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드타이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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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뜬금없는 제목이라고들 했지만 솔직히 전혀 개연성 없는 제목이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할런 코벤<아들의 방>이 원제 <홀드타이트>로 새로이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습니다. 흔히 코벤의 작품들은 치정 또는 과거의 부정들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일상을 뒤흔든다는 설정이 많은데 <홀드타이트>도 그중에서 특히 단골적소재인 가족애와 그 위에 드리워진 위기상황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사소한 말실수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전개는 역시 가독성 좋습니다.

 

 

시작과 함께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난 뒤(이유는 안 나옵니다. 궁금하면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겠죠) 어느 미국의 중산층 가족으로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마이크 바이라는 가족인데 아버지는 의사, 엄마는 변호사라는, 겉보기에는 큰 문제없는 단란한 가정처럼 보이지요. 자녀는 아들, 딸 한명씩 두고 있구요. 최근 가장 핫한 고민거리라면 아들 애덤이 올해 열여섯 살의 사춘기 반항기를 겪고 있는데 가족들과 돌연 소통을 단절하면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아들과 대화도 시도하면서 그 원인을 알아내려 해보지만 도통 진전이 없어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냥 사춘기이려니 하고 넘어갈 단계가 아니다 싶은 초조함에 내린 처방은 아이의 인터넷을 감시해보기로 합니다. 그러다보면 아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는 거죠. 근데 아들의 사생활을 컴터로 일일이 감시하고 체크함으로서 관심개입이란 표현으로 대체하려하는 것 말인데요, 부모님의 경우에도 제가 방에 틀어박혀 컴터로 야동을 보는 건지, 리포트를 작성하는 건지 당췌 확인할 방법이란 모르셨는데 마이크부부는 작정하고 덫을 쳐놓습니다.

 

 

뭐가 걸려드는지 어디 함 볼까나! 자식들은 이런 것을 간섭이라면서 극렬 반발하겠지만요.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부재로 인한 "단절"을 훔쳐보기를 통하여 복구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어느 정도 공감되긴 합니다. 어디까지가 개입이고 간섭인지 명확한 구분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방임을 넘어 과잉보호에 미달되도록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감시 결과가 나왔을까요? 몇달전 친구 한명이 자살하게 된 시기와 아들이 변하게 된 시기가 맞물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 그리고 아들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버지 마이크는 파티현장에 찾으러갔다가 구타를 당합니다. 이제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다니는 부모님의 애타는 마음과는 별개로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네요.

 

 

전혀 두 사건은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코벤의 주특기가 엮기니까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지속적으로 떡밥을 뿌려주니까 페이지를 넘겨나갈 수밖에 없단 말이죠. 이제 장르소설에서 가족이라는 소재는 어느덧 한국 사람들이 밥 먹을 때 곁들이는 김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불화, 가족의 중심축이 된 아이가 범죄에 연루될 때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테이큰식 진행,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 이런 익숙함을 즐길 것이냐 외면할 것이냐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범인과의 대치과정에서의 개연성 부족이라든지 해결방식이 좀 좋아 보이지 않다는 점에 덧붙여 에섹스군수사과장 로렌 뮤즈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중반까지 간간히 사건에 대한 단서를 캐고 가던 그녀가 어느 순간 증발했다가 다 해결되고 나니까 엔딩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부모들의 고군분투기라면 경찰의 역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면 제대로 된 능력을 과시 못해 사장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들 언급하시는 도입 부분, 진화론과 창조론의 퓨전화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범인이 타켓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자 떠벌이는 내용이지만 읽는 이의 눈과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네요. 만약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만한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고 논리가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보면 익숙함의 2% 부족은 어쩔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균열 없이 유지하기 위해 부모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마이크부부에게는 힘을 실어주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계획은 누구에게나 시작은 완벽했지만 우연이란 변화가 개입한다면 암초와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 위험을 바로 조정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렇다면 탄생이 축복 그 자체였을 부모님들의 환희와 이후 겪고 계신 조마조마한 줄타기를 우리는 똑바로 공감하며 컸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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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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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사회의 키워드들을 놓고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고령화 가족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사와무라 씨 가족"에게서 "미래의 우리 집인 것 같습니다."라는 카피문구가 눈에 들어온다면 일단 드는 생각은 "맞아, 우리 가족도 나중에 이랬으면 좋겠어.""고령화 가족이 주축이 된 고령화 사회는 무작정 두렵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양자택일의 반응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이 가족들을 만나봅시다. 아버지 사와무라 시로(70)는 회사원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했고 엄마 사와무라 노리에(69)는 요리가 특기에 최근 뜨개질을 하면 눈이 아프고 으깨지 않은 팥소를 좋아한답니다. 사와무라 히토미(40)은 회사원인데 현재 독신이며 살짝 억척스런 성격으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세 사람의 평균연령이 60세인 고령화 가족인 것이죠.

 

 

"히토미양"은 연세 많으신 엄마에게 어깨 잠깐만 주물러 달라고 하는데요. 엄마의 입장에선40살이나 먹은 딸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날이 오리라 상상도 못했겠죠. 반대로 손주의 안마를 받으셨어야할 연세이신데,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런 딸의 입장에선 꼬꼬마 시절을 기억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는

것처럼도 보여요. 어렸을 적 일일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소녀가 이제는 스스로 자기 앞

가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이란 걸 자각해야 한단 말이죠. 물론 날이 갈수록 연약해지

시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는 점도 잊진 않습니다.

 

 

찹쌀떡을 사면서 목에 걸려 체하시는 긴급 상황이 생길까봐 응급조치를 미리 검색하는 경우죠. "그 무렵에는 엄마가 건강했었지라고 지금을 떠올리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도 해보아요.부모님 생각은 또 어떠실까요? 아침부터 영정사진을 찍으려 하시는 아버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그 이름을 한번 불러 보고 싶지만 이젠 부를 수 없게 되자 어머니 스웨터를 들며 회한에 잠기시는 어머니 모습... 두 분 모습이 짠합니다.

 

 

또한 딸이 늙도록 시집도 안가고 있지만 크게 닦달하지 않으시지만 내심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 그렇지만 막상 시집 가버리면 허전해서 우실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지금 이대로 셋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동시에 있습니다. 그게 부모님의 마음 아닐까요? 저도 늦게 결혼할 때까지 부모님과의 동거기간이 길어서 세 사람 각자의 모습과 처지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네요. 공감이 많이 가더라구요.

 

 

"희한한 습성"편에서는 외출에서 돌아올 때, 가족 모두가 아주 잠깐 딴 데를 돌아보는 습성을 보여주는데요. 반려견이 죽은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습관처럼 개집이 있던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 모습도 나이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이별의 한 단면임을 잘 나타내네요.

 

 

제일 공감되는 대목은 "40대의 이별"입니다. 긴 머리, 민소매, 미니스커트를 더 이상 할 수 없어 이별하게 되는 나이대인 40!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해도 될 것 같은 어린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이별과 만남의 교차입니다.

 

 

돋보기, 주름살, 흰머리에서 출발하여 질병, 노화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물론 요즘은 70대가 경로당에서 담배심부름 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 로 다들 젊게 사시니까 얼마 전 모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실제나이보다 자신이 더 동안으로 보인다는 믿기지 않은 자신감을 보여주더라는 뉴스도 보았습니다만...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20대 중반의 여교사들을 떠올려보면 결혼도 안했는데 외모나 말투가 어찌나 아줌마스럽게 보이던지(또래 아이들은 다 아줌마 취급함) 지금 30대 여성들을 보면 그때의 20대 아가씨들보다 상대적으로 한참 어려보일 정도니까요. 이 점이 자신감으로 작용

하는지 히토미양처럼 독신으로 부모님과 동거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가 증가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만화는 결혼 안 하고 부모님과 계속 동거하는 것도 괜찮다는 점만 어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퇴직연금으로 근근이 살고 있기 때문에 차비가 덜 드는 장소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동창모임이나 딸이 엄마랑 집 리모델링을 논의할 때 고령자를 위해 문턱을 없애는 설계방식을 언급하는 자체가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가족들의 그늘을 고민스럽게 보여주는 겁니다.

 

 

때문에 이 만화가 마냥 재밌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팔팔한 청춘이어서 먼 미래의 뜬금없는 상황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40대에 이미 들어선 저의 입장에선 어둡고 무겁게 다가오는 만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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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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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윗과 골리앗은 성서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에 하나임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양치기 소년 다윗이 블레셋족의 거인인 골리앗에 당당히 맞서 돌팔매로 그를 한방에 때려잡았다는 이야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될 만큼 승부의 세계에서 약자의 통쾌한 승리로 비유될 정도 역사가 깊지요. 지금까지는 성서 속의 이야기니까 큰 의문 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던 게 사실입니다.

 

 

이쯤해서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져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만화가 나타났습니다. “골리앗2미터가 넘는 장신이란 것 외에 전투에서 그냥 적에게 말로 도발했다가 그깟 돌팔매 하나에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거죠. 이전 전투에서 수많은 아군들을 쓰러뜨려 공포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친 적도 없었던 거였고 최초의 도발이 허무하게 죽음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다윗은 용맹함이 부각되어 나중에 왕까지 되지만요.

 

 

여기에 영국작가 톰 골드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야기에 상상력을 불어 넣습니다. 골리앗은 부대 내에서 뒤에서 다섯 번째로 검술이 약한데다 키만 컸을 뿐, 행정병이라 단 한 번도 전투에 나선 적 없는 순둥이로 말이죠.

 

나는 가드의 골리앗이다.

블레셋인들의 전사다.

내 너희들에게 도전한다.

 

한 사람을 골라서

내게 그를 보내면

우리는 싸울 것이다.

그가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우리는 너희들의 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죽인다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과연 순전히 그의 의지에서 나온 발언이었을까요?

명령대로 읽었을 뿐인데....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이 남자는 어쩌면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냥 서 있었는데 갑자기 돌멩이가 날아와 쓰러졌다면 무모한 심리전에 말려든 가련한 병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이 상상력 앞에 결말은 참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만 남깁니다. 다 아는 사실이니 스포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예상하고 있던 전개 앞에서도 이 청년은 밟히고 또 밟혔어요. 꽃보다 아름답고 순순했던 골리앗이 덩치 값 못한 패배자의 낙인으로 찍혀 있을 때 그 누구도 그 외로운 넋을 어루만져 달래주는 일에 인색했습니다.

 

 

그 점이 안타까웠던지 작가는 우울한 갈색 톤의 배경과 귀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강렬한 한방 그리고 묵직한 여운과 슬픔을 전해주면서 영국식 스타일이란 이렇다는 점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때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도 말 못할 아픔과 반전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면서요. 이것이 픽션임을 감안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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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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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부터가 어떤 선입견을 심어줄 여지가 농후하기 때문에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할 때가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이 어느 종교를 가리킬 때, 그 종교적 색채에 따라 선택의 폭이 달라질 테죠. 특정종교에 심취해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신자유무를 떠나 를 가장 먼저 앞장세우고 있다 판단은 좀 달라지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다 읽고 났을 때 마지막으로 곁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소설에 치중된 독서지만 학창시절 어설프게나마 시집을 즐겨 읽었던 적도 있었는데 서점에 가면 적은 분량의 시집은 항상 휴대하기 편했고 를 읽는다는 행위자체에서 마치 나 자신이 인텔리가 된 것 같은 착각도 좀 했었지 않나 싶군요. 그렇다면 이 시집을 넓게 보자면 기독교적 색채를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정서적으로 공감될만한 따뜻한 작품들이 30여 편 이상 실려 있다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그 들에 대한 고진하님의 에세이 형태의 해설도 음미하기에 참 좋은데다 누군가의 낭송으로 눈 감아 상상의 나래, 맘껏 펼쳐보고 싶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 동서양의 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으로는 김지하님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손꼽아 봅니다.

 

 

(중략)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녁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내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끝에서 문간까지

마음에 능라 비단도

널찍이 펼치소서

 

 

세상만물.. 심지어 미물에게까지 이라는 존칭으로 깍듯이 받들어 모시며 무한대의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귀천을 따지지 않는 넉넉한 마음씨로 손님을 맞으라고 합니다. 누구든 귀하신 몸, 따뜻한 밥 한술 드시고 가실 수 있게 마음의 비단을 미리 깔아 두었으니 걱정 마시라며 다독이는 듯하지 않나요? 흐르는 강물에 내 몸을 맡겨서 오욕칠정에 찌든 육신을 먼저 정화 하는 일부터 준비해야만 합니다. “김지하님은 그렇게 무심했던 주위를 둘러보아 우리 자신과 만나고 가까워지는 일 또한 소중한 힘이라는 메시지도 잊지않아요. 그래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도 영롱하고 상큼한 였습니다.

 

 

 

이쯤해서 문득 생각나는 만화가 있습니다. 중학생일 때 어느 여성지에서 우연히 본 4컷 만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줄거리는 대충 이래요. 어느 올드미스가 오빠, 제발 나 시집좀 보내줘.”라며 시정하자 오빠는 쿨하게 그래.”라고 답했습니다. 며칠 후 우체부 아저씨가 찾아와 소포를 그녀에게 전해줍니다. 개봉해 보았더니 시집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일그러진 올드미스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나는데 언어유희 식 개그코드와 잘 맞았던지 박장대소했었지요. 여기에 영향을 받은 저는 아직도 남아 버티고 선 주위 올드미스님들께 책임지고 시집보내드릴게요.”라고 해놓고 이 시집을 택배로 부쳐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합니다. 읽으면 가고 싶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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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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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아슬아슬한 인생,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을 택한 인생" <515>

 

 

러시아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삶을 전기형식으로 써내려간 엠마뉘엘 카레르<리모노프>는 듣던 대로 문학적 다큐멘터리라 일컬을만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80년대 초반 그를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당시 리모노프<러시아 시인은 덩치 큰 깜둥이를 좋아해>라는 거칠고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로 성공이란 열매를 맛보던 시절이었다는군요.

 

 

 1942년 소련 스탈린 정권시절 비밀정보기관 요원의 아들로 태어난 리모노프는 길바닥에서 뒹굴면서 난잡한 섹스와 무차별적 폭음, 싸움과 절도 등 어느 것 하나 얌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질풍노도의 청춘기를 보냈습니다. 경찰서도 밥 먹듯이 들락날락 하던 그에게서 흡사 분노조절 장애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그는 거칠 것 없이 터지던 활화산이자 용기백배한 성품에 불도저 같은 추진력까지 겸비한 거대한 산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장대하고 파란만장한 삶이란 이런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스크바와 뉴욕, 파리 등을 거치며 전위문학가로서의 독특한 길을 걸었던 작가이기도 하죠. 세르비아에서는 내전에 참전해 악명을 떨치기도 하다가 귀국해서는 민족볼세비키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던 것입니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히 정의내리 힘든 리모노프의 행보는 이윽고 지저분한 외모에(특히 트레이드마크 같은 턱수염) 록 그룹의 리더보컬이거나 종교지도자 같은 마력으로 대중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 선동정치 공작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힘으로 세상에 깡으로 맞서겠노라 다짐했던 그입니다.

    

 

하지만 마냥 순탄했던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정치탄압인지는 몰라도 무기 밀매와 카자흐스탄 쿠데타기도 등의 명목으로 체포, 구금되어 감방생활도 좀 합니다. 현재는 푸틴에 맞서는 야권 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습니까? 글재주가 없어 이 정도밖에 설명할 순 없는 점이 안타까울 정도로 상 남자의 표상인 것 같아요.

 

 

대화체라고는 사실상 찾아볼 길 없는 건조한 문체를 통하여 작가가 이 남자에 대하여 말하려했던 의도나 태도라고 할까, 일단 매력을 거부하지 않은 채 인생 그대로의 위험을 날 것대로 연대기적 서술을 하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한 인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려 애쓰는 게 보입니다. 일단 만나보면 알 것이다, 인생역정을 느긋하게 따라가다 보면 관점이라는 녀석은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담담하지만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슬아슬한 모험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님 사악한 악당으로 변모시켰을까요? 전 아직도 그를 판단할 능력을 회복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과연 그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 러시아적 남자, 러시아적 삶이 궁금하시다면 기꺼이 책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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