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니와 몬스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들은 흔히 메디컬 엔터테인먼트라는 장르로 흔히 불리고 있는데 솔직히 그 의미랄까 정의에 대해서는 확고한 정립이 되어있지 않는 상태이다. 작년에 <울트라 황금지구의>로 그의 소설을 처음 만나보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오해를 먼저 하고 읽게 된다. <울트라 황금지구의>만 해도 그랬다. 그냥 의학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왠걸 가상의 도시 "사쿠라노미야"에서 벌어지는 코믹 범죄극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가볍게 쓴 소설이라고 했는데 한없이 대중적인,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적인 가치관에 부합하는 소품 같은 느낌이어서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두 번째로 읽은 <나니와 몬스터>는 또 한 번 나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시작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끝맺음을 했다는 점에서 또 당했구나, 라며 쓴웃음마저 짓게 된다.
몇 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 인플루엔자 AI에서 착안했다는 이 소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에 자리 잡은 사막 공화국 "노르가르 공화국"에서 발생된 “캐멀”은 낙타를 변이의 숙주로 한 신종인플루엔자로서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일본은 "캐멀"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공항을 차단방역하고 혹시라도 모를 사태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캐멀파인더"라고 하는 신속 검출 키트가 몇 개 지역에 한해서 배분된다. 일본에 들어오지도 않은 질병에 대해 정보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도는 것도 수상한데다 키트가 전국에 배분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지역에 배분된 점도 어딘지 수상하다.
그런데 안전지대라고 판단되었던 일본에도 이윽고 감염자가 발생된 것으로 밝혀지는데 그것도 인구 8백만을 자랑하는 일본 제2의 도시 "나니와"시에서 말이다. 도시는 이제 격리되고 도시의 생사여탈권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의료계간의 위험한 딜이 시작되려 한다. 일반시민들은 알지 못하는 뒷거래와 그 배후가....
"그래. 신은 지구에게 바이러스 같은 존재인 인간을 진압하기 위해서 여러 실험을 하고 있어. 그 항인간약제 개발을 위한 모르모트로 하늘을 나는 새와 사람 가까이에서 식량이 되어주는 충실한 돼지를 선택했지. 그리고 이번에는 사막의 배라고 불리는 낙타를 매개체로 선택했어.
신은 사막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p.180)
해외여행객이 아닌 순수 국내거주민에게서 "캐멀" 1호 환자가 “나니와 진료소”에서 발견된 이후 “나니와 검역소”의 검역관 “기쿠니 다다요시”와 신입직원 “모리 도요카즈”는 “나니와” 부의 지사 “무라사메 고키”의 호출을 받아 간 저리에서 사쿠라 TV의 인기프로그램 <싹둑 베어버릴테다>에 출연해 나니와 대학 부교수 “혼다 미쓰코”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나니와"를 경제적으로 붕괴시키려는 저의를 격리라는 방식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그녀의 주장을 두 콤비는 멋지게 한 방 먹이고 반론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는데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캐멀"로 인한 논쟁은 사소한 미끼였을 뿐 “무라사메 고키” 지사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세력은 도쿄 중심의 중앙 통치 방식에 반발해 일본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대통합이라는 일단계를 넘어 일본 삼분할이라는 계책을 수립하게 된다. 행정적인 독립을 통해 진정한 의료 입국을 꿈꾸는 이들의 발상은 전적으로 중앙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서 발로된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발상은 실제로도 일본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고 하니 소설 속 표현처럼 역도들의 반란음모 정도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하는 것은 늘 전례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는 관료들입니다. 그들은 비굴하고 독창성이 없어요.
애당초 성격이 그렇게 형성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씀하실 것까지야.”
무라사메가 반론을 제기하려고 하자 히코네는 시니컬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닙니다. 관료들은 그렇게 되지 않을 없는 구조에 짓눌려 있을 뿐입니다. 전례에 따라 처리하는 방식은 새로운 방식을 가로막죠. 선배에게 칼날을 들이대지 않으면 낡은 것을 깨부술 순 없어요.
관료 시스템의 폐악입니다.” (p.467)
메이지 유신 시절 “료마” 같은 유신지사처럼 근대화 이후 새롭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변혁의 꿈은 이론의 도입으로만 우선 간만 보고 이야기는 끝난다. 본격적인 실천과 그 행보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향후가 궁금하기만 한데 <울트라 황금지구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출발과 지향점은 “사쿠라노미야” 시에서 시작되는 것, 그것이 “가이도 다케루”가 주장하는 "사쿠라노미야 월드"의 핵심사상인 듯하다. 비록 완결되지 못한 이론이지만 마치 정치·경제이론 입문서를 보는 것 같은 명쾌하고 장대한 이들의 사상은 가상이지만 충분히 흥미로워서 귀가 솔깃해지는 대목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가이도 다케루”가 지향하는 의료입국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이라는 외국의 현실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전적으로 동조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특히 작가가 의료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에서 바라보는 의료 개혁은 그것이 진정 환자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한 정책인지 관료에게서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에 불과한 이기주의인지는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의료계의 부정부패에도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는 자기반성적 성찰도 있었으면 더 없이 공정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다 모든 책임을 한 쪽으로 전가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그리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의료현장에서 출발해 정치계로까지 스펙트럼을 확장한 “가이도 다케루”의 주장은 급진적이면서도 현실이 낳은 불합리함을 개혁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 방편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가 과연 공명정대한 이론가인지는 메디컬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그의 나머지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직 “가이도 다케루”에 대한 호불호의 판단은 유보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