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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ㅣ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추리/스릴러 소설만이 아니라 만화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장르인데 최근 웹툰에도 점차 관심을 늘리고 있다. 종이 책에서 e-book이라는 제본형식의 점유율이 변화하고 있는 이유는 판매량의 감소와 함께 원자재 상승도 무시할 수 없기도 할 것인데 빌려 본다는 인식이 더 강한 만화에서는 웹툰은 일반 장르소설에 비해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더욱 선호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자 현실일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지도 모른다. 인기 웹툰들은 한해에 수억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고 연재된 작품은 책으로 묶어져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가운데 초대형 히트작들은 드라마, 영화나 연극 혹은 뮤지컬로 각색되면서 콘덴츠 고갈에 시달리는 대중문화계에 소중한 자양분을 구축한 것이다.
"슬램덩크"의 단행본을 모으던 시절은 더 이상 도래하지 않을 것이며 그 당시의 기쁨과 설레임은 과거 속의 추억일 뿐이다. 물론 지금도 만화방은 출입하고 있다. "더 파이팅", "열혈강호", "사상 최강의 제자 켄이치"같은 작품들이 현재 열렬히 애호하고 있는 만화들인데 웹툰으로 관심을 돌리자면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되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여기 소개하는 "미생"이 역시 애호하는 웹툰들이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헌혈 상품으로 받았다. ABO Friends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정기적으로 헌혈에 참여하고 있는데 컬처 피크닉 시즌4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고 보니 헌혈에 대한 보람은 물론이요,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한 인연도 되새겨 보게된다. 영화 "이끼"를 먼저 본 후에 웹툰을 정 주행했는데 강우석 감독의 연출력이 구린 탓도 있었지만 확실히 원작이 더 강렬하고 후덜덜 했었다. 이후 작가와 웹툰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던 차에 이번에 본 "미생"은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느낌이 팍 팍 오더라.
인생은 거대한 바둑판
그 위에 던지는 오늘의 한수!
새벽같이 일어나 기보 책을 보며 혼자 바둑돌을 놓아보던 아이는 열한 살의 나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를 꿈꾸지만 7년 만에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나서게 된다. 인생 제2막의 시작!!
검정고시 출신 고졸이 후견인의 백으로 취직하여(낙하산이란 말씀) 특기도 없지만 박 터지는 업무를 수행하며 숨 가쁘게 돌아가는 종합상사의 인턴사원으로, 그리고 계약직이지만 정식 사원이 되기 위해 경쟁이라는 전투를 치르고 있는 청년 장그래의 입사기를 담고 내고 있는 것이 이번 1권이다.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라는 경력 말고는 가방끈도 짧고 일반직으로 들어가기에는 자격미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기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보직에 적재적소 배치되겠지만 하이얀 백지상태의 사원은 모두에게 낙하산이란 딱지가 붙는다는 뼈아픈 지적은 장그래에게 처음의 호의는 의구심으로 차차 불편한 편견으로 이어질 수밖에는 필연의 과정들이다. 그 점을 모를 리 없는 장그래가 이제 더 이상 바둑처럼 실패하지 않겠노라고 자신에 허락된 불빛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다짐 앞에서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를 본받으라며 무언의 독려를 보내고 싶다.
그가 가진 장점이라면 우유부단해 보일지도 모를 신중함과 통찰력, 그리고 바둑을 통해 배운 집중력이다. 장그래가 만난 상사들은 다행히도 합리적이고 부하직원에 대한 배려를 할 줄 한다. 욕 먹어가며 일을 배우면서 동료인턴들과 정식 입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피 튀기는 입사 P·T 시험을 거치는 중이다. 세상은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친절하다고 오산했지만 곧 그것이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 뒷통수를 치고 있음을 깨닫고 맘을 고쳐먹는다. 한석율 같은 캐릭이 그랬다.
자신은 회사에서 절대로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라서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큰 소리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료들에게 폭탄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분이다. 심지어 사장이랑 밥도 같이 먹은 사이라고 떠벌이는 한심한 존재이다. 팀 P·T 발표를 같이 할 파트너로서 모두가 만만한 장그래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고 그와 한조가 되어 상대적으로 돋 보이고자하는 꿍꿍이가 한석율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녀석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서 자신의 것으로 보충해 살아남고자 하는 더러운 기생충 같은 놈이다. 장그래가 만든 PT를 보고 다시 하라고 말한 이유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기에 장그래는 바둑의 정석대로 선수를 치기로 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쟁해야 할 상대가 어떡하든 내게 배신을 때리고자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는다. 상대의 행보가 수 읽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대신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영역을 점차 키운다. 조화를 중시하여 순리대로 흘러가며 앞날을 대비하되 발톱을 숨기는 것, 바둑에서 배운 행마를 가져가는 방식을 장그래는 선택한다.
"그리고... 너 몇 살이냐?"
"네...?"
"말 안 할래?(이 좀만이가...)"
-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낸 장그래의 반격. 멋지다. -
그래서 모두가 뒤에서 비웃고 쑥덕거리는 누클리어 밤의 조화가 어떠한 산물로 빛을 발할 지, 장그래는 이러한 악조건을 딛고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에서 살아남은 자가 될 것인지(당연히 되겠지만...) 차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기대가 크다. 그리하여 바둑과 직장생활의 교집합이라는 이색설정을 통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재미와 교훈을 전달하는 "미생"은 현존 최고의 웹툰임에는 분명하다. 인생이라는 백지를 그려낼 장그래!!! 여성인턴 안영이도 속을 알 수 없지만 은근 매력있는 인물중 한 명인데 설마 러브라인은 없겠지. 어쨌거나 인터넷에서 계속 정주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