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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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원제로 “shatter”. 산산이  부서지다.라는 본래의미에 충실한 제목이겠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다리 위에서 뛰어 내려.”란 말 한마디에 그리도 쉽게 뛰어 내릴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 순간만큼은 진짜로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경우에만 시도하게 되는 무모함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냐 보다는 어떻게만 남는다. 결국 전말을 알고 나면 심리를 조종하는 그 방법은 최면술도, 독심술도, 아니면 그 어떤 교묘한 말빨도 아니란 점에서 애초의 기대감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우리가 흔히 보이스 피싱에 낚이는 방법과도 유사하다. 3자가 보건 대 냉철한 판단을 앞지르는 나약한 본성을 헤집고 들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데 돈을 요구하는 대신 목숨을 내놓도록 하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 과정에서 잡히지 않도록 몸 간수 잘하면 되는 것, 그 용의주도함이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어떻게는 그리 인상적이지가 않았다. 도 그다지 새로울 건 없네.

 

그리고 주인공 조셉 올로글린이 터프가이 형사도 아니요, 심리학자로서 파킨슨병에 걸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조금씩 무너지는 단계에 놓인 환자여서 회색빛 우울감에 내내 짓 눌린다. 아내 "줄리언"과 큰 딸내미와는 과거의 사건으로 인하여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한 불편한 관계. 병에 걸렸으니까 이 사람이 예전처럼 밝고 쾌활하기란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은 누구나 한다.

 

이럴 때 가족들이 고통을 이해해주고 용기 내도록 힘을 실어주었느냐는 전편을 읽지 못했으니 그간 사정을 짐작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처럼 "줄리언"은 분명 께름칙하다. "기드온"은 그 점을 눈치 챘기에 염장을 지르면서도 같은 남자로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꼈을 테고. "기드온"의 추궁에 "줄리언"은 어버버 했으니까. 심증이 간다.

 

"조"는 점점 힘들어질 거다. 옆에서 의지되어주어야 할 가족들이 저 모양이니까. 그래서 더는 다음 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 멀어진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거지, 이런 꿀꿀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굳이 확인해 나가야할 필요가 있나? 모 변호사와 불륜설이 떠도는 그 아줌마랑 뭐가 다른가? 남편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귓가에 맴도는데. 그냥 <아파치>처럼 우두두두 하는 게 날 뛰놀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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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할깡 때려칠깡 버텨볼깡 - 가장 적나라한 직장 "졸"들의 속마음
김건우 글.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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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할깡, 때려칠깡, 버텨볼깡....

내 얘기 아니냐면서 직장인이라면 100%

공감가능 하다캤다.

과연 그럴까나? 첫 출근의 추억 편을 살펴보자.

어렵사리 합격한 첫 직장, 그리고 첫 출근.

어리버리 신입을 반갑게 맞아주던

선배님들의 환영.

이번에 딸 낳은 걸 축하해주는데.

원래 합격자(유부남)가 일주일 전에 입사포기 해서

극적으로 대타 명단에 있던 주인공 김 대리가

막차에 합류했다는 그 사실을 모두가 몰랐다는

전말에 나도 짠했었다.

 

그러나 그 뒤가 좀 헐겁네.

얼마 전에 읽었던 하상욱 시인의 <시밤>

부분적 공감을 제외하고는 동음반복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의 에피소드에는

 야근이란 단어가 단골 레파토리 되어 메아리치네.

야근이 일상인 직장에서 근무해보지 않아서

와 닿지가 않더라는.

  

좁게 보면 오피스 스토리인데 넓게 보면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 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지금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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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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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팬들의 복간 요청으로 살의 시리즈가 차례차례 선보이기 시작할 때는 이미 일본추리소설 시장은 신선함은 결여된 채, 구습 만연한 작풍이 넘쳐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모방살의>의 서술트릭은 확실히 괜찮은 편이었다. 후속탄이자 <모방살의>의 응용편이라 평가받는 <천계살의>로 다시 이 시리즈를 만난다.



추리세계의 편집자인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추리소설가 야규 데루히코가 작성 중인 원고가 있다면서 잡지에 실어달라는 청탁이 온다. 야규는 데뷔 초만 해도 소위 잘나가는 작가였지만 이후 반복되는 패턴을 남발하며 작가적 역량이 한계에 봉착한 작품들만 내놓음으로서 시장가치가 평가절하 되어 버린 처지였다.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히도 발버둥 치던 그는 범인 맞추기 릴레이 소설이라 명명한 방식을 들고 나왔다.

 

 

자신이 먼저 쓴 원고를 다른 작가에게 보여주어 추리하게 한 다음 그 작가가 해결 편을 내놓다는 방식이 큰 줄기이다. 색다른 아이디어라고 판단한 아스코는 그 청탁을 받아들이는데... 한편 부부싸움 끝에 가출했던 한 여인이 살해된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여인의 행적을 조사하던 와중에 만난 적 있거나 관련 있을 거라 여겨지는 주변인물들이 차례차례 살해됨으로서 야규가 쓴 소설이 현실 속의 살인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수면 위에 드러난다.

 

 

사소한 말다툼에 의한 주부의 가출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에 돌아오면 만사오케이다. 머리 식히러 갔다 조용히 돌아왔으면 이 사단은 안 났을 텐데 어찌하다보니 생애최초로 도박판에 끼었다가 돈을 딴 것도 그렇지만 떠벌였다는 점, 그리고 야규의 소설을 이어 집필할 작가가 하필이면 유명 여배우였다는 점 등 전혀 모르는 사이에 있는 이들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를 보면서 살의는 최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럭비공처럼 이리 번지고 저리 번질 수도 있다니 불똥을 피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응용편이다보니 범인은 중간부터 눈치 챌 수 있었다. 초반에 뿌려둔 떡밥이 이번에는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모방살의>의 패턴을 부분적으로 답습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고 계속 희생자가 생겨 용의자를 소거해나가다 보면 최후에 남는 이가 정해져있다. 다만 추리를 완성해 들이대는 이는 정말 관심 밖에 있던 사람이라 뜻밖이다. 별 볼일 없어보이던 인물이 그런 가설을 제시할 줄이야. 그러면서 희생자가 늘 수밖에 없었던 꼬리 물기와 이 살의를 조종한 진짜 배후가 누구였는지, 의도를 알게 되는 순간 이번에도 시원하게 당했구나,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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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사는 집
김상현 외 지음, 전홍식 옮김, SF&판타지 도서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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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Fi의 세계를 풀이하면 공상과학 소설 정도 되겠지. 우린 그동안 무수히 이 장르를 넘나들며 허무맹랑하다는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갖가지 도구들로 공상을 즐겨왔다. 아직도 풀어낼 썰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SF 어워드 단편 수상작외에 이것저것 읽을거리를 담고 있는 단편집인 <조커가 사는 집>이 대신 답하겠지만.

 

 

조커가 사는 집카드카운팅이란 방법을 통해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드카운팅이란 것이 원래 블랙잭을 할 때 카드 한 벌을 외워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말하는데 이미지로 층을 쌓아 집을 만든다는 설계가 상당히 수리적인 논리라서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방식을 제대로 활용하면 놀라운 암기력을 보여준다 하니 입시나 고시에서 어느 정도 득을 볼 수 있겠다 싶지만 응용과 창의와는 거리 먼 거라 한계는 있겠다. 결국은 카드카운팅으로 집을 짓다보면 조커도 튀어나오고 나중에는 현실과의 경계도 모호해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결말이 나오니까 모든 것은 적당히 거리두기, 심히 몰입하지는 말자.

 

 

옥상으로 가는 길은 제2회 황금가지 ZA 문학공모전 수상 작품집에 수록되었던 단편으로 이미 한차례 읽은 적이 있다. 좀비가 창궐해 건물에 고립된 사람들이 왜소증을 가진 남자에게 식량조달을 의지하게 되는데 정작 외부의 좀비가 두려운 게 아니라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취하는 이기주의가 간담을 서늘케 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후속 결말은 당연히 아비규환 일 듯싶다.

 

 

장군은 울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말해 배꼽 잡게 한다. 외계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구정복을 꿈꾸었으니 자가네 별에서 지구로 공간이동을 위해 선택한 장소가 바로 산모의 자궁이란 점. 순산을 했다면 순조롭게 외계용사들이 아기로 태어나 지구를 장악했겠지만 뜻밖에 변수가 생겨버렸다. 산모들이 줄줄이 낙태를 하는 바람에 미처 출정준비 도 못한 채 외계용사들이 대규모로 전사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아기들끼리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이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상관이 부하 군기 잡는 건데 부모들은 아기의 손버릇 나쁜 탓이라고만 착각하니 ㅋㅋㅋㅋㅋㅋ

 

 

나머지 단편들도 제각각 개성이 강해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다. 일본 작가 작품도 있고. 말미에 요즘 핫한 장강명 작가의 해설도 실려 있는데 너무 관념적이라 첫 단편과 마찬가지로 나중에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떡 실신 시킨다. 따라서 단편만 읽고 해설편은 무리해서 해석을 시도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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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강지영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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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작가의 고심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으로 감염되면 좀비로 변이되고 백신조차 구할 수 없다는 설정의 이 소설이 출간되려할 시점에 하필이면 메르스 사태로 사람이 죽어나고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으니 어찌 당당히 공개할 수 있었을까. 자칫 묻히다 못해 지탄마저 받을지도 모를 최악의 타이밍.... 시간이 벌어다 준 천우신조 덕에 겨우 빛을 보게 되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지 안 봐도 비디오겠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엄마 숙영, 장남 근대, 둘째 딸 초희, 막내 딸 초과. 모두 4인 가족이다. 처녀시절 수줍음 많던 숙영은 남편과의 사별 이후 삼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웠는데 세 아이들은 솔직히 정상적인 기준에는 미달된다고 봐야겠다. 장남 근대는 틱 장애로 크흐흐흡 하고 숨을 들이켜 가며 틱 장애를 보이는데다 일본 애니에 푹 빠져있는 전형적인 덕후이다. 둘째 초희는 조산기가 있으며 허약체질에 빌빌거리고 있는 중이다.

 

 

막내 초과는 철없던 시절, 불장난 잘못 해서 출산한 적 있었다. 알고 보니 남자는 이미 유부남으로 미국에서 부인이라며 제시카라는 여자가 찾아와 애를 키우겠다, 넘겨 달라 사정해서 그래 가져가라는 식으로 양도해주었다. 초과는 씨받이가 된 거다. 돌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과에게 일 년마다 딸 유이가 카드를 보내오는 식으로 모녀의 연이 이어졌고 쿨 하고자 했어도 여전히 마음은 성치 않다. 그런데 유이가 아파서 수혈이 필요하다고 입국한 제시카의 도움 요청에 따라 병원으로 그녀는 출발한다.

 

 

여기에 장남 근대도 모처에서 덕후들끼리 코미디 페스티벌을 열어 애니 상영도 하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열고자 길을 떠나는데 문제는 이 세상은 감기처럼 시작된 바이러스가 나중에는 좀비로 변이시키는 치명적 결과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백신 따윈 없다. 경찰은 좀비로 변했거나 의심스런 이들을 닥치는 대로 포획하거나 심지어 사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과연 길을 떠난 초과와 근대가 무사히 목적달성을 할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좀비 바이러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었다면 이대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항시 원인모를 재앙도 알고 보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어 불필요한 희생을 낳는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사태는 방지, 아니 일어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확산방지조차 못해 우왕좌왕하는 당국의 무기력한 대처는 얼마 전 겪었던 메르스 사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구원의 손길을 외부로 돌리는 동안 국격이 무참히 땅에 떨어지고 혼란 속에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우리네 보통사람들, 즉 우리 스스로였던 것이다.



약점 많은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처절한 생존력을 발휘하는 초과 가족과 별개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그 누구의 기구한 삶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인위적인 조정에 의해서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글픈 반전을 보여준 동시에 스스로 길을 열어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으니 현실은 서커스보다 더 황당했던 셈이다. 강지영 작가는 그렇게 <하품은 맛있다>에서 보여 준 장르적 기교를 유감없이 잘 드러내었다. 앞으로도 그녀의 역량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보여준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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