에서 일하기로 한 것은 잔업이 없기 때문에 만화가를 꿈꾸는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던 것이지만 상담원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죠.
조금만
전활 늦게 받거나 택배 도착이 지연된다든지 하는 온갖 이유들로 고객들의 불만과 항의가 폭주할 때 마다 진땀 흘릴 정도로 사과하고 달래주어야만
하니까요.
연애가
주제인 순정만화의 경우는 특히 작가가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의
번뇌를 원고에 쏟아 붓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상형의 남자와 이런 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키스신의
얼굴 각도는 이렇게.
허리를
감싼 팔의 강도는 이 정도까지 등
수많은 망상을 종이 위에 구현한다.
<P.46>
그래도
오로지 순정만화가가 되겠다는 일념만으로 하루하루 벅차게 버텨나가지만 성공한다는 보장 없이 모든 것이 불투명할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년 아저씨랑 길에서 우연히 부딪치면서 출판사에서 투고할 원고를 그 남자가 넌지시 훔쳐보지 않았을까 염려하게 되는데요.
결정적으로
그 사람이 콜센터 소장 대리로 부임해버리면서 더욱 안절부절 못하게 되죠.
순정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밀로 감추어두었기에 마치 성인비디오를 몰래 보다 들킨 남자의 심정이었던 겁니다.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있지만 자신 있게 커밍아웃 못한 채 이중생활 할 정도로 자신도 없고 남들의 인식도 부끄러웠던 탓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을 스파이라고 말하는 엉뚱한 남자입니다.
스파이
활동을 하는 진짜 이유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고 그녀와 이 남자는 은밀한 이중생활을
통해서 불안한 미래에 개념치 않으려 하는 당찬 발걸음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리하여
항상 덤벙대고 실수를 저지르며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졌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는 동안 “아야카”는
짧은 기간 동안 스파이로 왔다가 사라진 그 남자를 통해 희망과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동기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문체는
상큼발랄한데다 에피소드는 무겁지
않게 일상 미스터리가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어 가독성이 무척 좋습니다.
특히
순정만화의 본질과 직업관을 사못 진지하게 설득하고 있어 유익(?)했고요. 마지막에는
보너스로 “아야카”가
단기집중연재 공모전 응모 작품으로 쓴 <내가
사랑한 스파이>라는
순정소설 단편이 실려 있으니 마지막까지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그러보니 007 시리즈 제목인데요 ㅋㅋㅋ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학비를 부담할 형편이 안 되는 한 여고생이 학교 측의 사주를 받아 라이벌 학교에 전학생으로 위장 전입하여 운영 상 기밀을 빼내려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로맨스의
흥행공식인 물과 불 같이 상반된 성격의 남녀가 티격태격하다 골인하게 된다는 오글거리는 설정을 참 진지하게 코믹하게 잘 그려낸
수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멋진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본능이 있군요.
때문에
잠자던 소녀의 본능이 깨어나거나 그런 소녀의 본능을 달콤하게 훔쳐보게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야카”의
청춘과 “사카키
쓰카사”의
<화과자의
안>의
여주 “안짱”의
청춘은 놀랍도록 닮은꼴이라 같이 웃다가도 절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샘솟네요.
그래서
<화과자의
안>을
재미나게 읽으셨다면 이 소설도 같이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