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이 자연과 관계하게 되면 자연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겠지만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했다가 사라져버리는 단계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감상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대체로 우리는 자연에 화답하기 보다는 반목하며 살아왔다. 이에 저자는 지구라는 함선이 침몰하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놓기보다는 문학가의 역할에 알맞은 환경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문학이 가진 감성의 힘, 녹색문학을 통해 독자들의 생태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 전달방식은 우리의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학작품에서 찾고 있는데 각 작품들 속에 담긴 만물평등과 생태주의는 현대를 살고 있고, 자연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문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즐기면서도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늦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삼국유사에 실린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살펴보자.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원동력에는 화랑이 뒷받침되고 있는데, 화랑의 신조이자 수양으로 힘쓰게 한 세속오계 또는 화랑오계는 유교에서 이미 가르쳐온 충의, 우의, 효에 관한 덕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목이지만 생태주의 관점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살생유택이겠다. 살생을 가려서 하라는 가르침이아마도 환경운동 수행에 가장 큰 선행과제가 아닐까 싶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싹 갈아엎어 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데, 대신 점진적으로 변화라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 민족에 따라 다양한 식성으로 지구상의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씨를 말리고 있다. 먹기 위해서, 아니면 박제로, 그것도 아니면 가죽과 상아를 얻기 위해서... 실로 인간만의 욕심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희생당하고 있으니 멸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택적 살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말릴 수 없는 살생이라면 그것의 부작용을 최소화해보자는 것이다. 산란기에는 잡지 말며, 어린 생물들은 놓아주고, 대량 불법 포획은 지양하자는 실천부터가 환경운동의 시발점이 된다. 한번이 아닌 조금씩, 주기를 두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매하고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만 폭주하려들지 자연에 대한 배려나 호소 등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단단히 귀를 막은 사람들에 대한 자연의 통렬하고 준엄한 꾸짖음은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서 가장 돋보이는 메시지이자 경고이다. 비단 양반계급의 위선에 대한 풍자만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멸종을 부채질하는 우리들의 생태질서 교란 행위가 악순환에 악순환을 낳으며 오염된 지구에 인간만이 살아남는 목불인견을 목도하지 않아야 함을 또 강조함에도 있다.

 

 

그러면서 이양하의 수필 <나무>와 작자미상의 고려가요 <청산별곡> 등은 모두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던 작품이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생태주의적 관점임을 덧붙인다. 사람과는 달리 안분지족으로도 충분한 나무의 삶이나, 후렴구인 얄리얄리 얄라셩의 경쾌하면서 흥겨운 리듬감 못지않게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살고 싶어 하는 그 소망에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지 아니할까?

 

 

이제 종이에 글을 써서 남기고 감상하는 문학적 행위만으로 현재의 위기에 눈을 감고 외면하기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울창한 나무와 숲이 어우러져 공해에 찌든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대자연이 선물하는 각종 혜택과 축복에 감읍하며 마음 설레는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대안적인 환경운동의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사람은 결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생태구성원이자 가족임을 자각한다면 자연과의 관념 속 대립과 장벽을 허무는 일은 불가능만은 아니리라. 또한 고전작품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는 고전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는 일깨움도 물론 잊지 말아야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