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초 사고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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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결정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문구가 생각나는 <0초 사고>. 늘 조급한데 결정은 그때마다 늦어서 우물쭈물하다보면 일이 적시에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서 중요한 타이밍을 놓쳐 낭패 본 사례가 부지기수라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그래서 이 책 제목에서 해답을 얻고 싶었다. 도대체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망설이는 시간 0, 고민하는 시간 0. 놀라운 속도로 의사를 결정하고, 전광석화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결말을 바로 0초 사고라고 정의하고 있다. 0초 사고를 실행하기 위한 첫 단계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나 감각을 말로 바꿔보기를 권장하는데 모호하면서 금세 잊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말로 바꿔보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말 것. 다음 단계는 메모해보는 것이다. 그 판단은 사실 쉽지 않다. 이런 말까지 써보아야 하냐며 자체검열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금방 익숙해지면서 아무래도 불가능할거야. 건의해 보나마나야 라는 불안한 감정이 샘솟는 단계도 잠시,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넘어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점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 메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정말 유용한 팁이다. 메모할 때는 A4용지를 가로에 두고 왼쪽 위에 제목을, 1페이지에 4~6행만(각 행 20~30), 1페이지를 1분 안에 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위해 친찬과 노고치하, 조언을 안배해 쓰고 잘 안 돼도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메모를 계속 쓰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고 하니 메모 맹신론을 넘어 정리를 체계화해서 능력을 최고조로 극대화 시키는데 이만큼 효율적인 실천방법은 드물겠단 생각이 든다. 또한 노트나 일기, 워드면 안 되는 상세한 이유와 메모 쓰기에 적합한 펜으로 <직액식 수성 볼펜>을 추천할 정도로 메모를 위한 모든 정보가 망라되어 있어 차분하게 읽어가면서 실천한다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에 시간낭비를 줄일 0초 사고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이 한국의 LG그룹에서 경영혁신 프로젝트팀에서 근무했다는 저자의 이력에 덧붙여 누구나 초고속 사고개조가 가능하다는 호언장담이 결코 허술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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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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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목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인의 말이라는 구절이 눈길을 확 잡아 이끈다.

누구라도 무심히 지나쳐버리기 힘들 것 같은 의미심장한 말들.... 그것은 이러하다.

 

 

우리는 배고플 때

밥을 먹지 밥그릇을 먹는 게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을 먹고 있다.

시는 밥이지 밥그릇이 아니다.

결국은 인간이라는 밥

고통이라는 밥

 

 

시는 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를 읽을 때는 그 내용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단순히 문자의 나열에서 느껴지는 운율에 만족하고 만 채 서둘러 감정을 회수해버린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정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얇은 분량에다 소설이라는 형식에 평소 익숙해있었던지라 어쩌면 가볍게 페이지를 넘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사전에 단속하게 된 각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읽어본다.

 

 

! 5부로 나누어진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 <수선화에게>에서 역시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동명 타이틀인 <수선화에게>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이 시선집의 시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서랄까, 핵심은 사랑과 그리움이 아닐까하는데 특히 <수선화에게>는 반복적으로 읽을 때마다 느낌이 각각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잔잔하다. 튀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내리누르는 것 같았는데 다시 읽으면 이번에는 뭔가 빈구석을 찌르고 들어오네. 울지 말라? 그 말에 오히려 울음이 나오게 될지도.. 이것은 위로를 전하는 메시지 같지만 오히려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 더 외롭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외로움과 그리움이 범벅되어 보고 싶은 마음을 저 멀리 우편으로 부치고 싶어졌나 보다.

 

 

몇 번을 읽고 마음이 심란해서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동안에 결국은 나만 외로운 게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을 단계인가 했다.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라는 시인의 메시지에 내내 울렁거렸던 심정을 침착하게 다잡아 주어 생각의 관점을 달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머지 시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절절해서 흡사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을로 역행하고 있지나 않는 지 착각할 정도여서 각각의 시들을 밥처럼 꼭꼭 씹어 먹게 된다. 정호승 시인과는 처음 만나지만 이런 시선들이라면 때때로 브레이크 타임을 건다는 의미에서 자주 활자로 만나보고 싶구나. 울컥한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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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다이어리
에마 치체스터 클락 지음, 이정지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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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반려동물을 직접 키우는 세대가 많거니와 TV, 소설, 에세이, 만화 등의 형식으로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대세 중의 대세이기도 한 것이 반려동물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대가족에서 핵가족, 특히 1인가구나 아이가 없는 가구로 확정짓게 되면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결핍된 정서를 보완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비채에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가 작년에 출간되더니 이번 타임은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림일기 형태의 책이 나왔다.

 

 

이 책 <플럼 다이어리>는 작가의 반려견인플럼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개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에 무지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후셀이라는 견종이라고 한다. 잭러셀과 푸들이 섞인 휘핏의 잡종. 이 정도로 혈통검증은 마치고 수영, 제자리높이뛰기, 잡기놀이, 크루아상, 여우 똥냄새를 좋아한다는 취향도 알고 넘어가자. 에마&루퍼트 부부가플럼을 키우는 중이며 아내인에마 블로그에 공개한 <플럼 다이어리>는 사람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플럼의 시점에서 동료 개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및 일상이 그려지고 있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플럼은 뻔뻔하게도(?) 자신이 일기를 썼고 그림에 대해서만에마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며 당당히 주장하고 있어 시작부터 웃고 들어가 버렸다.“플럼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으로 정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기꺼이 그들의 취향과 의도에 맞춰줄 수 있는 영민함을 가지고 있기에 개구쟁이긴 하지만 까탈스럽지 않아서 맘에 든다. 가끔씩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은 아닌지 살짝 불만을 표시할 뿐.

 

 

녀석은 주인님의 애정공세와 꾸준한 관심 속에서 무척 행복해 보인다. 미용실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로는 사람들의 주목에 우쭐해하며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낯선 개에게 물렸다가도 여전히 잘 먹고 잘 노는플럼이 걱정되어 큰 개가 접근하면 과잉방어를 하는 에마모습은 아이를 키우는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그렇게 1월부터 12월까지의 독백에서 책 뒷면 추천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개를 사랑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정말 매력적인데다 사랑스런플럼때문에 유쾌 발랄함은 물론, 맘이 짠해지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문득 어릴 적 키웠던 강아지가 생각난다. 이름이몽실이였는데 미모가 상당해서 주위의 인기가 많았던... 하지만 더 이상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엄마 친구 분에게 입양을 보낸 적이 있었다. 종이 백에 얌전히 들어가서 그렇게 새 가정으로 따라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탈출을 감행해 집으로 뛰어 들어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간신히 구석에 숨어 있는 녀석을 끄집어냈더니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걸 보고서는 가슴이 철렁했었다.

 

 

, 우리 가족들이 너무 무심했구나. 이렇게 쉽게 보내는 게 아닌데... 그렇게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동안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뒤로는 책임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다시는 개를 키우는 일이 없게 되었지만 플럼을 보면서몽실이와의 추억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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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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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는 동명소설로서 3번째, 요코야마 히데오님의 소설로서 역시 3번째에 해당하는 33소설이 되겠습니다. 밟고 밟히는 약육강식의 조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가 모토였던 경찰소설을 그동안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반대편 세계에 서 있는 도둑이라는 범죄자의 입장에서 범죄의 이면을 들여 다 본다 정도로 정리해보렵니다.

 

​​

 

주인공 미카베 슈이치노비카베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밤도둑님인데 밤일을 하던 중에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생활을 하다 2년 만에 출소한 남자입니다프로페셔널 기술을 자랑하지만 34세로 아직 젊은 친구임을 감안하면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미카베는 이미 이 계통에서 상당한 연륜이 쌓인 노회한 고수인 것 같다는 착각에 내내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도 중늙은이 포스가 물씬한 미카베의 나이를 때때로 상기시켜 주는 사람이 둘 있어요. 쌍둥이 동생인 게이지와 어릴 적 친구이자 연정을 품고 있는 히사코양입니다.

 

   

 

동생은 가족 내의 불행한 사고로 죽었지만 끝내 떨쳐내지 못한 미카베의 미련인지 형의 마음속에서 동거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각 단편별 미스터리를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동업자 관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마치 텐도 아라타<애도하는 사람>에서 시즈토의 주변을 맴돌던 그 넋을 연상시키기에 사념(思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래서 그림자밟기인지도 모르겠군요.   

 

 

더불어 잊지 못할, 잊고 싶지 않은 그녀히사코미카베와의 정 때문에 시집도 안간 채 자신을 품에 안아주기만을 바라는 동안 그녀를 동시에 마음에 두었던 형과 동생의 우유부단함이랄까, 양보 같지 않은 상황이 생기는 것 자체가 답답하면서 안타까웠어요. 동생의 조언대로 새 출발해서 행복한 보금자리라도 꾸렸으면 바랄 게 없는데 미카베의 고집도 대단한 편입니다.

 

   

 

그 고집과 배짱이 만나서 놀라게 하는 점이 있다면 미카베가 어떤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안면 있는 형사와 대면한다는 겁니다. 이 연작소설이 비록 영화 <도둑들>처럼 거액의 일확천금을 노린 한탕 신이 없지만 대신 그 소소해 보일지도 모를 사건들에 개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잠입기술을 써먹어야 한다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실적건수 올리기 위해 전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그 살벌한 현장 한가운데 버젓이 나타나 딜을 해서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장면들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등골을 싸하게 만들지요. 보통은 형사가 전과자를 겁박해 정보를 얻는데 이건 반대로 전과자가 형사에게... 이런 식이라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못 본 설정이어서 다른 그 어떤 내용들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고 덕택에 순간 몰입도가 최대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나있는데 손에 찔릴까 긴장하며 다루는 기분이란 것이겠죠.

 

 

 

당연히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솜씨는 상당히 재치 있습니다. 그 과정과 결말은 언뜻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순간순간 미묘하면서 사건해결의 쾌감과 함께 인간냄새가 감동과 진한 여운을 향수처럼 뿌리고 지나갑니다. 더 이상 경찰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은 작품을 계속 써내려 갈 필력이요코야마 히데오에게는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마음 훔칠 줄 아는 당신이 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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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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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代(삼대)

정말 한번쯤은 반드시 읽고 싶었던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가 이번에 합본 소장판으로 출간되는 바람에 드디어 그 명성을 확인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이 되지만 도약을 꿈꾸던 일본의 1948년부터 2007년까지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손자까지 3대로 이어지는 경찰집안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총 3부작으로 그려지는 대하드라마입니다.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안조 세이시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순사에 지원하여 경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소에서 만난 동기생 가토리 모이치”, “구보타 가쓰토시”, “하야세 유조와 함께 훈련을 마친 그들은 각자의 포부를 가진 채 근무지로 배속 받아 흩어집니다. 이후 틈틈이 셋이 여건이 될 때 마다 만나 회포를 푸는 식이었죠.

 

 

세이시는 우에노 경찰서 인근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는데 관할 내에 있는 공원에서 평소 안면이 있던 청년 미도리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 청년은 남창이었어요. 종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길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던 공원이었으며, 그중에는 남창무리도 섞여있었지요. 그 와중에 우연히 미도리를 찾던 경찰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어딘가 미심쩍다는 의심을 하게 되는 세이시.”

 

 

5년 후에는 철도원 직원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흐지부지 되어 미결사건으로 잊혀가는 두 사건의 연관성을 찾으려했지만 세이시는 성과를 못 내고 경시청 주재 덴노지주재소 경관으로 배속 받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난 화재 속에서 세이시는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는데요, 그를 경찰에서 자살로 처리하면서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은 다미오도 뒤를 이어 경찰이 됩니다. 아버지의 동기들이자 삼촌들인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찰대학에 진학하려 했다가 경시청 소속의 누군가로부터의 제안을 수락하여 훗카이도 대학에 진학, 공안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혁혁한 전공을 올리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아내를 폭행하기까지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서 아버지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선 그 진실을 조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처럼 덴노지주재소로 배속 받는데 인질극에 뛰어들다 그만 순직하고 맙니다.

 

 

할아버지는 자살, 아버지는 순직... 참으로 남자들의 운명이 거짓말처럼 기구하네요. 할머니와 엄마는 줄줄이 미망인이 되어버렸으니 손주 가즈야마저 설마 같은 길을 걷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가즈야는 생전에 아버지가 엄마를 폭행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경멸과 애증 정도가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3대를 모두 경찰관이라는 직업으로 엮어버렸으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캐내고 싶다는 본능이 자리하게 되는군요. 같은 길을 걷는 가즈야”.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특정인물은 누구이며 현재 맡게 된 임무와 어떻게 조율하여 해결해 나갈까요?

 

 

경찰이란 조직은 시대에 따라 그 역할과 임무가 다르게 가중치가 부여되며 직업관도 근무여건도 달라졌습니다. 조직 안과 밖 모두에서 일등이 되어야했던 이들 삼부자의 모습에서 범인을 쫓아 범죄를 해결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이었기에 피가 흐르는 인간 그 자체로 대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백점짜리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고 하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마저 잘라낼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대의 진실을 밝혀내는 3대째의 승리에 묵직한 감동이 전해와요. 더불어 아들에게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버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어느 아버지나 마찬가지일터, 그 기나긴 터널 밖으로 빠져 나오기까지의 강한 생존력을 장대하면서 유려하게 써내려간 필력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경찰소설의 또 다른 최고봉이 여기에 있음을 무력시위하는 것 같은 걸작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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