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스러지다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4
앨라페어 버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친구라는 단어를 그들의 삶 속에 퍼덕이며 들어왔다가 다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버리는 간단한 대상으로 묘사하면서, 관계를 축적하거나 끊어버리며 삶을 살아간다. (본문중에서)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르소설 작가에게는 전문성과 이색 경력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필수조건이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작품을 집필하는데 있어서의 사실성과 소재차별화를 위해서는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 앨라페어 버크에게도 그 점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된 것 같은데요, 스탠퍼드 로스쿨을 상위 10%위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고 포틀랜드 지방검사 출신이자 법대에서 형법을 강의하는 교수라는 화려한 경력은 그녀가 작가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특집을 다룰 정도였다 하니 적어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데 확실히 성공했다고 보여 집니다.

 

  

 

또한 이것만이 아니라 미국 최고의 범죄 소설 작가이자 에드거상과 대거상 수상경력에, 퓰리처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굵직굵직한 경력을 자랑하는 제임스 리 버크의 딸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물론 이 작가를 만나기전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도 전무한 상태였고 작품조차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부전여전은 스티븐 킹과 조 힐 부자처럼 부전자전의 또 다른 버전의 하나 정도로 넘어갈 정도입니다.

 

이 소설 <아스라이 스러지다>의 관련정보를 검색해보니사만사 킨케이드앨리 해쳐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몇 편의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던 그녀가 스탠드얼론으로 2011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숨은 치명적 위협과 악의가 서스펜스를 서서히 고조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인공 앨리스 험프리가 형사들로부터 살인사건에 대해 방문조사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으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가의 애견 프렌치불독 더프>

 

직장에서 해고당해 실직상태에 있던 앨리스는 우연히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던 중 드루 캠벨이라는 멀끔한 남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뉴욕 맨하탄 지역에 갤러리를 신규 오픈하는데 총 책임자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실업자 신세로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던 앨리스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기에 몇 가지 미심쩍은 의혹을 뿌리치고 수락하게 됩니다.

 

뜬금없지만 그녀의 가족들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앨리스의 아버지는 과거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유명한 영화제작자지만 사생활에 있어서는 추문을 수시로 발생시켰던 유명인사이고 어머니 또한 유명 여배우였습니다. 오빠는 마약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는 등 가족들은 화려한 경력 이면에 복잡하고 불편한 개인사들을 가지고 있는 범상치 않은 가정인데, 그동안 아버지의 딸로 그늘에 가려있었던 앨리스에게는 진정 자립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찾아왔던 것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게 됩니다.

 

그렇게 순탄한 일상이 될 것 같았던 그녀에게 뜻밖의 악재가 발생합니다. 어느 작가의 사진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 사진작품이 대중들로부터 아동포르노물로 간주되면서 종교단체의 시위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는 곤란함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그녀의 고난은 끝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서 그 남자, 드루 캠벨이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와 그녀로 보이는 어떤 여성이 키스하는 사진까지 발견되면서 그녀는 점차 외설작품 판매자라는 도덕적 논란과 더불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한 앨리스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 남자를 미행하는 형사 행크 베크먼, 가출소녀의 행방을 쫓는 제이슨 모하트 형사 등이 등장하면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이 모두가 의도한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들이 뒤엉켜 각자의 진실을 캐기 위한 행보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누명을 쓴 앨리스가 알 수 없는 악의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들은 심장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역동성은 없지만 누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해답을 밝혀내고자 하는 미스터리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본적인, 안일한 삶을 보낸 앨리스는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예측도 못한 상태에서 삶이 산산조각 나려했던 것이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게되구요.

 

 

그래서 모든 것을 내놓는 댓가를 치러야만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는 음모 속에 가족과 친구마저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상황들은 그녀에게 씻지 못할 상처가 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남깁니다. 때론 하나의 사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정 없는 수사의 재구성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넘겨버렸던 과오들이 꺼지지 않는 불씨로 살아나 무시무시한 화마가 된다는 교훈 또한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그리고 앨리스와 그녀의 아버지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단지 소설 속 등장인물만의 관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를 투영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책 속 설명이 아니더라도 확실히 많은 부분이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 속 관계처럼 불편함이 아니라 화목한 부녀지간일 것이라는 점은 가족사진으로도 느껴지니 별개겠지만요.

 

              <아버지 제임스리 버크와 앨라페어 버크>

 

결과적으로 불안함에 떠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한 영리한 스토리텔링은 부드럽게 읽혀진다는 점에서 흡입력은 괜찮은 편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좀 더 자극적인 전개와 스케일을 나름 예상하고 원했던 바라 그 점에서는 부족했다고 살짝 입맛 다시게도 하지만 이런 스타일도 나름 선호할 독자가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작가 비주얼이 인심좋고 맘도 넉넉한 이웃집 아줌마같이 푸근한 인상이라 호감이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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