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민형기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누드 빼빼로를 입에 물었다.

 이놈이 가장 위험할 확률이 높았다.

 전형적인 빼빼로와 모양새가 다르고

 그러면서도 달콤함은 배로 가중되었다."(p.14)

 

 

빼빼로 주고받는 날 1111빼빼로데이 숫자 ‘1’처럼 날씬해지라는 주술(?)적 의미가 담긴 의미를 제과업계가 마케팅으로 적시에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00데이 언제나 상술에 말려들게 한다며 투덜투덜 되지만 어쩔 수 없는 군중심리에 지갑을 열게 됩니다. 얇은 지갑 속의 지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나날이 사라져 가요.

 

그렇게 본다면 남들은 때가 되면 기꺼이 입에 물고 만다는 빼빼로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이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가발하고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한다고 봐야겠지요. 어느 날, 심리 상담소에 한나리”란 미모와는 거리 먼 아가씨가 찾아옵니다. 피부는 창백하고 갓 스무 살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그녀가 털어놓는 고민이 바로 날씬스틱 빼빼로 병적으로 겁을 낸다는 남자친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증세를 일명빼빼로포비아라는 세상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희한한 신조어로 부르게 되는데요, 상술이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면 ‘아몬드 맛’, ‘딸기 맛’, ‘누드’, ‘다크’ 등등 종류별로 먹고 깊은 간식이빼빼로라서 상담사 “민형기”는 입에 물고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별의 별 사람 다 있구나 싶었는데 “한나리”의 남친인 스윗스틱’ 사장은 알고 보니 그 곳에서 알바를 하는김만철이라는 대학생의 창작소설 등장인물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가 진짜 황당무계, 기상천외한 제2라운드로 넘어가요. 처음엔 대형마트에빼빼로 불특정 구역에 불특정하게 쌓여 있어 그 점이 두렵다하더니 편의점의 빼빼로 용서가 된다는 식까지는 이해해 보려 했으나 사장님이 나는 지구인이 아니다. ‘실리칸이라는 머나먼 외계에서 왔다고 하는 순간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나 망상인지 무지 헷갈리게 되어요.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로

 손에 개똥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p.145146)

 

결국 빼빼로’에 대입된 인간은 개성이라는 색깔을 입기 위해 발버둥치는 스윗스틱 불과한 것이라는 접근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환상적이어서 현실의 경계는 어느덧 잊고 기묘한 판타지에 빠져들게 됩니다. 마치 천일야화를 듣는 것 같은... 또한 박진규 작가가 박생강이라는 필명으로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생산적인 창작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여 새롭고 신선한 시도로 틈새를 찾아보려 했다는 자기고백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작가의 의도와 맞물려 각자는 개성을 원하지만 빼빼로’가 획일적으로 날씬한 것처럼 시스템화 되어 점점 생기를 잃어 말라가는 우리들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빼빼로 입에 물고 있지만 다양하게 더 먹고 싶어질 것 같네요. 읽고 난 후유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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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레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4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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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도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히메카와 레이코, 금기를 깨뜨리다 또 다른 금기와 조우하다.

 

야쿠자 조직인 야마토회 계열 이시도 조직 산하 진유회의 하부조직인 로쿠류회 조직원이 살해되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는 찰나 야나이 겐토라는 남자가 범인이라는 의문의 제보가 날아드는데 이 남자에게는 9년 전 살해당한 누나가 있었고 피해자는 바로 누나의 애인이었던 것. 이것만이 아니다. 겐토의 아버지는 죽은 누나의 살해 용의자로 몰려 경관의 총을 낚아채어 자살했었다. 그렇다면 겐토는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에게 복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금기... 만약 겐토 아버지의 죽음이 경찰의 잘못된 수사가 빚어낸 애꿎은 희생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을 염려한 경시청 고위층은 은폐를 위해 야나이 겐토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다. 하지만 히메카와 레이코는 외압을 거부하고 은밀히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이것은 무모하리만치 만용일수도 있었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찍히게 될 텐데 말이다. 하나의 금기를 돌파하고 나니 의도하지 않았으며 예상치도 못했던 제2의 금기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시키는 대로 했으면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

 

 

야나이 겐토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쳐 누나의 죽음을 목격한 후 복수를 실행하려는 과정을 그려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레이코와 겐토의 시점만 있진 않다. 야쿠자 조직 교쿠세이회의 회장 마키타 이사오도 자신에게 주요 정보제공자였던 겐토의 죽음을 조사하다 레이코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3인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맹렬히 돌진하지만 미스터리로서의 강점보다도 로맨스가 소설의 핵심 축이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레이코는 남자들만 득실한 경시청 조직에서 여성으로서 시기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남자는 동료, 경쟁자, 범인이라는 3가지 타입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비록 부하직원인 기쿠타와는 어설픈 러브라인이 가동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의 신분도 모른 상황에서 마키타와 급격한 사항에 빠지다니 덩달아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어떠한 조건이나 편견 없이 상대가 가진 원초적 매력에 한순간 빠져든 이 사랑은 세속적이며 조건부적인 사랑에 찌든 요즘 세태에 비하면 확실히 무결점의 본능이다.. 담배 냄새는 어느 순간 남성미의 상징이 되고 중년남자의 원숙함은 진짜 남자를 최초 체험케된 레이코가 정신없이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후끈해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나아간다.

 

 

와다 과장도 이마이즈미 계장에게 한 말이 있지 않나. 레이코는 집중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자기 안으로 쑤욱 빠져드는 듯 한,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데에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있을 때 지금 레이코의 심경은 그러했을 것이다. 사랑은 레이코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겐토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동병상련을 느꼈나 보다. 둘이 되어 지독한 외로움을 사람의 정으로 채워 나가고자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면모도 사랑의 또 다른 이유로 설명 가능하리라. 그 밖의 이유라면 그때부터 내리는 빗물 속에 불순물이 조금씩 섞여 들어갈 것만 같다.

 

 

순수하지 않으면 자칫 탈모가 될 위험도 감수하겠다면 우산을 쓰지 말고 온 몸으로 비를 맞아야겠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동기는 비난하지 못하겠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문제지, 사랑은 죄가 아니다, 라는 어느 동성애자의 말도 있지만 어떤 탐욕이 배후에 개입된 상황이 아니라 상대를 조건 없이 사랑하여 그를 위해 계획하고 자신을 희생하려한 배려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이번에는 안쓰럽지만 잔인한 설정이 없었기에 약간의 불편만 감수한다면 읽기엔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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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이브, 시내 중심가에서 눈꽃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는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았다. 하늘에서는 눈꽃이 흩날리고 아이들은 빙판에서 썰매를 신나게 타느라 여념이 없으며, 연인, 친구들과 포토존에서 이쁜 추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취를 맘껏 누리고 있었다. 특정한 날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데에는 종교적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지만 모두의 마음에 따듯한 외투를 둘러준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탄생을 의미하는 <노엘>을 지금 읽는다면 그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라면. 그는 이미 동화풍의 소설도 낸 적이 있으니 미스터리가 아니라도 선뜻 손에 들어보게 될 것이다.

 

 

게이스케는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로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려서부터 글쓰기가 특기이자 취미였던 게이스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 유명한 동화작가 되어있다. 동창생들을 기다리던 게이스케는 야요이의 참석여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중학생 시절 게이스케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이들의 멸시와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 때문에 늦으시는 엄마, 춥디추운 방에서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동화창작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의 구타 속에서 점차 지켜가던 그에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야요이라는 이름의 소녀와 친해지면서 두 사람은 이성의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게이스케는 글을 쓰고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는 협업을 통해 둘만의 동화책으로 위안과 동질감을 나누던 두 사람은 또 다른 여자아이까지 휘말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그만 절교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 그녀 생각에 호텔 문을 나선 게이스케는 갑작스레 택시에 치어 쓰러진다.

 

 

내내 그랬던가. 게이스케와 야요이는 부모의 부재에 따른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게이스케야 뻔한 것이고 야요이의 아버지는 엄마를 폭행하고 딸의 알몸사진을 찍는 등의 인면수심에 파렴치한이니 애초에 두 사람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이 외면하는 게이스케에 눈길이 자꾸 가는 야요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 타인의 불행에 자연스런 연민이 생기 수밖에. 그렇게 둘 만의 공통 관심사로 동화책을 만들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는데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고 슈스케가 그냥 이쁜 사랑 하세요, 라고 배려할 사람이 아니지.

 

 

입만 놀리면서. 늘 내게 마음을 쓴다고, 배려한다면서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다며 엄마를 원망하는 야요이의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라도 불러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의 불행한 사건에도 엄마의 무관심이 한 몫 했거니와 결과적으로 자신을 진정 믿어주지 않는 게이스케에 대한 원망이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요이에게 등 돌려 절교하는 게이스케를 그저 고개만 숙인 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쓰라리다. 네가 힘들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준 건 바로 나였어. 수업 중 게이스케를 깊은 눈길로 내내 응시하는 야요이의 모습은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계속 맴맴 돌 듯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진실을 알고서는 가책을 받고 대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너무 잔인한 설정에 심한 몰입에 빠져 버렸나 보다.

 

 

저기다. 야요이는 여전히 게이스케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게이스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경멸이 담기거나 야윈 개를 동정하는 듯한 어두운 눈이 아니라 야요이는 그저 차분하게 게이스케를 시야 중심에 잡아두고 있었다. - p.29 -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향방이 14년 후에 재회하게 된 그와 그녀의 용서와 화해로만 전개되지 않을까 성급한 예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리가 굽혀 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짙은 소외감을 느끼다가 게이스케가 쓴 동화를 읽으며 상처를 극복한 리코, 은퇴 후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도 게이스케의 동화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구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가 가지 의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힐링이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의도는 분명 나쁘지 않다.

 

 

그러면서 시한부 삶을 살며 투병 중인 리코의 할머니에게서는 오랜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떠올리며 간병에 지친 자녀들의 한숨은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에겐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절망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비록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잘 알겠다.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는 대중에게 친숙한 캐롤을 대상으로 삼아 편하고 훈훈하게 다가오지만 그 후의 동화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간 것처럼 쉽사리 동화되기 어려웠다.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배제하고 계속 더 몰입할만한 구도는 없었을까? 중반까지의 몰입과 상반되는 중반 이후의 이탈은 그래서 불확실한 감상만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는 공감이 가나 해법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진정한 힐링 스토리가 되기엔 많이 역부족이었다. , 뿜겠네. 그래도 올만에 읽은 슈스케의 소설인데 이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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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개정증보판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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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헤르만 헤세는 아마도 괴테와 더불어 독일인들의 내면정신을 가장 잘 대변하는 대문호이자 다른 한 편으로는 문명정신과는 이질적인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유년시절부터 헤세의 인간 본성을 꿰뚫는 통찰력을 키워준 힘은 그가 자란 독일의 산간도시와 알프스 산맥의 산간마을의 자연에서 자연스레 형성되었으니 개인적 삶과 체험에서 축적된 세계관에는 그를 독일스러움과 그렇지 않은 면을 동시에 갖춘 상대성이 깊이 서려있다 봐야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된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예전에 이미 국내에 선보인 적 있으나 누락된 분량의 한계를 복원하여 새롭게 개정판으로 다시 소개된 셈인데 산문집의 형식을 빌려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개인적 감성을 응축한 문체로, 조화와 이상을 꿈꾸는 현대인들을 과거로의 향수에 젖게 만든다. 그 운치와 푸근함이 진정 세련되었으니 깊이를 논해서 무엇 할까

 

 

그리고 원래 국내제목은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가 아니었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차라리 잘된 일이다. 내가 떨쳐버리려고 해도 어느새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그 표현이 얼마나 감성을 자극하는 지, 그리움이 동반하는 외로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글로만 빛나는 것이 아니더라.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글과 어우러져 한 편의 수채화로 거듭나고 있는데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던 그에게 이런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작가가 아니라면 화가 겸업도 가능할 그 비범함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따로 전시회로 만나고 싶을 정도로 세상을 보는 순순한 심성이 보석같이 반짝이는 색채로 붓이 캔버스에 펼쳐놓은 낙원인 듯하다. 

 

 

결국 글과 그림을 통해 삶을 살고 사랑하는 일에는 여러 경로가 있음을 그는 말한다. 만남과 작별, 탄생과 사멸, 자연이 빚어낸 꽃망울과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나그네를 숭고한 고향으로 이끈 세상만물의 공로에 예찬을 늘어놓으며 경이로움에 젖는다. 맹목적인 소유욕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헤세의 지혜 앞에서는 성숙된 인간만이 꿈꿀 수 있는 단순함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욕망에게 속박되어 있는 나, 그리고 현대인들이 새삼 자유로운 영혼 속에서 살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음이 안타까워 그렇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연과 인간, 예술을 이해하려 고뇌했던 헤르만 헤세만의 치열한 여정은 모든 사소한 일에도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조국 독일이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는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따뜻한 시선과 온기가 시간을 초월한 시공간 속에서 여전히 공감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그 섬세함에 마음은 무장해제 되어 버리니 헤세의 글과 그림이 인도하는 대로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보자. 슬그머니 추운 겨울 옆구리를 녹이는 감동이라는 환희에 온 몸이 떨려올 테니. 이것이 헤르만 헤세 식 미학적 진수이다. 동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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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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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만의 한 예인선, 한 남자가 굳어진 시멘트 통에 두 발을 담근 채 서 있다. 12인의 총잡이들이 뱃전에 서 있는데 아무래도 이 남자를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릴 작정인가 보다. 이 남자 조 커글린은 인생에서 순간의 선택이 운명의 주사위를 어떻게 굴릴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통감했을 것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무모한 도박은 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은 소설에서 미래를 먼저 보여줌으로서 필연인지 우연인지 판단하기 힘든 그날이 궁금하게 만든다.

 

 

시대적 배경은 미국 범죄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에서 가장 매혹적인 시기로 손꼽히는 금주법 시대로 설정되어 있다. 미국의 금주법은 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전시의 식량절약, 맥주를 만드는 독일인에 대한 반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1917년 미국에서 알코올 음료를 양조·판매·운반·수출입을 금지하는 미국헌법 수정 제18조가 19201월 발효되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간 밀조·밀매 등에 따르는 갱들의 범죄가 대폭 증가하여 통제에는 태생적 한계를 보임으로서 마침내 1933년 수정 제21조에 의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들은 인간의 탐욕이 비정한 경쟁을 낳았던 암투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가 부분 존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전작 <운명의 날> 이후 금주법 발효 6년이 경과한 시점을 그리고 있는 <리브 바이 나이트>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스턴 경찰 간부로 재직 중인 아버지를 두고 있지만 자신은 친구들과 강도질을 일삼는 범법자이다. 아버지는 범법자를 단속해야 하는 입장과 아들을 보호할 수 밖에 없는 후견인의 양 갈래길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는 진퇴양난의 입장이라 조 커글린에 대해서는 다른 아들들보다 애증이 깊다. 하지만 조 커글린이 불법 도박장을 털다 보스턴 마피아 조직의 보스 앨버트 화이트의 정부인 에마 굴드를 만나 위험한 사랑에 빠진 것이 문제다. 그녀와 사랑의 도피를 하고자 은행 강도짓을 하다 감옥에 잡혀 들어간다.

 

 

 

감옥 밖에서는 범죄조직의 말단이었지만 감옥 안에서는 보다 이 세계에서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맞게 되는데 마피아 조직의 보스 마소 페스카토레를 만나게 된 일이다. 마소는 조의 아버지를 이용하여 경쟁조직을 소탕하도록 압박을 가하지만 이를 거절한 아버지가 아들의 신변을 염려하여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그도 한낱 보통남자였을 뿐이었다. 세상 누구에게서도 발견하게 되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그 모습에 진정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결국 조는 마소의 목숨을 구하면서 그의 신임을 얻어 출소 후 조직을 물려받아 남부 플로리다에서 밀주와 카지노사업으로 성공하게 된다. 이후 조가 이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경쟁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숨 가쁘게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이다.

 

 

낮보다 밤이 더 익숙한 남자들의 세계는 언제나 부와 권력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제시하지만 약속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곳이 아니던가? 이 남자들도 낮에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야 키우기 수월하다며 덕담하는 훈훈함을 보이지만 어둠이 짙어지면 악수를 내미는 대신에 총부리를 들이대면 언제든지 난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낮에 서투른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만족이란 바로미터가 없다. 자신을 마피아가가 아닌 치외법인이라고 주장하는 조의 의중과는 달리 끝없는 탐욕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거리낌 없이 까발리는 피비린내는 전쟁을 치르다보면 의리는 땅에 떨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린다. 내내 뒤를 돌아보며 살아야하며 세상의 규칙에 따르기보다 남자 스스로 만드는 밤의 규칙을 더 신봉하는 조에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점이 증명된다.

 

 

 

 

조의 삶은 소중한 사람들을 비극에 내모는 애도의 현장에 항상 내몰려왔다. 감옥에서 상대조직으로부터 마소의 살해를 지시받았던 일, 도전장을 내민 RD 프루잇과의 담판, 예인선의 시멘트 통에 발을 담근 일,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등, 불법이고 더러운 일에 파리가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일, 유색인종에 이민자들이 한데 뒤섞인 조직을 불순하게 바라보는 인종차별적 위협, 뇌물과 거래한 권력과의 결탁 등 부정부패와 추악한 권모술수가 난무했던 미국의 암흑기를 편협하고 잔인할 정도로 실감나게 그려낸다. 단 한순간도 주저함 없이 일사천리로 질주하는 서사의 힘은 온전히 데니스 루헤인의 필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2등이 없는 비열한 거리에서 운을 낭비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대로 조는 위기 상황에서도 기본을 망각한 무리들에게 책임을 묻고 나약함 대신 무자비한 보복으로 응징했으니 현실에선 금기지만 상상 속에서는 언제나 매혹될 만큼 매끈한 이야기 구조여서 만족스러웠다. 영화화하기에 더 없이 적합한 구성답게 벤 에플렉 연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2015년에 영화화되어 개봉된다니 기대가 실로 크다. 책 표지에서는 조니 뎁이 언뜻 연상되는 점도 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조니 뎁 주연도 좋을 것 같다. 네 사람을 어떤 식으로 연출, 주연으로 패를 섞어도 모두 합격점이리라. 그런데 디카프리오는 스콜세지 감독과 스노우맨을 한다더니 소식이 없네. 물 건너간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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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띠리 2015-02-2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런거 좋아요^^

유마 2015-02-23 18:36   좋아요 0 | URL
넵. 이 책 참 잼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