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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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길 위의 소녀>로 처음 만나 깊은 인상을 남긴 프랑스 작가 델핀 드 비강의 또 다른 작품인 <실화를 바탕으로>가 출간되었다. 생각보다 빠른 재회... 일반적인 개념의 대중성과는 다른 그녀만의 스타일이 곱씹을수록 은은한 맛을 남기는 터라 상당히 반가웠다. 그런데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흔히 말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이 집필되었다고 단순히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그냥 제목일 뿐이다 로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첫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혼선을 빚으며 시작해야 한다.

 

 

주인공 이름부터가 델핀이네. 이쯤하면 자전적 요소가 맞는 것인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소설 속 주인공 델핀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가 부담스러워 중압감마저 느낀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글쓰기를 중단했고 그런지 삼 년이 지났다. 정말 그동안 절필을 했다. 이제 생업이자 소명 같았던 글쓰기가 힘들어지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고통스러웠다. 슬럼프가 무한대로 길어지려던 차에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난 여자 “L”.

 

 

이녀설로 대변되는 수수께끼 같은 여자 “L”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는데다 수렁에 빠진 델핀의 삶으로 조금씩, 천천히 간섭하며 들어오는데, 대필작가라고만 알려져 있는 “L”은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때론 델핀과 문학적 소양을 토론하기도 하고, 작가관에 대한 일침도 놓는가 하면 기쁨과 즐거움, 평화로움 오가는 관계를 넘어 델핀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게 된다.

 

 

이쯤해서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어떤 인물과 연결 짓게 될지도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짓누르고 들어오는 “L”에게서 영화 <미저리>의 향기가 언뜻 스쳤다가도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구나 생각이 바로 번쩍 들게도 된다. 결코 구속 같지 않는 그 영향력이란 지배와 피지배라는 종속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팽팽하게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눈에 보이지 않는 대결이자 심리 스릴러로서의 형식을 갖췄다.

 

 

결국 글쓰기라는 극한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그것을 소비하는 독자로서의 입장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지라 이성과 감성, 양쪽을 동시에 활용하며 밀당을 하며 긴장감과 영리함으로 가득찬 소설이 된다. 델핀 드 비강은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발견이랄 수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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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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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를 수작이라고 하셨을 때 일단 올해는 글렀고 내년에나 국내에서도 선보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이렇게 전격 출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를 찔린 기분에 잠시 얼얼했지만 손에 들어왔으니 우선 읽어보자. 소설의 주인공 오디 파머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탈옥을 해서 교도소는 물론이고 세상을 벌집 쑤시듯 난리 나게 만든다. 하루만 참으면 되는데 무엇 하러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을까?

 

 

그럼 교도소 수감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남자의 탈옥동기를 추측할만한 단서가 나오겠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오디는 자신을 향한 그 어떤 핍박과 위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7백만 달러를 털아 달아났다가 동료들은 사살되고 혼자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처럼 살아남았는데 흡사 프랑켄슈타인 머리 꿰맨 자국과 비슷한 몰골이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몸소 실천하여 기묘한 처신으로 꿋꿋하게 수감 생활을 버텼던지라 갑작스런 탈옥은 어느 누구도 감지 못했다.

 

 

탈옥은 했으되, 드라마틱한 탈옥과정은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인생은 짧다. 사랑은 무한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는 문구에서 진짜 이유를 이번에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나. 보스의 여자를 탐한 죄.... 목숨만 간신히 부지할 수 있었고 현금 강탈 공범 누명을 쓰고서도 그 사실을 벗어나기 위한 항변조차 시도 않는다. 관심조차 없었다. 대신 그를 쫓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으니, 탈옥자를 추적하는 경찰은 당연하다. 더불어 사라진 7백만 불의 행방을 캐기 위한 무리들의 추적인 줄 알았더니 죽지 않고 교도소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뒤가 구린 세력가들이 따로 있었다.

 

 

혹자는 오디를 앞만 보고 가는 직진남이라고도 부르던데 오직 사랑 하나에 목숨 걸고 묵묵히 전진하는 그에게서 지극한 순정을 발견하는 독자도 있을 테고, 지나칠 정도로 맹목적인 바보같은 남자로 받아들이는 독자 등 호불호가 갈릴만한 캐릭터라고 하겠다어디에도 없을 이런 남자.

 

 

그렇지만 이리 부정해도 이런 남자를 진심 이해해주는 이는 역시 같은 남자일 듯싶다. 사랑 앞에서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그 마음가짐은 고지식해 보여도 불도저 앞에 밀리는 마음, 어쩔 수 없다. 다른 아쉬운 점은 키 작은 여형사 데지레이다. 그동안 단신 콤플렉스에 빠진 여형사 캐릭터 대신에 거인으로 설정해서 사람들이 괴물 보듯 하는 설정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 밖에 마지막 결말로 나아가는 액션 신들은 괜찮았다. 실컷 일을 벌여 놓고 좀 밋밋하게 마무리 짓는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오디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공법이었던 것 같아 그 점은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조 올로클린에 비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여서 상대적으로 시원한 맛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로맨스를 제외하고는 좋았으며,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인물들의 대화에서다른 소설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게 "~데요."가 라면 스프처럼 뿌려져 있다. 역자의 번역이 좀 독특하다. 인물들의 말투는 10대들의 말투같이 풋풋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미묘하고 또 미묘했다. 무슨 의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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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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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을 산다는 것은 길을 걷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출발점에 서서 도착지점에는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도 알 수 없고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중도에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지 그 누구도 자신 있노라 호언장담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에. 더군다나 십대 시절에는 모든 게 불확실하고 모호해서 누군가와 함께 동행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 나가기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주저하고 또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결국 우리는 성장통을 거쳐 어떤 식으로든 어른이 되기 위한 관문을 이미 통과해 버렸다. 훌륭한 성장소설은 그래서 애틋하고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 지지 않나 보다. 어른은 그렇게 되는 것이고여기 한 소녀가 있다. 열세 살의 루 베르티냐크는 천부적 재능이 있어 월반하고 지금은 그 나이에 벌써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소녀이다. 

 

 

 

이런 유형의 아이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나이 많은 같은 반 친구들과 융화되지 못했고 우연히 수업시간 발표 과제 때문에 노숙자를 입에 올린 것은 순전히 순간을 모면하기 위함이었다. 평소 발표하는 것을 싫어하던 루가 노숙자 여자를 인터뷰하겠다고 수업시간에 말한 것을 두고 아차하고 후회했을지는 두고 볼일이다. 

 

 

 

어쨌든 공언한대로 실행에 옮겨야 하기에 퍙서 자주 찾던 기차역에서 열여덟의 소녀인 노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과제 때문에 필요했던 노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신과는 다른 길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노가, 아니 이런 생각이야말로 우리들의 일반화된, 고착화된 편견이겠지만 자신과 더불어 어느 공간에 소속된 것 같다는 동질감이 들었다.   

 

사실 노가 현재 노숙자로 살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의 엄마는 성폭행 당해 원치 않게 출산한 탓에 딸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 대신에 조부모님이 맡아 키워 주셨고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서도 노는 부모님처럼 따르며 자랐지만 언제까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살러간 엄마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냉랭했다. 그리고 노는 집을 나가 노숙자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이차와 상관없이 두 소녀는 금세 친해져 어울리게 되고 같은 반의 문제아인 뤼카라는 소년과 함께 세 사람은 어른들의 간섭과 무지, 무간섭, 그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립된 나날들을 보낸다. 그 순간들의 시간들이 이대로 멈췄으면 했던 이유가 루와 뤼카에게도 가족이라는 가슴 아픈 개인사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루의 엄마는 동생을 낳았으나 아이가 갑작스레 사망한 이후 사고가 정지한 것 마냥 피폐해지기 시작해서 루에게 엄마로서의 애정을 보여주지 못했고 아빠는 그런 아내를 돌보느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뤼카의 경우 부모님의 결별하신 상태여서 집을 나간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애정과 관심이 결핍된 아이들은 교집합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동안 일자리를 구해 보통사람처럼 살려고 했지만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만 노와 계속 그런 동거관계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동안 부모님을 속여 왔지만 이런 생활을 들켜 버렸으니까. 아빠에게 부모님들은 어차피 나 같은 아이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지 않느냐며 울부짖던 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직접 본 것 마냥. 세상은 나에게 노라는 소중한 친구를 선물해 주었고 루와 함께 머나먼 아일랜드로 떠나고 말테다.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목표, 인생의 방향 같은 게 생겼던 루에게 가고자 했던 그 길이 행복했을지는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서두에서처럼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성장소설로는 더없이 뭉클하고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길 위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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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모중석 스릴러 클럽 40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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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마당에 좀 이상한 게 있어요.”

소피아의 말에도 남편 피에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 누구도 마당에 심은 적 없다는 너도밤나무 한그루가 무슨 대수일까? 곰곰이 되짚어 보자면 집안에 무단침입해서 나무를 심었다는 것인데 불안감, 오싹함을 느껴야 정상이겠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때론 무심하게 넘어가기도 하는 일이 다반사이겠다. 독자의 입장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단 말이지.

 

 

원래 작은 의혹을 처음부터 유심히 관찰해서 경계를 제대로 했더라면 미스터리는 아지랑이처럼 일어나지는 않을 터. 남편은 끝내 이 나무의 존재를 신경 안 쓰고 넘어가지만 소피아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웃집 문을 두드린다. 어랏, 다 쓰러져가는 그 집에는 네 남자가 살고 있네. 가장 연장자인 퇴역 형사 방두슬레, 역사학자 세 명 : 방두슬레에 의하면 그들은 마태복음, 누가복음 같은 복음서로 불리 우는 마티아스, 뤼시앵, 마르크이다. 아하, 이래서 복음서 시리즈로 불리는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리 불리는 것에 질색하는 것 같으면서도 체념하고만 그 상황들이 굉장히 우스꽝스럽다.

 

 

이 남자들에게 돈을 줄 테니 나무 밑을 파달라는 부탁을 하는 소피아. 뭐 시체라도 나왔다면 발칵 뒤집어지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고. 헛수고 했다면 투덜대던 차에 실종되어 버린 소피아. 아내의 실종에도 역시 별다른 반응이 없이 무심한 남편 피에르, 그리고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웃녀 쥘리에트, 이모를 만나기로 했다고 아이를 들쳐 업고 찾아온 조카 알렉상드라까지. 소피아의 실종을 두고 여러 사람이 수상하다 싶었는데 실종되었던 그녀가 불탄 차량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 모든 것이 계획적인 살인이었음을 직감하는 사총사  

 

그제야 마당에 심어진 나무는 무언의 경고 같은 상징물이었던 것 같다. 다짜고짜 심어질 까닭은 없는 법, 소피아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함으로서 그녀에게 무지불식의 원한을 품었을만한 상대와 그 배경을 조사하는 사총사의 추리와 캐릭터별 매력이 인간적으로, 유머러스하게도 그려진다. 분명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득을 챙길 사람이 있겠지. 증인으로 나섰던 사람마저 살인당해서 사건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지는데.....

 

 

제목대로 생명력의 상징이자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사수하는 나무가 죽음을 불러오는 무서운사신이 되어 버리는 이 설정은 끝에 가서야 오싹하고 두렵게 만든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답은 항상 가까이에 있지만 단 한번만으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줄은, 또 그 점을 허점으로 노렸다니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 살인동기야 살면서 늘 마주칠 수 있는 사실적인 위협이다 싶다가도 다시 한번 발상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다. 복음서 시리즈가 아담스베르크 시리즈보다 더 다채롭게 끌리는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좀 더 고전적이면서도 노회함을 노련함으로 역이용하는 방두슬레에게서 느낀 아기자기한 재미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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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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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2<눈처럼 희다>에 이어 제3<흑단처럼 검다>가 출간되면서 마침내 완결되었다. 전작에서 사이비종교의 집단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루미키는 조용히 지내고 싶은 바람과는 달리 이제 영웅이 되어 버렸다. 매스컴이든 주변 친구들이든 상관없이 핀란드에서 스타덤에 올랐으니 참 피곤한 세상이다.

 

그래도 루미키를 버티게 하는 힘은 새로운 남자친구 삼프사 덕분에 황홀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도 전 남친 블레이즈가 나타나 다시 옛 관계로 회복하기를 원하며 보채어서 양손에 뜨거운 감자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관계를 청산했다는 판단이 들어 삼프사에게 온전히 올인하고 싶으나 블레이즈에게도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가끔씩 마음인 흔들린다. 이놈의 정.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루미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토커가 따라 붙기 시작한다. 사랑을 갈구하며 모든 것을 꿰고 있노라는 스토커의 메시지는 루미키로 하여금 삼프사와 블레이즈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어쩌면 그 점을 노린, 분열을 노린 스토커의 작전일지도.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토록 그녀를 옭아매는 것일까?

 

때마침 그녀는 학교 연극에서 백설공주역을 맡아 연습에 매진하던 차였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화처럼 왕자님으로부터 구원받는 수동적인 공주가 아니라 자신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기를 바라는 왕자님의 음모와 술수였다는 스토리의 연극이라 반항심 깊고 능동적인 성격의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역이었다고 생각된다.

 

 

스토커의 집착은 더 집요해진다. 그녀의 기억 속에 봉인해두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까지 들춰내면서 정신적으로 정복하려는 스토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이렇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꽁꽁 닫아야 했던 이유를, 그녀의 부모님에게 드리워진 어둡고 우울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루미키는 마음의 상처에 맞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스토커의 정체는 예상대로였으며 오히려 그자가 아니었다면 순수와 잔혹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십대시절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 문제는 피할 게 아니라 정면 돌파할 때 오히려 해결책을 찾아 봉합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삶이다. 루미키는 점점 어른스러워지겠지. 몸도 마음도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안녕 루미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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