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귀신이 되다
전혜진 지음 / 현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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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틀에 갇혀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빼곡한 책이다. 이런 여자들의 죽음은 사대부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주로 쓰였다. 이들을 진정 위로한 것은 '여성' 무당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고전 이야기를 처음 접해봤는데, 읽는 동안 너무 재밌었고 작가님이 이야기를 엮고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듯하다. 이야기 속에서 당대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내는 안목이 길러진 것 같다.


계기

 제목을 보자마자 한 서린 과거 여자들의 얘기가 상상돼 나도 모르게 울화통이 치밀었다. 입이 있고 목소리가 나오는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고, 죽은 뒤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결말이긴 하겠으나, 읽고 있으면 억울하게 죽은 여성도 남성의 출세를 위한 발판일 뿐인지 묻고 싶은 삐딱한 마음이 비죽 고개를 든다. (35쪽)

여기 삐딱한 마음 추가요^^ 언어는 권력이다. 한 서린 여성의 이야기조차 사대부의 능력을 증명하는 도구로 전락했고, 아무도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건 권력자가 정립한 언어가 우리 일상에 깊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은 가해자나 그에 동조하는 자들이 바라는 '피해자다운 피해자'의 모습에 가깝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권력자에 저항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를, 당대의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멋대로 전유해 버린 것은 아닐까. (88쪽)

'피해자다움'이라는 폭력적인 단어가 조선 시대부터 있었고 지금까지 큰 의미 변화 없이 존재한다는 게 화난다. 성추행을 당하고 법정에서 '기분이 더러웠어요'라고 진술한 피해자에게 피해자답지 못한 언행이라고 말한 재판부가 생각난다.



이들(신분이 낮은 통인, 후처)은 사대부가 진상을 밝히고 처벌해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만만한 가해자들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연인들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농락한 경우, 피해자의 원혼은 아예 원님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94쪽)

생각해보니까 계급 높은 사람이 처벌받는 이야기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만만한 가해자라는 표현이 아이러니한데 찰떡이다. 누구 손에 죽는지에 따라 죽어서도 억울할 수가 있다니... 권력, 계급이 도대체 뭔지 많은 의문을 남긴 대목이었다.



어쩌면 남성 사대부들은 이와 같은 이류의 이야기나 승화형 상사뱀의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편리한 여성들을 제멋대로 상상해 그려낸 것인지도 모른다. 손쉽게 몸을 허락하면서도 지고지순한, 그러면서도 자신을 출세시켜주거나 보물을 안겨 주거나 신적 존재가 되어 내조하면서도 번거롭지 않게 알아서 사라져 주는 여성들 말이다. (141쪽)

준 것도 없는 주제에 바라는 건 개많네... 문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다는 말이 제일 와닿는 대목이었다. 사대부의, 사대부에 의한, 사대부를 위한 설화를 읽을 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이라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못 했지 싶을정도로 이상했다. 이 시대 문헌들은 철저히 사대부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접할 때, 그 점에 유의해서 접한다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신부형' 설화들에서 버림받은 신부들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신랑의 신행길에 비를 뿌리거나 크고 작은 재해를 내리지만, 자신을 배반한 신랑을 죽이지는 않는다. (143쪽)

죽인 이야기가 있었어도 각색되지 않았을까 싶다. 감히 고귀하신 사대부 남성을 죽인 여자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니까.



감상

 고전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고등학교 때, 문제집과 시험지에서 만나고 생긴 고전 소설, 이야기에 대한 편견을 단번에 부숴준 책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촘촘히 짜인 책이 이 정도로 재밌다면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어진 #월하의동사무소 가 재밌을 거란 건 당연한 거 아닐까.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한 이야기들로 책이 채워져 있었다. 더 화가 나는 건 당시에 있던 썩은 사상이 아직도 우리 생활에 일부 남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사회는 바뀌는 듯 바뀌지 않는 듯 결국 바뀌긴 하는데, 여성 인권 관련 부분은 속이 터지도록 더디게 바뀐다. 차별이 가득 담긴 조선 시대 사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거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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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민지 지음, 임현성 그림 / 뜰boo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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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단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장 큰 혐오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디 가서 말하기조차 껄끄러운 병은 환자의 입을 통째로 틀어막아 버린다. 이 책은 그런 세상을 향해 비명을 지른다. 여기 아픈 내가 있다고, 혹시 당신도 아픈 거면 우리 같이 비명을 지르자고.


안타깝게도 그날을 내가 기억하는 한 태어나 처음으로 성추행을 당한 날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일들은 서른을 넘긴 해를 살아오는 동안 부단히도 많이 일어나곤 했다. (45쪽)

성 관련 피해를 당하면 내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쉽게 어디에 털어놓지 못하고 신고는 생각도 못 해본다. 가해자가 버젓이 있는데 왜 피해자가 가해자를 자처하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건지 화가 난다. '피해자다움'이라는 틀 속에 피해자를 억지로 구겨 넣은 사람들 모두가 피해자의 입을 막은 2차 가해자다.



그는 아직도 바짓가랑이 사이를 주물럭거리며 어린 소녀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을까. (73쪽)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그러지 못한 결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피해자들이 병원에 다닌다.



문득문득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가 있기는 한 걸까.

직장을 다니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잠을 자는 몸뚱이는 있는데, 어째서 나는 나를 인지할 수 없을까. (159쪽)

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해서 작가님도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게 신기했다. 분명 일상은 내가 이루는 행위들로 차 있는데, 그 속에 진짜 내가 있는 건지 있다면 다는 그냥 움직이는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건지.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아프다고, 나 아프다고, 나는 상처받았으며, 

그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 소리쳐야 한다.

죽음은 잠시 미뤄 둬도 괜찮다. (192쪽)

죽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사세요. 같은 진부한 위로가 아닌 '죽음을 잠시 미뤄라'는 작가의 위로가 와닿았다. 나를 죽음의 문턱까지 이끈 존재들의 비참한 최후를 위해서라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근데 만약에 나를 죽음 앞으로 끌고 간 게 나 자신 같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나는 무엇을 명분 삼아 죽음을 미뤄야 할까.



진절머리 나도록 아팠던 과거의 나를 직시하며 울지 않은 날보다 우는 날이 더 잦았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글로써 내리며 조금 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으며, 치유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에필로그' 중)

이 글을 쓰는 과정을 치유로 인식한 것. 그 자체로 이미 작가님은 봉오리를 가졌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꽃이 핀 모습도 괜찮겠지만 봉오리 그 자체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꽃봉오리는 피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멋있다.




감상

 누군가의 인생 중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골라 마주할 수 있는 책이다. 너무 슬픈 건 인생 대부분이 고통의 순간이었다는 것이다.작가는 미성년자 때, 어른들 때문에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았다. 읽는 내내 한숨이 절로 나왔고 무기력한 기분을 느꼈다. 타인인 내가 이 정도면 실제로 그 일들을 겪고 버텨냈어야 하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은 지 한참이 지나도 쉽사리 서평을 쓸 수가 없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는데, 이 감정들을 어떻게 글로 담아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자판을 칠 수 없었다. 책의 집필 과정에서 자신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에필로그에 쓴 작가의 글을 보고 '정말 그럴까?'란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책장을 덮은 지 이주가 지났고 이제는 그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를 기꺼이 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갈 힘도 함께 얻을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님은 치유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서평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들춰보지 못했다. 유독 이 책이 나에게 힘겨웠던 이유는 아마 작가님이 적으신 생각 중 몇몇 생각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아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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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는 아닐지라도
전민진 지음, 김잔듸 사진 / 비타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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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나오는 분들은 누군가의 눈엔 완벽한 환경운동가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내 눈엔 더없이 훌륭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상태였고, 그걸 발판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 하나쯤 한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라는 생각에 '내가 사는 인생, 내가 걷는 길은 바뀐다'는 확신을 준 책이다.



고품종 커피일수록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재배지의 고도는 높아진다. 문제는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애써 일군 농장을 두고 또 다른 농장을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38쪽)

지구온난화와 커피가 연관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기온 상승이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있는 게 무서웠다.



그리고 슬로건도 정했다. 'It's not a big deal.' 말 그대로 별것 아니었다. 다회용기를 대여하고, 쓰고, 세척하면 되는 간단한 솔루션. (88쪽)

별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복잡한 걸 간단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좋다.



"화가 많이 났었죠. 분노도 해봤고요. 근데 저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하고 되물으면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 이렇게 활동하고 있지만 지난날에 저는 무언가를 많이 사고 버리면서 살아왔고, 또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도 없고요." (125쪽)

자신을 성찰한 계기를 원동력으로 앞으로 나가는 자세가 멋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대안적인 삶, 대안적인 요리에 관심이 간다는 그는 먹을 게 넘치는 세상에서 잊히고 있는 먹는 행위 본연의 가치, 그 기쁨을 되살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215쪽)

요즘 입맛이 없어서 먹는 행위 본연의 가치와 그 기쁨을 진심으로 느끼고 싶은 사람중 한 명이다.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 없이 냉동실에 있는 도시락을 돌려먹고 배가 고플 땐 밥 먹는 게 귀찮아 군것질거리로 때운다. 셰프님이 보면 기겁하실 일상이겠다ㅋㅋㅋㅋㅋ



"개인의 선택은 물론 존중해야 하지만 고기를 먹을 권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고기를 먹는 행위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 공중보건, 깨끗한 환경을 누릴 권리 같은 것들을 침해하는 셈이니까요." (229쪽)

생각지 못했던 발상이다. 육식을 줄여야 하는 이유로 비윤리적인 축산업만 떠올렸는데, 그 과정에서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피해를 본다. 물론 육식을 즐기는 사람은 그 피해자가 될 확률이 극히 낮다. 그래서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남이지고 있다.



감상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

일회용품 없는 축제 ㄱㄴ? ㅆㄱㄴ!

화려한 축제와 다량의 쓰레기는 어쩔 수 없는 상관관계라고 생각했다. 축제와 다회용기가 공존 가능할까...? 란 생각을 단번에 깨부숴준 기업이었다. 특히 축제에서 더 나아가 장례식장, 배달음식 시장까지 사업을 확장하려는 대표님의 마인드가 멋있었다. 다회용품 사용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빨리 올 것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용규 #문수정 #오션카인드

바다에서 쓰레기 줍기... 나만 줍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한없이 넓은 바다에서 쓰레기를 줍다 보면 현타가 자주 올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랬다. 내가 줍는다고 이 쓰레기가 달라질까? 사람들은 왜 여기에 쓰레기를 버릴까? 근데 이 쓰레기 중에 내가 버린 건 정말 없는 걸까? 나의 끝은 항상 약간의 분노와 많은 무기력이다. 이 분들이 나와 달랐던 점은 이 무기력을 발판 삼아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었다. 두 분의 자세가 너무 멋있다.


#신소영 #마하키친

스페인 요리도 낯선 소재인데 거기에 비건이라니! 대단한 도전이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제시해주신 '토르티야 데 파파타스'는 감자, 양파, 달걀, 현미유, 소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라 조만간 꼭 도전해 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맛있을 것 같다.


#최경주 #한성원 #까페여름

요즘 보기 힘든 공동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챕터였다. 골목의 식당들이 카페 주인의 취지에 공감해 일회용품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상점을 운영하는 #유어보틀위크 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도 꼭 방문해 보고 싶다.


#이하린 #전은지 #위켄드랩

우유, 가구가 되다.

버려지는 여러 원료를 볼 때마다, 저걸 살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만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그런데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 심지어 제품이 사용 가능하단 사실이 놀라웠다. 세상에 안되는 건 없구나! 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원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시는 대표님들의 열정이 나에게까지 와닿았다. 계획하시는 일들이 꼭 잘되셨으면 좋겠다.


 한 분 한 분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일상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꿀팁들을 제공해주는 부분이 좋았다. 애정하는 공간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쓰레기 줍기,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스페인 요리 레시피 등등. 생활 속에서 당장 실천해보고 싶은 욕구가 뿜뿜 생기는 제안들이었다.

 또한 기업 대표님들이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너무 많은 걸 해보고 싶어서 걱정이라는 그들의 열정에 감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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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대로 하라 :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구스노키 켄 지음, 노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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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자가 올린 사연을 바탕으로 작가가 한 답변을 모아 둔 책이다. 다 달라 보이는 고민이지만 답변은 일맥상통한다. '좋을 대로 하라.' 언뜻 보기에 무책임해 보이는 답이지만,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명쾌한 답변은 없을 것이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도 괜찮은 게 인생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외자계 보험회사에 입사했다'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말해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56쪽)

웃곀ㅋㅋㅋㅋㅋ작가님너무 솔직하시다. 먹고살려고 그랬다는 궁핍한 변명 뒤에 숨어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어차피 사전에 완벽히 알 수 없다면 구체적인 조언에 집착하기보다 커리어 콘셉트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70쪽)

커리어 콘셉트란 개념을 처음 접하는데, 인생에 잘 적용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잘 와닿진 않는데 작가가 추천한 방식(구체와 추상을 왕복하기)을 활용해 내 커리어 콘셉트를 꼭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므로 거듭되는 '좋을 대로 하라'는 말은 사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75쪽)

맞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싫어하는 건 바로 말할 수 있다.



당신처럼 쉬운 길을 찾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대머리 아저씨가 잔소리를 늘어놓아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 당신은 '게으름뱅이'입니다. 당연히 경영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도 '최적의 커리어' 따위는 없습니다. (131쪽)

찔림... 최단 노력으로 최대 결과를 뽑고 싶은데, 머리로는 안되는 걸 알아도 행동은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고쳐야 할 잘못된 생각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위해 하는 행동이 '일'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위해 하는 행동은 '취미'입니다. 취미는 집에서 즐겨야 합니다.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니 이런 무의미한 고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156쪽)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게 왜 문제인지 이해가 안됐는데 이 문장을 읽고 이해했다. 일은 일의 수혜자를 바라보며 행하는 행위다. 나 좋자고 하는 건 취미다. 취미는 일이 될 수 없다는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



물론 남녀 사이에 신체적, 심리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본질적 차이가 없습니다. (중략) 그러니 당신도 회사의 여성 인력 활용 정책에 너무 동조하기보다 남녀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롤 모델을 찾기 바랍니다. (222쪽)

일하는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문제다. 임신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며 육아와 가사도 거의 여자가 담당한다. 물론 요즘은 바뀌는 추세긴 하지만 그래도 윗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사고방식으로 일하는 여성을 바라본다. 그래서 질문자는 자신과 비교적 동일한 환경에 처했지만 잘 극복해나간 롤모델을 찾고 싶은 마음에 여자 선배 중 롤모델을 찾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업무능력이 아니라 환경에서 나타나는 주관적인 업무능력이 질문자가 원하는 롤모델 기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모르는 것에 직면했을 때 환경 결정론적 사고를 통해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환경 결정론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젊을수록 환경 결정론에 빠지기 쉽다는 말입니다. (250쪽)
환경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너무 환경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란 성찰을 할 수 있는 상담 내용이었다.


감상
좋을 대로 하라는 저자의 뜻은 '네 마음이 끌리는 그곳에 답이 있으니 둘 중 더 마음이 가는 곳을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일수록 사회의 경험이 많지 않아 무엇을 고르든 부족한 사전정보 때문에 안 가본 길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선택을 했다면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고 거기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저자의 솔직한 입담에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많이 웃었다. 팩폭인 조언에 순살이 될 때도 있었고 지금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조언에 감동도 받았다. 내가 사는 현재도 결국 내가 선택한 최선의 길이니,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해야겠다. 그러다 갈림길을 만나면 나 좋을 대로 선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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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승무원 - 서비스와 안전 사이, 아슬했던 비행의 기록들 어쩌다 시리즈 1
김연실 지음 / 언제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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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구역의 도른자, 똘끼 충만한 어느 승무원의 파란만장 성장 일기'라고 책 뒷면에 쓰여 있었는데, 이 문장이 책을 대변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고정관념 속 승무원의 모습을 깨버리는 작가님의 능청스러움에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조금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어디서 뭘 해도 잘하실 것 같은 작가님의 앞으로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예전에 일하던 항공사에서 후쿠오카로 비행을 가는데, 손님이 화장실에서 자살한 사건이 하나 있었어." 일본에서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죽을수록 좋은 곳에 간다는 미신적인 이유로, 하늘에서 죽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화장실에서는 제발 볼일만!' 중 일부-

 세상에는 정말 별일이 다 있구나...



"으이구! 다른 항공사 비행기 타셨으면 지금보다 30만 원은 더 내셔야 돼! 선생님, 30만 원 더 내고 타서 맥주 두 개, 커피 두 개 공짜로 드실래, 30만 원 싸게 타고 13,000원 내고 맥주 두 개, 커피 한 개 드실래? 13,000원 내는 게 훨씬 낫지!" 안녕하세요. '김능청'입니다. 게다가 비유는 또 왜 이렇게 찰떡이야. 누가 들어도 매우 그럴듯한 논리였다. 

-'나는야 오늘의 판매왕' 중 일부-

 앜ㅋㅋㅋㅋㅋㅋ 승무원들의 서비스를 떠올리면 입꼬리가 적당히 올라간 미소와 나긋나긋한 말투가 떠올랐는데 이런 서비스는 처음 봤다! 작가님 정말 서비스업이랑 찰떡이신 듯하다. 너무 능청스럽게 잘 대처하신다.



"그렇게 잘나셨으면 연실 씨가 매니저를 하세요." "잘난 척은 다 하더니, 막상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요?" 이런 말들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혀 집으로 가는 길에도 차마 지하철을 못 타고 화장실에서 엉엉 울다가 화장을 고쳐야 했고, 터덜터덜 걷다가도 누군가에게 싱긋 미소지어야만 했다. 

-'잊지 못할 그 노래' 중 일부-

 헐... 진심 내가 다 상처다... 말을 이딴 식으로 밖에 못 하는지... 이런 상황에서 마음 놓고 울 곳 하나 없는 현실이 더 슬프다ㅠㅠ



이렇게 누가 봐도 불합리한 상황인데, 왜 승무원한테 따로 응대하라고 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승무원까지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회사 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라더니!'-

 완전 공감한다. 서비스직이라고 무조건 손님 말을 다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다. 억지를 부리면 회사나 상급자 측에서 막아줘야 하는데 그걸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떠넘겨 버린다.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과를 하고 진상은 의기양양해지는 꼴이 보기 싫다.



그런데! 그 상황을 지켜보던 옆 좌석의 중년 남자 승객이 갑자기 좌석 벨트를 슬며시 푸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아가씨, 나도 해줘, 나도." ㅅ…. 이럴 때는 정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손이 없는 건지 뇌가 없는 건지' 중 일부-
 우웩ㅠ 소제목이랑 찰떡인 일화다. 뇌가 없다에 한 표.


 비행을 하며 승무원으로서 난처할 때가 바로 이처럼 안전과 서비스 사이의 기로에 놓일 때다. 서비스나 승객의 기분을 우선해 후속 응대를 하지 않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에 괴로울 것이다. 반대로 이번처럼 단호한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안전을 위하는 내 뜻을 함께해주는 이들이 내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리튬 배터리' 중 일부-
 승무원은 비행기에서 손님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도 있는데, 외적인 것에 가려져 그런 부분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 현실이 아쉽다. 단호하게 대처한 작가님이 대단하시고 그 뒤를 함께 해준 동료분들도 대단하시다.


감상
 서비스직의 끝판왕인 승무원이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일화로 세세하게 만나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과 일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능청스럽게 진상들을 잘 헤쳐나가시는 작가님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승무원은 '하늘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와닿았다. 보이는 곳에서뿐만 아니라 안 보이는 곳에서도 하고 있는 일들이 많았다.
 비행기를 타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는 일들도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작가님이 이야기로 잘 풀어주셔서 이해가 됐다. 하늘은 생각보다 더 많이 위험한 곳이고 그래서 안전을 위한 규칙들도 꼼꼼하고 세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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