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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
박태식 지음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지금은 많이 시들해버렸지만 20~30대 시절 최고의 취미생활은 영화 관람이었다.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쳐들어가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스크린에 눈을 못 떼었던, 흡사 빨려 들어갈 것처럼 탐닉했던 시기였었지. 때론 통쾌하게 짜릿하게, 때론 뭉클하게 슬프게 어떤 감성이라도 다 담아낼만한 그릇이 영화였었고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했었다.
책이 대신하고 있는 영화의 그림자를 각인시켜주기 위함인지 영화와 인권을 소재로 한 책이 나왔다. 저자인 박태식님의 이력은 참으로 다양하고도 이채로운데 사제이자, 교수, 영화평론가이셔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그 점 때문에 영화에 대한 어떠한 평론을 실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인다. 사실 인권을 다루면서도 어랏 이 영화가? 하는 케이스도 있는가하면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평은 그리 와 닿지 않는 점만 빼곤 충분히 공감할 내용들이 많았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분개하며 관람했던 포인트 곳곳에 인권이란 두 단어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한공주〉,<스포트라이트〉같은 영화는 인권을 언급할 때 결코 빼먹으면 안 될 교과서라고 생각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한공주>뿐만 아니라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다루어진 소재이다.
영화에서 가장 무섭고 소름끼쳤던 장면은 가해자 남학생의 학부모들이 등쌀을 못 이겨 전학 간 타 학교에까지 쫒아가 한공주를 악랄하게 괴롭히는 순간이었다. 삐뚤어진 자식사랑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뒤바꾸게 만드는 그 만행들이 가슴 깊은 곳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 주먹을 불끈 쥐며 보게 하는데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공주의 눈에 서린 피로와 절망들, 한숨. 당시 가해자들은 성인이 된 후 결혼, 연애, 취업도 해서 평범하고 자상한 가족과 이웃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가해자들의 친구였던 어느 여학생은 피해 여학생들을 오히려 조롱하기까지 하면서 가해자들 편을 드는 발언을 SNS에 올린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 그 여학생은 경찰로 재직 중에 있다고 하니 정의란 무엇이고 공권력은 무엇이고 사라진 인권은 또 어딜 가서 찾아야 할까?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약자에게 가해진 폭력의 악순환은 <스포트라이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고발하려는 신문기자들의 올바른 직업윤리 또한 보호받지 못한 인권과 이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인상 깊었었다. 더불어 영화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지려면 약자의 고통에 귀 기울여 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그늘을 조목조목 영화별 사례를 들어 멋지게 풀어내었다. 영화의 힘은 그래서 막강하다. 군림하기 위한 권력은 죄악이라면서. 그래서 영화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