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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평점 :
생소한 단어다. 퐅랜이 뭐지? 알고 보니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도시 이름이었다. 메인주에도 퐅랜이 있어 헷갈렸지만 여기는 NBA 퐅랜 트레일 블레이져스의 연고지이자 최근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연고지 이전을 시도할 경우 후보도시 중 한 곳으로 부각되는 곳이라고 하면 그나마 정리가 쉽다.
어떻게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그저 잘 모르는 도시를 찾고 있었다고 할 뿐, 이제 생활이 친숙해진 이곳 퐅랜 찬가를 목 놓아 부른다. 덕분에 퐅랜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어서 관광가이드 책자를 읽은 기분마저 들 정도이다. 비가 내리는 연중 일수가 많음에도 우산 쓰지 않고 다니는 그곳 사람들의 털털함이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타투를 구석구석 달고 다니는 기괴함에 역시 문화의 차이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구나 싶었다.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가 맛집이 아닐까 하는데 작가가 소개한 맛집 중에서 “로즈 VL 델리”의 베트남 국수와 “농스 카오 만 가이”의 닭고기덮밥이 대표적으로 먹고 싶은 메뉴들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단히 설명만으로 홀딱 반한 거다. 맛볼 기회는 영영 업겠지만 입맛만 다셔 본다. 쩝쩝쩝~~~ 해맑게 인사하는 퐅랜 시민들은 보너스로.
먹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던 탓인지 몇몇 명소들도 구미가 당겼다. “파월 북스”라는 서점은 새 책과 헌 책을 합쳐 100만 권이 넘는 엄청난 보유량을 자랑한다고 한다.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키워드이자 이정표 역할까지 수행한다. 무려 거리의 한 블록이 통째로 이 서점이 점령하고 있다는데 그 어마 무시한 책의 향기를 맡아 보는 것도 경이로운 체험이 되겠다.
또한, 재즈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작가가 재즈 마니아다 보니 음반 수집은 취미의 일종인데다 재즈 페스티벌에서 애정과 존경이 느껴지는 따뜻한 공연이었다고 추억할 정도면 제대로 터 잡았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암튼 재즈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재즈에 관해선 문외한이라 깊게 빠져 들진 못했으나, 누구에게나 자신이 좋아하는 그 무엇인가를 원 없이 즐길 수만 있다면 그곳이 지상낙원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이우일 작가와 가족들이 확실히 행복해 보인다.
세계의 도시들이 점점 닮아가고 있다고는 하나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퐅랜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분명히 축복이리라. 날마다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사사로움을 벗어나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퐅랜이 되어라. 아, 나도 떠나고 싶은데, 한국이 싫어서라는 장강명 작가 소설 제목도 갑자기 생각나고. 이게 다 이우일 작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