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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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인은 형제와 같습니다. 우리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함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시마다 소지)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 팩스에 금융권 대출 광고물이 쏟아지다시피 해서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겠죠. 대출 받으시라는 홍보전화와 문자를 수시 날려서 바쁜 업무시간을 앗아가고 있을 정도이니 가히 쩐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런 전화가 오면 동료들 중에는 “나는 신용불량자인데 1억 그냥 빌려주느냐”며 농으로 받아치는가하면 “그 회사 직원들도 사람들 전화 상대하면서 스트레스가 오죽 많겠느냐, 불쌍하니 그냥 좋게 말해서 끊어버려라”며 다른 대처방식을 제시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정상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채를 끌어 빌렸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고금리를 감당 못해 인생마저 저당 잡히는 사채지옥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은 이제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사채가 낳은 폐해에 덧붙여 야구라는 스포츠를 세트로 묶어 청춘의 꿈과 이상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좌초되고 마는 과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국 사채와 야구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예상과는 달리 야구의 비중이란 것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고 느껴져서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뜨거운 투혼과 승부욕, 생생한 시합 묘사 등을 기대했지만 신고 선수로 짧은 경력을 남긴 주인공 다케야 료지가 재능의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 성장을 못한 채 퇴출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별 볼일 없는 야구인생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심드렁하기까지 했습니다. 매년 스토브리그를 후끈하게 달구는 FA선수들의 이적에 수반되는 거액의 계약금에 현혹되다보면 무명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시피 하기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가려진 그들의 눈물어린 땀은 외면해 왔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도 솔직히 그들에 비해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자존심 상해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선수로서 재능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가진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내었노라 자평하면서 최선의 일구, 최후의 일구를 던진 다케야와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성공을 내려놓아야 했던 다케치, 두 남자의 우정만큼은 누가 뭐래도 가슴 뭉클한 순간을 남겼습니다. 무명과 유명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족적을 남긴다면 다케야의 야구인생도 박수갈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에 족쇄가 채워진 두 청년을 보면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상대적으로 미흡한 미스터리적 결함을 현실과 맞닿은 범죄의 사회적 동기에 초점을 맞춘 방식도 여전히 유효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의 경우 범죄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한껏 선보일 기회가 공평하게 배분된, 그러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에 임하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1루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는 선수가 진정 프로다"며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 등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고 설명하며 목표를 향해 정진하라고 당부한 양준혁, 전 삼성라이온즈 선수나 ‘일구이무’, 즉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다음은 없다는 좌우명으로 살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왜 야구라는 스포츠에 그토록 열광하게 되는지를 새삼 공감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야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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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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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이 책, <용서할 수 없는>을 읽기 전만 해도 할런 코벤의 기존 작들에 대한 괴리감이 분명 존재했었기에 다른 책들에게 밀려 한동안 책꽂이에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더 이상 쌓이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내어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한 많은 독자들의 찬사와 호평들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그러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뒤늦게나마 확인하게 되어 한편으로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동안 코벤의 작품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안정적인 일상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하고 그것이 점차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간다는 미스터리한 설정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인물들 간 갈등과 불화를 거쳐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는 별반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맘을 파고드는 것은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상황들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지켜보면서 나라면 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는 자문을 구하면서 나라도 그렇게 처신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공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흥미 있는 미스터리라는 미덕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빨간색 문에 달린 놋쇠손잡이에 비친 갈고리 모양의 그림자는 “그 빨간 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의 불길한 전조를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빨간 색 문은 소아 성애자로 몰리게 된 댄 머서의 상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댄의 스탠포드 대학시절 룸메이트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파멸과 불행들이 사실은 의도하지도, 의도되지도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라는 금기를 결과적으로 열었던 선택을 상징한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 있을 수 있는 치기라는 추억이 우발적인 사고로 한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게 되면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책임지고 속죄해야 할 최악의 상황 앞에서 피해자는 대범하게도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푼 사실이 있습니다. 결코 쉽사리 내리기 힘든 결단에 가해자들의 처신은 각자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하며 뒤로 발을 빼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속죄를 실천하기도 하지요. 왜 내가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면서 분을 토하는 사람도 제각각, 결국 인간 군상들의 축소판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은 용서가 용서를 낳으면서 훈훈한 반전과 결말로 마무리 지으면서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진실로 시간이 귀한 줄을 아는 현명한 자는 용서함에 있어 지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헛된 허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새뮤얼 존슨의 명언대로 분노에 목을 옭죄도록 만들기보다는 용서라는 베풂이 당장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를 불행에서 구제해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겠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실천은 아닐 것이며 그전에 진정한 반성과 속죄가 선행되어야 함을 댄을 통해 깨닫게 될 겝니다.

그리고 코벤의 이번 작품에서도 발견되지만 시리즈물이 아님에도 전작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조연으로 간헐적인 출연을 하는데 아! 그때 그 사람하면서 기억을 한 번씩 되살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에서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웬디 모자가 아니라 헤스터 크림스타인 변호사였습니다. <아들의 방>에서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의 맹활약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저에게 그녀의 재등장은 반갑더군요.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를 보면 맹렬한 투견이 연상되는데 그녀가 출연한 TV리얼리티 쇼도 재밌는 대목이지만 보안관 워커와 취조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정말 정말 압권이었네요.

 

헤스터는 또 한 번 자신의 귀에 나팔 모양을 만들었다.

“얼른 대답해요, 덩치 씨. 말을 하라구요”.

“풍악을 울려야 털어 놓을 건가요?”                                         <본문 중에서>

 

그녀의 언변을 듣다보면 변호사가 아니랄까 봐 신랄하면서도 풍자가 있고 논리에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 미심쩍기도 한데 교묘히 정당하게 포장해서 자신하게 유리하게 결론을 유도하는 기술은 감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에는 하나같이 뼈가 있고 무게가 실려 있으며 강렬한 에네르기가 장악하는 터라 읽는 동안에 완벽히 제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미키 할러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사 캐릭이 아닌 가 싶은데 그녀를 원톱으로 내세운 시리즈물이 나온다면 굉장할 것 같네요. 한 번쯤 작가가 고려해봤음 좋겠다는 희망사항과 함께 그 동안 다소 멀게 느껴졌던 할런 코벤과의 거리가 이번 작품으로 인해 코앞까지 당겨지는 순간이어서 만족스러웠으며, 작품별 굴곡이 심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가 이 정도 퀄리티만 꾸준히 내 놓을 수만 있다면 완소작가의 자격이 충분할 것 같네요.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부터 꾸준히 챙겨보고 싶은데 그 중에서도 <밀약>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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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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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롯데의 2012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4차전이 사직구장에 열리던 그 날, 금요일 저녁 회사워크숍 관계로 서울 출장 왔다가 마치고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준비성 없이 내려가는 티켓을 미리 예매 안 했던지라 당근 앉아서 갈 자리는 없었고 꼼짝없이 입석이라도 발매 기기에서 조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한 장을 다행스럽게 건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다 야구는 롯데가 뒤지고 있어 이래저래 심란한 상태였고 일단 인근 서점으로 읽을 책을 구입하러 갔었죠. 서점은 규모가 작아서인지 있는 책들은 있고 없는 책들은 없는 수준, 레이다망에 포착하여 복잡한 머리속을 비워줄 가벼운 책으로 골랐던 것이 바로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입니다.

 

처음으로 열차입석으로 타서 연결통로에서 뻣뻣한 다리를 어루만져 가며 이 소설에 기대했던 점은 머리 아픈 추리보다는 빵빵 터지는 폭소극! 결과적으로 소리내어 웃을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겁니다. 맘속으로 풋 하고 웃어 넘겨버릴 수준인데 일본식 유머는 접할 때마다 참 어정쩡한 것 같습니다. 웃길 때는 사정없이 방바닥을 구르게도 하지만 아닐 때는 썰렁함에 멍 때릴 적도 많은데 적당히 간보는 수준의 유머가 아니었나 싶네요. 차라리 유머라면 <명탐정의 규칙>이나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같은 소설들이 두 마리 토끼 잡는데 제격인데 말이죠. 너무 웃을거리에 목매었나 봅니다. 풋풋함은 있지만요.

 

일본 해안에 자리 잡은 지방 중소도시인 이카가와 시의 자칭 홈즈와 왓슨, 우카이와 류헤이 콤비가 해결하는 다섯 가지 단편들이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는데 매형과 처남의 관계도 알고 보니 누나랑 이혼한 사이라고 하니 그다지 끈적끈적한 유대관계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첫 번째 단편 [후지에다 저택의 완전한 밀실]에서는 눈 내리는 저택의 지하실을 밀실로 만들어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인의 계획을 단순한 착안점에서 출발해서 쉽게 해결하는 콤비의 추리가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처음 읽는 저 같은 독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거대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는 애시 당초 기대도 말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은데 기왕이면 범인의 트릭을 정면 돌파하여 깨뜨리는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범인이 나름 고심 끝에 고안하여 보다 자신만만했었는데.. 그 성의가 가상해서라도 한순간에 허무개그로 만들면 안되지요 .ㅡ 저 같은 독자의 입장도 생각했었더라면.... 

 

첫 번째가 몸 풀기 수준이었다면 두 번째 단편부터는 나름 신경 쓴 흔적은 엿보입니다. [시속 40킬로미터의 밀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을 해결해내는 내용인데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 살인이 기막힌 타이밍에 맞춰 발생되었다는 점이 작위적이어서 역시 찜찜하기도 한데 처분을 훈훈하게, 다소 익살스럽게 매듭지은 점만은 그래도 점수를 더 줄만 합니다. 세 번째 단편 [일곱 개의 맥주상자]는 도난당한 맥주상자들이 이용한 트릭을 통해 일상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를 범죄 사각지대의 사소한 위험을 경고한다고 생각되는데 발상 자체가 엉뚱하다는 정도입니다. 네 번째 단편 [참새 숲 의 이상한 밤]은 가장 추리소설 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흥미 없는 단편이기도 했습니다. 달콤한 러브러브를 꿈꾼 류헤이가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뭐 팔자 소관이겠죠~~~~

 

대미를 장식하는 [보석도둑과 엄마의 슬픔]은 총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백미였습니다. 기상천외한 반전은 그야말로 <식스센스>급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런 설정이라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웃기는 게 묘한 앙상블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트릭!! 나머지 단편들에서 미진했던 감상을 한 방에 만회하는군요. 진짜 이상야릇한 유머였습니다.계속 이 정도로 써내려간다면 종종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을 듯 싶은데도 불구하고 편차가 상당하겠구나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표지 일러스트는 올 초에 읽었던 가이도 다케루의 <울트라 황금지구의>를 연상시키는 재밌는 착상이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내용이 그렇게 신선하게 와 닿지 않고 억지스럽다는 점은 좀 그렇습니다. 가볍게 읽어야 할 추리소설에 제가 너무나도 많은 걸 기대하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시점에 맞춰 때마침 TV에선 기시 유스케의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자물쇠가 잠긴 방>의 에피소드 1화가 방영되고 있군요. 오노 사토시와 토다 에리카도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운데다 밀실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요건 재밌을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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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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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심장에 불타는 말뚝을 박으리라. 단 하나의 심장도 다시  뛰지 못하리.’(본문 중에서)

 

개인적으로 장르소설에 관해서는 단권보다는 시리즈물을 확실히 선호하는 편입니다. 애정 하는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시리즈물에서 강점을 보이는 그들이죠. 그렇게 본다면 존 버든의 데이브 거니 시리즈 2<악녀를 위한 밤>은 일단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즈물의 특성 상 전편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658, 우연히>를 먼저 읽지 않았다는 건 사전이해라는 선결과정을 생략해버린 오류를 범했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래도 읽고 난 감상은 불리한 조건이지만 일단 써내려가고자 하는 것이고 차후에 전편을 역으로 찾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멜러리 사건 이후 전직 뉴욕 최고의 형사였던 데이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의뢰가 들어옵니다. 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의사 스콧 애슈턴과 결혼한 신부가 오두막에서 끔찍하게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고 용의자는 애슈턴의 정원사로 일하던 멕시코인 헥터 플로레스로 밝혀지면서 사라진 그를 찾아 달라는 신부 어머니의 의뢰였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전 사건 때문에 거니와 부인 매들린에게는 많은 힘든 고비가 있었고 아직 그 여파가 있어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나 봅니다. 둘 사이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확인 못해 뭐라 판단 못하겠지만 대화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관계가 겉도는 공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들린의 입장에서는 형사직에서 은퇴한 남편이 더 이상 살인사건 조사에 연루되지 말고 부부가 자연 속에서 안락한 일상을 보내고픈 바램이 있지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는 미스터리라는 퍼즐을 짜 맞추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본능에 맘이 동하게하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당연히 부부 사이는 의견차이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금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거니는 기한을 두고 사건을 조사하기로 타협을 봅니다. 한편 이번 살인사건은 범인의 살인동기도 모호하고 흔적 없는 살해현장 주변과 도주 중 끊긴 발자국까지 도무지 단서를 남기지 않은 완전범죄인 듯 하네요. 완전범죄란 없고 완전해 보이는 현장이 있을 뿐이라는 책 소개 글이 중반 이후까지 갈지자걸음 같던 수사행보에 종지부를 찍고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는 복선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실살인의 동기와 트릭을 파해하는 것은 순전히 데이브 거니의 직감과 끊임없는 상상력입니다. 거기에 보태서 구체적인 물증을 통한 과학수사 없이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한 통찰력으로도 진실에 근접하게 되면서 동굴 입구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로 숨은 여우를 끌어내는 순간만큼은 전광석화 같은 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여우의 꾐에 농락당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자칫 좌초될 뻔 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과정들은 조금이라도 터닝 포인트를 조절 못했더라면 오버액션이 될 악수를 절묘하게 매조지 했던 것 같습니다. 라면 끊이는 냄비의 물이 넘치기 직전 화력조절을 잘한 이치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육체보다 어떤 느낌에 따라 감응하는 거니의 조사방식은 물증주의 수사의 대가 링컨 라임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 색다른 개성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또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도 위트와 시니컬한 냉소도 담겨있어 이를 음미하는 맛도 괜찮구요. 이제껏 만족스럽지 못했던 심리 스릴러 분야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되는데 몰입도가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제목인 <악녀를 위한 밤>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성폭력의 가해자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역시 신선(?)합니다. 고정관념을 과감히 바꾼 시도가 식상하지 않아 좋습니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 점은 어찌 보면 그리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중점을 둔 포인트는 어떤 일정한 사회적 메시지가 아니라 단지 퍼즐미스터리라는 두뇌게임을 만들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니까요. 진짜 악의 근원은 달리 존재합니다.

 

어쨌거나 주인공 데이브 거니는 때론 무모해서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더한 집념어린 오기 앞에 세상은 결코 진실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도 깨닫게 합니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요? 그렇게 섞이지 못할 것 같던 거니와 매들린의 관계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돈독해지란 믿음을 남긴 결말 부분은 그래서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심리전으로 승부하는 이 스릴러가 많은 독자들에 매혹적으로 다가오도록 만드는 스타일을 제대로 구축했다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구요.

 

'구역질나는 OO의 자손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이 저지른 역겨운 행각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글을 썼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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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스러지다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4
앨라페어 버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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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친구라는 단어를 그들의 삶 속에 퍼덕이며 들어왔다가 다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버리는 간단한 대상으로 묘사하면서, 관계를 축적하거나 끊어버리며 삶을 살아간다. (본문중에서)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르소설 작가에게는 전문성과 이색 경력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필수조건이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작품을 집필하는데 있어서의 사실성과 소재차별화를 위해서는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 앨라페어 버크에게도 그 점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된 것 같은데요, 스탠퍼드 로스쿨을 상위 10%위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고 포틀랜드 지방검사 출신이자 법대에서 형법을 강의하는 교수라는 화려한 경력은 그녀가 작가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특집을 다룰 정도였다 하니 적어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데 확실히 성공했다고 보여 집니다.

 

  

 

또한 이것만이 아니라 미국 최고의 범죄 소설 작가이자 에드거상과 대거상 수상경력에, 퓰리처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굵직굵직한 경력을 자랑하는 제임스 리 버크의 딸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물론 이 작가를 만나기전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도 전무한 상태였고 작품조차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부전여전은 스티븐 킹과 조 힐 부자처럼 부전자전의 또 다른 버전의 하나 정도로 넘어갈 정도입니다.

 

이 소설 <아스라이 스러지다>의 관련정보를 검색해보니사만사 킨케이드앨리 해쳐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몇 편의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던 그녀가 스탠드얼론으로 2011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숨은 치명적 위협과 악의가 서스펜스를 서서히 고조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인공 앨리스 험프리가 형사들로부터 살인사건에 대해 방문조사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으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가의 애견 프렌치불독 더프>

 

직장에서 해고당해 실직상태에 있던 앨리스는 우연히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던 중 드루 캠벨이라는 멀끔한 남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뉴욕 맨하탄 지역에 갤러리를 신규 오픈하는데 총 책임자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실업자 신세로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던 앨리스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기에 몇 가지 미심쩍은 의혹을 뿌리치고 수락하게 됩니다.

 

뜬금없지만 그녀의 가족들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앨리스의 아버지는 과거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유명한 영화제작자지만 사생활에 있어서는 추문을 수시로 발생시켰던 유명인사이고 어머니 또한 유명 여배우였습니다. 오빠는 마약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는 등 가족들은 화려한 경력 이면에 복잡하고 불편한 개인사들을 가지고 있는 범상치 않은 가정인데, 그동안 아버지의 딸로 그늘에 가려있었던 앨리스에게는 진정 자립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찾아왔던 것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게 됩니다.

 

그렇게 순탄한 일상이 될 것 같았던 그녀에게 뜻밖의 악재가 발생합니다. 어느 작가의 사진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 사진작품이 대중들로부터 아동포르노물로 간주되면서 종교단체의 시위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는 곤란함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그녀의 고난은 끝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서 그 남자, 드루 캠벨이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와 그녀로 보이는 어떤 여성이 키스하는 사진까지 발견되면서 그녀는 점차 외설작품 판매자라는 도덕적 논란과 더불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한 앨리스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 남자를 미행하는 형사 행크 베크먼, 가출소녀의 행방을 쫓는 제이슨 모하트 형사 등이 등장하면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이 모두가 의도한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들이 뒤엉켜 각자의 진실을 캐기 위한 행보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누명을 쓴 앨리스가 알 수 없는 악의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들은 심장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역동성은 없지만 누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해답을 밝혀내고자 하는 미스터리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본적인, 안일한 삶을 보낸 앨리스는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예측도 못한 상태에서 삶이 산산조각 나려했던 것이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게되구요.

 

 

그래서 모든 것을 내놓는 댓가를 치러야만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는 음모 속에 가족과 친구마저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상황들은 그녀에게 씻지 못할 상처가 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남깁니다. 때론 하나의 사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정 없는 수사의 재구성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넘겨버렸던 과오들이 꺼지지 않는 불씨로 살아나 무시무시한 화마가 된다는 교훈 또한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그리고 앨리스와 그녀의 아버지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단지 소설 속 등장인물만의 관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를 투영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책 속 설명이 아니더라도 확실히 많은 부분이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 속 관계처럼 불편함이 아니라 화목한 부녀지간일 것이라는 점은 가족사진으로도 느껴지니 별개겠지만요.

 

              <아버지 제임스리 버크와 앨라페어 버크>

 

결과적으로 불안함에 떠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한 영리한 스토리텔링은 부드럽게 읽혀진다는 점에서 흡입력은 괜찮은 편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좀 더 자극적인 전개와 스케일을 나름 예상하고 원했던 바라 그 점에서는 부족했다고 살짝 입맛 다시게도 하지만 이런 스타일도 나름 선호할 독자가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작가 비주얼이 인심좋고 맘도 넉넉한 이웃집 아줌마같이 푸근한 인상이라 호감이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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