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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만약 당신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능력이 있다면?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미래를 사전에 알려준다면? 다카노 가즈아키의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이러한 초능력을 지닌 한 청년과 그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면서 인생의 위기를 대처해나가려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이색 단편집으로 도발적인 제목에서 연상되는 추리극의 형식을 빌려 초현실적인 전개 속에서 희망, 좌절, 추억 등 다양한 느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읽는 동안 등장인물들에게 강한 감정이입에 빠져들게 된다.
총 6편의 단편들 중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서는 말 그대로 6시간 후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하라다 미오가 살아남기 위해 예지자인 야마하 케이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범인의 정체가 설득력대신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3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서 다시 재회하여 인연으로 이어진 케이시와 미오의 이야기는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재미를 안겨준다.
자신의 죽음을 예지하게 된 케이시가 자신 외에 행사장의 많은 군중들이 불의의 사고로부터 희생된다는 미래도 같이 보게 되면서 제한된 시간동안 사고의 발화를 밝혀내기 위한 고군분투로 가슴 졸이는 다이내믹함도 일품이었지만 미오를 살리고자 하는 배려심과 희생정신에 마음이 정말 짠했다. 죽음에 초연해버린 한 남자의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생사고락을 같이 헤쳐나간 두 사람이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단편을 꼽자면 <돌 하우스 댄서>를 들 수 있겠다. 프로댄서로서의 꿈을 키우며 오디션에 응시했던 여주인공이 우연히 미래를 보게 된다. 그것은 자신은 낙방하여 울게 되고, 같이 응시한 친구는 합격하며 기쁨을 맛보는 장면인데,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의 장난인지 친구는 때마침 경미한 부상을 입는다. 간단한 응급조치를 친구에게 해준다면 그 장면대로 자신은 그대로 낙방이, 친구는 회복하여 합격이라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미래가 기다리는 것이다.
이대로 모른 채 외면하여 자신이 기쁨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양심대로 친구의 치료를 도와 정해진 수순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결국 친구를 돕는데 역시나 예견된 미래는 바뀌지 않았던 것.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여주인공이 울면서 숙소를 나오게 되는데 진심 울컥해버렸다. 과거 나 자신의 참담한 실패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던 거다. 그 당시 얼마나 비참했던가! 몇날 며칠을 방안에 틀어박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자학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이 단편 속의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배고픈 현실과 기약 없는 암담한 미래 속에 좌절해버린 청춘의 꿈들을 같이 심정적으로 동정하며 싸구려 감상주의에 젖어들었다. 오호 통재라~~~
그렇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우리네 인생살이는 어쩌면 운명이라는 끈에 묶여 정해진 길을 이탈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거기에 순응하여 평범한 일상으로 살지 않고 변화를 꾀한다면 나비효과가 되어 또 다른 진흙길을 질퍽거리며 밟게 되어있을 것만 같다. 아니면 자신의 노력을 보태 약간의 경로 수정을 할 수 있는 선택받은 소수도 분명 존재하겠지.
마지막 단편에서 미래라는 여백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라는 식으로 저자는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주려고 하지만 그래도 내게 이러한 예지능력이 있다면 인생이라는 큰 도화지 전체를 가득 채우지는 않더라도 당장 눈앞의 문제점과 고민들을 가까운 미래를 알게 됨으로서 조금이나마 수정해나가고 싶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은 데에 대해 후회하며 피눈물을 닦아내지 못할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동일 선상에 발을 올려놓은 공정한 레이스가 결코 아니며, 후회 없는 삶이란 때론 위선과 기만을 적당히 첨가해야만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 등장인물들의 속 터지는 선택 대신에 타인의 피와 땀에 대한 부분 담보와 그리고 기회박탈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젠장 부러운 건 그냥 부러운 거다.
“6시간 후 당신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