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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돛단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바다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중이었다. 처음 사십일까지는 한 소년이 같이 있었지만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운수가 밑바닥난 지경이라며 소년을 다른 배에 타게 했다. 그러나 소년은 노인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매일 노인을 돌보러 찾아와서 바다 이야기 외에 메이저리거들을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겼다. 두 사람은 이미 연령을 초월한 우정으로 돈독해진 사이라 마치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토토와 알프레드의 관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마초적 기질이 있어 거친 모험 같은 남성적 활동을 무척 사랑했기에 1940년대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거주하면서 바다낚시를 즐겨했는데 그러한 개인적인 체험들이 바탕이 되어 나온 소설이 "노인과 바다"이다. 그는 전작의 혹평을 만회하고자 내 놓았던 이 소설로 퓰리처상 수상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부여 받았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더불어 어네스트 해밍웨이의 소설 중 대중적 지지도를 가장 크게 이끌어낸 이 소설은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대단한 이야기 거리가 들어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낚시미끼와 도구, 낚시 배, 고기를 낚는 과정까지 바다낚시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는데 84일 동안 전혀 손맛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먼 바다에 나가 큰 청새치 한 마리를 낚는데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들의 공격을 받아 잡은 고기는 뼈대만 남는다는 이야기에 전혀 실망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청새치와의 사투, 상어 떼와의 사투 말고는 인물 간 갈등이나 특별히 눈여겨 봐야할 사건의 맥이 사실상 없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해밍웨이 특유의 작품관이랄까, 기법 또는 사람과 인생을 관조하는 나즈막한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기에 다르다. 노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와 사실 위주의 상황 묘사, 그리고 객관적 심리 묘사 등만으로 오로지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한다, 여기에 일체의 추상적 시각 없이 짧은 독백을 펼쳐 보임으로써 바다라는 푸르른 색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끔 할 정도이다.
이렇듯 '하드보일드'로 칭해지는 어네스트 해밍웨이의 특징적인 스타일은 신문사의 해외특파원으로 일했던 전력에서 알 수 있듯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신문기사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행위는 단순 어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배경에 맞서 생과 사의 본질적인 의의를 수립하며, 고난을 무릅쓰고 불굴의 투쟁으로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태양 같은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어부들이 바다를 남성에 비유할 때 그만은 반대로 여성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도 노인이 상징하는 기개와 이상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숱한 허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또 다시 도전한다는 각오로 임하기에 우직하지만 뭉클해진다.
또한 노인은 자연에 대해 오만한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영웅적 이상을 드높였으나 자아도취도 자기비하에도 빠지지 않은 채 절망에 맞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마지막까지 전력투구를 해낸다. 성취 없는 결과 앞에서도 패배를 아쉬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만 결과에 승복하고 자연에 감화할 줄 알며 자연을 포획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지 않고 공존의 가치를 인식할 줄 아는 현명함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경륜이 느껴지는 포근함과 넉넉함에 마음이 물처럼 젖어들어 간다.
이처럼 만물에 대한 원숙한 세계관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만이 보여주는 장대하고 엄숙한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감동, 그 영원불멸함 속에서 각자의 인식 또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잊혀질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은 오두막에서 사자 꿈을 꾸고 있구나. 용맹하고 위풍당당한 기억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의미만큼은 공감되어야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