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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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목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인의 말이라는 구절이 눈길을 확 잡아 이끈다.

누구라도 무심히 지나쳐버리기 힘들 것 같은 의미심장한 말들.... 그것은 이러하다.

 

 

우리는 배고플 때

밥을 먹지 밥그릇을 먹는 게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을 먹고 있다.

시는 밥이지 밥그릇이 아니다.

결국은 인간이라는 밥

고통이라는 밥

 

 

시는 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를 읽을 때는 그 내용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단순히 문자의 나열에서 느껴지는 운율에 만족하고 만 채 서둘러 감정을 회수해버린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정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얇은 분량에다 소설이라는 형식에 평소 익숙해있었던지라 어쩌면 가볍게 페이지를 넘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사전에 단속하게 된 각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읽어본다.

 

 

! 5부로 나누어진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 <수선화에게>에서 역시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동명 타이틀인 <수선화에게>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이 시선집의 시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서랄까, 핵심은 사랑과 그리움이 아닐까하는데 특히 <수선화에게>는 반복적으로 읽을 때마다 느낌이 각각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잔잔하다. 튀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내리누르는 것 같았는데 다시 읽으면 이번에는 뭔가 빈구석을 찌르고 들어오네. 울지 말라? 그 말에 오히려 울음이 나오게 될지도.. 이것은 위로를 전하는 메시지 같지만 오히려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 더 외롭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외로움과 그리움이 범벅되어 보고 싶은 마음을 저 멀리 우편으로 부치고 싶어졌나 보다.

 

 

몇 번을 읽고 마음이 심란해서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동안에 결국은 나만 외로운 게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을 단계인가 했다.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라는 시인의 메시지에 내내 울렁거렸던 심정을 침착하게 다잡아 주어 생각의 관점을 달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머지 시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절절해서 흡사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을로 역행하고 있지나 않는 지 착각할 정도여서 각각의 시들을 밥처럼 꼭꼭 씹어 먹게 된다. 정호승 시인과는 처음 만나지만 이런 시선들이라면 때때로 브레이크 타임을 건다는 의미에서 자주 활자로 만나보고 싶구나. 울컥한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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