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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그랬다.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는 전체 페이지가 600여 페이지, 하지만 네 편의 중편 소설이다. 그의 작품연보에서 중편소설집으로는 세 번째라고 하는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의 공통 키워드는 복수라고 할 수 있겠다. 늘 장르소설의 단골메뉴인 복수, 그 뻔할 뻔자일 것 같은 복수를 스티븐 킹이 다루면 이렇게 쌈박해지는구나, 얕은 줄 알고 발을 담구었더니 어느 순간 목까지 차오르는 수위에 깜짝 놀라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만큼 독하고 깊은 이야기들이다.
첫 번째 이야기, <1922>는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8년 전에 살해하고 유기했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아직 어린 아들도 이 범죄에 동참한 공범이었다는 점. 살해 동기를 살펴보자면 아내가 유산으로 상속받은 땅을 농장과 합치고 싶었던 농부의 바람과는 달리 아내는 이 땅을 팔고 전원생활 대신 도시에서 가게 차려 살고 싶어 한 것에서 비롯된다. 부부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이혼해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끝내 관철시키려는 아내를 두고 남편은 아들을 꼬드긴다. 평소 도시로 가면 지옥이 기다린다는 불확실한 믿음을 가진 소년은 결국 아버지와 함께 엄마를 살해한 후 우물에 몰래 매장해 버린다. 다들 견디다 못한 아내가 가출한 것으로만 생각하니까, 그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시간은 흘러가는데...
원래 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말이 있듯이 죄악은 죽은 아내를 자꾸 우물 속에서 일으켜 세우려 하며 끊임없이 아내의 충성스런 추종자들을 지상으로 내보낸다. 그러면서 불안과 초조, 신경쇠약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데 귀신이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지 않고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광기가 오싹하다. 스물 스물 온 몸의 솜털이 곤두설 듯.
두 번째 이야기 <빅 드라이버>는 ‘윌로 그로브 뜨개질 클럽’의 저자 테스가 초청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에 어느 트럭 운전기사에게 무참히 성폭행 당한 후 직접 복수에 나선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화끈하고 박력 있는 전개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원래대로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는 따로 있지만 초청장을 보낸 어느 여인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을 친절히 알려주어 그대로 따랐던 게 화근. 그리고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는 여러 여자들을 똑같이 대하고나서 살해유기 해버린 상습법이란 점을 알게 된다.
이 모든 게 우연을 가장한 그 무언가가 있다. 테스는 갈등에 빠진다. 이대로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해버릴까? 아니야 그랬다간 언론을 타고 나름 인기작가인 자신의 커리어가 먹칠을 당하게 될 게 우려된다고. 복수는 분명 해야겠고 처벌받기도 원치 않고, 이래저래 내면적 갈등에 휩싸이는 동안은 물론이고 추리작가로 전업해도 문제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스릴감을 선사하며 자아분열 추리로 진짜범인과 이 모든 범죄의 배후를 통쾌하게 밝혀나가는 중후반은 잠시도 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니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찾겠는가? 굉장하다.
세 번째 이야기인 <공정한 거래>에서 잠시 숨 좀 돌리고 나면 마지막 이야기인 <행복한 결혼생활>이 마중을 나온다. 밥과 다아시는 누가 봐도 특별한 굴곡 없이 장장 27년을 함께 산 부부이다. 우리들은 배우자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문득 그런 의문점을 촉발 시키기라도 한 것 마냥 우연히 아내인 다아시가 남편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행복했던 결혼생활의 뒷덜미는 차갑게 식는다. 밥은 그동안 살인충동에 의하여 열한명의 여자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마였던 것. 그 살인의 전리품을 몰래 숨겨두고 평범한 남편으로 한 침대를 같이 사용해왔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이 받을 충격과 선택은?
게다가 밥이 아내가 이 비밀을 알고만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데서 이야기가 특별해진다.
모른 척 시침 떼는 아내에게 자신이 살인마가 된 이상심리와 과정들을 천연덕스럽게 털어놓으며 이제는 손 씻었으니 묵인해 달라며 앞으로 잘살아보세. 마치 알콜 중독자나 도박중독자의 개과천선을 다짐하는 약속같이 쉽게 말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잖아. 여기서 아내의 선택은 또? 그냥 계속 산다? 경찰에 신고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아들과 딸은 어쩌누? 최후에 내린 결단이 흥미진진하다. 그게 최선이라면 묵인과 동조를 구해.
결국 네 편 모두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할 가장 가까운 사람과 대가없을 선의가 순간 돌변하고 달려들 때, 그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응분의 조치는 필연적으로 권선징악이 되는 간절함이다. 그런 배신은 깊은 절망에 빠뜨리지만 아직 희망을 놓지 말고 한 밤에 별을 찾으라.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기에 스스로 해답을 구해야만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맹렬한 도전기 <별도 없는 한밤에>는 이제껏 읽었던 스티븐 킹의 소설 중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게 될 것이니 긴 밤 외로워말고 책을 들어라! 강력 추천한다. 대박! 짱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