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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제목을 보는 순간 기묘한 뉘앙스가 전달되는 <검찰 측 죄인>이겠다. <범인에게 고한다>로 시즈쿠이 슈스케란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이 책으로 작가랑 첫 대면 하게 되었는데 제목부터 시계, 칼, 총 그리고 재판봉이 그려진 표지까지 많은 은유적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경찰이 아닌 검찰을 다룬 소설도 흔하지 않거니와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서 죄인을 잡아 넣어야할 쪽이 오히려 죄인이라면 분명 이보다 더한 모순은 없을 것이다.
시작은 온전하고 또한 든든하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아직 때묻지 않은 햇병아리들이 세상의 불의에 어떻게 맞서 싸울지에 은근 기대를 걸어보게 되니까. 검찰 교관이자 검사인 모가미의 검찰지론도 지극히 당연해보였으니 악을 심판하는 방식에 있어서 신입검사 오키노와의 호흡도 괜찮아보였다. 이대로 정의라는 검을 들어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면 간단한 일 아닌가? 그렇다면 가르치는 자와 그를 따르려는 후배 이야기는 어느 조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미담정도로 보인다.
그런 모가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최근 노부부 살인사건 용의자 목록에 과거 대학시절 기숙자 관리인의 딸 유키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마스쿠라가 올라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소시효가 끝나버린 사건의 범인에 대한 단죄를 준비한다. 처음엔 현재사건의 범인이길 바라는 심정이었으나 유력한 용의자가 따로 있단 수사정황에 고민하다 마스쿠라를 범인으로 조작하려는 모가미의 공작에 맞서 의혹을 느낀 오키노가 검사직을 사퇴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에 맞서기 시작하게 된다.
한배를 타면서 악이라는 거센 격랑을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가 되었어야할 선후배 관계가 등을 돌리는 악연 아닌 악연이 되는 순간 비로소 정의라는 검은 사용자에 따라 누구를 베어버릴지 용도의 운명이 엇갈린다. 그대로 정의냐 아니면 폭주하는 흉기냐. 법이 정한 울타리를 월담하느냐 아니면 지킬 것인가?
“개인적인 이상을 사회에까지 강요하다니 건방지기는. 정의란 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아. 오키노 네가 범죄자 하나에게 콩밥을 먹이는 순간 정의는 오히려 무너져. 왜냐하면 같은 짓을 하고도 우연히 들통 나지 않아서 콩밥을 먹지 않는 녀석이 있거든. 그리하여 불평등이 발생하고 세상에 불만이 팽배하지. 경찰관과 검사의 수를 두 배로 늘려도 해결이 안 돼. 그게 법 아래의 현실이라고. 검사 짓을 4년이나 했으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위의 대화에 이 소설이 지향하는 핵심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솔직히 개인적인 이상 실현을 위해 초법행위를 저지르는 모가미에게 온전히 감정이입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가엾긴 하지만 유키가 가족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나서야하나 싶기도 하고(유키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던 절절함이 부각되었더라면 모를까, 결코 심정적으로 동조할 일이 없다.) 악을 응징하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실현한다는 방식 또한 수용하기란 곤란하다. 그리고 오키노가 모가미의 조작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결정적인 단서가 드러나는 과정들은 상당히 운에 의지하는 편이라 긴장감은 떨어진다.
결국은 미스터리로서의 매력대신에 법과 정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심판과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심리적인 대목에서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열 명 중 네 명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대 놓고 탈법을 조장하는 결과라기보다 죄를 지은 자에게 정의란 시스템이 올바르게 집행되지 않는데서 나오는 상실감, 불만 같은 의식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온전히 동의하지는 못했지만 끝내 손가락질 할 수 없었던 모가미에 대한 오키노의 마지막 회한은 뜨겁다 못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격정적인 엔딩이었다. 세상은 불공정하다고. 그 놈 어휴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