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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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드에서 곧 출간된다하는 이 책, 가제본으로 먼저 만났을 때에는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었음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연히도 미스터리가 아니겠느냔 어림짐작은 해봤다. 그리고 그 짐작은 극장에서 더욱 확고해지는데 연극무대에서 연기 중이던 한 남자배우가 돌연사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오호라 초반부터 사람이 죽어나가는군. 직접적으로 살인을 시행한 범인은 없지만 분명 독살 같은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겠는가? 교묘한 수법이로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왜라는 문구들이 입안을 맴돌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서 일시 혼란이 찾아온다.

    

 

범인을 찾는 얘기는 안 나오고 대신 감기 같은 증세로 시작하는 전염병이란다. 지반이란 남자는 병원의사인 친구로부터 조지아독감이란 병명을 전해 듣고 급속도로 전염되고 있으니 어서 이 도시를 떠나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런데도 아직 이 사실을, 특히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란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도시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진 않는다. 그래서 이 소식을 전하며 다급한 피신을 떠나라는 지반의 말에도 여친은 어리둥절해 할뿐,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세상은 곧바로 이 병에 걸린 사람의 90%가 사망하면서 인류는 멸종 위기에 처해 버린다. 그래서 문명은 종말이다.

 

 

종말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유랑극단을 조직한 이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되고 생존의 기로에 섰음에도 예술은 필요했던 것인가, 아닌 그냥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들일뿐인지. 과거에 죽었던 사람의 죽기 전 생애까지 시점이 오가는 속에서 여러모로 정체가 모호한 스토리렷다. 어떠한 장르로도 딱히 정의 내릴 수 없어 누구 말대로 <로드>의 묵시록적 현상이 떠오른다. 장르적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무의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소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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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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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신작 <지옥이 새겨진 소녀>이다.

읽으신 분들이 열의 아홉은 매력적이라며 침 튀겨가며 호감을 표시하는 마르틴 슈나이더. 미들네임 S를 빼먹고 부르기라도 하면 반드시 정정하는 괴팍함은 자비네를 다람쥐라고 부르는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곧 죽어도 산골짜기 다람쥐를 연호하는 바람에 잠시 두 사람이 사귀는 관계가 아닌 가 착각도 했었다. 모르고 봐서 슈나이더가 자비네 귀에 달콤하게 속삭이며 부르는 애칭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냥 놀림거리였다. 계속 부르니까 오글 거리도 하다가 나중에 음성지원 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비호감이라는 독자가 한명 정도는 있더라.

 

 

암튼 전편에서 살인마에게 엄마를 잃었다는 자비네양은 이번에 남친마저 살인마에게 당했으니 참 가엾기도 하여라. 이 시리즈를 잘 모르겠지만 자비네양과 멜라니 검사 두 사람이 하드캐리 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인기는 슈나이더에게 집중, 아재개그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해결한 사건들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나보다. 중반까지 두 개의 사건이 축을 이루어 언덕배길 넘어가는 동안 좀 무겁고 지치긴 했고.

 

 

때로는 단테의 신곡이 문신으로 새겨진 소녀들이 연이어 시체로 발견되고 또 한편에선 인육 전시체험을 그윽하게 벌이는 연쇄살인마들의 파티... 잔인하게 어필하려 한 듯한데 이제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눈을 감고 상상하였다. 어떤 그림일까. 후반에 넘어가서는 나름의 반전도 보여주면서 이 범죄의 동기를 한자성어로 설명하면 역지사지정도 되려나. 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에서 양측이 한 치의 억울함 없이 공정한 집행이 되기를 바라나 실제로는 그 어느 누구도 불만족일 경우가 많다. 특히 처벌이 관대하다고 느껴질 때는 법의 집행자는 피해자의 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달리 보기.

 

 

그리고 여주들의 활약도 눈부시고 고생 많았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경직된 관료조직에서는 그 어떤 주인공도 소신껏 수사 활동을 하지 못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상부에서는 막 내리누르니 밑에서는 정면 박치기도 했다가 꼼수도 쓰는 등 험난한 역정을 거치는 게 이 장르의 공식이겠지. <산부남> 시리즈에서도 늘 남주는 범죄를 쫓아다니느라 가정에 소홀해서 욕 들어먹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이 또한 공식이 아니던가? 슈퍼사이코 살인마를 상대하려면 모든 전력을 다했을 때만 겨우 승산이 보인다. 여자라고 무시당한다는 설정은 커녕, 오히려 그 반대이더만. 작가가 여자였으면 백퍼 그런 의도겠지만 이 소설 작가는 남자니까 억압에 대한 관점은 더 크거나 다르다고 본다.

 

 

그러니 이제껏 닳고 닳도록 보아온 이 같은 캐릭터들, 그리고 환경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게 용납이 안 된다면 넬레 여사의 <끝나지 않는 여름>같은 판타지 로맨스를 읽으면 정신건강에 좋겠다. 근데 , 다람”. 이 대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겨죽겠다. 총에 맞았던가, 칼을 맞았는지 기억 안 나지만 슈나이더씨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순간에 터져 나오던 저 말, 정말 못 말리는 짱구 아저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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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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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흠, 주인공 후카세를 보면서 자신과 많이 닮았다는 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깊게 한 걸 보면 나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후카세는 사무용품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일 마치면 단골 커피가게를 자주 찾는 그럼 사람이었다. 늘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수시로 잊혀져왔는데, 그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은근 왕따를 당하고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었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향친구들과 일체 연락을 끊을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도 대학시절 몇몇 안 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파이팅이 넘치던 무라이, 허세가 있어 보이는 다니하라, 마음이 넓고 자상한 히로사와, 오직 교사라는 꿈에 매진하던 야무진 아사미까지 네 명의 친구들은 나름 단짝들이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역시 겉도는 사람은 후카세 였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피 끊는 청춘들이 모였으니 의기투합해서 여행 한번 다녀올 법도 한데, 어느 산속 별장으로 실제로 떠난다. 교통사고가 난 무라이만 추후 합류하기로 하고 먼저 세 명이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나서 흥에 취해 술을 마셨다. 때마침 날씨도 험악한 날, 무라이는 세 명에게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하고 셋 다 이미 술을 마신 상태라 막상 누굴 보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후카세는 면허가 없었고 아사미2차 시험을 앞두고 음주운전을 꺼려한다. 결국은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히로사와가 운전하기로 결정 나서 차를 몰고 나가지만 불행히도 추락 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평생 씻을 수 없는 가책, 세 사람은 히로사와에게 음주 운전을 부추기고 말리지 않은 책임이 있었으나 차마 용서를 못 구하고 쉬쉬하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묻혀가던 세월, 어느 날 후카세는 살인자란 메모가 그의 여친에게 접수되어 그녀로부터 진실을 추궁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고발 메시지가 날아드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철로에 떠밀려 죽을 뻔 한일까지 벌어진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친구들은 모여 서로를 범인으로 의심하기도 했는데 후카세히로사와의 고향을 찾아가 그의 교우관계를 조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분명 범인은 히로사와와 가깝게 지냈던 인물일거라고 확신한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의 결과는 할런 코벤<용서할 수 없는>이나 미쓰다 신조<일곱 명의 술래잡기>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어 빌지 않는다면, 아니 보통의 사람들은 애써 덮어두려 한다. 이에 반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리버스>는 반전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떤 평판으로 기억되는지를 드러낸다. 그 동안 우리는 누구에겐 모난 정을 감싸 안을 줄 아는 넉넉함이 천성일 수도 있지만 쓰라린 아픔이 되었을지도 몰랐음에 뒤늦게 미안해하며 후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라고 기대고 싶은 마음, 그걸 받아주었던 그 관대함에 몇 번이고 눈물을 찔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늘 읽으면서도 번번이 당하고야 마는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하겠다. 그래서 마지막 한 줄에 반전을 이야기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은 대신 훈훈함을 대신 안고 책장을 덮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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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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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는 마유를 등진 채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선수처럼 짧게 자른 검은 머리.

뒷모습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검은 트렌치코트 자락이 바닷바람에 깃발처럼 나부꼈다.

불안정한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술렁거렸다.

이 광경을 뚝 잘라내 어딘가에 담을 수 있다면.

한 장의 사각프레임 속에.

만일 지금 카메라가.... (P.2728)

 

 

처음 이 문구들을 읽었을 때는 잠시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천천히 음미하듯 읽으니까

이번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딱히 꼬집어 이것이 마카미 엔의 스타일이라고.


 

오래된 고서 못지않게 오래된 사진에도 담긴 무궁무진한 사연들...

마유는 이곳 에노시마 섬에 놀러온 관광객이 아니었는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운영하셨던 니시우라 사진관에 들러

유품을 정리하러 올 때는 한편으론 맘 한구석이 편치 않았겠다.

 

 

소꿉친구였던 루이의 사진을 찍은 일이 어떤 식으로

오해를 사 그로부터 절교선언을 들은 이후로 늘 죄책감에

싸여 있었으니까. 사진 따위는 두 번 다시 찍고 싶지도 않아.

그러나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에 손님들이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이 수북이 쌓여 있음에 난감해 한다.

 

 

그런 사진을 찾으러 온 첫 손님부터

사진대신 다른 목적이 있어 사진관에 들른 손님.

각자의 사진에는 어떤 비밀들을 하나쯤은 품고 있었는데

사진을 돌려주며 하나씩 해결되는 일상의 미스터리들은

옛날 옛적에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식의

미신이 아니더라도 필름의 인화는 어떤 식으로든

족적 또는 단서를 반드시 남겼다.

 

 

​그렇다고 그리 간파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어리둥절한 와중에 사진속의 그날 속으로 걸어들어가 답을

​구하는 추리솜씨에서 알 수 없는 따스함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기분 좋게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지개를 션하게 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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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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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서야 그것도 사후 10여 년이 지나서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가 백인남성의 전유물이었던 SF문학에서 흑인여성 작가라는 위상을 인종과 젠더적인 관점에서 재창조해낸 작품이 바로 이 <>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작가의 정체성이 가장 확실하게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되기에 먼저 만났던 단편집 <블러드 차일드>와는 또 다르게 다가온 것 같다. 그런 만큼 이 소설의 주요소재인 타임 슬립은 이 장르에서 고전적이자 관습적인 답습이라는, 신선도면에서 큰 점수를 주기 힘든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고 다른 변주를 선택한다.  

                               


 

흔히 타임 슬립을 이야기 할 때 과연 어느 시대로 접속할 것인가에 주목하게 되는데 여주인공 다나는 작가처럼 흑인여성이란 점에서 기대와 꿈, 모험요소 가득한 낭만과는 거리가 먼 특정시대를 반복적으로 접속하게 되므로 가벼운 읽을거리는 일단 아니란 의미이다. 우선 다나1976년을 살고 있던 스물여섯 살의 여성으로 어느 날 우연히 1815년 남부 메릴랜드 주의 숲속으로 시공간 이동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원인도 이동한 장소의 시대적 배경도 몰랐었다. 단지 강에 빠진 남자아이를 발견해서 갑작스럽게 구했을 뿐, 하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소리치며 위협했으며, 아버지의 총구가 들이밀 때 극적으로 현재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 곳은 1815년이었으니 아직 노예해방이 일어나지도 않아 백인에 의한 흑인노예의 종속관계와 차별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믿을 수 없어 남편인 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눈앞에서 아내가 사라졌다 되돌아온 믿지 못할 광경에 경악했던 그도 타임 슬립을 따라 겪으면서 어떡하든지 아내를 보호하려 한다. 그렇게 수차례에 걸쳐 백인소년 루퍼스 와일린과 어떤 위기나 위험을 겪을 때 마다 자동적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여인 다나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애증된 만남과 관계를 지속한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치부의 하나인 노예제도를 비록 SF적 설정으로 그리고 있지만 다나가 자유민으로 살던 현재와 달리 복장부터 말투까지 백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그 시대와 격렬히 부딪히며, 한계 없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 없다는 강력한 자기애가 생생하게 빛을 발한다. 충분히 자아성찰에 관해 돌아보라는 충고로도 해석된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고유의 색깔이다.

 

 

더불어 애증의 딜레마, 그 수레바퀴를 굴리는 마부 루퍼스가 다나가 자신에게 악몽에 빠진 자신을 돕지 않고 홀연히 떠난다며 원망하는 순간은 인간애의 실천이 어디까지여야 할까라는 생각마저 들게도 한다. 그래서 인간이 가진 정신세계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해부실습을 참관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까닭도 일반적인 SF문학의 범주와는 다른 차원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원제인 <kindred>의 속뜻에는 동류의, 비슷한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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