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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내일은 없다. 오늘에 충실하자라는 모토로 한번 즈음 받아들여도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 자고 일어나 보면 세상이 바뀌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늘 하는 동안 몸은 피곤에서 쉬이 탈출하지 못한다. 그러면 책도 좀 설렁설렁 읽어보지 뭐. 그렇게 만난 이 책에는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한량들이다. 아니 사기꾼들이다.
주거부정에 막 떠돌아다니면서 교묘하게 차량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돈이나 뜯어내는 적당 대충 밑바닥 인간들인데 그동안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었다. 어찌 보면 즐겁고 평온한 나날들을 유유자적하며 보냈다고도 하겠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제 갈 길 가겠다고 독자노선을 선포하지 않는가?
이쯤하면 그래 너 잘났다. 갈 테면 가거라, 주저 말고 가라, 말리지 않겠다고 놓아주었으면 끝날 일에 미조구치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무작위로 휴대폰 문자를 살포해 같이 드라이빙할 사람을 구한다고 해보라는 것.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걸려들 바보들이 있을까 싶지마는 뜻밖에도 바람난 가장으로 인해 이혼 모드로 돌입한 어느 가족이 이에 응하게 되면서 작은 여행(?)을 함께 한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뒤이어 요절복통할 에피소드들이 꼬리에 꼬릴 문다.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역시 아버지에게 매 맞는 아이를 돕기 위해 시간여행을 시도한 점.
시간여행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두고 노인과 젊은이 간에 펼치는 과학탐구 토론은 이해여부를 떠나 순간 홀리게 만든다. 마치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 도입부에서 괴이한 창조론으로 최면을 걸어오던 그 느낌과 맞먹었다. 묘하면서 기분 좋은... 그러다 쇼 타임이 벌어지면서 인간의 습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노리고 들어간, 그것도 자존감이 강한 사람에게 연극을 방불케 하는 그 속임수야말로 왕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시적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도 인정하게 만들 이야긴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삶에 개입한 미조구치와 오카다 콤비를 보며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는 것은 약간의 터닝 포인트만 짚어줘도 상전벽해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큰 걸 기대하기 전에 정말 기회를 한번만이라도 줘보면 어떨까? 그 기회를 눈치 채지 못한다면 지 복은 거기서 끝나겠지만 동아줄처럼 잡고 올라가는 이도 혹시나 있지 않을까? 이 만담콤비의 좌충우돌 소동은 실소에다 적당한 퍼즐로 꼬아놓고 그걸 푸는 재미, 약간의 반전 등으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준다. 비록 그것이 거대하지 않을지라도 주말 정도에 여유를 갖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 휴가 같으면 말이다. 죽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