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5
벤 엘튼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관음증은 위험한, 금지된 욕망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가끔씩 시도해보고 싶은 심리현상이다. 훔쳐보기, 엿보기라는 점잖지 않다는 힐난 속에서도 가장 그 욕망을 충족해주고 있는 곳은 바로 TV라는 공간인데 리얼과 가상의 경계의 기준이 모호해서 논란을 빚고는 하지만 중독되면 볼 사람은 보게 되어있다.

 

 

24시간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체크하는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누구인가!

 

 

벤 엘튼의 장편소설 <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하우스 어레스트에 그런 관음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피핑 톰(Peeping Tom)을 조장하는 방송과 묵인과 방조, 탐닉에 빠진 사회를 통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쾌락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그 한계점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문화부 장관이란 사람은 하우스 어레스트를 마치 기존질서에 반해 젊은 층의 혁신과 개성을 고취하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찬미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방종을 자유로 오해하는 시선이 하우스 어레스트에서는 객관적 기준이 된지 오래였다.

 

 

여기서 피핑 톰이란? 영국 코벤트리 영주의 아내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모습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양복재단사 톰(Tom)이 커튼을 들추고 몰래 훔쳐보다가 눈이 멀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훔쳐보기의 대명사 피핑톰(Peeping Tom)이라는 말은 관음증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개인만의 관음증이 아니다. 집단 관음증에 빠진 사회는 대중적 인기와 50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고 자신을 구경거리로 제공할 일반인을 불러 모은다.

 

 

돈 앞에서는 모두 눈뜬 봉사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감금 상황에 자의적 탈출마저 불가능한 감시체제 하에서 대중들은 열명의 남녀들을 관찰하고 등급을 매기며 탈락과 다음 라운드로의 진출 결정권을 쥔다. 여기서 놀란 것은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에게 점수를 따고자 가식을 떨어야 당연한 일 일텐데, 어찌된 셈인지 까칠하고 저속한 속내를 낱낱이 까발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듯하다. 도도하고 고상한 성품 따윈 개나 줘버리지 라는 식으로 찰진 욕설과 비난, 폭로에 여념이 없어 눈은 충혈 되고 귀는 귓밥으로 다시 막고 싶을 정도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정서와 현실에 맞는 각색은 아니다. 영국식 방송이란 이러하구나.

 

 

이제 각 출연자들은 경쟁자들을 꺾고 우승하기 위해 탈락자를 선정하는 스테이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성질을 내며 짐 보따릴 싸서 세트를 떠나는 출연자들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살인은 이미 초장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게 문제다. 도대체 언제, 누군가가 살해되는 것일까? 시청자와 방송 스탭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이란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릴 물을 때, 살인은 보란 듯이 설명된다. 방송 시작 27일째에 말이다.

 

 

그런데 예상했던 살인방식과 전개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단발이냐, 연속이냐 부터 시작해서 범인의 대담한 시도가 다수의 목격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은밀한 살인과 다를 바 없었던 차별화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그제서야 위장된 트릭을 찾기 위한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해진다. 동기야말로 범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풀어야할 선결과제였는데 방송이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급조된 무리수가 관계에 균열을 일으켜 틈새로 스며든 증오와 원한이 개입될 여지가 있었는지가 궁금했고 그것이 중요해졌다. 그것이 아니라면 선택은 뻔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시청률의 제왕을 목표로 미쳐 날뛸 때 모두가 잠재적 용의자가 되어 버리는 구조이다. 오해와 의심이라는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대단원에서 밝혀진 진실은 어쩌면 개인적으로 원했던 결말이기도 하였다. 인과응보!!! 밥맛은 지옥으로~~~

 

 

쇼는 그렇게 계속되어야만 한다. 시청률 지상주의 앞에서 살인도 또 하나의 쇼일 뿐이다. 그렇게 대중들은 현혹되어 열광한다. 극적인 추리 앞에서 우승자는 개인의 영광이자 기쁨이지, 변덕스러운 대중들의 주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멀어져 가고 극적인 맛도 덜하게 된다. 추리에 대한 과정들은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방송답게 영상으로 확인할 때 논리에 수긍 했을텐데 여전히 설득이 부족하다. 나 자신의 머리의 한계도 좀 느끼면서, 결과적으로 서바이벌 훔쳐보기 쇼는 익숙함과 변태끼가 잘 버무려진 한바탕 난장판이었으며 시청한 소감은 이런 쇼는 국내도입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나도 훔쳐보기를 즐기는 사람이니까. 좀 더 자극이 필요해. 약간의 노출도 결들이면 좋겠다. 나는 누구처럼 귀가 빨개질 염려는 없으니까. 시침 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