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누가 뭐래도 2012년을 가장 빛낸 일본 미스터리 작가는 '누마타 마호카루'였다. 적어도 내게는 스스로 이의제기를 묵살하게 만들 정도의 그 파급력은 굉장했던,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으로 시작하여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지나친 적이 없으니 통과의례치고는 떠들썩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탑을 쌓다 마지막에 터뜨린 결정적 한 방에 나는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었고 그 소설을 2012년 최고의 작품으로 자체 선정하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랬던 '누마타 마호카루'가 이번에는 "고양이 울음"이라는 작품으로 내게 다시 귀환을 알려왔다. 20년 동안 사람 곁에서 사람을 지키며 사람을 사랑했던 아주 특별한 고양이 '몽'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로 이번에도 나를 제대로 흔들어버린다. 그녀는 강하고 그럴 때 마다 나는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없이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더군다나 미스터리가 아닌 일반소설로도 말이다.

 

 

사실 주인공 '몽'이는 비주얼적으로 그리 어여쁜 고양이라는 볼 수 없다. 얼굴에 기미처럼 검은 점이 덕지덕지 흩어져 있고 꼬리는 3분의 2 지점에서 뭉툭하게 잘려나간 것 같은 모양새하며, 오렌지 빛깔의 털을 가진 기묘한 고양이. 그래서 이 녀석을 보는 사람들마다 순간 멈칫하면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나 길을 돌아가게끔 만들지만 정작 외모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한 번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다.  

 

 

 

사실 '몽'이가 목수인 '도지'의 집에 눌러 앉게 살게 된 배경은 순탄하지 않았다. '도지'와 아내 '노부에'는 아이를 유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슬픈 공허함에 힘들어하던 부부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키울만한 마음의 공간은 없다. 오히려 '노부에'는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한 번 키워볼까.'가 아니라 끈질기게 내다버리면서 숫제 죽어버렸으면 한다. 슈퍼마켓에서 남자아이와 어머니의 다정한 한때를 지켜보면 숨이 막혀서 자리를 뜨고 싶고 혈육이라는 은밀한 의미들이 고스란히 숨겨지고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할 정도이니. 그러니까 새끼 고양의 야옹야옹하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다. 

 

 

 

숲 속에 버리면 까마귀밥이 될 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버리고 돌아오면 나중에 온 몸에 생채기를 안은 채 끈질기게 '도지'집으로 돌아온다. 결국에는 새끼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는 '도지' 부부의 결정까지가 소설의 1부격에 해당된다. 1부가 '몽'이의 유년기였다면 2부는 청년기. '유키오'라는 소년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이 아이는 엄마는 없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부친이라기보다는 철없는 형 같은 존재로서 일과 양육 사이에서 지치고 힘들어 '유키오'를 사실상 방임한다. 아버지의 단절된 부자관계에서 비롯된 염증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사랑받는 모든 존재들에 살의를 느끼며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소년.

 

 

 

자신보다 어린 남자아이들을 일부러 괴롭히는가 하면 심지어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는 등 가학적 행위에 즐거움을 발견하는 위험천만한 녀석인데 어느 날 우연히 키우게 된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죽자 그제야 '절망'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평생 매듭짓지 못할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 고양이의 죽음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몽'이는 잠깐 등장하고 2부의 막이 내린다.
 
 
마지막 3부는 노년이 된 '도지''몽'이의 이야기이다. '도지'는 예순 중반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아내와는 사별했고 일주일전에는 형의 장례식에 다녀오느라 한동안 집을 비운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도지'를 만나게 된 '몽'이의 그때 그 반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주인의 환영을 본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두 번 다시 주인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느꼈다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몽'이. 녀석이 세상이 천지개벽할 것만 같은 망연자실함에 주인을 다시 만나 넋을 놓지만 곧 겸연쩍어하는 모습에서 '도지''몽'이를 안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낀다. 서로에게 동화되고 경계없이 하나가 되어 한 흐름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이란 죽은 아내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각이다. 왠지 안심되고 의지가 되는 순간, 반려동물의 관계 그 이상이다.

 

 

어쩌면 '몽'이는 아이가 없던 '도지' 부부에게 하늘이 허락한 입양일 것이다. 아이를 떠나보낸 부부와 엄마에게 버림받은 '몽'이 모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몽'이가 살기 위해 끊임없는 발버둥 쳤던 눈물겨운 시간들은 얼어붙은 '노부에'의 맘을 열고 제2의 인생설계를 시작하게 했다. 아이의 빈자리라는 상실감을 최선을 다해 메꿔준 '몽'이는 눈부신 존재였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모든 생물은 생로병사의 섭리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세월은 '노부에'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도지''몽'이도 많이 늙고 쇠약해진다. 단 둘이 보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고양이 '몽'은 먼저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늘그막에 '몽'이에게 많이 정주며 의지했던 '도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다. 정처 없이 춥고 슬프고 피곤하며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는 이 심정,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예행연습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도 '도지'가 혼자가 될 준비를 차분히 기다렸던 의젓한 '몽'이에게서 타자의 죽음이 아닌 내 스스로의 죽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길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문자답을 구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노부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더 애절한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유산한 애끓는 모성애로 아들 같았던 '몽'이와의 일생은 어쩌면 한 편의 신파극이 될 위험도 분명 보인다. 하지만 '누마타 마호카루'는 그런 것들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화자를 '도지'로 선택했다. 그래서 반려동물과의 이별 이야기는 하마터면 익숙한 스토리가 떠오를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적중은 거부하진 않되, 차분하고 담담하게 시간의 흐름을 기록해 나간다.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역자의 경고(?)대로 눈물은 흐른다.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누마타 마호카루'에게 '또 다시 당했구나.'라는 자조 섞인 헛웃음마저 나오나 보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에도 통했구나.'

 

 

고양이의 짧은 일생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익숙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의 감정선들이 유린당하면서 원상복구 되지도 않은 채, 모든 형태의 다양한 감정들이 빗장을 풀고 탈출을 시도한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이다. 2012년에 '누마타 마호카루'가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면 그 빛은 영롱함을 잃지 않고 또 다시 나를 격정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는다.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말미에 서평가 '도요자키 유미'도 말했듯이 '누마타 마호카루'는 강하다. 정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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