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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심판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8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죽은 자의 심판>을 읽기 전 작가와 작품에 관한 주요 키워드 2가지!
롱폴(ROMPOL) : RomanPolicier의 줄임말. 프레드 바르가스가 소설을 쓸 때 제목을 정하지 않고 먼저 집필에 들어가는 방식에서 비롯된 작가만의 용어였다. 경찰소설 혹은 추리소설을 뜻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바르가스의 추리 소설'이란 의미이자 작가의 애칭으로 굳어졌다.
라고 한다. 제목을 나중에 정하는 방식을 바르가스만의 전매특허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긴 하나 최후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자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인정받았다면 비슷한 방식을 고수하는 타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지지와 인정을 제대로 받았다고 해야겠지.
성난 군대 : 1777년의 중세 유령부대가 그곳에 출몰해 사기꾼, 착취자, 부패한 판검사, 살인자 등 죄 짓고도 벌 받지 않은 자들을 처단한다는 전설인지 모를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프랑스 추리문학의 여제라고 불리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대표적 시리즈 ‘아담스베르그’의 최신작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건은 아주 사소해 보인다.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해온 노부부 중 할머니가 급사한 사건에 출동한 아담스베르그는 강력계 서장의 배지가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연쇄살인마 사건도 아닌, 말 그대로 식빵속살 살인이라니. 어디서도 보고 듣지 못했던 창의적인 수법에 희한하다 싶기도 하지만 부하 직원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수사에 나서서. 뭔가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긴다. 말단 같으면서도 실제는 아닌.
분명 파리강력계가 맞는데 말이다. 손녀가 증조부의 머리를 음료수병으로 때리고 도망갔다는 이 황당하고 귀여운 사건이 있는가하면 별의별 사건들을 일일이 관여해야만 하는 상황인가보다. 오지랖이 넓은 건지, 인력부족 탓인지, 유머를 지향하는 것인지 아리송해하면서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을 때 한 노부인이 아담스베르그와 만나겠다고 서성인다.
이 노부인은 자신의 딸이 성난 군대라는 조직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 군대를 보고나서 평소 마을에서 못된 짓을 해서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한 남자가 실종되었다고.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려하지만 그 성난 군대는 아주 오래 전 법이 처벌하지 못했던, 그러니까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 했던 범죄자들을 살인예고 방식으로 처단했다는 유령조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사건의 주 무대가 될 그 곳으로 가봐야겠지. 그런데 예고대로 실제로 시체가 발생하면서 실체도 없는 살인부대를 밝혀 더 이상의 범행을 막아야만 한다. 사법권의 자의적 해석과 집행은 법치국가에서 허용될 수 없는데다 희생자들의 연관성면에 있어서나 진짜 살인동기까지 어딘가 미심쩍은 면이 보인다. 당시에는 부당한 판결도 중죄였다고도 하니 억울함을 풀어버리려는 살풀이의 일종인지 또 알 길이 없다.
결국 보이지 않은 존재, 유령과의 사투이다. 어떠한 단서나 일체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이들 심판자를 소재로 차용한 작가가 면밀히 실체에 접근해나가도록 독자를 몰아넣는 솜씨에서 첫 대면치고는 만만치 않은 내공이 드러난다. 함께 살고 있는 아들을 비롯해서 저마다 다양한 끼를 자랑하는 동료형사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때론 즐거운 에피소드를, 나중에 불붙은 가속도로 사건을 마주함으로서 전설과 현실의 조우를 절묘하게 잘 엮는다.
이야기의 밀도는 촘촘하고 능수능란하게 치고 빠지는 서스펜스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범죄소설의 새로운 이정표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까? 그 뼈대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