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메두사 컬렉션 13
그렉 아일즈 지음, 강대은 옮김 / 시작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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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터너(Page-Turner)라는 용어가 있다. ‘한 번 잡으면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해서 책장 넘기기가 바쁜 책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렉 아일즈의 <24시간>이 정말 그랬다. 읽는 동안 잡념과 세상만사 번뇌는 안드로메다로 저 멀리 보내고 미친 듯이 책에 고개를 박고 눈은 부릅뜨고 모든 감각은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한 채 진정한 스릴을 마음껏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렇게 몰입해서 스릴러를 읽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애초 기대했었지만 상상 그 이상의 짜릿한 재미에 화장실도 참아야 했다. 이런 작품을 그동안 몰라뵈었으니 그동안 참 재미없는 소설들에 내가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한탄과 아쉬움이 밀려든다.

 

이 소설은 24시간 동안 리얼타임으로 펼쳐지는 피 말리는 심리전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죄자가 있다. 조라는 불리는 이 남자는 사촌인 휴이와 부인인 세릴과 3인조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아이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고 부모에게 몸값을 받아낸 뒤 24시간 안에 부모 품으로 돌려주는 범죄행각을 벌여왔고 그 누구의 사상도 없이 성공률 100%라는 악명을 자랑하는 자이다. 그것도 모두 1년에 한번 씩 의사를 대상으로만 저지른 범죄라는 가장 큰 특징이다.

 

올해 조의 범죄표적이 된 가정은 의사 윌과 카렌 부부의 다섯 살 딸 애비! 윌이 의학강연회에 참석하러가고 카렌과 애비만 가정에 남아있을 즈음 조 일당의 마수가 뻗쳐온다. 휴이가 애비를 몰래 납치해 달아나고 조는 카렌에게 딸의 납치사실을 알려주고 몸값 20만 달러를 요구하며 그녀 또한 인질로 억류하는 동시에, 남편 윌도 유혹을 가장하여 접근한 세릴에게 인질로 억류당하면서 일가족 3명이 각각의 장소에서 각각의 범인들의 감시를 받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찰에 알리면 아이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협박 속에 윌과 카렌은 조 일당의 예상을 뒤엎고 애비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집념으로 양자 간의 불꽃 튀는 두뇌게임을 전개한다. 과연 윌과 카렌은 애비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 범인들 모르게 딸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아동납치나 학대 등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은 넘칠 정도로 많았지만 동일한 재료로도 명인의 솜씨에 따라 화려하게 재탄생되기도 한다. 주범인 조는 매우 치밀하고 영리한 자로서 다소 모자라지만 심성은 나약한 사촌 휴이와 폭압으로 지배하고 있는 부인 세릴을 공범으로 조종하여 이번에도 완전범죄를 꿈꾸는데 자신감엔 다 그만한 근거가 있다. 보통의 납치극이라면 범인들은 부모에게 자신들의 정체와 위치를 철저히 은닉한 채, 몸값을 요구하겠지만 이자들은 상식을 초월한다. 3명이 각자 역할 분담하여 남편과 아내, 아이를 각각 납치하여 흩어진다. 그리고 조는 휴이에게 30분 간격으로 통화하고 만약 자신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면 신상에 변고가 생긴 것으로 간주, 미리 세워두었던 또 다른 계획에 착수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트라이앵글 중 어느 한 축만 이상이 생겨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시스템 구축으로 어느 인질도 딴 맘을 품지 못하게 철저한 보완책을 강구해놓았던 것.

 

이전의 사례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번에 만난 표적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묘한 기지와 책략으로 빈틈없을 것 같았던 거미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조금씩 심어가기 시작한다. 아이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있는 윌 부부를 지켜보는 동안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가 어찌나 황홀하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마치 브레이크 풀린 스포츠카가 도심 한복판을 무한 질주하는 것 같은 쾌감에서 제프리 디버의 향기가 물씬 풍길 뿐 아니라 후반부에선 할런 코벤의 솜씨도 엿보일 정도로 테크닉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역시 루이스 만도키 감독, 케빈 베이컨, 샤를리즈 테론, 다코타 패닝 출연으로 <트랩드>라는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헐리웃에서 이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는데 영화평점은 썩 좋지 않다. 원작의 탄탄한 스릴을 제대로 못살려낸 게 패착인 것 같다.

 

그냥 영화는 영화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그렉 아일즈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는 <데드 슬립>이나 펜 케이지 시리즈도 국내에 속히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작가가 국내에도 널리 소개되어 자칫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무더운 여름날을 맞아 보양식으로 제격인 이 작품을 읽게 되면 우린 왜 스릴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에 백점짜리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간만에 만난 제대로 된 대박!! 그렉 아일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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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이후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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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여 전에 스티븐 킹의 <캐리>를 읽고 데뷔작으로서의 신선함과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차례대로 읽어봐야지 하던 차에 때마침 13편의 단편들로 엮인 <해가 저문 이후>로 다시 접할 기회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단편집들을 무척이나 선호하는데 호불호가 엇갈리는 와중에서도 맘에 드는 단편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 상당하기에 어중간한 장편보다 오히려 더 월등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단편집은 스티븐 킹이 왜 호불호가 극명한 작가인지 분명한 본보기를 제시하는 첫 경험이 되었는데 아무리 대중작가로서의 입지가 단단하다지만 초현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일상 이야기들이 마냥 쉽고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너무 만만히 생각했던 것인지.... 솔직히 중반까지는 나름 집중해가며 읽어 내려갔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지루한 부분도 존재하면서 작가와 역자의 해설을 통해아하! 그러한 내용을 소재로 다루고 있구나.”라며 이해했을 정도로 다소 소화해내기에 벅찬 단편들이 다수였었다. 작가의 코드랑 개인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그러다가 종착역까지 3분의 1 정도 남겨주고 그제야 나를 만족시킬만한 이야기들이 막판에 몰려나온다. 가장 몰입해가며 읽었던 <지옥에서 온 고양이>의 경우 호러의 제왕이 보여주는, 어디선가 읽은 듯한, 고전적인 취향의 이야기였다. 소설 속 고양이의 저주는 사람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불행이라는 산물에 직접 경고장을 던져주며 순서대로 단죄해가는 과정 속에서 아무리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업보인 듯하다. 결말 부분에서는 가장 끔찍한 상황 설정을 통해 글로 읽는 공포를 눈을 감고 상상으로 재현하게 만듦으로서 끝내 몸서리치게 만드는 재기발랄함도 돋보인다.

 

<벙어리>는 불륜에 빠진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벙어리 히치하이커가 결초보은(?)해서 처리해 준다는 이야기인데, 정상인이 아닌 벙어리에게 답답한 맘에 하소연했던 개인사를 예상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결말짓게 만드는 전개는 일순 흥미롭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우연이 필연으로 연계되는 과정 속에서 아이러니라는 부조화를 잉태하고야 만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되씹어 보게 한다. 물론 의외의 반전도 쏠쏠한 재미.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주 비좁은 곳>도 악의로 가득한 이웃 간의 사투가 빚어내는 블랙유머의 집약으로 손색없는 즐거움이 충만한 이야기다. 용서와 화해 대신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의 반복되는 보복을 통해 인간의 아집과 독선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 비좁은 간이화장실에서의 냄새나고 토악질 나는 폐쇄공포증 속에서 생생하게 시전 된다. 둘 중 하나는 직접 손을 대지 않더라도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종료되는 게임은원수를 사랑하라하는 말이 무색하게 할 정도로 미련하고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는 전개로 색다른 재미가 돋보였다.

 

그렇게 다 읽고 난 소감은 역시 아이스크림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단편집의 매력이란 것이고 스티븐 킹의 이번 단편집도 예외가 아니란 점이다. 비록 모든 이야기가 만족스러운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의 다채롭고 기묘한 이야기들은 역시 킹(king)이다. 그래서 향후 소재의 원천과 영감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올라 많은 독자들을 지속적으로 독서의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는 원초적인 기쁨과 희열을 맛볼 수 있게 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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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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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의 줄거리만 접했을 때에는 홍콩영화 <무간도>가 반사적으로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비밀경찰요원이 범죄조직에 10년간 위장 잠입하여 조직원을 위장한 스파이로 활동한다는 설정이 이 소설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경찰이 아니라 경찰의 정보원 즉 끄나풀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되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작년에 국내 출간되었던 <비스트>는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지나치고 말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에서야 이 콤비작가의 다른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피에트 호프만이라는 이 남자는 실제 범죄자이면서 파울라라는 가명으로 경찰의 위장수사를 돕는 끄나풀이라는 이중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폴란드의 마약조직인 보이테크의 일원으로 가장해 위장 잠입 중이다. 때마침 보이테크 조직은 스웨덴 내 모든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마약을 독점공급 판매하려는 야심찬 사업을 구상 진행하게 되고 이에 호프만은 중범죄자로 위장 수감되어 역으로 조직을 말살하려는 경찰의 계획에 착수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교묘한 눈속임으로 교도소 내에 마약과 총기를 밀반입하는데 성공하여 마약상으로 순조로운 활동을 하던 중에 호프만이 이전에 얽혔던 살인사건 수사를 위해 에베트 그렌스 경정이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점차 거리를 좁혀오게 된다. 이에 당황한 프로젝트 관련자들은 호프만의 존재를 덮어버리기 위해 그의 정체를 발설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이제 호프만의 정체는 발각되고 생명의 위협마저 받게 되자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결심을 한 채, 그는 인질극이라는 정체절명의 승부수를 던진다.

 

이제껏 읽었던 스웨덴산 스릴러 중 일단 가독성면에서는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소설이 헐리웃에서 영화화되기로 결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인데 그만큼 캐릭터가 심리묘사에 치중되기 보다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각적인 쾌감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던 호프만이 과감한 결단과 기지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물 먹이려던 설계자들에게 복수하게 되는 과정까지 신속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은 도둑맞게 된다.

 

또한 <비스트>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시점에서 범죄를 재구성하는 방식에선 탁월한 창작능력을 과시하고 있으면서 교도소 내에 마약의 밀반입 과정을 직접 시도, 성공한 연후에 이를 집필의 재료로 삼았다고 하니 그들만의 치밀한 고증과 자료조사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 같다. 때문에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던 대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알게 되면 믿기지 않으면서도 짜릿함도 동시에 상승 동반반된다.

 

다른 관점은 어떨까? 경찰의 범죄수사를 위해 실제 범죄자를 이용하여 악을 악으로 대처하게 하는 덱스터식 방식은 때론 원치 않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와 오차들로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어느 부분까지 면책권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의 합리화가 과연 도적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긴다는 점에서 사회적 메시지와 고민을 던진다. 단순히 재미만이 전부가 아니라 빠른 흐름 속에서도 생각의 여지는 있다.

 

전체적인 호평 속에서도 석연치 않은 설정이 눈에 띄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도소 내의 수감생활과 인질극이라는 대치과정 중에서 사전에 배경으로 설명되었던 점이 뒤에 가서는 달리 적용(?)되고 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오류가 아니라면 나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가령 감방에 재소자가 입실해야 하는 시간이 처음에는 1935분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1930분으로 설명되는 것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에베트 그렌스 경정의 개인적인 과거사들이 뜬금없어 보였는데 시리즈 중 후속편이라고 해서 납득은 되면서도 전작들에서 어떤 아픔들이 있었는지 궁금증도 생긴다. 물론 그의 독불장군식 소통과 아집이 가끔씩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울러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에서도 비교적 순조롭게 대처해 나가는 호프만과 그렌스 경정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미리 답을 준비해 놓고 차례대로 풀어나가는 듯해서 어떻게 전개될지 이야기가 궁금하긴 해도 살 떨리는 긴장감은 다소 부족했다는 점도 옥의 티로 지적하고 싶다. 예측 가능한 결말도 마찬가지.

 

그렇게 남들이 다 호평하는 스릴러엔 조금이라도 까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비수를 들이대긴 했어도 꿈틀대는 생존본능이 속도감으로 표출되는 즐거움이 상당했으며그간 스웨덴산 스릴러는 지루하더라는 개인적인 통념을 희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세 번째 시리즈가 국내 출간되면 다시 이 콤비의 세계를 찾아 읽게 될 것같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부디 예감이 적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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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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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포데르 델 페르(개의 힘)"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피와 폭력으로 점철된 소설 속 마약전쟁을 읽는 동안 새삼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담보로 끊임없는 살육전이 벌어져왔는지 몸서리치게 되면서 암투의 출발에서 마무리에 이르는 여정은 마약에 관한 한 편의 역사 보고서를 만난 듯하다. 소설을 읽기 전 무엇보다 궁금했던 제목의 의미가 악은 개처럼 물고 놓아주지 않는 악력이거나 곪은 부위를 메스로 도려내도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자생력에 대한 두려움이며, 소설을 관통하는 흐름은 유토피아의 낙관론이 아닌 디스토피아라는 처절함을 대변한다는 것임을 체득케 한다.

 

그러면서 아트 켈러도 푸념했듯이 악에게 개처럼 이용당하고 가차없이 버려지는 힘없는 약자들의 구슬프고 응어러진 한을 대변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악의 영원불멸이라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그 누구도 선과 악을 명확하게 양분할 수 없으며 선은 악에 대하여 적절한 면죄부 부여를 통한 타협과 공생의 길을 걸어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쉽게 갈아타듯 해왔던 역사라는 진실은 마약커넥션과의 전쟁은 공허하며 필요없는 대가만 치러왔음이 절절히 와닿는다. 

 

아울러 국경의 왕 아트 켈러와 하늘의 군주 아단 바레라의, 일명 왕들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세상을 정화하거나 세상을 발 아래 꿇리게 될 양자선택의 기로에 서서 실리추구의 기회만 엿보는 인간군상들의 처세 또한 우리네 삶의 또다른 축소판이자 변형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결코 가벼이 읽어 나갈  수 없었던 이 대작은 6년간 치밀한 자료조사와 수집, 고증을 통해 완성해냈다고 하니 작가의 모든 역량을 총 집대성하여 세상으로 내보냈다는 점에선 누구도 태클을 걸 불순한 시도는 못할 것이며 마땅히 찬사를 받아야 함은 추호의 여지는 없겠다.

 

그러면서도 마약에 얽힌 전쟁의 역사는 굳이 공부하고픈 생각도 여유도 없다. 단지 여타 독자들이 공감했던 소설에 대한 시각과 평가에 대해서는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그것은 갈등 뿐만 아니라 로맨스까지 결들여진 장대한 폭포수 속에 흠뻑 들어가서 물줄기를 맞고 나온 듯한 강렬함과 생생한 지옥도가 펼쳐지는 압도적인 스릴러에 대한 좋은 본보기를 제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작한 영화 <SAVAGES>를 스크린뿐만 아니라 소설로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물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지속적인 출간도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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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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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으로 마무리했던 마이클 코넬리를 미키 할러 시리즈로 다시 만난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이후 오랜만에 보는 그 남자를 보니 여전히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법정 스릴러로서 충실한 재미도 보여주고 있으니 역시 코넬리는 코넬리라는 불변의 진리! 이번 작품은 무엇보다 드림팀의 재결합에 우선 주목하게 되는데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에서 등장했던 인물들 중 매케일럽 대신 주인공으로 미키 할러로 갈아탔다는 차이만 있을 뿐, 종합선물세트 2탄으로서의 알찬 구성은 제대로 무장하고 있다.

 

법정 스릴러로 별도 분리하여 읽어도 흥미롭지만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와의 조우에 초점을 맞춰도 코넬리 팬으로서 충분한 만족스럽다. 말 그대로 이복 형제지간인 이들은 그동안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지냈을까? 첫 만남에서는 무슨 말들이 오고 갈까? 라는 기대감으로 증폭되는 기대감에 페이지를 넘겼는데 예사롭지 않은 첫 대면이었다. 어느 한쪽도 한 발 물러서는 일 없이 시종일관 자신이 처한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려 두 발을 지면에 굳건히 밀착한 채 대치하는 신경전이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야말로 존재감에 압도당하는 순간들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그렇게 충돌하면서도 여러모로 두 사람은 닮아있었다. 그 점은 마지막에 할러와 보슈의 대화, 그리고 할러의 독백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자신의 영역에서 서로를 각자 마주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심경 속에 잘 녹아 있다.

 

이 작품이 미키 할러 시리즈로 분류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해리 보슈는 자신의 등장 씬에서 인상적인 모습들을 노출한다. 가령 할러가 보슈에게 재즈 아티스트인 프랭크 모건을 자신이 잘 안다고 했을 때 보슈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대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보슈가 할러의 신변을 뒤 흔들어 그가 가진 정보를 캐내기 위해 꼼수를 부려 자작극을 벌이다 이를 눈치 챈 할러로부터 욕을 한 바가지 들어먹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슈가 그러한 꼼수를 벌였다는 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점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할러의 추궁과 질책에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행동은 이제껏 보슈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점이라 의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상 차돌같이 단단하고 저돌적인 보슈에게서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부터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것. 이후에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볼 수 있는데 그 점만 보아도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미키 할러가 주인공인 법정 스릴러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항상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형사물에 익숙해 있던 내게 그간 법정 스릴러는 자주 만나기 힘든 장르이기도 하다. 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검사 측도 아니라 죄질 나쁜 의뢰인을 맡아 대변한 검은 돈을 수임료로 챙기는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의 법정 투쟁은 딸에게도 쓴소릴 들어야하고 보슈에게도 나쁜 놈들을 변호한다는 조롱을 감내해야 한다, 미움 받기도 하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도 없는 이중적 캐릭터인 미키 할러는 화려한 지적 공방 속에서 발생하는 의뢰인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 위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흥미진진한 법정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 치밀한 조사도 관심 있게 읽었는데 배심원 선정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통해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사람들을 배심원으로 앉히기 위해 배심원 선정 컨설턴트까지 고용하여 마치 카드게임에서 패를 조율하는 듯 한 진행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긴밀한 구성과 리얼리티,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전개로 법이라는 세계의 이면을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미키 할러의 컴백작으로 한정해서 읽어도, 슈퍼드림팀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어도 어느 쪽에서도 굉장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멋진 내용물들을 담고 있다. 크라임 스릴러의 마스터로서 코넬리의 저력과 위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드는 <the brass verdict>는 그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대박작으로 강력 추천하고 싶다. 코넬리의 작품을 읽는다는 건 카페인 중독같은 마력!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보다 더 재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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