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12.봄 - 35호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청어람M&B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지금도 그칠 줄 모른다. 봄을 재촉하는 비라는 생각에 마음은 차분해지고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 그 누구의 속박도 없이 종일 책을 읽는다. 바쁜 업무도 당분간 없어 시간의 자유는 전부 책에 투자하는 중인데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독서의 여유로 나는 행복하다. 봄을 맞아 신간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으니 밀린 책들을 하루바삐 완독하고 지름신 발동을 준비해야지...

 

방금 읽은 책은 한국 추리작가협회에서 발간한 <계간미스터리 통권35/ 2012년 봄호>이다. 해외에서 발간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도 소장하고 있지만 이렇게 국내추리·미스터리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전문잡지도 첨 만나본다. 너무 해외로 시선과 관심을 돌린 것에 대해 자아발견 같은 자세로 대하게 되는데 예상보다 분량이 두툼하지는 않다.

 

구성은 내 고장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20년째 추리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 김성종 작가와의 대담, 에세이, 추리꽁트, 국내단편, 그림자재판 참가기, 해외단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동안 몰랐던 국내 추리·미스터리 소설계에 대한 정보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된 것 같다.

 

전 한국 추리작가협회장인 이상우 작가를 통해 한국 추리소설의 원조격인 김내성 작가와 방인근 작가에 대한 소개에서 추리의 불모지인 한국 추리문단의 척박한 토양에서 현재의 수준에 올라설 수 있도록 자양분 역할을 한 두 사람의 공로에 작은 지지를 보내면서 선구자가 지나간 길이 후학들에게 반면교사의 좋은 교훈이 되길 빌어본다. 그런데 최근 <김종서를 누가 죽였을까>를 최근 내놓은 이상우 작가의 단편도 실려 있는데 타작들에 비해 많이 평범하면서 성의가 부족해 보여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향후 독자층이 기대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작품으로 다시 재회할 날이 오겠지.

 

국내단편 중에서는 오현리 작가의 <팔선연회투안>이라는 작품이 있다.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문득 중국에서는 셜록 홈즈와 콜롬보, 필립 말로우를 각각 어떻게 부를까에 착안하여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 미스터리가 아닌 미스토리(Mis-Story)라는 작가의 변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시작된 이 단편은 중국 고대의 서로 다른 시대를 산 8명의 신선이 생일파티를 맞아 모인 가운데 일어난 절도사건을 현대적 해석과 절묘하게 접목시켜 포복절도할만한 유머를 터뜨려 주신다.

 

외래어와 현대문명 이기들을 한자로 풀어 설명하는 형식으로 가령 위스키를 위사기로 옮기는 건 약과에 불구하며, 삼편주(샴페인)가 도난당하는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계에서 명탐정과 경찰들이 등장하시는데 그때 술술 나오는 이름들이 정말 대박이다. 사락극 곽모사(셜록 홈즈), 옥삼(왓슨), 과륭박(콜롬보), 비리보 마락(필립 말로) 과남(코난), 아가사 격리사체(아가사 크리스티), 애륵리 규은(엘리러 퀸) 등등 변환된 한자어 표기와 발음은 작가가 동원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집대성으로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ㅋㅋㅋ

 

그런데 사단이 발생한다. 삼편주 절도사건의 범인이 보여준 범행 수법이 애륵리 규은의 <하란피혜적비밀(Dutch Shoe Mystery)>에서 사용된 트릭과 일치하는 걸로 밝혀진다. 원작의 내용을 정말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는데 그렇게 드러난 범인의 정체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중요한 점은 애륵리 규은의 <하란피혜적비밀(Dutch Shoe Mystery)>은 대기목록에 있던 소설인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해부해주는 친절 덕에 트릭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국명 미스토리와는 결국 이렇게 멀어지게 되는 운명이란 점이다. 스포를 마구마구 퍼뜨리면 난 어쩌라구, 그래 안 읽을거야 .

 

여기서 나의 좌절은 끝나지 않았다. 해외 단편으로 <실낙원 살인사건>이란 작품이 실려 있는데 차근차근 내용을 추적해가던 내게 화학, 의학, 생물학, 역사, 종교까지 경계를 허문 재료의 과감한 파괴 작업이 혼돈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렸고 그렇게 헤매이다가 영문도 모른 채 마감하고 말았다. 작가가 보여주는 전개과정과 트릭이 당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두 손 두 발 모두 들게 하는데... 이건 현학의 극치가 아니던가! 그래서 작가가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기이한 작품을 썼나 싶어 확인해보니 <흑사관 살인사건>을 남긴 오구리 무시타로였다. 일본 탐정소설 3대기서 중 하나인 <흑사관 살인사건>을 쓴 작가라서 그런지 이 단편 또한 정말 해독불가 수준으로 포장해버렸다. 이 작품도 그런데 아직 구경도 못한 <흑사관>은 오죽 하겠는가! 원래부터 읽을 생각이 전혀 었었던 이 작가는 나랑 진짜 인연이 없다니까. 또 한 번 급 좌절 .

 

그렇게 거듭된 좌절 속에서 잡지를 다 읽고 나면 드는 첫 생각은 작품들마다 편차가 너무 심하다는 것과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 작품이 일부 불필요하게 실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초반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문맥 연결이 매끄럽지도 않으며, 하려던 말을 서둘러 정리하는 것 같은 성급한 구성과 전개가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아직 우리는 한참 멀었다는 뼈저린 반성을 요하는 점은 이 잡지를 구태여 다시 찾아 읽게 만들 매력을 상실하고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좀 더 각고의 분발한 치밀한 연구로 한국 추리·미스터리계의 앞날을 열어갈 시금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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