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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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관 시리즈> 전 권 인증 이벤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전에도 "신본격 추리"의 기수중 한 명으로 아야츠지 유키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왔으나 당시에는 읽어보고 싶다는 간절함은 들지 않았던 것이 시리즈 전 권 인증샷 응모 열기를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지금이 적기라는 신호에 올초 <기면관의 살인>으로 드디어 <관 시리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우선 신간으로 만나보고 맘에 들면 나머지 시리즈도 차근차근 찾아 읽어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읽은 <기면관의 살인>은 나카무라 세이지의 기이한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악몽같은 상황들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호감도를 바탕으로 이 시리즈의 실질적인 최고작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시계관의 살인>을 읽었다.  

 

 

대츠노시마에서 벌어진 <십각관의 살인> 이후, 가와미나미는 가마쿠라에 있는 "시계관"이라는 저택에서 소녀의 원혼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정체를 파악하고자 월간지 "카오스"의 직원들과 W 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들, 초능력자 고묘지 마코토와 함께 시계관으로 초대받아 들어간다. 우연의 일치인지 "십각관"의 악몽이 잊혀지기도 전에 "시계관"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건축물이었던 것.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탑, 구관과 신관으로 구성된 시계관, 죽은 소녀의 원혼과 교신하는 교령회가 열릴 장소는 그 중에서도 구관이다. 108개에 달하는 많은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시계의 시간대를 상징하는 12개의 방과 시계추의 모양같은 "진자의 방"이라는 특이한 방을 갖춘 곳이다. 그런데 교령회가 종료된 후, 일행 중 실종자가 발생하고 참관자들은 차례 차례 시체로 발견된다.  

 

 

<시계관의 살인>을 읽고난 소감은 <기면관의 살인>보다는 몰입도 면이나 트릭, 반전, 그리고 뒷 이야기까지 모든 면에서 더 재미있었다는 확연한 느낌이다. 조금 미적지근하게 사건이 중단되고 만 것 같았던 <기면관의 살인>과는 달리 <시계관의 살인>은 일단 살인이 최대한 발생 가능한 부분까지 진행된다는 점에서 두터운 페이지를 의식하지 못할 만큼의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그것은 나카무라 세이지가 각처에 지어놓은 기괴한 건축물들이 구조자체도 놀랍고도 기이하지만 그 건축물들의 설계를 의뢰한 소유주들이 하나같이 숨겨진 사연들이 많고 병적인 집착이랄까 소유욕 또는 망상 같은 증상을 앓고 있던 인물들인지라 그들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일정부분 해소하고 분출하는 무대같은 개념을 건축물들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항상 피비린내는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들은 악몽이 되어 실현되니 보이지 않는 원념들이 운명처럼 덫을 치고 참관자들을 사육하고 있는 가축처럼 영문도 모른 채 도살장에 끌고 갈 준비를 하나보다. 애시당초 발을 들여 놓지 말았어야 했거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들에 기묘한 끌림을 느끼고 있는 시시야 가토미만큼은 이 초대장은 거부할 길 없는 강렬한 유혹이다. 번 <시계관의 살인>의 등장인물들에 담긴 사연들은 인간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면이 많은데 시계관의 선대 주인 고가 정계사 회장 고가 미치노리는 시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괴인같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만큼은 다른 가장들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가 누리지 못한 가정이라는 행복을 물리적으로, 인위적으로 연장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왠지 이 남자는 무척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딸의 죽음에 얽힌 사연들은 그래서 동정과 연민들이 들지만 반전이라는 키워드를 쥐고 있는 은밀한 카드이기도 하다. 살인마는 살인동기를 추측컨대 두 사람으로 압축, 추정되지만 살인동기의 발단으로 알고 있는 일련의 사고는 세간의 이목을 호도할 뻔한 절묘한 눈가림으로 이용되면서 범인의 정체는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간다.  

 

  

살인수법에 대한 트릭은 또 어떠한가? <관 시리즈>를 두 번째 만나면서 이제는 이 시리즈에서 패턴화된 트릭을 어렵지않게 눈치채게 된다. 논리가 아닌 어떠한 물리적 안배는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게임이 아닌 변칙플레이라는 깜짝 카드가 되면서 혹자에 따라 실망과 반발, 나머지 시리즈의 전개에 대한 예측가능이라는 자충수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즐기기엔 문제가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적재적소에서 익숙한 패턴을 어떤 매뉴얼로 활용했는지에만 관심을 두면 되니까. 또한 예상했던 인물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이었다는, 범인의 의외성은 당연히 또 다른 트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를 때는 갑갑하지만 알고보면 기발하면서도 시계관의 특성을 감한하면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 감탄스럽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염두에 둘 필요도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되었고 인간의 하루는 그것의 엄격한 지배를 받게 된다. 인간은 이 메커니즘을 측정하고 지배하고 있단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그것의 활용방식이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모두 구속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이 트릭이야말로 착각을 역이용하고 있는 멋진 시도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가 회장이 시계관에 배치해둔 안배의 실현과정들은 여타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스펙터클한 스케일이 장관이라 눈 앞에서 그 장면들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모든 면에서 추리소설을 읽는 기쁨을 배가시키는 각종 시도와 장치들은 충분하다. 쓸만하다.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인물의 사연을 뒤따라가면서 사건의 트릭에 치중하는 시시야 가토미식 추리는 지적인 게임을 선호하는 독자들을 최적으로 만족시키는 야심찬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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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 법정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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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라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마술 또는 주술·심령 등과 같은 비합리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최근의 문화장르를 일컫는 말이다딱히 선을 그어 명쾌하게 정의내리기도 애매하니 현실 세계의 불안한 심리를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 이성과는 정면 배치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컬트에 대한 과도한 탐닉과 번성은 이 사회가 정신적으로 현실도피 해야 할만큼 구조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징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런 오컬트가 추리소설과 만난다면, 게다가 보너스로 현장이 밀실이라면 궁합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걸 기존의 추리소설들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는 물론이요, 미쓰다 신조 식 호러도 다 밀실 수수께끼와 불가능 범죄의 대가이자 오컬트 미스터리의 대가이기도 한 존 딕슨 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심지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서도 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더라. “시계관의 살인에서 시시야 가토미가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인 후쿠니시 료타에게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물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카를 공통적으로 떠올리는데 이만하면 가히 전 방위적인 입지로다.

 

 

그런 까닭인지 화형법정은 카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대표작 중 하나로, 역시 밀실 살인을 기본으로 사라진 시체, 벽 속으로 사라진 여인 등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도 놀랍지만 유럽의 실제 역사를 꺼내 들어 죽은 인물이 살아 있다고 해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만드는 연출 방식은 특별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17세기 악명을 떨친 희대의 독살범 '브랭빌리에 부인'이나 루이14세 때의 마녀 사건으로 유명한 '몽테스팡 부인' 같은 인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소설을 위해 가공된 인물로 오인하기 쉬운데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믹스함으로서 소설의 분위기는 진실에 대한 계속된 오판으로 몰아가는데 성공했다고 인정해 주자.  

 

 

미국출신이지만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연출력은 완전범죄를 더욱 믿게끔 만든다. 완전과 불완전함의 경계 사이에서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결말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두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독자들의 평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모두가 과학적 해석이 가능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밀실트릭은 숨겨진 비밀통로와 기계장치나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빚어내는 착시현상 등 해법이 정확히 제시되는 문제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과학과 논리의 힘으로도 해결 못 하는 현상도 분명 존재한다. 수학문제도 풀 수 있는 게 있고 못 푸는 문제가 있듯이...

 

 

에드워드의 아내 마리는 말한다. "가봐야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거야." 라고. 마일스가 독살되었다는 전보를 들고 저택을 찾아온 경찰 '브래넌'과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내 마리. 사건이 안개 같은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깜짝 등장하는 작가까지 하나의 의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막고 배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갈등과 의심을 최대한 증폭시켜 나간다. 

 

사라진 시체에 대한 주의분산과 삽화의 배치를 통한 폐쇄성 강조, 살인 동기라는 거짓된 가면까지 추리소설에서 오컬트가 가진 순수한 두려움에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에 거짓에 관한 낭만적인 감상에 빠지게 된다. 100% 가까운 명백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읽어야겠지만, 아니 그 정도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추리가 있을까? 일부든 전부이든 추정이다. 가끔씩 잊고 기계적으로 읽을 때도 있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미스터리에 있는 이유처럼 카의 괴기적 취향도 충분히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흡수 가능하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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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콜드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8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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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에게나 첫인상은 중요하다. 자꾸 만나보면 불퉁한 인상과는 달리 진국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첫인상은 길게 간다. 스릴러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시리즈물이라면 데뷔작에서 어떠한 인상을 받느냐에 따라 그 시리즈를 계속 탐독할 것이냐 첫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이냐 로 판가름 나게 된다. 형사 제인 리졸리 &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굉장히 불편한 인상을 남겼었다. 독신여성만을 골라 배를 가르고 자궁을 꺼내는 살인마 이야기 "외과의사"는 시종일관 욕구불만에 가득 찬 컴플렉스 덩어리 형사 제인 리졸리의 감정적 과잉에 지나치게 할애하는 바람에 허술한 스토리로 폭망했던 졸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너무 실망이 컸던 나머지 이 시리즈는 두 번 다시 읽을 일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어떤 계기인지 다시 재회했다. 1편에서 무려 6편을 건너뛴 8편으로 읽게 되었는데 공백기가 컸던 탓인지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인 리졸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 것 같더니 짚신도 제 이 있다고 결혼해서 딸도 두고 있는데 거친 야생마처럼 다루기 힘든 존재였던 제인 리졸리는 모성애의 영향인지 상당히 부드럽고 나긋나긋(?)해진 것 같다. 세상에 1편에서 봤던 그 시한폭탄이 이렇게 변하다니. 결혼소식은 들었다만 가정을 꾸린 일이 독신여성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마법 같은 현실일세. 

 

 

그래도 이번 8편의 주인공은 단연 마우라 아일스이다. 제인 리졸리와 투톱을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순전히 마우라 아일스의 개인적 고난과 위기상황들로 채워진다. 제인 리졸리는 원군일 뿐. 그러고 보니 박사님 첨 뵙겠습니다. 1편에 안 나오셔서 이번이 첫 등장이로군요. 후후. ! 줄거리는 이러하다. 보스턴 경찰국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박사는 의학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와이오밍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녀는 오랜만에 대학동창인 더그 캄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일행들과 함께 스키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계획에도 없는 일정이었지만 그렇게 동참하기로 결심한데는 남자친구인 대니얼 브로피와의 소원해진 관계에서 기인한 기분전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자친구가 목회자라니 그것 참 범상치 않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사정을 알 리 없으니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지금은 그 점이 중요하지 않으니 일단 패스.

 

 

추억 가득한 즐거운 여행이 될 뻔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돌발 변수 발생!!!  엄청난 폭설과 눈보라 속에서 그들의 차는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면서 도보로 산을 걸어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어딘가 이상하다. 인적도 끊기고 분명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있는데... 개의 사체, 피 웅덩이, 집집마다 걸려 있는 한 남자의 초상화까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의심스럽지만 악천후 속에 중상자가 발생하고 구조는 기대하기 어려운 고립된 마을. 한편 보스턴 경찰국의 제인 리졸리 형사는 대니얼 브로피로부터 마우라 아일스가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갔다가 연락두절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남편과 함께 마우라 아일스를 찾아 그 곳으로 떠난다. 

 

 

분명 내일이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보지만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은 공포스럽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누군가는 죽고, 또는 실종되고, 또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그 무언가의 실체에 시시각각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냉기 속에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또 일단의 무리들이 필사적으로 추적해온다. 이들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살려두어선 안 된다고. 

 

그리고 인적이 끊겼던 마을에 숨겨진 미스터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가히 경악할 만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인간은 때때로 이성보다 광기가 우선시 될 때가 있고 그 광기가 집단을 지배하면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명한 판단 대신 통제와 복종이라는 결정에 아무 이의 없이 동참하게 된다. 그 것을 조종하는 자가 종교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면 그는 선지가가 되고 신도들은 불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다. 설사 자신의 가족이 희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서. 여기서 인간성은 말살되고 눈 뜬 장님들은 인륜을 파괴하고 비극은 시작된다는 것에서 인간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무지몽매한 존재들인지 섬뜩함에 치를 떨게 한다. 인간은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추악한 욕망에는 또 다른 추악함이 구렁이처럼 도사리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로 몰아가는 극도의 스릴과 공포는 한 꺼풀씩 벗길 때 마다 오싹한 전율을 선사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논스톱으로 달리면서 이야기는 폭주하고 순간의 선택이 우리들을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란 아이러니가 충격적이고 소름끼친다. 마우라 아일스는 그래서 수시로 절망하고 후회한다. 그 때 그런 선택만 안 했으면 지금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을 텐데 라고 말이다. 결코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내일을 우리는 준비한다. 기대가 공포로 변하는 순간, 우리네 인생이 악몽으로 변하면서 아수라장이 되는 건 잠깐이란 사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희망이 될 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옵션이라는 삶이다. 결말은 훈훈했다. 

 

 

그렇다면 요즘같이 날이 푹푹 찔 것 같은 밤에 잠도 안 오고 TV 를 켜도 재미를 못 느낀다면 가차 없이 이 책을 펼쳐들어보라. 한 겨울의 냉기가 당신의 무더위를 정면 강타할 것이니 이만한 스릴러라면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짜릿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 있게 강추한다. 물론 숨 막히는 속도감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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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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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2012년을 가장 빛낸 일본 미스터리 작가는 '누마타 마호카루'였다. 적어도 내게는 스스로 이의제기를 묵살하게 만들 정도의 그 파급력은 굉장했던,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으로 시작하여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지나친 적이 없으니 통과의례치고는 떠들썩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탑을 쌓다 마지막에 터뜨린 결정적 한 방에 나는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었고 그 소설을 2012년 최고의 작품으로 자체 선정하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랬던 '누마타 마호카루'가 이번에는 "고양이 울음"이라는 작품으로 내게 다시 귀환을 알려왔다. 20년 동안 사람 곁에서 사람을 지키며 사람을 사랑했던 아주 특별한 고양이 '몽'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로 이번에도 나를 제대로 흔들어버린다. 그녀는 강하고 그럴 때 마다 나는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없이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더군다나 미스터리가 아닌 일반소설로도 말이다.

 

 

사실 주인공 '몽'이는 비주얼적으로 그리 어여쁜 고양이라는 볼 수 없다. 얼굴에 기미처럼 검은 점이 덕지덕지 흩어져 있고 꼬리는 3분의 2 지점에서 뭉툭하게 잘려나간 것 같은 모양새하며, 오렌지 빛깔의 털을 가진 기묘한 고양이. 그래서 이 녀석을 보는 사람들마다 순간 멈칫하면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나 길을 돌아가게끔 만들지만 정작 외모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한 번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다.  

 

 

 

사실 '몽'이가 목수인 '도지'의 집에 눌러 앉게 살게 된 배경은 순탄하지 않았다. '도지'와 아내 '노부에'는 아이를 유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슬픈 공허함에 힘들어하던 부부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키울만한 마음의 공간은 없다. 오히려 '노부에'는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한 번 키워볼까.'가 아니라 끈질기게 내다버리면서 숫제 죽어버렸으면 한다. 슈퍼마켓에서 남자아이와 어머니의 다정한 한때를 지켜보면 숨이 막혀서 자리를 뜨고 싶고 혈육이라는 은밀한 의미들이 고스란히 숨겨지고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할 정도이니. 그러니까 새끼 고양의 야옹야옹하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다. 

 

 

 

숲 속에 버리면 까마귀밥이 될 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버리고 돌아오면 나중에 온 몸에 생채기를 안은 채 끈질기게 '도지'집으로 돌아온다. 결국에는 새끼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는 '도지' 부부의 결정까지가 소설의 1부격에 해당된다. 1부가 '몽'이의 유년기였다면 2부는 청년기. '유키오'라는 소년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이 아이는 엄마는 없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부친이라기보다는 철없는 형 같은 존재로서 일과 양육 사이에서 지치고 힘들어 '유키오'를 사실상 방임한다. 아버지의 단절된 부자관계에서 비롯된 염증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사랑받는 모든 존재들에 살의를 느끼며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소년.

 

 

 

자신보다 어린 남자아이들을 일부러 괴롭히는가 하면 심지어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는 등 가학적 행위에 즐거움을 발견하는 위험천만한 녀석인데 어느 날 우연히 키우게 된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죽자 그제야 '절망'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평생 매듭짓지 못할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 고양이의 죽음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몽'이는 잠깐 등장하고 2부의 막이 내린다.
 
 
마지막 3부는 노년이 된 '도지''몽'이의 이야기이다. '도지'는 예순 중반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아내와는 사별했고 일주일전에는 형의 장례식에 다녀오느라 한동안 집을 비운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도지'를 만나게 된 '몽'이의 그때 그 반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주인의 환영을 본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두 번 다시 주인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느꼈다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몽'이. 녀석이 세상이 천지개벽할 것만 같은 망연자실함에 주인을 다시 만나 넋을 놓지만 곧 겸연쩍어하는 모습에서 '도지''몽'이를 안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낀다. 서로에게 동화되고 경계없이 하나가 되어 한 흐름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이란 죽은 아내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각이다. 왠지 안심되고 의지가 되는 순간, 반려동물의 관계 그 이상이다.

 

 

어쩌면 '몽'이는 아이가 없던 '도지' 부부에게 하늘이 허락한 입양일 것이다. 아이를 떠나보낸 부부와 엄마에게 버림받은 '몽'이 모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몽'이가 살기 위해 끊임없는 발버둥 쳤던 눈물겨운 시간들은 얼어붙은 '노부에'의 맘을 열고 제2의 인생설계를 시작하게 했다. 아이의 빈자리라는 상실감을 최선을 다해 메꿔준 '몽'이는 눈부신 존재였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모든 생물은 생로병사의 섭리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세월은 '노부에'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도지''몽'이도 많이 늙고 쇠약해진다. 단 둘이 보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고양이 '몽'은 먼저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늘그막에 '몽'이에게 많이 정주며 의지했던 '도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다. 정처 없이 춥고 슬프고 피곤하며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는 이 심정,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예행연습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도 '도지'가 혼자가 될 준비를 차분히 기다렸던 의젓한 '몽'이에게서 타자의 죽음이 아닌 내 스스로의 죽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길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문자답을 구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노부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더 애절한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유산한 애끓는 모성애로 아들 같았던 '몽'이와의 일생은 어쩌면 한 편의 신파극이 될 위험도 분명 보인다. 하지만 '누마타 마호카루'는 그런 것들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화자를 '도지'로 선택했다. 그래서 반려동물과의 이별 이야기는 하마터면 익숙한 스토리가 떠오를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적중은 거부하진 않되, 차분하고 담담하게 시간의 흐름을 기록해 나간다.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역자의 경고(?)대로 눈물은 흐른다.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누마타 마호카루'에게 '또 다시 당했구나.'라는 자조 섞인 헛웃음마저 나오나 보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에도 통했구나.'

 

 

고양이의 짧은 일생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익숙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의 감정선들이 유린당하면서 원상복구 되지도 않은 채, 모든 형태의 다양한 감정들이 빗장을 풀고 탈출을 시도한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이다. 2012년에 '누마타 마호카루'가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면 그 빛은 영롱함을 잃지 않고 또 다시 나를 격정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는다.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말미에 서평가 '도요자키 유미'도 말했듯이 '누마타 마호카루'는 강하다. 정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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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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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돛단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바다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중이었다. 처음 사십일까지는 한 소년이 같이 있었지만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운수가 밑바닥난 지경이라며 소년을 다른 배에 타게 했다. 그러나 소년은 노인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매일 노인을 돌보러 찾아와서 바다 이야기 외에 메이저리거들을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겼다. 두 사람은 이미 연령을 초월한 우정으로 돈독해진 사이라 마치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토토와 알프레드의 관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마초적 기질이 있어 거친 모험 같은 남성적 활동을 무척 사랑했기에 1940년대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거주하면서 바다낚시를 즐겨했는데 그러한 개인적인 체험들이 바탕이 되어 나온 소설이 "노인과 바다"이다. 그는 전작의 혹평을 만회하고자 내 놓았던 이 소설로 퓰리처상 수상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부여 받았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더불어 어네스트 해밍웨이의 소설 중 대중적 지지도를 가장 크게 이끌어낸 이 소설은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대단한 이야기 거리가 들어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낚시미끼와 도구, 낚시 배, 고기를 낚는 과정까지 바다낚시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는데 84일 동안 전혀 손맛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먼 바다에 나가 큰 청새치 한 마리를 낚는데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들의 공격을 받아 잡은 고기는 뼈대만 남는다는 이야기에 전혀 실망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청새치와의 사투, 상어 떼와의 사투 말고는 인물 간 갈등이나 특별히 눈여겨 봐야할 사건의 맥이 사실상 없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해밍웨이 특유의 작품관이랄까, 기법 또는 사람과 인생을 관조하는 나즈막한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기에 다르다. 노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와 사실 위주의 상황 묘사, 그리고 객관적 심리 묘사 등만으로 오로지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한다, 여기에 일체의 추상적 시각 없이 짧은 독백을 펼쳐 보임으로써 바다라는 푸르른 색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끔 할 정도이다.

 

 

이렇듯 '하드보일드'로 칭해지는 어네스트 해밍웨이 특징적인 스타일은 신문사의 해외특파원으로 일했던 전력에서 알 수 있듯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신문기사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행위는 단순 어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배경에 맞서 생과 사의 본질적인 의의를 수립하며, 고난을 무릅쓰고 불굴의 투쟁으로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태양 같은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어부들이 바다를 남성에 비유할 때 그만은 반대로 여성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도 노인이 상징하는 기개와 이상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숱한 허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또 다시 도전한다는 각오로 임하기에 우직하지만 뭉클해진다.

 

 

또한 노인은 자연에 대해 오만한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영웅적 이상을 드높였으나 자아도취도 자기비하에도 빠지지 않은 채 절망에 맞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마지막까지 전력투구를 해낸다. 성취 없는 결과 앞에서도 패배를 아쉬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만 결과에 승복하고 자연에 감화할 줄 알며 자연을 포획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지 않고 공존의 가치를 인식할 줄 아는 현명함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경륜이 느껴지는 포근함과 넉넉함에 마음이 물처럼 젖어들어 간다.

 

 

이처럼 만물에 대한 원숙한 세계관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만이 보여주는 장대하고 엄숙한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감동, 그 영원불멸함 속에서 각자의 인식 또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잊혀질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은 오두막에서 사자 꿈을 꾸고 있구나. 용맹하고 위풍당당한 기억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의미만큼은 공감되어야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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