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9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9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순간에도 나의 사명은 간섭받지 않는다.

 형사이든 아니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은 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에겐 더 이상 총도, 배지도, 뒤를 받쳐줄 동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4년 전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살인 사건을 뒤짚어가는

탐정 해리 보슈의 첫 번째 이야기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크라임 소설의 마스터 마이클 코넬리"해리 보슈" 시리즈를 아직도 읽어본 적 없거나 잘 모르겠다는 독자 층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쿨한 작가를 외면할 수 있을까라며, 속으로 비난 아닌 비난을 할 때가 있다. 특정작가에 대한 고유의 취향은 개인의 선택이지 그 누구도 강요할 일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마이클 코넬리라면, 해리 보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의 반사신경을 나타내고 있으니 아무래도 단단히 빠져있는 듯하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탄환의 심판" 이후로 해리 보슈는 구경하기 힘들어졌고 그 텀이 상당히 길어져서 애태우더니 결국에는 새색시 마냥 수줍게 문을 열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 ! 어찌나 그리웠고 반갑던지... 그 설레이는 맘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그런 흥분들을 점차 가라 앉혀본다. 해리 보슈 시리즈로만 따진다면 아홉번째에 해당되며 전작 "유골의 도시" 이후 해리 보슈가 경찰을 그만두고 독자적인 수사활동을 벌이는 시기를 담고있는 이번 이야기는 조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맴도는 그가 어딘가 연약해 보이면서 쉽지않은 결단을 내리는 강단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부러질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겠노라는....

 

들라크루아 가의 한 어린 소년의 유골이 발견된 비극적 사건을 해결하면서 무고한 용의자를 희생양 삼아 공적에 이용하려는 무능한 경찰조직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악에 대한 승산없는 승부 속에서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떳떳하고 싶어했던 해리 보슈는 출세라는 동아줄을 잡지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을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간 자신이 수집해둔 과거 미결 사건들 중에서 해리 보슈는 4년 전 발생했던 영화사 여직원 살인사건을 다시 수사하기로 하는데 강도에게 성폭행 당해 살인당한 것처럼 보였던 그 사건은 얼마 후 마피아의 검은 돈을 훔친 여성도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촬영 도중 일어난 현금강탈 사건과 연계된 것으로 의혹을 받았던 적이 있다.

 

가짜 돈 대신 리얼함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던 감독이 진짜 현금 2백만 달러를 은행에서 빌려 촬영 후 반납하기로 약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강도단이 들이닥쳐 총격전 끝에 돈을 들고 달아났던 것이다. 두 사건의 고리를 찾아보던 해리 보슈에게 동료경찰들과 FBI까지 그의 수사를 방해하고 손을 뗄 것을 강요한다. 탄압이라는 압박.....

 

30년 가까운 세월을 국가 조직 안에서 살면서 외부 세계와의 고립을 심화시켜왔고 '우리와 그들'이라는 윤리관을 발전시켰다.

정의 실현 광신도 집단이었던 나는 거기서 잘려나와 바깥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우리'의 일원이 아니라 '그들'의 일원인 것이다. (P.30)

 

 

 

 

경찰배지를 반납한 해리 보슈에게 LA경찰의 일원이 아니라는 현실은 공권력에 기대지 못하게 된 한 남자의 험난한 분투가 생각만큼 쉽지않은 일임을 깨닫게한다. 관용차량도 제공받을 수도 없고 수사를 위한 주요정보에 접근하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니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이란 이런 상황일 것이다. 확실히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자가 겪게되는 정신적 고립상황은 해리 보슈와 옛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오랫만에 재회하게 된 후배 키즈민 라이더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강력반 파트너라는 관계와 진로방향이 해리 보슈의 독단으로 깨어진 것에 분노를 표시하는 그녀에게서 영리하고 똑 부러져서 호감이었던 과거 속의 참한 이미지가 사라져버리고 이해득실에 집착하게 된 세속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도 미약한 실날로 지탱되고 이어져있음을 되새겨보는 게 그리 놀랄 말한 일은 아닌가보다. 그렇게 변하는 게 사람, 사람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누구보다도 환상의 복식조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했던 해리 보슈키즈민 라이더의 날선 관계가 다시 원만해졌으면 좋겠는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해리 보슈의 심경변화와 그녀에 대한 진심어린 설득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돌아 선 키즈민 라이더의 마음을 온전히 되돌리는 건 순전히 해리 보슈의 몫이니까.

 

나는 단발이론의 신봉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 여러 번의 정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기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이 총알에 맞은 행운아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영광의 상처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소위 단발이론이다. (P.144)

 

"트렁크 뮤직""보이드 문"이 에피소드처럼 은근슬쩍 소개되는 소설 속 사건은 애초에 인간의 헛된 망상에서 비롯된 예견된 위협이었고 돈을 두고 저지르는 배신의 난무와 한순간에 행복이라는 열차에서 굴러 떨어져야만 했던 안타까운 죽음도 있는가하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못한 채 타인을 도구로 이용만하려는 편협된 이기심까지, 모든 것이 빛이 없는 동굴 속이다. 그렇게 절망이라는 어두운 시궁창을 허우적거리기만 하다 끝에 가서는 달관하고 자조하게 되리란 것이다.

 

해리 보슈에게는 이러한 사건들이 언제나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면서 상처와 회한만을 남게 할 뿐이었다. 이 세상이 잃어버린 빛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목이 의미하는 "로스트 라이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해리 보슈는 언제나 외롭고 고독했다. 3인칭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해리 보슈를 제일 힘들게하는 건 언제나 전처 엘레노어 위시와의 단절된 관계였고 그를 끊임없이 시험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은 그동안 그에게 내린 처사가 가혹했었다는 후회가 있었을까? 이전에도 스쳐간 여자들이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총알 한 방이 깊숙이 관통한 해리 보슈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축복이자 선물이 마지막을 후끈한 감동으로 달군다. 어둠 속 동굴에서 분노의 감정을 밀어내고 따스한 물결로 상처를 씻어내고 그가 잃어버렸던 빛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 순간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알았고, 마음 속에 다함이 없다는 걸 알았다고 고백하는데 얼마만에 찾아 온 행복이련가, 악마가 시샘하여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앗아가지나 말아야 할텐데.... 지금까지 해리 보슈의 여정을 빠짐없이 따라왔던 독자라면 정말 잊지못할 엔딩이 될 것이다.

 

그는 미소짓고 마침내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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