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는 마유를 등진 채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선수처럼 짧게 자른 검은 머리.
뒷모습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검은 트렌치코트 자락이 바닷바람에 깃발처럼 나부꼈다.
불안정한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술렁거렸다.
이 광경을 뚝 잘라내 어딘가에 담을 수 있다면.
한 장의 사각프레임 속에.
만일 지금 카메라가.... (P.27∼28)
처음 이 문구들을 읽었을 때는 잠시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천천히 음미하듯 읽으니까
이번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딱히 꼬집어 이것이 마카미 엔의 스타일이라고.
오래된 고서 못지않게 오래된 사진에도 담긴 무궁무진한 사연들...
마유는 이곳 에노시마 섬에 놀러온 관광객이 아니었는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운영하셨던 니시우라 사진관에 들러
유품을 정리하러 올 때는 한편으론 맘 한구석이 편치 않았겠다.
소꿉친구였던 루이의 사진을 찍은 일이 어떤 식으로
오해를 사 그로부터 절교선언을 들은 이후로 늘 죄책감에
싸여 있었으니까. 사진 따위는 두 번 다시 찍고 싶지도 않아.
그러나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에 손님들이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이 수북이 쌓여 있음에 난감해 한다.
그런 사진을 찾으러 온 첫 손님부터
사진대신 다른 목적이 있어 사진관에 들른 손님.
각자의 사진에는 어떤 비밀들을 하나쯤은 품고 있었는데
사진을 돌려주며 하나씩 해결되는 일상의 미스터리들은
옛날 옛적에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식의
미신이 아니더라도 필름의 인화는 어떤 식으로든
족적 또는 단서를 반드시 남겼다.
그렇다고 그리 간파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어리둥절한 와중에 사진속의 그날 속으로 걸어들어가 답을
구하는 추리솜씨에서 알 수 없는 따스함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기분 좋게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지개를 션하게 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