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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사랑하는 방법
헤일리 태너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책표지를 세워서 보는 것 보다 비스듬히 눕혀보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쁜지...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이 감정에 푹 빠지게 만드는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바츨라프라는 소년과 레나라는 소녀이다. 바츨라프의 엄마는 아들이 그놈의 마술, 마술을 제발 그만 두었으면 하지만 아들이 길거리에서 풋내기 마술로 행인들로부터 망신과 조롱을 당할까 염려하는 노파심을 숨기지 못한다. 바츨라프의 부모님들은 러시아 이민세대로서 미국사회의 풍요를 동경해 미국으로 건너와 자식만큼은 당당한 미국인으로 뿌리내리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의 향상을 최우선의 가치로 아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하는데 자식교육이 어디 부모 맘대로 된다던가?
억척부모의 역할은 일단 엄마 라시아가 맡았다. 솔직히 아버지 올레크는 러시아에서 이미 실업자 신세에다 보드카에 쩔어있는 남자였으니 라시아만 미국으로 뜨기만 하면 남편도 아들도 분명히 지금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믿음을 걸 뿐이다. 아!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영어 배우라고 영어 위인집을 사줬더니 바츨라프는 그만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마법 같은 기술에 홀짝 반해 버렸던 것. 그때부터 소년의 꿈은 세계적인 마술사가 되었다.
원래 마술사에게는 마술진행을 돕는 조수가 있게 마련인데 그가 바로 레나. 그녀 역시 러시아 이민 2세대. 아참 그러고 보니 소년과 소녀의 나이를 공개하지 않았어. 바츨로프는 10살, 레나는 9살 11개월. 소년은 자기가 오빠라고 우기고 소녀는 이를 인정 못하겠다며 바락바락 버티는 가운데서도 남매 아닌 남매같이 자란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어른들의 손때 묻은 사랑과 견준다면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그 연결 고리만으로도 눈이 충분히 부시다. 비단 금빛 비키니를 입고 마술사의 조수가 되겠다는 소녀의 꿈이 아니어도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이다. 소년 또한 소녀가 아무리 화내고 짜증내어도 오직 기분을 풀어주겠다는 염원으로 바보같이 싱글거릴 줄 아는 넉넉함을 지녔다.
또한 소녀가 살아왔던 9살 11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면 소년과의 사랑은 운명적일 수밖에 없음을 안다. 할머니랑 살던 레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모 집에 얹혀살게 되지만 이모는 소녀를 그리 잘 돌보지 않았던 결과 소년의 집에서 함께 산 것이었으니 우연은 아닌 셈이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역시 라시아이다. 친딸도 아닌 소녀를 데려다 입혀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동안 친엄마 못지않은 관심을 소녀에게 주었다는 점이다.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때론 더 클 수도 있다는 사실에 희망과 안도를 주다가도 아들과 소녀와의 관계가 혹시라도 이상한 쪽으로 변하지 않을까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매일 밤 소녀에게 들려주던 동화 중 한 소년이 공주를 99일 기다렸지만 끝내 얼굴을 내 비치지 않자 상심하며 돌아선다는 스토리는 아들에게 향하는 메시지일수도 소녀에게 향하는 메시지일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의 풋풋한 설렘은 영원하기 힘들 거라는 어른만의 판단이 들었을 게다.
그래서 마지막의 선택 그리고 결말은 누가 뭐래도 지지하게 만드는 요술봉이다. 삶이란 경로는 어차피 무수한 수정과 오류를 번복한 끝에 그나마 괜찮다고 하는 지점에 안착하게 마련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년이 소녀를 사랑하는 방법, 소녀가 소년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두근두근 심쿵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소녀들과 사랑을 나누고 은 마음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서문 말이다. 작가약력에서 암으로 투병 중인 연인과 결혼해 6년간 투병생활을 함께한 끝에 저 세상을 보낸 감동실화가 짤막히 실려 있어 눈물샘을 자아내더니 결국 나를 울리는 문구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손수건이 살짝 필요했다. 감성 돋는다. 돋아.
나의 공범, 사랑스러운 조수, 동료, 최고의 남편인 개빈.
당신은 여전히 내 삶에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매일의 일상을 경이와 기쁨과 가능성으로 채워주는 당신.
당신은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 함께했고,
이제는 저 넓고 광대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겠지요. 전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