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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ㅣ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평점 :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이란 책 제목만 들었을 땐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 먼저 연상되고 이것은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으로 다시 회귀하는 듯하다. 기형도 시인은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젊은 시절에 대한 반성과 회한을 남겼다. 자신에 대한 애정보다는 타인이 가진 재능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에 눈이 멀었었다는 그의 고백은 서평 쓰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버거워지기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일이 점차 잦아지는 내게 공감되는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하드보일드 소설들에 대한 이 서평집은 책을 읽고 느낀 바를 글로 옮긴다는 작업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야할 지 좋은 참고가 된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시점이 모여 이 서평집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것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특성보다는 부조리하고 무자비한 세상에선 살아남는 방식에 대한 기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인 특정시점이라는 동일한 흐름으로 반복 재생되는 성향이 없지 않다. 책을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역자후기를 즐겨 읽는 나로서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말이다.
다소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을 언급해야겠다그 소설에는 이러한 문구가 나온다. “그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진정한 악은 세상에서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껏해야 양손에 물이 세는 양동이를 하나씩 쥐고 절망의 어두운 시궁창 속을 허우적거리고 다니며 물을 퍼내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문구이면서 이 서평집에서 인용된 많은 문구 중에서도 가장 하드보일드 정신을 함축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이든 가상이든 인간이라는 존재는 악이라는 독에 물들어 비참하고 잔인한 세상으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부당하다고 맞서 봐야 이 단단한 시스템에서는 머리통이 깨져 피만 철철 흘리게 될 뿐, 그 누구도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기에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몸을 낮추든지, 피해 달아나든지 이유를 불문하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그렇게 다른 특별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시종일관 세상을 우울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냉소적 시각만큼은 획일적이긴 해도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만큼은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만큼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용기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내게는 재능이 없다는 가혹하고 무기력한 현실 앞에서 다시 좌절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게도 된다. 그렇지만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고 나 자신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만큼만 짊어지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남들이 먹다남은 고기를 줏어먹게 될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