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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사랑에도 때가 있는 법, 김중혁 작가의 첫 번째 연애소설 단편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관통하는 단어는 무조건 시간이렷다. 신호를 보냈지만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우물쭈물하는 이 남자들의 모습에서 찍는다는 건 어떤 순간이며 용기일까 싶었다. 나라고 다를까? 우선 “상황과 비율”은 포르노가 상업영화마냥 떳떳한 상품이 되어버린, 치열한 현장을 누비는 이야기다.
차양준이 하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상황을 상상하고 필름으로 옮기는 것, 조정자의 역할, 상황과 00과 00의 비율을 맞추는 작업은 예술적 사명과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궁극이겠다. 촬영을 펑크 내고 잠적한 여배우를 만나 통계청 자료 읊듯 진기한 순위를 줄줄이 나열하며 복귀하라 설득하는 대목은 깊고 풍부하다.
그렇게 살과 살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현장에서 곁에만 있어달라는 그녀가 보내는 눈빛과 리듬이 탁구공처럼 움직일 때 진정 이해되고 공감이 된다. 시작은 야했으나 끝은 눈부시리라. 가슴이 뛰고 아련하며 뭔가 짓눌렀다가 잠시 진정이 되고 다시 황홀해지는 아름다운 단편이었다. 단 이 상황을 김기덕 감독 식 영화처럼 해석하고 받아들이면서 불편해하는 시선도 분명 존재할거야. 하지만 이런 상상을 글로 쓸 수 있는 이도 김중혁 작가 말고는 찾기 힘들지 않을까? 눈에 힘주어 읽어보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마지막 자락에 자리 잡은 단편 “요요”는 또 어떠한가? “요요”는 무심코 시계를 해체했다 조립했다하다가 어느 순간 시계 장인이 되어버린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그에게도 마법 같은 나날들이 펼쳐진다. 우연히 코앞까지 찾아온 사랑.. 그에게는 그녀가 항상 붙어 다녔었다. 청춘의 특권이자 권리인 사랑에 취해 있을 때 시간은 생뚱맞게 둘을 갈라놓아 버렸는데... 그러다 소식을 알길 없이 떠나버렸던 그녀와 35년 만에 재회한 것.
시계 속 시침과 분침을 떠올려보자.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이 분명 온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만나려고 다가오는 걸까? 시간은 유한하지도, 그렇게 한자리에 머물러있지도 않고 반복이나 회전 대신 다시는 못 볼 것처럼 그냥 흘러갈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생각해버렸는데 제목이 “요요”를 가리키는 이유가 다 있었나봐. 예고 없는 귀환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반복을 보여주는 “요요”의 성질과 빼다 박았더라.
문득 나에게도 이런 추억을 남겨주고 그냥 멀어져버린 그녀를 떠올렸다. 안보이니까 처음에는 심심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어른거리는 환영... 그때는 가슴 한 켠을 상실감이 싸하게 쓸고 지나는 것을 남주처럼 느꼈었다. 그렇게 “화살”이 아닌 “요요”처럼 다시 돌고 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다시 가져보았지만 부질없는 소망이란 것도 잘 알았다. 역시 이 단편도 끝내아름답고 뭉클뭉클했다. 그럼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아마 그렇겠지. 끄응~~ 당연하게도 김중혁 작가는 참 알싸하게 글을 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