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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강지영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평점 :
강지영 작가의 고심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으로 감염되면 좀비로 변이되고 백신조차 구할 수 없다는 설정의 이 소설이 출간되려할 시점에 하필이면 메르스 사태로 사람이 죽어나고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으니 어찌 당당히 공개할 수 있었을까. 자칫 묻히다 못해 지탄마저 받을지도 모를 최악의 타이밍.... 시간이 벌어다 준 천우신조 덕에 겨우 빛을 보게 되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지 안 봐도 비디오겠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엄마 숙영, 장남 근대, 둘째 딸 초희, 막내 딸 초과. 모두 4인 가족이다. 처녀시절 수줍음 많던 숙영은 남편과의 사별 이후 삼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웠는데 세 아이들은 솔직히 정상적인 기준에는 미달된다고 봐야겠다. 장남 근대는 틱 장애로 크흐흐흡 하고 숨을 들이켜 가며 틱 장애를 보이는데다 일본 애니에 푹 빠져있는 전형적인 덕후이다. 둘째 초희는 조산기가 있으며 허약체질에 빌빌거리고 있는 중이다.
막내 초과는 철없던 시절, 불장난 잘못 해서 출산한 적 있었다. 알고 보니 남자는 이미 유부남으로 미국에서 부인이라며 제시카라는 여자가 찾아와 애를 키우겠다, 넘겨 달라 사정해서 그래 가져가라는 식으로 양도해주었다. 초과는 씨받이가 된 거다. 돌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과에게 일 년마다 딸 유이가 카드를 보내오는 식으로 모녀의 연이 이어졌고 쿨 하고자 했어도 여전히 마음은 성치 않다. 그런데 유이가 아파서 수혈이 필요하다고 입국한 제시카의 도움 요청에 따라 병원으로 그녀는 출발한다.
여기에 장남 근대도 모처에서 덕후들끼리 코미디 페스티벌을 열어 애니 상영도 하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열고자 길을 떠나는데 문제는 이 세상은 감기처럼 시작된 바이러스가 나중에는 좀비로 변이시키는 치명적 결과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백신 따윈 없다. 경찰은 좀비로 변했거나 의심스런 이들을 닥치는 대로 포획하거나 심지어 사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과연 길을 떠난 초과와 근대가 무사히 목적달성을 할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좀비 바이러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었다면 이대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항시 원인모를 재앙도 알고 보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어 불필요한 희생을 낳는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사태는 방지, 아니 일어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확산방지조차 못해 우왕좌왕하는 당국의 무기력한 대처는 얼마 전 겪었던 메르스 사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구원의 손길을 외부로 돌리는 동안 국격이 무참히 땅에 떨어지고 혼란 속에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우리네 보통사람들, 즉 우리 스스로였던 것이다.
약점 많은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처절한 생존력을 발휘하는 초과 가족과 별개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그 누구의 기구한 삶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인위적인 조정에 의해서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글픈 반전을 보여준 동시에 스스로 길을 열어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으니 현실은 서커스보다 더 황당했던 셈이다. 강지영 작가는 그렇게 <하품은 맛있다>에서 보여 준 장르적 기교를 유감없이 잘 드러내었다. 앞으로도 그녀의 역량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보여준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