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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무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인질극을 다룬 스릴러 중에서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와 더불어 단연 발군의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이 바로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일 것이다. 핸디, 윌콕스, 보너 이 세 명의 죄수들은 교도관을 살해하고 교도소에서 탈옥한다. 이들은 도주 중에 농아학교의 스쿨버스를 점거하고 열 명의 농아를 인질 삼아 캔자스의 어느 도살장에서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그리하여 경찰과 인질범 그리고 인질 사이에는 범인 검거와 인질 석방, 그리고 법의 심판을 벗어난 일탈의 자유를 위한 대가를 놓고 벌이는 심리전의 공방이 오가게 되는데 12시간 동안의 리얼타임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인질 협상 전문가와 인질범이 벌이는 밀당하는 심리전에서 예전에 보았던 영화 <네고시에이터>에서 보았던 급박한 스토리 전개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으며, 제프리 디버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강력한 반전 또한 절대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인질극 와중에 발생하는 대치상황에서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전시장도 구경시켜 준다. 인생사의 또 다른 압축버전을 등장인물들의 성향에서 관조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소설의 재미를 다른 시점에서도 추출해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질극에서는 최소한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관점에서는 인질들의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이 무사하게 사건을 풀어보겠다는 이상주의나 만용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 협상 전문가 아더 포터를 대변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가?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알 권리를 당연하게도 들이대는 개념 없는 언론과 무력진압 대신 설득으로 평화적 해결을 시도하는 낭만주의자도 나서서 사건을 진화하기보다 방화 수준으로까지 불씨를 확 살리기도 하지. 정말 어딜 가나 눈치없고 코치없이 물을 흐리는 암적인 존재들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독자들의 분통을 열어준다.

하지만 시궁창에도 연꽃이 피어나듯 경찰과 인질범의 대치과정에 보이지 않은 틈을 제공하는 농아 교사 멜라니의 활약상도 있으니 무조건 분개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인질범들이 인질을 한명씩 석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포함되지 않음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각오를 다잡아 인질구출에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데 일조하게 되면서 박수갈채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할 수 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또한 인질들이 모두 농아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불가라는 악조건을 걸어놓은 디버의 착상이 뛰어난 점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제목에서 말하는 <소녀의 무덤>은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결말에 도달해서야 어렴풋 판단할 수 있다. 정상인이 아닌 농아 소녀들이 겪어야 했던 불안과 공포의 12시간은 그녀들의 여린 영혼 대신 잠식당해 고갈해버린 황폐한 영혼으로 대체해버렸으며, 차갑고 냉혹한 현실은 소녀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인 비유를 담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제 순수의 시대는 찾아오지 않을 거야. 되돌리지도 못하고 막아주지도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