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그먼트 -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
워렌 페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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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진화 과정을 거친 괴생명체의 습격!

 

인간들의 과학문명은 진화라는 변이과정을 거쳐 지금껏 지구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생명체를 창조해 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크로넨버그 감독의 <플라이> 같은 경우가 조물주의 전지전능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태계의 일대혁신을 가져오는 창조물들이 등장하는 좋은 사례들이죠. 여기 워렌 페이의 소설 <프래그먼트>는 소설로 만날 수 있는 생물학 스릴러인데요, 세상과는 격리되어 별도의 생태계가 구축된 외딴 섬을 배경으로 생물학의 진화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도발적인 이론과 가설 등 볼거리와 지식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엔터테이먼트적 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달리 인간이 창조한 생명체들이 아니란 점에서 다르지만요.

 

세계일주 리얼리티 TV <시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배를 타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다니는 방송인데, 방송을 위한 교통수단인 트라이던트호에 탑승한 과학자와 선원들은 구조신호를 우연히 포착하고 어느 외딴 섬 헨더스에 닻을 내립니다. 외딴 섬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들이 발견되면서, 방송사는 대박예감에 들뜨게 되지만 그곳은 인간의 과학적 가이드라인을 이탈한 위험이 도사리는 무서운 섬입니다.

 

이제 진기한 구경거리로만 치부했던 인간들에게 괴생명체들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차례차례 살해당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 끔찍한 영상이 <시 라이프>를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자, 정부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NASA와 미 국방부가 항공모함을 이끌고 특별 조사에 나섭니다.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과학적인 가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이 소설을 찾는다는 건 다양한 변종생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끔찍한 학살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섬을 탈출할 것인가, 섬은 어떻게 통제하고 처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도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스토리의 빈약함을 지적하기보다 읽고 상상하라! 그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괴 생명체들과 인간들의 쫓고 쫓기는 사투와 마지막에서 핵폭탄으로 섬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게 되는 결말에서 아직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암시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합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소설 <프래그먼트>는 영화로 2008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 같은데 확인할 길이 없군요. 후속작이 2년 전에 출간될 예정이었다고 들었는데 역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무슨 이유로 이 생명체들이 헨더스 섬에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영화화와 신간 출간문제들로 인하여 여러 가지로 미스터리한 소설이 아닐 수 없지만 추격전만큼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긴박감이 넘치는 생물학 스릴러가 <프래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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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 2015-09-1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속작 판데모니엄이 나왔지만, 아직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ㅠㅠ

유마 2015-10-01 10:47   좋아요 0 | URL
아쉽네요 ㅠㅠ
 
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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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갑자기 독서슬럼프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이 소설과는 상관없지만 증세가 감기처럼 전이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바랬던 작은 소망들이 연이어 물 먹은 데다 달리 신바람 나는 일도 없고 일은 꼬이고.... 나를 제외한 주위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내겐 즐거움과 기쁨들이 멀리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주위에서는 다들 일정 이상의 좋은 일들로 싱글벙글하는 상태라 지켜보는 입장에선 시기와 질투가 날 지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에 집중하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아! 우울 ㅡ.ㅡ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처참히 폭탄맞은 상태이군요. 미국의 어느 지방 영화학교 교수 해리 릭스는 가르치던 여 제자와의 스캔들로 인하여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내와 딸에게도 외면당한 채, 도주하듯 파리로 옵니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산산조각 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그에게 파리는 이방인을 결코 환대하지 않습니다. “파리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일 뿐이라는 말이 순간 떠오르는데 그에게는 남루하고 궁핍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그는 겨우 터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파라디스가의 낡은 방을 구해 기거하면서 영화 관람과 소설집필로 나날을 보내다가 경비원으로 일자리도 얻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사교 살롱에서 매혹적인 헝가리 여인 마지트 카다르를 만나게 됩니다. 사흘에 한 번 5시부터 8시까지 만남을 조건으로 그녀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데요... 그런데 그때부터 그동안 해리를 괴롭혀 왔던 주변인물들이 차례대로 살해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경찰은 당연히 그를 살인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의심하게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수시로 주인공 해리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더군요. 해리는 물론 스캔들이 있었으니 지탄을 받아야 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동정표를 던지게 하는 것은 아내 수잔의 행태입니다. 수잔은 자신이 교수로 임용되지 못한 것을 결혼생활의 속박, 더 나아가서 해리 탓으로 돌리고 남편의 대학 학장과도 바람이 납니다. 하지만 자신의 허물은 모르고 오로지 모든 분노를 남편에게 돌리고 미워하지요. 딸 메건에게도 아빠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갈 정도로 뻔뻔해서 울컥한 마음에 책을 던져 버릴 뻔 했네요. 여기서 <빅 픽처>에서 보여준 남자 주인공의 설정을 다시 반복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남자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자책하고 적극적인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군요. 어릴 때 엄마가 술김에 너를 낳지 말고 자궁에서 긁어내어 버렸어야 했는데...”라는 독한 말을 들었어야 했으니 주눅 든 삶을 살아왔던 것은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엄마와 아내 모두 가장 가까이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주었어야 할 존재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해리에게 책임 전가시킬 줄 밖에 모르니 암담하기만 하지요.

 

그렇게 피폐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한줄기 섬광같이 안식의 빛줄기를 쏘아 보내는 여인이 마지트 입니다. 그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의 고민도 들어주고 인생 상담에 조언까지 해주는 따뜻함에 해리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어린 시절 헝가리 공산당 비밀경찰에 의해 아버지가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충격을 겪었던 그녀의 트라우마가 치명적인 위험이 되어 점차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중반 이후의 반전에 일순 어?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 2종이 모두 빗나가면서 로맨스로 시작했던 전개가 중반엔 스릴러로 중반 이후엔 판타지로 마무리 되더군요.

 

물론 소설의 전반적인 뼈대는 로맨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단 한 번도 완벽한 사랑의 합일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항상 사랑의 엇박자로 굳건하리라 믿었던 방벽에 잔인하게 생채기를 내어버리는데 그 상처가 너무도 깊어 독자들을 불편하게도 합니다. 결국 이번의 사랑도 결코 알콩달콩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결단코 댓가를 치르게 하죠. 그런 작가의 의도는 아래에서 잘 대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영화관을 찾지만 사실은 영화관에서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영화 속에도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탈출하고자 하는 세계를 영화에서 다시 보게 되는 셈이죠

 

해리가 했던 이 말은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도피를 시도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사랑은 마냥 영원하지도, 마냥 낭만적이지도 않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도 해리의 마지막 결론은 소설 속이지만 다시 한 번 부러움으로 가슴이 타 들어가게 하네요. 비록 그것이 영혼을 저당 잡힌 댓가라고 할지라도....

 

로맨스 + 스릴러 + 판타지 = 소원을 말해 봐 + 파우스트!! 이것이 <파리 5구의 여인>에 대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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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황금지구의
가이도 다케루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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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울트라 황금 지구의><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같은 의학 미스터리 계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는 가이도 다케루의 범죄코믹물입니다. 가이도의 이전 작품들은 접해본 적이 없기에 작가에 대한 평가나 기존작과의 비교는 아는 바가 없어 솔직히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작가는 의학 미스터리라는 기존 노선대신 잠시 머리 식히는 기분으로 즐겁게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합니다.

 

80년대 후반 거품경제로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 정부는 돈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되자 각 지자체별로 고향창생 기금 1억엔이라는 명분과 함께 거금을 배정합니다. 갑자기 뜻하지 않은 목돈이 생긴 가상도시 사쿠라노미야에서는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다 황금 지구의를 만들어 수족관에 전시해버립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현재에 와선 그저 수족관 한 구석에서 무용지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데, 시청에서는 이 애물단지의 경비보안을 동네 철공소 영업부장인 헤이스케에게 의뢰합니다. 말도 안 되는 계약조건을 내세워 강제적으로 황금지구의의 경비보안을 떠맡게 된 헤이스케에게 대학시절 친구였던 글라스 조가 찾아오면서 이 둘은 즉시 의기투합, 황금지구의를 강탈하기로 합니다.

 

이 소설은 황금지구의 강탈 작전수행 중 몇 차례의 반전을 통해 봉착한 위기상황을 기상천외한 기지발휘로 돌파하는 재미와 함께 하나같이 개성강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익살과 해학, 포복절도할 만한 기행 등이 독자들을 끊임없이 킥킥 거리게 하면서 읽는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단지 웃고 말자는 태도에서도 벗어나 공직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관료주의와 보신주의, 복지부동이라는 불합리에 조소와 함께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항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잔재미라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종 해양, 기계공학 등 과학적인 측면의 용어들일 것입니다. 사쿠라노미야 시의 심해에서 세계최초로 발견된 멍텅구리멍게, 얼간이멍게”, 황금지구의 강탈 작전명인 딸기 맛 찰떡 아이스 대작전”, 바퀴벌레가 닿기만 하면 으깨버리는 기계인 바퀴벌레 퍽퍽과 그 자매품 파리 탁탁”, 초강력 순간접착제 두 번 다시 그대를 놓지 않아", 사쿠라 TV의 인기프로그램인 싹둑 베어버릴테다등 나열하자면 무수히 많은 언어적 유희 또한 대단한 유머를 발하고 있기도 하구요

 

제일 인상적인 용어는 지하드 다이하드(성전에 살고 성전에 죽는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학 시절 헤이스케와 글라스 조가 세상의 부조리에 일벌백계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았던 이 말은 결국 소설의 대단원에서 황금지구의를 훔쳐 돈을 벌려고 했었던 의도의 이면에 지하드 다이하드를 달성하기 위한 위장막이 있었다는 걸 아는 순간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합니다.

 

이 소설은 미션 임파서블 같은 거창한 스케일의 강탈 작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우스꽝스러운 작전을 두고 기득권 층에 대한 평범한 소시민의 작지만 통쾌한 반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소소한 재미를 느끼라고 읽는 코믹물이라고 받아들이면 될 듯 합니다.

 

상상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적당한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는 이 소설, 시간되시면 읽어보시길... 단 시간이 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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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독수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6
윌리스 브림 지음, 유향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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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친구여,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이제 가게나."

"자네 역시, 나의 장군님.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적병의 무리가 깨져나갔고, 이어 우리 기병들은 어지러운 인파 속으로 파묻혀갔다. 반짝이던 투구가 하나씩하나씩 차례로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기병대의 깃발이 마치 날쌘 독수리가 하강하듯 갑자기 떨어져내렸다. 이어 반달 족이 해자를 넘어와 도끼로 방책을 부수기 시작했다. 파비아누스와 아퀼라가 내 좌우에 있었고, 아르토리우스와 스쿠딜리오는 조금 멀리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훌륭한 전우들과 함께 죽는다!"

- 책 속에서 -

 

 

가끔씩 가입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거의 일주일동안 책 한 장도 읽지 않았네요' 라는 자조섞인 회원들의 독백과 마주치게 됩니다. 바빠서 그렇다는 건 핑계구요, 확 끌리는 작품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독서의 슬럼프가 저승사자처럼 찾아온 것인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을 당분간 멀리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그리워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그럴 땐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셔야죠.

 

슬럼프에 빠진 독자들을 확실히 소생시키는 효과 죽이는 처방약이 바로 이 소설 <눈속의 독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친 듯이 읽는 사람을 훅 가게 만드는 이 소설의 매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팩션이지만 진실로 강직하면서도 결사적인 로마 20군단의 처절한 사투에서 눈물 나는 감동과 숙연함이 동시에 가슴을 파고들기 때문일 겁니다.

 

이 소설은 앞서 얘기했듯이 로마의 마지막 군단인 20군단을 이끄는 막시무스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바탕이 된 걸작소설입니다(주인공 이름이 같습니다). 시대배경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번영가도를 달리던 대 로마제국도 이제 국운이 기울고 쇠약해진 시기입니다.

 

그동안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숨죽이고 있던 이민족들이 하나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 게르만민족은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을 피해 로마의 속주인 라인 강 일대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옵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로마제국!!

 

로마를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구할 마지막 희망은 잉글랜드에서 귀환한 노장 막시무스 장군밖에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강직한 성품으로 어떠한 유혹과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한평생 로마제국의 장군으로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백전노장인 그에게도 이번 전투는 그야말로 절망적입니다, 로마정부는 도처에서 도발하는 이민족을 상대하느라 막시무스 장군에게 지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합니다. 내게 조금만 더 병력과 물자지원만 있다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텐데...

 

그런 그의 곁에는 오랜 친구인 퀸투스 기병대장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충성스러운 부하들 모두가 그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지요.

 

이제 남은 것은 전면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적들에 비해 병력수가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고 신의 가호를 빌어야할 처지, 신은 그를 도울 것인가!

 

고작 6천의 병력으로 모든 가족들을 총동원하여 밀려들어오는 이민족들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이지만 그 수가 끝이 없습니다, 죽여도 죽여도 또 밀려드는데다 그 와중에 일부 배신자까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구요.

 

결국 장군 휘하 군단의 병사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면서 불꽃같은 삶을 마감하지요...

 

마지막 100페이지 정도에 걸쳐 전개되는 로마20군단과 이민족의 전투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최고의 미학과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강줄기에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대양으로 흘러들어가면 스케일의 절정을 보여주는데요. 마치 전투현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생생함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떨려옵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이것은 삼총사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지만 이들만큼 절절히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결단코 없습니다. 막시무스 장군의 위대한 리더쉽과 불굴의 정신력, 장군에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복종하는 로마 20군단의 병사들 모두가 미친 존재감과 함께 대단한 감동을 던져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지켜보노라면 삼국지 저리가라에다 조국을 최후까지 사수하려는 모습에선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빅 픽처>2011년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 대한 리뷰를 쓰는 지금 이 순간, 최고의 자리는 <눈속의 독수리>가 차지합니다.

 

살아서 책을 읽는다는 진정한 기쁨을 안겨 준 소설 <눈속의 독수리>, 이렇게 멋진 소설을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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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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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만일 당신이 계신다면 신이시여.

(저를) 계속 이 낙원에 머물게 하소서.

그럴 수 없다면 제 마음에 평안을.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제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이곳은 편안하다.

이곳은 무척......

 

어머니.

- 서두에서 -

 

일본의 엘러리 퀸!, 일본 신본격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 <달리의 고치>를 어제 밤 다 읽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은 위의 설명 외에 <쌍두의 악마>로 처음 전해들었었는데, 이번 소설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다른 고수분들에 비해 글 솜씨가 달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느꼈던 바를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나가야할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달리의 고치>가 최근작인줄 알았는데 데뷔작인 <46번째 밀실>에 이어 작가 아리스 시리즈의 두번 째 장편으로 93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초기작인셈이죠. 그래서 그럴까요? 제가 읽기 전에 예상한 바로는 좀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요, 히무라 교수와 아리스 콤비의 활약상은 익살스러운 만담때문인지 진도가 잘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적인 맛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유명한 쥬얼리 회사 사장인 도죠 슈이치가 자신의 별장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시체의 발견 장소는 특이하게도 살바도로 달리를 추종하는 슈이치 사장이 평소 애용하는 명상캡슐 안입니다. 더구나 살해된 슈이치 사장의 전매특허인 달리 식 콧수염마저 잘려버린 채 사라져버렸습니다.  

 

경찰 측에서는 유산 상속을 노린 형제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살인으로 처음에 의심했다가, 뒤이어 슈이치 사장의 비서인 사기오 유코 양을 두고 제3자와 사랑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수사방향을 좁혀들어갑니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주변 인물들이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오르게되죠.

 

이 소설에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살인사건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인물은 친구인 히무라 교수로군요. 둘의 관계는 셜록 홈즈와 왓슨을 연상시키는데요. 아리스는 친구 히무라의 추리에 의견을 제시하고 보조하는 역할인데, 과학적, 물리적 증거보다는 상식을 기초로 추론하는 히무라의 방식은 사고의 깊이를 잘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라는 반응을 보이는 상대에게 왜 그런지 차근차근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반응을 추가로 이끌어내니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단정을 파전 뒤집듯 보기좋게 반론을 제시하는 능력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다만 어느 부분에 이르면 논리의 설득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그냥 그러면 그런 줄 알아라는 식인 것도 같은데 왜 그런지 공감이 안되는 점도 분명히 있었고, 그런 점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링컨 라임이나 유가와 교수같은 철저한 물증주의 수사를 선호하는 저로서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 까닭일겁니다.

 

그런데 이 추리소설에서는 복선, 트릭, 반전같은 추리적 관점보다는 각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갈구하는 낙원을 상징하는 "고치"라는 단어에 더 흥미가 갑니다.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킨채, 특수한 액체 속에서 알몸으로 둥둥 떠 있는 상태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명상, 안식을 찾는 금속형 고치가 바로 명상캡슐이라고 불리는 기구입니다. 

 

타이머 작용에 의해 40분을 자도 8시간 숙면을 취한 듯 충분한 효과를 보이는 이 기구를 저도 장만하고 싶네요. 읽을 책은 많은데 바쁜 시간으로 계속 밀리고 있는 제게 이 캡슐이 있다면 40분 자고 책을 더 신나게 읽을텐데요. 그런 즐거운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고치" 를 찾아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고단한 심신을 어루만져주기를 염원하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그 점에 대해선 공감하게 됩니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게 아닐까라는 마음도요.

 

슈이치 시장의 "고치" 가  명상캡슐이라면 주인공 아리스의 "고치" 는 "소설"  이라는 허구의 세계입니다. 열일곱 고2 학생이었을 때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전해주었던 날, 여학생은 개의치 않고 세상이 시시하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하는 얄궂은 경험을 한 후, 충격속에 도피한 "고치" 가 "소설"  이랍니다.

 

마음 아프고 슬픈 사랑을 계기로 작가가 되었다는 아리스의 심경 고백을 읽으면서 좀전에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맘을 담은 러브레터를 보여주면서 내게 사전검열을 부탁했던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절절한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그 직원도 자신만의 "고치"  를 찾았으면 합니다.

 

연애소설로도 추리소설로도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달리의 고치>는 그래서 읽고나면 애처롭고 마음 쓸쓸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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