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처음으로 만나는 작가들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과연 이 작가들의 소설이 국내에 연착륙하여 계속 만나게 될지 냉정히 외면당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늘 흥미롭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지. 이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경우는 소설 이전에 오래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앱솔루트 파워>의 원작자였고 작년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페이스 오프>의 협업을 주도한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그의 소설로서는 첫 출간작인 것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이미 <스톤 콜드>외 1편의 소설이 출간된 적이 있어서 이번이 세 번째 국내 출간작이 되겠다.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는 여러모로 기존 캐릭터들과는 출발점이 다른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목을 끄는데 2미터의 장신에 100킬로그램이 한참 넘는 거구의 소유자로서 지금은 꾀죄죄한 행색으로 하루하루 삶을 연명하며 노숙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남자이다. 그런 그에게도 나름 전성기가 있었으니 과거 미식축구 선수였다가 시합 중에 상대선수와 충돌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은퇴한 후에는 경찰로 새로운 출발을 해 유능함을 인정받았던 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잠복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와 어린 딸이 무참히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고 그 충격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폐인처럼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데커의 모교인 고교에서 누군가에 의해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세바스찬 레오폴드라는 어떤 남자가 자신이 데커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라면서 경찰에 자수하게 된다. 살인 동기는 데커가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데커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앞서 말한 시합 중 사고로 뇌에 충격을 받아 후천성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증세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과거의 기억을 블랙박스 영상처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하면 되돌려 볼 수 있는 특이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가 그런 사실을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고교 총기 난사사건과 데커 일가족 살인사건이 어떤 연관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완벽히 기억했지만 해석의 오류를 범하게 되어버린 과거의 진실이 무엇인지 데커의 맹렬한 수사가 시작된다. 사실 이 소설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을 재해석 할 수 있는 비상한 기억력이 사건의 진실을 다가서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는데 물증에 의한 과학수사와는 방향이 달라 과연 데커가 어떤 잘못으로 인해 보복을 당했는지 되짚어 가는 과정들이 상당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범인은 그가 알고 있던 사람인지 조차 명확하지 않고 수수께끼 같은 범인의 메시지들은 그동안 두통같이 괴롭혀왔던 과잉기억증후군을 최대한 활용해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된다. 결국 밝혀진 진실과 범인의 정체, 정말 그런 이유로 인하여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던 것인지 놀랍기도 하지만 피해자로서의 범인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증오와 분노를 도화선 삼아 불을 붙여 폭발하게 만들었던 충동질이야말로 정말 악랄함의 극치가 아니었나 싶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원인과 결말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우리들은 돌을 쉽게 던지고 말겠지만 올바른 가정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면 범죄는 예방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회적 책임은 그에 덧붙여서 필요할 텐데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내내 폭주하는 이야기의 힘에 경이를 표한다. 그리고 계속 즐기고 싶은 시리즈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올해 4월 현지에서 출간된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2탄을 어서 국내에서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