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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연말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으로 마무리했던 마이클 코넬리를 미키 할러 시리즈로 다시 만난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이후 오랜만에 보는 그 남자를 보니 여전히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법정 스릴러로서 충실한 재미도 보여주고 있으니 역시 코넬리는 코넬리라는 불변의 진리! 이번 작품은 무엇보다 드림팀의 재결합에 우선 주목하게 되는데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에서 등장했던 인물들 중 매케일럽 대신 주인공으로 미키 할러로 갈아탔다는 차이만 있을 뿐, 종합선물세트 2탄으로서의 알찬 구성은 제대로 무장하고 있다.
법정 스릴러로 별도 분리하여 읽어도 흥미롭지만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와의 조우에 초점을 맞춰도 코넬리 팬으로서 충분한 만족스럽다. 말 그대로 이복 형제지간인 이들은 그동안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지냈을까? 첫 만남에서는 무슨 말들이 오고 갈까? 라는 기대감으로 증폭되는 기대감에 페이지를 넘겼는데 예사롭지 않은 첫 대면이었다. 어느 한쪽도 한 발 물러서는 일 없이 시종일관 자신이 처한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려 두 발을 지면에 굳건히 밀착한 채 대치하는 신경전이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야말로 존재감에 압도당하는 순간들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그렇게 충돌하면서도 여러모로 두 사람은 닮아있었다. 그 점은 마지막에 할러와 보슈의 대화, 그리고 할러의 독백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자신의 영역에서 서로를 각자 마주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심경 속에 잘 녹아 있다.
이 작품이 미키 할러 시리즈로 분류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해리 보슈는 자신의 등장 씬에서 인상적인 모습들을 노출한다. 가령 할러가 보슈에게 재즈 아티스트인 프랭크 모건을 자신이 잘 안다고 했을 때 보슈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대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보슈가 할러의 신변을 뒤 흔들어 그가 가진 정보를 캐내기 위해 꼼수를 부려 자작극을 벌이다 이를 눈치 챈 할러로부터 욕을 한 바가지 들어먹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슈가 그러한 꼼수를 벌였다는 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점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할러의 추궁과 질책에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행동은 이제껏 보슈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점이라 의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상 차돌같이 단단하고 저돌적인 보슈에게서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부터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것. 이후에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볼 수 있는데 그 점만 보아도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미키 할러가 주인공인 법정 스릴러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항상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형사물에 익숙해 있던 내게 그간 법정 스릴러는 자주 만나기 힘든 장르이기도 하다. 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검사 측도 아니라 죄질 나쁜 의뢰인을 맡아 대변한 검은 돈을 수임료로 챙기는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의 법정 투쟁은 딸에게도 쓴소릴 들어야하고 보슈에게도 나쁜 놈들을 변호한다는 조롱을 감내해야 한다, 미움 받기도 하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도 없는 이중적 캐릭터인 미키 할러는 화려한 지적 공방 속에서 발생하는 의뢰인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 위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흥미진진한 법정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 치밀한 조사도 관심 있게 읽었는데 배심원 선정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통해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사람들을 배심원으로 앉히기 위해 배심원 선정 컨설턴트까지 고용하여 마치 카드게임에서 패를 조율하는 듯 한 진행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긴밀한 구성과 리얼리티,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전개로 법이라는 세계의 이면을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미키 할러의 컴백작으로 한정해서 읽어도, 슈퍼드림팀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어도 어느 쪽에서도 굉장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멋진 내용물들을 담고 있다. 크라임 스릴러의 마스터로서 코넬리의 저력과 위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드는 <the brass verdict>는 그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대박작으로 강력 추천하고 싶다. 코넬리의 작품을 읽는다는 건 카페인 중독같은 마력!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보다 더 재밌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