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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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전 독자모니터의 기회를 주신 비채에 머리 숙여 감사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다른 분들보다 다소 늦게 교정지를 받았던 터라 뒤늦게나마 감상의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독자모니터들에게 주어진 특명 중 가장 막중한 임무라면 오·탈자를 찾아내는 것일 텐데, 먼저 읽으신 분들께서 이미 이 잡 듯 속속들이 찾아내셨으니 지금에 와서는 뒷북치는 일 밖에 되지 않겠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포기하고 읽고 느낀 점으로 바로 넘어 가겠습니다.

 

전작 <스노우맨>에 이은 후속작 <레오파드>는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한데요. 스노우맨 사건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 우리의 해리 홀레는 스노우맨 사건의 여파로 손가락을 잃고 라켈과 올레그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을 그리움에 못 견뎌 만나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실의에 빠져 홍콩으로 도피하듯 떠난 상태입니다. 때마침 고국인 노르웨이에서는 스노우맨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게 되고 강력반 군나르 하겐 경정은 카야 솔네스를 보내 해리를 찾아 데려오게 합니다. 카야라는 이 여경이 해리를 찾아냈을 때 이 남자는 기존의 알콜 중독에다 아편 중독까지 더해 심신이 더욱 피폐해진 상태이네요, 그런 상태에서 처음엔 수사참여를 거부하던 해리는 카야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수사에 다시 참여하게 됩니다. 경찰이라는 이 조직에서 그는 야망 대신 단지 세상의 악을 잠시나마 몰아내고픈 본능에 다시 충실하고 싶을 따름인 것이죠. 이 남자는요.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해리와 동료들은 범인의 살인동기부터 밝혀내고자 하지만 또 다른 악재 두 가지가 발목을 잡습니다. 하나는 강력반과 크리포스란 양대 경찰조직이 강력범죄를 담당할 우월적 치안조직으로써 법무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바로 그 경쟁에서 강력반은 패퇴해 연쇄살인 사건 수사에서 발을 빼게 됩니다. 이에 해리는 강력반발 하지만 결국 크리포스의 수장 미카엘 벨만의 휘하에 들어가 수사를 재개하게 됩니다. 한 편 연쇄살인마는 "백마 탄 왕자님"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며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듯 요령 있게 피해가는데 "레오폴드의 사과"라는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를 이용한 살인이 특징입니다. 계속된 단서 수집과 추리를 거쳐 희생자들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 살인도구의 최초 구입처를 찾아 아프리카 콩고에까지 수사범위를 넓혀 갑니다. 콩고에서의 여정은 <제노사이드>를 부분 연상시키기도 하죠.

 

<레오파드>는 영문 모를 살인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남다릅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동안 단 한 번도 지루할 틈이 없더군요.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흡입력에 압도당했습니다. 그 많은 분량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요 네스뵈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탈고 전에 자신이 쓴 원고를 재차 꼼꼼히 확인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균형 있게 이야기를 분배해야 독자들이 즐겁게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갈까 라며 심사숙고한 끝에 탄생한 역작이 아닌가 싶네요. 인간의 희노애락이 제목처럼 날렵하고 군살 없는 미학적 성취 속에 풍부한 감수성과 센스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마치 인생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읽는 동안 해리 홀레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감정의 굴곡을 겪게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감정이입이란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균형 있는 이야기의 배치라고 한다면 살인마 백마 탄 왕자님"을 잡기 위한 추리와 수사과정, 치안조직으로서 절대적, 우월적 권력을 선점하기 위한 양대 조직의 파벌싸움,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가는 아버지의 여생 앞에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하려는 해리의 인간적인 고뇌라는 3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뼈대를 이루며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상생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물론 범인 검거가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이겠지만 나머지 과제들도 결코 팔짱 끼고 관망해도 될 정도의 수월한 고민들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찰 본연의 임무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크리포스의 수장 벨만의 야심은 비단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군집사회에서 해리 같은 아웃사이더와는 결코 융화되기 어려운 배타적 이질감만 낳을 뿐이라 씁쓸함을 남기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식의 손으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나는 아버지와 그런 소원을 들어드릴 수없는 해리의 선택이 부모와 자식 간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이라는 숙명적 아픔이어서 절절한 슬픔과 눈물 한 방울을 선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백마 탄 왕자님"이 저지른 이 참극도 시작은 가족에서 비롯되었고 이 혈연은 저주받은 피로 씻지 못할 악행을 초래하고 마는데요, 이렇게까지 살인극이 크게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어떤 계기로 광기에 한 번 눈이 멀게 되면 인간은 이성적 해결 대신에 파도에 휩쓸리듯 살인이라는 행위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정당화하고픈 마음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마 탄 왕자님"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억압과 폭력에 시달렸고 그것은 뒤틀린 분노로 이어지면서 살인에 대한 딜레마대신 점차 쾌감마저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스노우맨"과 마찬가지로 증오와 악의는 탐욕과 질투라는 근원적인 원인에서 다시 출발하기에 어쩌면 두 살인마는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여있는지도 도릅니다.

 

그 이유때문이지 병원에 수감 상태인 "스노우맨"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던 것도 단순히 범죄 심리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닮은꼴에 대한 큰 그림을 보기 위한 홀레의 판단이었습니다. 멘토는 해리의 의도를 간파하고 미로를 탈출할 실마리를 제공할 수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렇지만 거래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부탁은 해리가 당사자로부터 거절당하고 이에 상심하는 스노우맨을 보며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가여울 수밖에 없어서 그도 그 순간만은 동정받을 만 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요? “스노우맨”은 경피증 때문에 시한부 삶이라는 것은 전작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테고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간파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암튼 가슴 먹먹합니다.

 

800페이지에 가까운 대장정은 지뢰처럼 복선이 도처에 숨어있고 보물찾기 놀이처럼 찾는 즐거움도 있지만 못 찾아내도 끝까지 달려가다 보면 몇 차례 반전 끝에 포만감 있는 결말로 만날 수가 있는 것이 이번 <레오파드>여서 정말 만족스러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작 <스노우맨>을 뛰어넘는 스케일과 깊이 있는 스타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하반기를 확실히 석권할 대표 스릴러가 아닐까요?

 

그래서 내년 2월경에 해리 홀레 시리즈의 다른 편이 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에 벌써 마음은 그 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시간이동을 해서 미리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몸이 달아올라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10월에나 구입 가능한 <레오파드>를 먼저 읽게 된 것은 행운이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해리 홀레라는 이 남자의 치명적 매력에 즉시 중독되면 해독약은 달리 없습니다. 금단현상이 생겨 숨넘어가기 전에 속히 다음 편을 읽는 것만이 심장박동을 계속 뛰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내년에 신작 출간 전에 이번처럼 독자 모니터를 하실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리 1등으로 사전 예약신청해 봅니다

 

미국에는 마이클 코넬리, 데니스 루헤인, 제프리 디버가 있다면 유럽에는 요 네스뵈가 독보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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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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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이란 책 제목만 들었을 땐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  먼저 연상되고 이것은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으로 다시 회귀하는 듯하다. 기형도 시인은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젊은 시절에 대한 반성과 회한을 남겼다. 자신에 대한 애정보다는 타인이 가진 재능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에 눈이 멀었었다는 그의 고백은 서평 쓰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버거워지기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일이 점차 잦아지는 내게 공감되는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하드보일드 소설들에 대한 이 서평집은 책을 읽고 느낀 바를 글로 옮긴다는 작업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야할 지 좋은 참고가 된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시점이 모여 이 서평집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것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특성보다는 부조리하고 무자비한 세상에선 살아남는 방식에 대한 기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인 특정시점이라는 동일한 흐름으로 반복 재생되는 성향이 없지 않다. 책을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역자후기를 즐겨 읽는 나로서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말이다.

 

다소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을 언급해야겠다그 소설에는 이러한 문구가 나온다. “그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진정한 악은 세상에서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껏해야 양손에 물이 세는 양동이를 하나씩 쥐고 절망의 어두운 시궁창 속을 허우적거리고 다니며 물을 퍼내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문구이면서 이 서평집에서 인용된 많은 문구 중에서도 가장 하드보일드 정신을 함축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이든 가상이든 인간이라는 존재는 악이라는 독에 물들어 비참하고 잔인한 세상으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부당하다고 맞서 봐야 이 단단한 시스템에서는 머리통이 깨져 피만 철철 흘리게 될 뿐, 그 누구도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기에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몸을 낮추든지, 피해 달아나든지 이유를 불문하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그렇게 다른 특별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시종일관 세상을 우울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냉소적 시각만큼은 획일적이긴 해도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만큼은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만큼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용기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내게는 재능이 없다는 가혹하고 무기력한 현실 앞에서 다시 좌절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게도 된다. 그렇지만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고 나 자신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만큼만 짊어지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남들이 먹다남은 고기를 줏어먹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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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스!
햐쿠타 나오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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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알라딘 중고서점엘 들러 진열된 책을 찬찬히 살피던 중에 하쿠타 나오키의 소설 <복스>방금 고객이 판 책코너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 누군지 몰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책을 여기다 팔다니 어지간히 안목이 없구나.’라며 혀를 차는 동시에 어라 이 소설의 분량이 이 정도였었나.’ 라고 새삼 놀라버렸다. 분량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가독성이 좋다는 것. 그래서 650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텐도 아라타의 소설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면 왠만해서 그만한 분량의 일본소설을 읽을 기회가 전무 하다시피...) 작년에 처음, 올해 다시 찾아 읽어버렸다. 그리고 서평은 이렇게 뒤늦게나마 올리고.

 

요즘 스포츠가 관람에서 실제 체험하는 것 이외에 문학의 형태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지라 대세인 아구 소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겠다, 하지만 이 소설처럼 권투라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과연 권투 시합을 글로도 완벽히 재현해 낼 수 있을지,의문스럽고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선입견마저 든다. 도대체 어떻게 글러브가 교차하는 현장을 그려낸단 말인가? 그것은 읽고 나면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거다. 정말 재미있다는 점, 그리고 리얼하다는 점...

 

의문을 일단 덮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햐쿠타 나오키의 소설 복스!’는 고등학교 권투부를 배경으로 챔피언이 되기 위한 소년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그들만의 진한 우정,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소년들이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건강하고 올바른 자아를 확립하고 커나가는 과정들은 어른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비웃듯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열정을 뜨겁게 일깨운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으로도 정상의 자리에 올라설 수는 있는 걸까? 무엇이 이 시절을 쉼 없는 열정으로 인도하는가? 그리고 과연 결과는 행복했느냐며 독자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쥐고 소설을 끌고 나가는 쌍두마차는 기타루와 가부라야이고 얘네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소설에 싱싱함과 풋풋함을 더해주는데 에비스 고등학교 1학년 특별진학반의 기타루는 재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우직하게 연습에 또 연습을 통해 강펀치를 보유하게 된 진정한 노력파. 그에 반해 기타루의 오랜 절친인 가부라야는 체육부 권투부 소속의 천재적인 복서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자만심에 노력을 게을리 하는 상반된 스타일로 대비시켜 소설의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이렇게 상반된 스타일의 두 주인공을 내세워 고교 권투부 시합을 손에 땀에 쥐게 할 만큼의 생생함으로 압도적인 현장 생중계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들의 연승 기록을 막아 설 도내 강자 몬스터 이나무라를 전진 배치시켜 숙명적인 승부의 재미를 맘껏 즐기게 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나무라와의 진검승부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점쳐 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또 하나의 포인트라고 하겠다. 불꽃 튀는 명승부 속에서 현란하면서도 순간 전율케 하는 권투 기술이 만들어낸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훈이라는 것을 모두가 가슴 속에 심으며 1장의 막은 내려간다.

 

그렇게 시합이 끝나고 다시 1년이 지나고 다시 세월이 흐른 뒤 권투부원들이 졸업해서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공백은 후배들이 물려받아 뒤를 잇게 되고 기타루와 가부라야가 전설로 남는다는 후일담은 후회 없는 그 순간들을 살았던 청춘들에게 보내는 최상의 청춘찬가이자, 뜨거운 스포츠소설의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극적인 소재나 전개 없이도 체험하고 싶다면 이만한 작품은 드물기에 비정한 승부를 착하고 우직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오늘을 즐기고 충실하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스>2009년 일본 서점직원들이 선정하는 서점대상 베스트5에 올랐고 일본 TBS ‘왕의 브런치에서 매년 말 선정하는 브런치북 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치하라 하야토, 고라 겐코, 가시이 유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지만 솔직히 영화는 원작의 진솔한 쾌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지루한 범작이었으니  원작만한 것은 역시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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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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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 이그나티우스는 전날 밤새 부어라 마셨고 다음 날 아침에 숙취로 머리 지끈한 상태로 일어났더니 머리 양쪽에 돋은 뿔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전날 밤에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다지만 뿔이 상징하는 악마적 상징성을 감안했을 때 신이 그에게 가한 형벌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뜬금없는 변신이다. 이렇듯 뿔이 생긴 배경과 이유 등을 과감히 생략한 채 바로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되는 인상적인 도입부는 이 소설을 지루하다 느낄 겨를이 없이 이야기의 힘에 매료되어 굴복 당하게 만든다.

 

그런 뿔은 언뜻 전형적인 형벌 같기도 하지만 이그에게 부여한 힘으로 인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선물이자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이중성을 내포한다. 그 점은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는 카프카의 명언처럼 헤어진 여자 친구를 성폭행 한 후 살해한 누명을 쓰게 된 이그에게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세상을 향한 원망과 악의로 가득한 활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처음에 그 힘의 위력을 깨닫기 전까지는....

 

여기서 뿔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이란 상대방과의 신체접촉 시 그 사람의 추악한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고 이그와 만나는 순간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추악한 속내를 양심고백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도록 하는 불가사의한 마력이다. 어찌 보면 굳이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의 위선과 기만은 이그를 점차 불행에 빠뜨리게 되는데 아무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저주하고 혐오하고 있었다는 사실, 특히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들마저 등 돌리고 외면하게 되었을 때 그가 느꼈을 상실감과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남게 된다. 그것이 너무나도 잔인한 순간이라 독자의 입장에서는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오는 불편함과 당혹감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이쯤에서 가족 내 이그의 존재에 대한 부재와 소외감에서 느꼈던 쓸쓸함은 이윽고 살해당한 여친 메린이 이그와의 관계에서 권태와 속박을 느껴 다른 남자와의 새로운 만남을 원했다는 또 다른 진실과 치환되어 쓸쓸함이 분노와 좌절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한 몸에 짊어진 것 같은 이그의 가혹한 행보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현실과 몽환적 세계를 넘나들며 최악이라고 믿게 만들었던 진실들이 어느 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끊임없이 마음을 뒤 흔들더니 끝내 최후의 진실과 조우하는 순간은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극적인 감동에 다다르게 한다. ! 강렬한 사랑을 펼쳐 보이기에 이만큼 최적화된 소설은 찾기 힘들 것 같아.

 

어쩌면 뿔이 가진 악마성과 대척점을 이루는 메린의 목걸이가 보여준 구원이라는 상징성이 이 같은 결말로 안내하기 위한 복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것이고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자로서의 메린의 헌신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이 뒤 바뀐 한 남자의 운명적인 이야기는 불면의 밤을 달래 줄 궁극의 수작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 로맨스가 다채롭게 조화된 비빔밥으로 무척이나 맛있다.

 

그렇게 글 속에는 무수한 상징적인 은유들이 담겨있고 그것들의 의미를 이해해가는 과정들도 퍼즐풀이 마냥 기묘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가슴시린 여운이 남는데 잊지 못할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애틋함과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써내려간 조 힐은 아버지의 후광에 기대지 않더라도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한 재능을 멋지게 뽐냈다. 아마 <스노우맨> 이후 올해 출간된 비채의 신작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작품일 듯 싶다.

 

마지막 여담으로 비채에서도 뿔이 양족 2개인 것을 감안했는지 센스 있게 책도 2권을 보내주었는데 비로소 책 속에 뿔이 우뚝 설 수 있게 되어 맘이 흡족하다. 그리고 이벤으로 같이 받은 뿔 머리띠는 잘 때 쓰고 자니까 꿈자리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좋아 ㅎㅎ 좋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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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1
황태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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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이란 장르 자체가 장르문학에 관해선 열악하고 척박한 국내현실을 감안한다면 보편적으로 인지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싶다. 이번처럼 <아버지들의 죄>와 함께 우수 서평자에게 증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더군다나 한국형 좀비소설이라니 생경하지 않은가? ! 그렇다, 상반기 중에 <웜 바디스>로 생애 최초의 좀비소설을 이미 접한 적이 있었지. 당시에는 좀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발상 자체가 신선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읽는 좀비문학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1회 당선작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2회 당선작과의 비교는 불가할 터이고 해외 좀비물들은 영상으로도 그렇고 <웜 바디스>의 경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을 닮아가는 좀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이번 당선작들은 한국사회의 내부에서 빚어지는 계급구조의 파생적 변화와 갈등 등이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비와 인간과의 대결구도 같은 액션 시퀸스가 아니라 고립된 공간과 심리에 분열을 꾀하는 장기말 같은 도구로 좀비가 활용되고 있어 다분히 정적인 기운이 강한 것도 이채롭기는 하다. 그래서 좀비보다 더 두렵고 끔찍한 존재는 인간 그 자체라는 메시지도 여전히 유효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들이 도심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한 4층 건물에 일곱 남녀가 고립되어 있다. 외부에서 좀비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면서 이들은 한 번씩 옥상에다 헬기로 공수하는 비상식량에 명줄을 부지하고 있는 현실, 식량을 둘러 싼 독점과 분배문제가 불거지면서 작은 신체를이용하여 유일하게 좁은 통로를 드나들며 식량을 내부로 공수하는 성국, 그에게 빌붙어 얻어먹으려는 사람들, 성국이 식량을 빼돌리지는 않는지 의심하는 종수와 그의 연인 희원, 나중에 좀비를 피해 건물내부로 피신한 모자까지 각자의 처지에 따라 관계를 맺었다가 끊기도 하면서 계급과 권력의 서열이 돌고 돌아 쳇바퀴를 돌기 시작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그들에 의해 인간군상의 변화가 보여지면서 한정된 공간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평상시에는 핸디캡이 되었을 성국의 왜소증이 작금에 와서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권력서열을 역전시킨다는 설정도 다분히 재치 있는 도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변치 않는다는 설정만큼은 여전히 씁쓸하면서도 기억의 단면에 획을 긋고 끝낸다. 수록작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연구소 B의 침묵>은 좀비물로써 보편적인 취향과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일 것 같다. 다른 수록작들이 좀비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만큼은 좀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요리재료로 삼고 있다, 친구라는 관계와 그 속에 잠재해 있는 콤플렉스, 오만함, 이해 타산적 처신 등에다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접목해서 삐뚤어진 집착과 광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자신을 실험도구로 삼아 좀비 테스트를 시험하는 과정들은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라는 자문자답에 일침을 놓는다. 인간과 좀비의 경계를 이슬아슬 하게 넘나드는 두 남자의 시도는 그래서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호불호가 엇갈릴 듯하다. 무모하거나 신나거나.....

 

그 밖에 <나에게 묻지 마><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닥 인상적인 작품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나에게 묻지 마>는 좀비의 창궐을 도시가 아니라 농촌으로 옮겨 구제역과 교묘히 엮은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했지만 스토리의 흐름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얼개가 느슨해지고 장황한 맛이 있어 아쉬웠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냥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순애보에 그쳐 왜 좀비물로 차용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평범하고 단순했다. 선정작 중 하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흡사 별이 빛나지 않고 지는 밤의 분위기에 모든 것이 고즈넉이 가라 앉아 바닥을 쳐 버린다.

 

그렇게 해서 한국형 좀비문학의 현 주소를 과감 없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좋은 착상을 끝까지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 속에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으니 해외 좀비문학과는 차별화된 고유의 색깔들을 잘 살려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 좀비문학의 소재적, 주제적 한계는 어디까지 가능한지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작가들의 고민이 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좀비 자체를 무대의 중앙으로 불러내어 한 바탕 풍악을 울리는 화끈한 소동극도 만나봤으면 한다. 금기와 영역을 극복한 보다 역동적인 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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