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의 몸값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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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물심양면 지원받으며 온전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동안 눈앞의 문제들은 부모가 모두 알아서 처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 자신들을 양육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이 뒷받침 되는지 그 나이에는 짐작할 일 조차 없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여나 나쁜 일에 휘말리지나 않게 되는지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고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볼모 잡아 아이들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는 범죄야말로 인륜을 무참히 짓밟는 범죄일테니 가중 차벌로 강력 단죄해야 한다는 이 책 속의 주장은 일리가 있겠다 

 

유괴된 아이가 내 자식이면 부모는 자식을 되찾기 위해 몸값 지불하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내 자식이 아니라면 선택은 달라진다. 게다가 더글라스 킹에게는 단순히 돈 문제를 떠나 사업의 명줄이 걸려있다. 어릴 적 지독한 가난 때문에 성공 지향적 인간이 되어버린 킹을 두고 구두 회사의 중역들은 그를 회유하여 회사를 집어 삼키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킹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에게는 회사운영과 관련된 별도의 플랜이 구상되어 있었으니.    

그런데 어떤 돌발 변수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의 운전사의 아들을 킹의 아들로 착각해 납치 유괴하고서는 5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이 유괴당하지 읺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지만 뒤늦게 킹의 아들이 아니란 것을 알에 된 범인들은 킹에게 몸값을 대신 내놓으라는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제 킹은 50만 달러냐? 아이의 목숨이냐?를 두고 심각한 도의적 딜레마에 빠진다 

 

?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닥쳤느냐고 울분을 토로할 만하다. 범인들의 요구대로 몸값을 주면 그의 사업인생은 파멸하게 된다. 회사의 중역들은 이것을 호재로 삼아 킹을 파멸시키기 위한 작당에 나서면서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세간의 비난 속으로 빠뜨릴 복안도 마련 중이다. 모든 것은 킹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이 책이 87분서 시리즈 중 가장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유괴범들로부터 유괴된 아이를 되찾는 이야기들도 물론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지만 87분서 형사들의 활약보다는 순전히 킹의 고뇌부분이 역시 중심이 된다. 특히 아이를 위해 조건 없이 몸값을 지불하기를 원하는 아내와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맞서는 킹의 논쟁은 차마 읽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이 압도적이다.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몸값을 지불하는 결정이 당연하겠지만 평생을 고생만 해온 그에게 사업에서의 낙마는 절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리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본다. 나라도 그런 결정 쉽게 못 내릴 것이다. 킹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해서 가슴에 사무치고 동화되면서 마치 내가 킹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누가 그에게 냉혈한이라고 돌을 던질 수가 있으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천국과 지옥은 원작과는 다른 결말이 그려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든 현실에서는 실재할 것만 같다. 킹에게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행위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책임하고 가혹한 처사이다. 유괴사건이 발생하자 킹에게 찾아와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기꾼의 등장이이나 87분서에 아이의 행방을 목격했다는 전화의 폭주는 일순 익살스레 묘사되어 킥킥대며 읽기도 했지만 타인의 고통을 악용하고 농간부리려는 혹자들의 저급한 시도가 얼마나 당사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지 모른 채 배려하는 마음의 양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도 악의적이다.  

 

그리하여 일련의 사태에 대한 주모자와 피해자가 모두 남성인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끊임없이 설득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까지 하는 능동적인 주체 모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어둠을 불 밝히는 등불 같은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고. 면죄부가 주어진 결말은 그런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포상으로 간주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87분서 시리즈는 다른 각도, 다른 차원에서 해석되면서 언제나 즐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검증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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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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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드 맥베인의 <살의의 쐐기>는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를 관할로 둔 87분서를 배경으로 안과 밖에서 인질극과 밀실살인사건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병렬구조로 연결하여 서스펜스와 추리적 쾌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작품인데, 솔직히 신간소개에서 별다른 감흥을 못느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경찰소설로 남을 뻔했습니다만 두 가지 이야기라는 구성처럼 저도 두 분의 추천글을 읽고서야 이건 질러야한다는 확신이 들긴 했습니다. 250페이지에 불과한 이 경찰소설에 당췌 스릴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을 밟고 지나가듯 불필요한 서두를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과감함에 늘어지는 대목은 전혀 없어 흥미는 지속됩니다.

 

표지에서도 성격을 드러낸 것 처럼 검은 옷으로 치장한 한 여인이 한 손에는 38구경의 권총과 한 손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담긴 병을 들고 87분서를 찾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검거해서 감옥에서 병으로 죽게했다는 이유만으로 스티브 카렐라 형사를 죽여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87분서 형사들을 인질로 삼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사태의 원흉(?)인 카렐라 형사는 때마침 한 거부 노인의 자살현장에 출동하고 없는 상태였기에 그가 복귀할 때까지 87분서 형사들을 인질로 계속 붙들어 놓이게 되는데 총이 문제가 아니라 니트로글리세린이 폭발할 것 같은 두려움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사들은 시킨대로 고분고분하게 인질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 편 자살현장에 도착한 카렐라 형사는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방에서 노인이 목을 맨 현장을 조사하며 구조상 완벽한 자살로 판단하면서도 생전에 의욕적인 삶을 살았다는 고인의 갑작스런 자살에 대한 의혹과 함께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둔 점과 늑대같은 아들들의 관계에서 냄새를 맡습니다. 이건 무엇인가 있다고요... 가려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해서 카렐라 형사가 사건종결 대신 탐문수사에 돌입하는 동안 87분서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카렐라 형사 대신 애꿎은 형사들만 계속 인질로 낚이면서 신경전이 극에 달합니다. 복수의 화신이 된 여자와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형사들간의 두뇌게임과 거짓으로 위장하고 있는 밀실살인의 트릭 파헤치기가 시간을 잊게 할 만큼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끈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를 한층 배가시킵니다.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이 오직 결말을 향해 간결하고 유머스러하게 돌진합니다. 제목에도 언급된 쐐기는 인질극과 자살현장을 설명할 용도로 사용되지만 무엇보다 잠시라도 방심을 허용치 않도록 읽는 이의 마음에 쐐기를 박아 빈틈을 봉쇄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50편이 나오는동안 경찰소설의 효시로서 당시 미국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로 충실히 반영되었다는 87분서 시리즈의 한 편인 <살의의 쐐기>가 최고작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장르소설의 최고덕목인 재미라는 미덕에 최적화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득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만약에 그 당시에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어떻게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상상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즐겁네요. 사무실과 외근중인 형사간에 상호 연락수단이 없었던 시대였기때문에 호출된 카렐라 형사와 여인이 처음부터 조우하는 사태는 성립되지 않은 채, 각각의 이야기들이 교차시점으로 전개되었기에 즐거움이 두배로 늘어나지 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문명의 진화척도도 리얼리즘을 끌어올리는데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이 시리즈의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소소한 점들마저도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에 계속 관심을 둘 이유로 충분하다 봅니다. 그래서 만약에 마켓팅의 홍수 속에 묻혀 이 소설을 놓쳤더라면 후회할 뻔 했겠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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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5
벤 엘튼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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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은 위험한, 금지된 욕망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가끔씩 시도해보고 싶은 심리현상이다. 훔쳐보기, 엿보기라는 점잖지 않다는 힐난 속에서도 가장 그 욕망을 충족해주고 있는 곳은 바로 TV라는 공간인데 리얼과 가상의 경계의 기준이 모호해서 논란을 빚고는 하지만 중독되면 볼 사람은 보게 되어있다.

 

 

24시간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체크하는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누구인가!

 

 

벤 엘튼의 장편소설 <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하우스 어레스트에 그런 관음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피핑 톰(Peeping Tom)을 조장하는 방송과 묵인과 방조, 탐닉에 빠진 사회를 통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쾌락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그 한계점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문화부 장관이란 사람은 하우스 어레스트를 마치 기존질서에 반해 젊은 층의 혁신과 개성을 고취하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찬미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방종을 자유로 오해하는 시선이 하우스 어레스트에서는 객관적 기준이 된지 오래였다.

 

 

여기서 피핑 톰이란? 영국 코벤트리 영주의 아내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모습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양복재단사 톰(Tom)이 커튼을 들추고 몰래 훔쳐보다가 눈이 멀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훔쳐보기의 대명사 피핑톰(Peeping Tom)이라는 말은 관음증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개인만의 관음증이 아니다. 집단 관음증에 빠진 사회는 대중적 인기와 50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고 자신을 구경거리로 제공할 일반인을 불러 모은다.

 

 

돈 앞에서는 모두 눈뜬 봉사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감금 상황에 자의적 탈출마저 불가능한 감시체제 하에서 대중들은 열명의 남녀들을 관찰하고 등급을 매기며 탈락과 다음 라운드로의 진출 결정권을 쥔다. 여기서 놀란 것은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에게 점수를 따고자 가식을 떨어야 당연한 일 일텐데, 어찌된 셈인지 까칠하고 저속한 속내를 낱낱이 까발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듯하다. 도도하고 고상한 성품 따윈 개나 줘버리지 라는 식으로 찰진 욕설과 비난, 폭로에 여념이 없어 눈은 충혈 되고 귀는 귓밥으로 다시 막고 싶을 정도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정서와 현실에 맞는 각색은 아니다. 영국식 방송이란 이러하구나.

 

 

이제 각 출연자들은 경쟁자들을 꺾고 우승하기 위해 탈락자를 선정하는 스테이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성질을 내며 짐 보따릴 싸서 세트를 떠나는 출연자들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살인은 이미 초장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게 문제다. 도대체 언제, 누군가가 살해되는 것일까? 시청자와 방송 스탭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이란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릴 물을 때, 살인은 보란 듯이 설명된다. 방송 시작 27일째에 말이다.

 

 

그런데 예상했던 살인방식과 전개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단발이냐, 연속이냐 부터 시작해서 범인의 대담한 시도가 다수의 목격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은밀한 살인과 다를 바 없었던 차별화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그제서야 위장된 트릭을 찾기 위한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해진다. 동기야말로 범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풀어야할 선결과제였는데 방송이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급조된 무리수가 관계에 균열을 일으켜 틈새로 스며든 증오와 원한이 개입될 여지가 있었는지가 궁금했고 그것이 중요해졌다. 그것이 아니라면 선택은 뻔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시청률의 제왕을 목표로 미쳐 날뛸 때 모두가 잠재적 용의자가 되어 버리는 구조이다. 오해와 의심이라는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대단원에서 밝혀진 진실은 어쩌면 개인적으로 원했던 결말이기도 하였다. 인과응보!!! 밥맛은 지옥으로~~~

 

 

쇼는 그렇게 계속되어야만 한다. 시청률 지상주의 앞에서 살인도 또 하나의 쇼일 뿐이다. 그렇게 대중들은 현혹되어 열광한다. 극적인 추리 앞에서 우승자는 개인의 영광이자 기쁨이지, 변덕스러운 대중들의 주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멀어져 가고 극적인 맛도 덜하게 된다. 추리에 대한 과정들은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방송답게 영상으로 확인할 때 논리에 수긍 했을텐데 여전히 설득이 부족하다. 나 자신의 머리의 한계도 좀 느끼면서, 결과적으로 서바이벌 훔쳐보기 쇼는 익숙함과 변태끼가 잘 버무려진 한바탕 난장판이었으며 시청한 소감은 이런 쇼는 국내도입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나도 훔쳐보기를 즐기는 사람이니까. 좀 더 자극이 필요해. 약간의 노출도 결들이면 좋겠다. 나는 누구처럼 귀가 빨개질 염려는 없으니까. 시침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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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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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냈던 세금을 왜 아내의 불치병 치료에는 쓸 수 없을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기억하는지?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건 모성애의 절대 신화에 과감히 돌을 던지며 모독했던 파장 앞에서 강렬한 전율을 느끼게 했던 영상과 이야기도 압권이었지만 원작은 더 어둡다는 말들이 잔상처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후유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영화로 먼저 만났지만 기억해두리라는 각오 때문이었는지 이번만큼은 책이다. 첫 인상과 마지막 느낌표까지 과연 만만치가 않다. 분량 때문에, 또 다른 이유는 시니컬하면서도먹하고 짙게 드리우는 여운 때문에라도.

 

 

이번에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관심을 가지고 메스를 들이댄 주제는 미국 의료제도의 모순점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선진국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의료보험제도나 국민보건서비스 같은 공공의료보험 서비스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의료보험 제도와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의료보조 제도만이 최소한의 공공기능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 계층들은 민간보험회사들에 가입하여 하는데 여기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원래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공공서비스를 민간이 운영하게 되면 보험회사들은 사회보장의 성격이 아닌 이윤창출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삼기에 납부한 보험료에 비해 의료비 지급률이 턱 없이 낮게 책정되고 그 차액을 고스란히 개인의 주머니에서 부담해야만 한다. 게다가 가입 시킬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보상 지급할 것처럼 꾀지만 정작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가 생기면 복잡 미묘한 약관을 들어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의료의 양과 질은 환자의 선택이 아니라 보험회사의 입맛대로 결정되는 셈이다.

 

 

이러한 모순과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의료비를 분담하는 개혁안을 미 정부에서는 도입하고자 하지만 이 또한 각종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돈 없으면 인간다운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는 암울한 현실이다. 여기 50대의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세퍼트 암스트롱 내커. 한평생 육체노동자로 성실한 삶을 살아왔고 집 수리회사의 오너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기의 부하 직원이었던 남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 청춘을 과거자락으로 흘러 보낸 세퍼드는 미국이 아닌 제3세계에서 노후를 설계하며 삶을 살고자 한다. 자연을 벗 삼아 물질과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가 없는 여유로움을 꿈꾸던 그에게 예기치도 못한 상황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는 찰나 아내 글리니스가 불치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말 그대로 불치병이라 세퍼드의 낭만적인 꿈은 산산조각 나고 가정 또한 위기의 나락에 떨어지는데 이제 모든 수입은 아내의 치료비로 몽땅 투입된다. 경제력에 대해 별다른 걱정이 없었는데 한순간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나날이 소진되는 돈 때문에 회사에서 사장에게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면서도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궁핍하게 되고 꿈도 포기했지만 그동안 일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야했던 중년의 남자와 여자는 비로소 부부 사이가 돈독해지는 계기를 만들게도 된다.

 

 

그 와중에 둘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섭섭함으로 갈등도 겪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가족들의 외면 속에서도 죽어가는 아내를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남편으로서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사명으로 간주하고 최선의, 또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경주한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병원 측에서는 최신치료방식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민간보험에서 담보되지 않는 한 개인부담금의 과도한 증가는 세퍼드의 인내에 종지부를 찍는다. 비록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남편으로 비추어지더라도 희망이 없는 치료에 매진하기 보단 처음 꾸었던 제3세계로 부부가 떠나 여생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 부부의 여생은 과연 행복했던 것인지, 아니면 좀 더 포기 말고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었을지 판단하기란 쉽지는 않다.

 

 

돈이 없으면 아이들만 병원에서 치료받고 부모 자신들은 아파도 참고 견디는 게 요즘 세태라고 하지 않던가? 더 이상 개인의 고통으로만 떠넘기지만 말고 국가가 나서 아프고 가난한 서민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피땀 흘려 번 수입으로 낸 세금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는데 쓰지 못한다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할까? 그래서 끝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더 이상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릴 길 없는 한 남자의 허망한 시선이 그렇게 먹먹하도록 한다, 이제 짐을 내려놓았노라고 안도해야만 하는. 어떤 의미에선 가슴 아프지만 최선의 결단이었다고 생각되는 결말이다.

 

 

결국은 미국의 한 중산층 부부가 배우자의 불치병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경제적으로 파산되는 과정들을 통해 초강대국 미국 의료제도의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집단적 가치 앞에서 소멸되는 개인적 가치를 심층 조명해보고 있다. 그들의 고통은 남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도 언젠가 들이닥칠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라. 눈칫밥 먹기 싫으면. 그래서 나도 오늘부터 안하던 운동 좀 해야겠다. 이 책 읽고 나면 그런 생각부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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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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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연과 관계하게 되면 자연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겠지만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했다가 사라져버리는 단계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감상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대체로 우리는 자연에 화답하기 보다는 반목하며 살아왔다. 이에 저자는 지구라는 함선이 침몰하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놓기보다는 문학가의 역할에 알맞은 환경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문학이 가진 감성의 힘, 녹색문학을 통해 독자들의 생태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 전달방식은 우리의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학작품에서 찾고 있는데 각 작품들 속에 담긴 만물평등과 생태주의는 현대를 살고 있고, 자연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문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즐기면서도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늦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삼국유사에 실린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살펴보자.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원동력에는 화랑이 뒷받침되고 있는데, 화랑의 신조이자 수양으로 힘쓰게 한 세속오계 또는 화랑오계는 유교에서 이미 가르쳐온 충의, 우의, 효에 관한 덕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목이지만 생태주의 관점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살생유택이겠다. 살생을 가려서 하라는 가르침이아마도 환경운동 수행에 가장 큰 선행과제가 아닐까 싶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싹 갈아엎어 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데, 대신 점진적으로 변화라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 민족에 따라 다양한 식성으로 지구상의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씨를 말리고 있다. 먹기 위해서, 아니면 박제로, 그것도 아니면 가죽과 상아를 얻기 위해서... 실로 인간만의 욕심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희생당하고 있으니 멸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택적 살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말릴 수 없는 살생이라면 그것의 부작용을 최소화해보자는 것이다. 산란기에는 잡지 말며, 어린 생물들은 놓아주고, 대량 불법 포획은 지양하자는 실천부터가 환경운동의 시발점이 된다. 한번이 아닌 조금씩, 주기를 두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매하고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만 폭주하려들지 자연에 대한 배려나 호소 등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단단히 귀를 막은 사람들에 대한 자연의 통렬하고 준엄한 꾸짖음은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서 가장 돋보이는 메시지이자 경고이다. 비단 양반계급의 위선에 대한 풍자만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멸종을 부채질하는 우리들의 생태질서 교란 행위가 악순환에 악순환을 낳으며 오염된 지구에 인간만이 살아남는 목불인견을 목도하지 않아야 함을 또 강조함에도 있다.

 

 

그러면서 이양하의 수필 <나무>와 작자미상의 고려가요 <청산별곡> 등은 모두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던 작품이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생태주의적 관점임을 덧붙인다. 사람과는 달리 안분지족으로도 충분한 나무의 삶이나, 후렴구인 얄리얄리 얄라셩의 경쾌하면서 흥겨운 리듬감 못지않게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살고 싶어 하는 그 소망에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지 아니할까?

 

 

이제 종이에 글을 써서 남기고 감상하는 문학적 행위만으로 현재의 위기에 눈을 감고 외면하기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울창한 나무와 숲이 어우러져 공해에 찌든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대자연이 선물하는 각종 혜택과 축복에 감읍하며 마음 설레는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대안적인 환경운동의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사람은 결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생태구성원이자 가족임을 자각한다면 자연과의 관념 속 대립과 장벽을 허무는 일은 불가능만은 아니리라. 또한 고전작품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는 고전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는 일깨움도 물론 잊지 말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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