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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 23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독일 미스터리/스릴러 작가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그렇다 쳐도 안드레아스 프란츠, 안드레아스 빙켈만, 안드레아스 그루버로 이어지는 안드레아스 삼총사의 소설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데다 그 피로감 또한 상당하다. 유일하게 개취에 들어맞는 작가를 꼽자면 바로 제바스티안 피체크겠다. <테라피>와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가 가장 애정 하는 그의 소설들인데 읽을 때마다 쫄깃함이 있어 좋다.
이번에 나온 소설은 <패신저 23>은 꿈에나 꿀법한 초호화 크루즈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시작부터가 살인마의 등장을 알리는 화끈한 신체절단 장면이라 그는 왜 하필이면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절단한 시체를 바다로 던지는 그와 맞닥뜨린 어린 소녀는 무사히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 마르틴이라는 잠입 수사관이 있다. 마르틴은 5년 전 아내와 아들이 크루즈선을 탔다가 사라진, 아니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아내가 아들을 먼저 살해하고 투신자살 했다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로 범죄현장에서 늘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할 정도로 맛이 좀 간 상태였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절망의 나날이었다면 그냥 그렇게 끝났겠지만 어느 날, 마르틴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아내와 아들이 죽은 크루즈선 “술탄호”에 승선하라는 것. 그날의 사건에 대해 알려줄게 있다면서, 이상한 일이지만 망설일 까닭도 없이 진실과 마주치기로 맘먹는 마르틴. 그렇게 배에서 만난 노부인은 죽은 아들의 장난감인 곰 인형을 갖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사실 이 배에서 자살했거나 실종된 이는 한 둘이 아니었던 것. 무슨 일이 이 배에서 일어났던 것인지, 게다가 죽었다고 알려진 이가 뜻밖에도 살아 돌아온 이 곳의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해진다.
크루즈의 오너와 직원들도 어딘가 모르게 수상해 보인다. 그들이 외부에 이 같은 사실들을 알려 수사협조를 받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조직적인 은폐, 까발려질 경우 밀어닥칠 후폭풍들은 예상되는 시나리오들이다. 그런 점들이 두려워 쉬쉬하고 있는 걸까? 뭔가 거대하고 은밀한 범죄들의 출발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락해야할 보금자리가 가학과 피학이라는 무섭고도 가슴 아프며, 분노케 만드는 그 산물들에서 비롯된다. 전염병처럼 번지고 목 까지 차오른다. 누군가에겐 복수의 대리만족이겠고 누군가에게 그 복수에 대한 단죄도 될 수 있는 끊지 못할 악순환이 되어 버렸다.
이 소설의 반전은 그렇게 끝났다 싶을 때 다시 찾아오고 마블의 쿠키영상처럼 또 숨겨 놓았는데 시도 자체가 참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망망대해를 운항하는 크루즈선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선박이라는 특수함까지 색다른 배경조차 손색없으니 역시 심심할 때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을 읽는 것은 효과 만점의 처방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이코 스릴러에서 범인이 성장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의 일반적인 설정과는 다르게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상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