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드래곤 " - 마이클 코넬리

나인 드래곤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4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마지막으로 사건을 맡은 지 4주가 지나 좀 쑤시던 보슈에겐 주류 판매점 주인 살인사건은 행운이었다. 2년 총에 맞은 일로 아직도 트라우마에 육아 스트레스까지 시달리고 있는 후배 페라스에겐 칼퇴를 망친 주범이었겠지만. 사실 여기는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살인사건 따위는 맡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특별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일선의 사정에 의하여 어쩔 수 땜빵을 맡아 주어야하고 보슈에겐 사건이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해보니 사우스 LA의 행운주류 상점주인 존 리의 살인사건은 보슈에겐 기연이랄 수밖에. 과거 LA 폭동당시 이 곳 근처에 있다 존 리로 부터 성냥을 받은 적이 있었다면 특정시점을 현재의 사건현장으로 연결 짓는 작업솜씨가 능청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 그런 스타일에서 이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순서대로 읽어본 독자끼리 통하는.

원한에 의한 보복도 아닌 것처럼 보이던 사건은 중국 삼합회와 관련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주인은 자의 반, 타의 반식으로 상납을 해오다 더 이상 내지 않겠다하니 살해당한 게 아닌가하는. 수납원으로 들락거리던 용의자도 추적해 검거하는데 성공. 어떻게 해서라도 물증을 찾고 자백을 받아내면 될 일. 그런데 문득 걸려온 한통의 협박전화... 이후 첨부된 동영상에는 이혼한 전처 엘레노어와 홍콩에서 살고 있는 열세 살 딸 매들린이 납치된 모습이 촬영되어 있다. 이제 분노한 보슈가 홍콩으로 날아간다. 전처와 또 한명의 조력자와 함께 모든 것인 낯선 동양의 도시에서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단서를 물어 반드시 딸을 구해야내어야만 한다.

아직 보슈는 엘레노어를 사랑하고 있었다. 선이라는 조력자가 비록 그녀와 사귀고 있다 해도..

아니 가슴 찢어지는 현실이지만 축복해주어야만 할까, 솔직히 딸 매들린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끔찍이 사랑하는 딸 바보로서 언젠가는 셋이 다시 결합해서 행복하게 살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안쓰럽고 잘되길 독자로서 빌고 또 빌어 왔었다. 진짜 그런 시나리오가 작가는 이미 그리고 있지 않을까했다는. 사춘기에 들어선 딸도 비교적 아빠랑 잘 통했고 같이 살고 싶다면서 가슴 뛰게 만들기도 하니까. 꼭 그랬으면, 그래야만해. 

그러기위해 시급한 과제는 딸을 무사히 구출해야하는 것... 동서양 문화가 이질적으로 충돌하는 중화권에서 헤매는 보슈는 도움과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을 수차례 겪다가 큰 상실감을 겪게된다. 아! 이건 아니야... 탄식이 절로 나오는 안타까운 상황, 그렇지만 슈퍼맨 아빠가 미칠 듯이 딸을 구하고 말겠다는 일념만으로 사지를 넘나들 때 도저히 중간에서 페이지를 멈출 수가 없더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숨 막히는 긴장의 연속에서 내내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릴과 서스펜스는 양껏 고조되었다. 7년여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는 마이클 코넬리의 필력은 역시나 엄지 척!!!

무엇보다 빛나는 건 이번에도 통했다는 직감의 힘에 있다. 보이고 것만이 진실처럼 느껴지지만 이면에 숨은 추악한 음모... 그렇게 믿도록 조종해온 교묘한 사술같은.. 인간심리의 맹점은 아차 하는 순간에 이용당할 뻔 했다. 행동에 나선 보슈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온 든든한 슈퍼원군 덕에 위기를 잘 넘기게 되었고 원군의 말대로 나중에 그렇게 될 것이다.

​또한 사춘기지만 어느 순간 망각하게 되어버리지나 않은지 염려될 정도로 혼란에 빠진 딸 못지않게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고 말 보슈의 모습에서 불량아빠의 고난기가 뻔히 그려진다. 의외로 이전보다 더 짝짝궁이 잘 맞을 것 같은 부녀에게서 부전여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몽 같았던 시간을 보낸 이들이 비온 뒤에 땅이 단단해진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